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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효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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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진당 조정육의 그림과 인생 스크랩 봄은 왔는데 봄 같지가 않구나
무진당 추천 0 조회 158 11.04.23 12:07 댓글 5
게시글 본문내용

 

-조정육의 『동양화가 말을 걸다』②히시다 ?소, <왕소군>

 

 

“봄은 왔는데 봄 같지가 않구나”

 

 

매화꽃이 피었다. 산수유도 피었고 개나리, 진달래도 피고 있다. 조금 있으면 복숭아꽃, 살구꽃이 당도할 테고 벚꽃과 이팝나무까지 개화(開花)의 대열에 합류하게 되면, 비로소 봄은 그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낙화(落花)하게 될 것이다. 아무려나 지금은 봄의 시작일 뿐. 꽃이 피고 새가 울어도 부드러운 봄바람 속에는 아직도 지난 겨울의 찬 여운이 은밀하다. 화끈하게 춥지도 덥지도 않은 날씨 때문에 겨울옷을 입기에는 부담스러운데 봄옷을 걸치기에는 모험이 필요하다. 거칠게 타오를 수도 절망할 수도 없는 시간. 지금은 봄은 왔는데 봄 같지가 않다. 봄은 봄인데 봄을 희망하기에는 꽃의 맹세가 너무 허약하다. 봄비 한번 내리면 후두두둑 떨어져 버릴 무서운 생존 앞에서 벌과 나비를 불러 들여 뜨거운 열매를 맺겠다는 산수유의 약속은, 증거를 들이대기 전에는 믿지 못하는 현실주의자들에게 지나치게 추상적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 추상에 의지하여 생을 헤쳐 나가야만 하는가.

 

 

깃털 같은 옷자락 속 여인의 슬픔

봄은 왔건만 도대체 봄 같지 않게 쌀쌀할 때 사람들은 탄식하듯 한마디 한다.‘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로다.’가슴 속에 응어리가 맺혀 좀처럼 풀리지 않을 때도 역시 한마디 한다.‘춘래불사춘이로다.’ 사랑하는 정인(情人)한테 소식이 없을 때도, 정치인이 낙선해서 방안에 쭈그리고 앉아 있을 때도, 뭔가 세상사가 마뜩찮으면 계절에 상관없이 무조건 춘래불사춘이다.

입만 열면 사람들이 춘래불사춘을 얘기하지만 기실 그 문장의 주인공은 따로 있다. 왕소군(王昭君)이다. 왕소군은 서시, 초선, 양귀비와 더불어 중국의 4대 미인 중의 한 사람이다. 많은 화가들이 아름다운 왕소군의 초상화를 다투어 그렸는데 히시다 ?소(菱田春草:1874-1911)의 <왕소군>도 그 중의 하나다. 감상자의 눈길을 여인들에게만 향하게 하려는 듯 배경은 흐릿하고 몽롱하다. 실물대 크기의 여인들이 무더기로 서 있는 작품 앞에서 감상자는 깃털같이 가벼운 옷자락 소리를 들었음직하다. 파스텔톤으로 차려 입은 여인들은 한결 같이 곱고 우아한데 자세히 보니 이들 모두 비탄에 빠져 있다. 고운 여인의 슬픔이라니. 무슨 일일까.

 

 

히시다 ?소, <왕소군>, 1902년, 비단에 채색, 168× 370cm, 일본 산형 선보사 소장

 

