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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어제 전화했던 의뢰인이 다녀갔다.
오십 대의 몸집이 풍만한 아줌마였는데 악성 채권 문제로 찾아온 것이다.
아줌마의 남편이 작은 건설회사에 나가면서 이사로 등재되었다고 했다. 회사가 잘 돌아가면 이사로 등재되더라도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 중소 건설회사에는 그런 일이 비일비재하다. 가족들이 이사로 등재되거나, 직원을 이사로 등재되는 경우가 태반이다. 주식회사를 만들기 위해서, 주식회사로 만들어서 관공서의 공사를 입찰하기 위해서 그렇게 이름을 올리는 것이다.
한데, 이 경우는 좀 특별하다.
건설회사의 이사가 된 남편 명의의 집을 회사의 자산으로 잡았다는 것이다. 회사가 잘 돌아가면 그것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작지만 종합건설, 그것도 주식회사로 등재되려면 일정한 회사의 자본이 확정되어야 하기에 회사를 만들면서부터 집이 회사 자산으로 등재된 것이라고 했다.
남편은 그 회사의 상무이사라는 직함을 달고 건설은 전문지식이 없어 도면도 제대로 볼 줄 모르고, 그저 봉고차로 건축 자재나 날라주면서 십이 년을 근무했다는 것이다. 거기까지만 들어도 뒷이야기는 감이 잡힌다. 이건 민사로서 페르세우스가 의뢰받을 사건이 아니다. 채권 추심을 전문으로 하는 업체가 따로 있다.
거기까지 듣고 페르세우스는 남편이 되시는 분과 대표이사로 있는 사람이 어떤 관계인지부터 물었다.
일단 의뢰인이 찾아온 이상 이야기를 끝까지 다 들어주는 게 예의다.
고등학교 동기인데 남편은 전자회사에 다니다가 조기 명퇴를 하고 퇴직금을 투자하면서 이사가 되었다고 했다. 그렇다면 건설회사가 돌아가는 사정을 전혀 모르는 것이다. 그런데 재작년부터 일감이 줄더니 작년에 관급으로 발주 받은 교량을 건설하면서 엄청난 적자를 건설회사가 부도가 났다고 했다. 회사가 부도가 나자 집이 경매에 물건으로 넘어갔다고 했다.
이해가 가능한 부분이다.
회사의 재산으로 잡혀있었으니 당연히 나머지 자산과 묶여서 경매로 넘어가는 것이 마땅한 일이다.
구평동의 단독주택인데 경매로 넘어가고 소형임대아파트에 살고 있는데 대표이사가 되는 그 친구는 형곡동의 고급 빌라에 살면서 따로 건설회사를 냈다는 것인데 남편을 거들떠보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페르세우스는 아마도 그 건설회사가 차명일 거라고 했다. 남편은 지금 뭐하시느냐고 묻자 청소용역업체의 임시직으로 나가고 있다고 했다.
안됐다.
아줌마는 그 대표이사라는 친구의 숨은 재산을 찾아내서 구상권을 청구하면 좋겠다는 내용이었다.
그건 가능하다.
그러나 그런 일은 사설탐정의 몫이 아니다.
아줌마에게 커피를 대접하고 채권 추심업체의 연락처를 알려주고 거기에 가서 상당하고 일부라도 받을 방도를 상의하라고 돌려보냈다. 아줌마는 그런 일을 전문으로 하는 업체가 있다는 사실에 조금 놀라워하면서 고맙다는 말을 여러 번 하고 돌아갔다.
세상에는 이렇게 억울한 일은 당하는 경우가 있다. 그 대표이사라는 친구가 회사가 잘 돌아갔으면 그런 일이 없었을 거다. 친구가 처음부터 그렇게 악용하려는 의도는 아니었을 것이다. 하다 보니 자금줄이 꼬이고 그렇게 상황이 나빠져서 일어난 일일 것이다. 건설 경기가 정말 좋지 않은 모양이다.
아줌마를 보내고 인터넷을 켜는데 전화가 왔다.
국정원이라고 했다.
국정원에서 전화가 올 일이 뭐가 있어?
