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회 부천신인문학상
둥지의 새들은 울지 않았다 / 동경
천장 무영등이 눈이 부시게
노려대는 1번 수술실 방
붉은 강낭콩 하나가 매듭을 풀고
시들어 가는 내 강낭콩 옆에
새 살이 되어 뜨겁게
자리를 일구기 시작 한다
텃밭 하나가 생겼다
숨을 헐떡이며 달려온
붉은 강낭콩은
세상 밖으로 떡잎을 올리며
줄 가닥을 엮어서
나를 깨웠다
한 땀 한 땀 담장 끝까지 넝쿨을
밀어 올리다보면
곡괭이처럼 구부러진 신경들이
느릿느릿 기지개를 펴대기 시작하겠지
양질의 영양분과 항생제로
혈관의 감염을 막아보지만
또 다른 시작이란 이름을 밀어내는
길을 막는 장기(臟器)는 몸속의 무기(武器),
평온을 할퀴는 그들에게
눈을 부릅뜬 약물들의 반란이 애절하다
이젠, 이렇게 살아야한다
내안의 원줄기세포들이
불도저 되어 밀어내지 않도록
또 다른 강낭콩이 불청객이 되지 않게
위장의 껍데기를 씌우던 날,
바람에 뒤집히는 장대비에 흠뻑 젖던
둥지의 새들은 더 이상 울지 않았다.
불쑥 정겹다
산내음이 분주하게 화장하는
산길을 오른다
햇살 들이키며 기지개를 켜는 소나무 숲들
안부의 입담을 푸른 보자기에서 펼쳐
한상 가득 콧노래로 풀고
산등성이를 안고
콧등에서 절여진 땀방울은
인중을 타고 내려와
천일염의 간으로 내 입속을 다진다
호
로
록,
불타는 진달래 향 한입 두입 마시며
분홍 아지랑이의 맛에 취한다
배시시 눈 뜬 개나리꽃 사이로
산새들의 마중은 산비탈 질경이의 소식까지
날갯짓으로
툭,
툭,
툭,
송골송골 달린 물방울을 등에 업고
산자락과 마주한
소담한 정자의 마룻바닥의 눈길에 누워
아침을 깨우니
봄은 더 불쑥 정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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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작으로 뽑은 동경의 ‘둥지의 새들은 울지 않았다’는 우선 막연한 상상 속에서 멋 부린 시적 표현이 아니다. 시는 ‘멋’이 아니리 ’맛‘이 있어야 한다. 그 시적 ’맛‘을
잘 살려 주었다.
또한 작가는 자신의 수술의 경험을 진솔하면서도 이미지로 표현하여 시로 승화시켰다. 수술대에 누워 생사를 넘나드는 위험한 상황 속에도 자신의 장기를 ‘붉은 강남콩‘이라 표현했다. 그런 점이 심사위원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작가는 자신의 몸을 ’텃밭’이라 표현했고, 신경神經을 곡괭이로 표현한 점도 서로의 유기적 의미로 표현한 점이 신선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그래서 시인은 ‘새가 되었지만 울지 않았다’라고 하지 않았을까. 또한 시를 전체적으로 볼 때 작품이 가진 시적 표현의 일관성과 차분함이 있어 큰 기쁨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