왕소군이 남기고 간 눈물

왕소군은 한나라 원제(元帝:기원전 75~33년)때의 여인으로 18살 때 궁녀가 되었다. 양가집 딸이었던 그녀는 어릴 때부터 빼어나게 아름다웠으며 기품 있고 고상했다. 아무리 꽃이 예쁘다한들 벌과 나비가 찾아오지 않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수천 명이나 되는 궁녀들을 일일이 파악할 수 없었던 황제는 화공이 그린 궁녀의 초상화를 보고 마음에 드는 여인을 선택했다. 궁녀들은 너나할 것 없이 화공에게 뇌물을 주며 원판보다 예쁘게 그려달라고 부탁했다. 뇌물을 주지 않은 왕소군의 초상화는 한번도 황제의 간택을 받지 못했다. 그녀는 아무도 찾아주지 않은 썰렁한 방에서 날마다 외로운 시간을 보내며 울적하게 살았다.그런 어느 날, 한나라에 큰 위협이 되던 흉노의 왕이 한나라 공주나 후궁에게 장가를 들고 싶다고 전해왔다. 두 나라간의 화친을 원했던 황제는 흔쾌히 승낙했다. 연회가 베풀어졌다. 황제한테 버림받은 궁녀들이 연회장에 나왔다. 그 중에 왕소군도 포함되어 있었다. 왕소군을 본 흉노의 왕이 단박에 그녀를 지목했다. 흉노왕이 왕소군의 손을 잡고 황제 앞에 섰을 때 황제는 지상에 유배 온 하늘의 선녀를 보는 듯했다. 일찍이 선녀 모습을 알아보지 못한 자신의 무심함에 가슴을 쳤지만 후회해도 때는 이미 늦었다. 황제는 애꿎은 화공의 목을 치라는 명령으로 그 아쉬움을 달랬다.

조금이라도 더 왕소군과 함께 있고 싶었던 황제는 혼례준비를 핑계삼아 사흘동안 그녀와 함께 지냈다. 그녀가 흉노땅으로 떠나던 날에는 ‘소군(昭君)’이란 이름을 하사하며 이별을 아쉬워했다. ‘한나라 황실과 황제를 빛내라’는 뜻이 담긴 이름이었다. 일본 화가 히시다 ?쇼의 작품 <왕소군>은 이 상황을 그린 것이다. 내일이면 정든 고국을 떠나 북풍이 휘몰아치는 흉노땅으로 떠나야 하는 여인은 깊이 슬퍼했다. 그녀가 울자 시녀들도 울고 황제도 침실에서 신음하며 울었다. 비 내리는 고모령만 넘어도 부엉새가 우는데 영영 고국을 떠나야 하는 여인네의 울음이 어찌 짧겠는가. 왕소군의 울음은 질기고도 길었다.

 

비파를 타며 노래하는 왕소군

왕소군을 그린 그림은 여러 점이 남아 있다. 명대(明代)의 구영(仇英:16세기 초엽)과 금대(金代)의 궁소연(宮素然), 청대(淸代)의 화암(華?:1682~1756)이 왕소군을 그렸고, 조선의 강희언(姜熙彦:1738-1784)도 동참했다. 이들은 한결같이 왕소군이 국경을 넘어 흉노땅으로 떠날 때 비파를 뜯으며 ‘출새곡’(出塞曲:변방을 나서는 노래)’을 부르는 장면을 그렸다. ‘소군출새(昭君出塞)’ 혹은 ‘명비출새도(明妃出塞圖)’라는 제목이 붙은 일련의 그림들은 말을 탄 여인이 비파를 들고 있는 캐릭터가 특징적이다.

 

강희언, <소군출새>, 종이에 엷은 색, 23.1×26cm, 서울 개인

그 대표작이 강희언(姜熙彦:1738-1784)의 <소군출새(昭君出塞)>이다. 국경선을 넘기 직전의 왕소군이 뒤를 돌아보며 아쉬워하고 있다. 잠시 후 그녀는 비파를 꺼내 불후의 명곡 ‘춘래불사춘’을 노래할 것이다. 그것을 예감한 것일까. 당대의 최고 미술비평가였던 강세황(姜世晃:1713-1791)이 다음과 같은 제시를 적어 놓았다.