누구의 장난 전화인가 싶어, 페르세우스 국정원이 어디에 있는 고아들의 위탁시설이냐고, 왜 희망원이 아니고 국정원이냐고 빈정거리는 투로 물었다. 그랬더니 국가 정보원이라고 확실하게 말했다. 상대는 목소리로 미루어 삼십 대의 사내였다. 장난 전화가 아니었다. 아차, 아버지에 대한 무슨 문제인가 싶어, 죄송하다는 말을 먼저 하고 무슨 문제로 전화를 했느냐고 물었다.
“아버지가 설강진 전 국회의원이 맞지요?”
“예, 그런데 무슨 일입니까?”
“전화를 받으시는 분, 이름이 어떻게 되세요. 주민등록번호랑 좀 불러주세요.”
페르세우스는 이름과 주민등록번호를 불러주었다. 그리고 물었다.
“아버지에게 무슨 문제가 있었나요?”
“그게 아니고, 큰아버지가 되시는 분에 대해서 아시나요?”
“큰아버지는 월남 참전 용사로 전사하셨는데 성함은 설효진으로 국립묘지에 안장되어 있습니다. 부사관이었는데 중사에서 전사하셨답니다.”
“혹시 할아버지 성함은요?”
“할아버지는 설용규입니다. 무슨 문제입니까?”
“알겠습니다. 다시 전화드리지요.”
그 말을 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굉장히 딱딱한 목소리였다. 전화를 끊고 핸드폰에 찍힌 전화번호를 보았더니 핸드폰 번호가 아니라 지역 번호가 서울인 일반전화였다.
국정원에서 왜 갑자기 큰아버지를 들먹이고 할아버지 성함을 물어?
궁금해서 그 번호로 통화 버튼을 눌렀다.
‘이 전화는 발신 전용 전화입니다. 수신이 가능한 연락처로 연락을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여자 목소리로 된 기계음이 나왔다.
국정원이 맞기는 맞는 모양인데 무슨 일일까? 혹시 할아버지께서 수급하신 전사자 수당에 잘못이 있는 것일까? 그런데 내 전화번호는 어떻게 알았을까? 페르세우스는 머리가 복잡해졌다. 다시 연락하겠다고 했으니 또 연락이 오겠지.
미용실 누나는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김종칠은 왜 연락이 오지 않을까?
몰래카메라가 없어졌다는 사실을 모르는 게 아닐까? 분명히 몰래카메라가 없어졌다는 걸 알았다면 형광등을 교체한 페르세우스에게 연락이 올 것인데 무소식이다.
보험을 얼마나 들었을까?
그 사실을 어떻게 파악을 해볼까, 궁리하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고등학교 동기인 형석이였다. 녀석은 어디서 들었는지 사설탐정 사무소 일은 잘 되어가느냐고 물었다. 대충 아직은 그렇다고 대답하고 언제 만나서 한잔하자고 했다. 군에 있을 적에 휴가를 나와서 만나고는 만나지 못한 친구였다. 그러자고 했더니 당장에 약속을 잡자고 했다.
페르세우스는 하는 일이 오 분 대기조라 미리 약속을 잡을 수가 없고 저녁때 연락을 하겠다고 했다.
녀석은 미대를 나와서 중등학교 교사가 되려는 놈인데, 지금 미대 지원생들을 모아서 미술학원을 운영하고 있다고 들었는데 참 오랜만에 통화를 하는 놈이다.
짬이 나면 안드로메다의 얼굴이 자꾸 떠오른다.
희한한 일이다.
국립현충원에 가서 큰아버지를 뵙고부터 안드로메다의 얼굴이 자꾸 떠오르는 것이었다.
내려오는 기차 안에서는 옆에 앉은 안드로메다가 데이트의 본전을 뽑는다며 팔짱을 풀지 않고 페르세우스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 잠이 들었었다. 잠든 그녀의 볼을 쓰다듬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처음 지니는 기분이었다. 기차가 해평역에 도착하여 내릴 동안 한순간도 팔짱을 풀지 않았다.
그렇게 하면 데이트의 본전을 뽑는 것인가?
국군 간호학교를 나와서 왜 전역을 했을까?
그걸 물어보지 못했다.
페르세우스와 안드로메다의 사이가 되었으면 좋겠다.
언제 기회가 되면 아이를 몇이나 낳아줄는지 그것부터 먼저 물어볼까?
사설탐정을 하니 공중전화를 이용해야 할 일이 자주 생긴다. 전화를 받는 상대가 핸드폰 전화번호를 알면 곤란한 경우인데, 핸드폰이 일반화되고 대중들에게 널리 보급되면서 공중전화가 점차 사라지고 있는 점이 어떤 경우에는 상당히 불편하다.
그래도 페르세우스의 사무실은 버스터미널과 도립도서관 입구에 공중전화 부스가 있어서 이용하기에 비교적 가까운 편이다. 집 주위에는 공중전화가 어디에 있는지조차 모른다.
오늘도 공중전화를 사용해야 할 일이 생겼다.
광명 안과.
원장과 통화를 해야 하는 일이었다.
안과를 하루 쉬도록 만들어야 한다. 일을 진행하려면 안과는 무조건 쉬어야 한다. 일요일이 있지만, 조사한 바에 의하면 일요일은 병원이 있는 건물의 삼 층에 대구에서 대학에 다니고 있는 아이들이 들락거린다. 친구들이 찾아올 수도 있고 중국집 배달원이 들락거릴 수도 있다. 그 가정집이 상당히 껄끄럽다. 평일은 삼 층 가정집이 비어있다. 해서 안과는 무조건 평일에 하루를 쉬어야 한다.
작전상 그렇다.
핸드폰으로 일을 진행할 수가 없어 도서관에 책도 반납할 겸 나갔다. 도서관 앞 공중전화에서 안과로 전화를 했다. 물론 접수부에 있는 간호사가 받았다. 어느 간호사인지 대충 짐작이 간다. 오전에 진료를 갔었던 환자라고 둘러대고 잠깐 물어볼 게 있으니 원장을 바꾸어 달라고 했다.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원장이 굵직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원장이 전화를 받자 이젠 사진작가 협회라고 사칭을 했다. 새로 온 협회의 총무인데, 다음 주에 누드촬영 대회가 있는데, 참석 여부를 확인차 전화를 했다고 하니 원장이 반색하는 눈치였다.
성공이었다.
언제 어디서, 하느냐고 물었다.
앞에 진료하던 환자가 있지 싶은데 태연한 목소리였다.
주관은 한국 사진작가 협회이고 주체는 도지부 사진작가 협회라고 했다. 협찬은 미소 화장품회사라고 둘러대며 여유를 부렸다.
날짜가 언제인지 그것부터 물었다.
그게 가장 궁금하겠지? 가려운 부분을 긁었으니.
다음 주 수요일, 그러니까 12일 오전 아홉 시부터 오후 네 시까지라고 했다.
그날을 작전 개시일로 잡아야 한다.
페르세우스는 전화에 대고 사무적인 언어로 조리 정연하게 말을 하면서도 그 생각을 했다. 작전 개시일이라? 다음 주 수요일, 12일?
원장은 장소가 어디냐고 물었다.
아차, 그걸 말하지 않았구나.
문경새재에 있는 조각공원인데 일반인은 출입을 통제한다고 덧붙였다. 원장은 참석하겠다고 했다. 문경까지 가서 허탕을 치고 돌아오려면 오전은 걸릴 것이다. 그렇다고 닫은 병원 문을 오후에 열지는 않을 것이다. 참석할 것이냐고 페르세우스가 물었다. 원장은 흔쾌히 참석하겠노라고 했다. 그럼 참가번호를 31번으로 부여하겠노라고 했다. 말을 하면서도 페르세우스는 야릇한 승리감을 느꼈다.
“너는 전쟁에 관심이 없지만, 전쟁은 너에게 관심이 있다.”
누구의 말인지는 모르지만, 갑자기 생각나서 페르세우스는 무작정 내질렀다.
원장은 그게 무슨 소리냐고 물었다.
당연한 질문인지도 모른다.
누드촬영 대회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말이다. 페르세우스와 원장의 사이에 관계가 성립되는 말이다.