“황색 모래 흰 풀도 비파 슬픈 곡조를 듣는 듯하구나(黃沙白草如聞琵琶哀怨之曲)"

아름다운 여인의 슬픈 노래는 듣는 사람의 애간장을 끊게 한다. ‘봄은 왔는데 봄 같지가 않구나’로 시작되는 왕소군의 노래가 어찌나 애절하고 사무쳤던 지 하늘을 나는 기러기가 그 노래에 심취하여 날갯짓을 잊고 땅에 떨어졌다고 한다. 그때부터 ‘낙안(落雁)’은 미인의 대명사가 되었다. 자신의 운명을 어쩌지 못하는 자의 처연함이 담긴 '춘래불사춘’은 원래 당나라 때의 시인 동방규(東方?:측천무후 때 활동)가 왕소군을 생각하며 지은 시의 한 구절이다. 그 표현이 너무나 정확하여 마치 당사자가 부른 노래처럼 와전되었고, 시인의 이름은 왕소군의 미모에 묻혀 잊혀지게 되었다. 왕소군의 운명을 안타까워하기는 시인들도 마찬가지였다. 이태백, 구양수, 왕안석, 황정견 등 기라성 같은 시인들이 입을 모아 그녀에게 찾아 오지 않은 봄을 아쉬워했다. 여전히 지금도 시가, 소설, 희곡 등 다양한 문학작품 속에서 왕소군의 봄을 찾아주자는 동정론이 꾸준히 힘을 얻고 있다.

 

그러나 봄은 쉼없이 오고 있다.

그 많은 왕소군의 초상화 중에서도 히시다 ?소의 <왕소군>은 매우 특별한 작품이다. 다른 화가들이 모두 비파 들고 말 탄 왕소군만을 생각할 때 한나라 궁정에서 슬픔에 빠져 있는 모습을 발견한 것이다. 때문에 화면 속에는 왕소군뿐만 아니라 왕소군에 버금갈만큼 고운 여인들이 여러 명 등장하여 감상자의 눈을 즐겁게 해준다. 명치(明治) 말기에 일본인들이 중국 전통에 열광했던 분위기를 감안하면 변방을 나서는 왕소군 한 명보다 여인들의 그룹초상화를 그린 이유가 이해되기도 한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다. 여인들이 모두 갑을을 다툴 만큼 아름답다 보니 누가 왕소군인 지 가늠하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이 작품을 발표했던 당시에도 논란이 분분했다. 과연 누가 왕소군일까. 찾아보시기 바란다.

봄은 왔는데 봄 같지가 않다고 탄식했던 왕소군. 그러나 봄은 온다. 머지 않아 완전하게 성장하고 전격적으로 들이 닥칠 것이다. 그러니 아무리 추상적인 희망이라도 의심하지 말고 믿어보자. 김용택 시인이 그랬던가.‘저 자연을 누가 무슨 수로 당하겠는가’라고. 그렇다. 봄은 그렇게 올 것이다. 봄은 왔으되 봄 같지 않다고 미심쩍어하는 순간에도 봄은 오고 있다. 지칠 줄 모르고 달려 오고 있다.(조정육)

 

이 글은 주간조선(http://weekly.chosun.com/client/news/viw.asp?nNewsNumb=002152100023&ctcd=C09&cpage=1)에 실린 내용을 수정 보완하였습니다.

 

오종혁 - 구름을 달아 | 음악을 들으려면 원본보기를 클릭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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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작성자 11.04.23 12:11

    첫댓글 제 블로그에 올린 이 글을 보고 한 분이 오류를 지적해주셨습니다. 워낙 치명적인 오류라서 다시 수정해서 올리느라 지난 번 글을 지웠습니다. 그리고 '히시다 슌소'라는 작가 이름이 자꾸 오류가 뜨는군요. 혜량있으시길...조정육 합장

  • 11.04.23 17:31

    ()()()

  • 11.04.23 19:08

    감사합니다.()

  • 그림을 통한 역사 속으로의 여행~~ 고맙습니다 .

  • 11.04.26 20:25

    *^^* 오늘 비도 촉촉히 내리고, 배꽃 하얗게 떨어져내리는 모습을...
    보며 감상에 젖었었는데 ...히시다 슌소의 <왕소군>과 무진당님의 글을
    읽으며, 무상한 자연속에 간이역 풍경처럼 스쳐지나가는 삶의 애잔함이
    느껴집니다.**"봄은 왔는데 봄 같지가 않구나"라고 읊은 시인의 탄식이~
    그림 속 여인들의 긴 소매자락에 감추어진 섬섬옥수처럼 가냘프고 아프게
    와닿네요.** 고맙습니다! 우산~ 관세음보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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