그게 이번 누드촬영대회의 팸플릿에 실릴 표제 문구라고 둘러댔다. 천박한 예술가는 그런 구호에는 관심이 없는지 누드모델 협회의 회원들이 모델로 나오느냐고 물었다.
그것이 제일 궁금하겠지?
물론 누드모델 협회에 초청했는데 이번에는 모델들이 상당수가 바뀌어서 여느 때보다 참신할 거라고 덧붙였다.
참가번호 31번으로, 전산에 입력 처리를 했고 참가자 목걸이 명찰은 준비할 것이다, 그날 행사장에 와서 받으라고 했다. 원장은 지금 꽃이 좋아서 사진이 잘 나올 거라며 무엇보다 장소가 마음에 든다고 했다.
거듭 참석을 부탁한다고 사무적인 목소리로 말하며 의중을 다시 확인했다.
원장은 분명히 참석한다고 못을 박았다. 이번 촬영대회는 전문성을 기하기 위해 홈페이지에는 공고하지 않을 거라고 했다. 대회를 마치고 결과를 홈페이지로 보면 된다고 덧붙였다.
그 말에 원장은 그것, 참 좋은 생각이라고 맞장구를 쳤다.
페르세우스는 좋은 작품을 기대한다는 말을 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유유히 도서관으로 들어가 책을 반납하고 사무실로 돌아왔다.
다음 주 화요일쯤에 전화해서 내일 진료를 예약한다고 하면 원장이 세미나 참석으로 휴진이라고 하겠지.
일단 성공이다.
안과의 디지털 자물쇠 번호는 페르세우스의 핸드폰에 들어있다. 이름은, 천박한 예술가, 전화번호 대신에 자물쇠 비밀번호를 입력시켜 놓았다. 그동안 자물쇠 비밀번호를 바꾸지 않았다면 이 번호가 확실하다. 숫자를 저장하기에는 핸드폰만큼 좋은 기록장치가 없다.
그다음에 구체적인 계획은 찬찬히 세우고,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자.
*12.
형석을 만난 건 저녁 여덟 시가 넘어서였다.
“내가 사무실에서 출발하면서 전화를 할게.”
시간은 그렇게 잡았다. 페르세우스의 퇴근 시간은 정해져 있지 않다.
중앙시장의 할머니가 운영하는 뒷고기 집이었다. 재래시장의 허름한 가게이지만 쫄깃한 고기가 맛있다고 소문이 난 집이다. 시간이 늦었는지 손님은 별로 없었다. 형석이 학원에서 가깝다고 거기로 약속을 잡았는데 퇴근하고 바로 온다고 온 것이 그 시간이었다.
퇴근하려는 무렵, 의뢰인으로부터 전화가 와서 늦었다.
남편의 뒷조사를 부탁한다는 아줌마를 기다리느라고 시간을 보내고, 그 아줌마가 와서 얘기를 들어주느라고 시간을 보내다 보니 그랬다. 그 아줌마는 사십 대로 보였는데 남편과 바로 자기의 절친한 친구 사이를 의심하고 있었다. 정확한 물증은 없지만, 의심이 간다는 것이었다.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이야기를 하는 사람의 입장만 생각해서 곧이곧대로 들으면 안 된다. 객관적인 입장에서 여러 가지 증상과 상황을 주시하고 파악해야 하는 법이다. 흥분해서 이야기하는 의뢰인의 표정까지도 면밀하게 인지해야 하는 일이다. 끼어들기 껄끄러운 사건이라 착수금을 얘기를 먼저 했더니, 착수금? 아줌마의 표정이 금세 굳어졌다. 내일 다시 오겠다고 했지만 오지 않을 확률이 지극히 진한 아줌마였다.
사무실에서 나서면서 이제 출발한다고 전화를 하고 왔는데 형석이 먼저 와서 자리를 잡고 있었다. 형석은 정말 오랜만에 만난다.
형석이 앉은 자리에서 페르세우스에게 손을 내밀며 물었다.
“학교에 들어가기가 그렇게 어렵냐?”
형석은 교사로 들어가고 싶어서 중등교사 임용고시를 쳤다는 걸 다른 친구들에게 들어서 알고 있다. 그러나 도 교육청에서 일 년에 한두 명 모집하는 게 고작이다. 국어, 영어, 수학 등 흔한 과목은 형편이 좀 낫지만, 미술은 일 년에 고작 한두 명인데 지원자는 매년 오십 명이 넘는다고 했다. 다른 곳에도 취업이 힘들다. 어디에든 다 그렇다.
“학원은 좀 어떠냐?”
형석은 임용고시가 되는 동안 미대 지원생들의 실기시험을 지도하고 있다. 유명 미대를 나왔다고 소문이 나니 지역에서 미대를 지망하는 아이들이 몰린 것이다.
“학원이랄 것도 없고 아이들은 고작 열댓 명, 겨우 용돈 벌이나 하는 정도지.”
“전부가 미대 지망생들이야?”
페르세우스의 물음에 형석은 그렇다고 했다. 일 인당 얼마를 받는지 모르지만 어렵겠다.
뒷고기가 노릇하게 굽히고 있었다. 이 집은 아주머니가 손이 많이 가지만 참숯을 쓴다. 참나무 향기가 고기에 배어 맛이 그만이라 항상 손님이 북적댄다. 석쇠 위의 고기를 뒤적이며 형석이가 물었다.
“사설탐정은 좀 어떠냐?”
“바람난 아줌마들이 들어간 모텔이나 덮치는 정도다.”
“모텔을 덮쳐? 하하! 그것 보통 투철한 직업정신으로 못하겠네?”
“어떤 일이든 투철함은 요구하는 게 전문직이 아니냐?”
술은 뒷고기에는 막걸리가 어울린다며 형석은 막걸리를 시켰다.
“아이들 실기 실습시켜놓고 왔어. 또 들어가 봐야 해.”
양은으로 된 술잔에 페르세우스가 따라주는 막걸리를 받으며 한 형석의 말이었다. 적게 마셔야 한다는 말일 것이다.
“너희 아버지, 아버지, 아버지의 사건은 완전히 종결되었나? 신문을 보고 너무 놀랐다. 너희 아버지 이야기를 꺼내니 말이 다 더듬거려지네.”
술이 몇 순배 돌고 나서 형석이 아버지를 들고 나섰다.
“내가 다시 나서서 찬찬히 조사하는 중이야. 진실은 언젠가 밝혀지겠지. 진실은 밝혀진다! 이 말이 사건 심리학 서두에 나오는 말이다. 너하고 술을 마시기는 정말 오랜만이다.”
페르세우스는 화제를 다른 곳으로 돌렸다. 아버지의 이야기는 술좌석에서 하면 안 된다. 절대로 안줏거리가 될 수 없는 얘기다.
“진도는 자주 만나냐? 진도는 어떻게 지낸다니?”
형석은 진도를 들먹였다.
“내가 지금 사무실은 얻은 곳이 진도 아버지의 건물이다. 네댓 평이 되는 작은 공간인데 공으로 쓰고 있지.”
페르세우스는 공으로 쓴다는 말을 강조했다.
“진도 아버지는 부동산 갑부잖아. 비어있던 사무실이라면 너에게 그런 정도는 선심을 써도 되지.”
진도는 대학원에 적을 두고 있다. 경영학인데 박사과정이다. 그 친구와 비교하면 페르세우스는 많이 늦다. 페르세우스는 대학 일학년에서 한 학기를 하고 아버지 선거가 있어서 한 학기를 휴학했는데 아버지께서 당선이 되고 바로 복학하지 않고 일 년을 쉬게 되었다. 다시 복학해서 이 년을 다니다가 군에 간다고 또 휴학하고 거의 일 년을 놀다가 군에 갔다. 군에 갔다가 오니 진도는 석사과정에 들어가 있었다. 미국의 석사였다. 이 년간 뉴저지에 있다가 돌아온 것이다. 주립대학의 석사였다. 진도는 군 복무를 육 개월 공익근무로 마쳤다. 친구 중에서 상당히 빠르게 자기의 길을 개척하며 움직이는 녀석이다.
진도에 대해서라면 할 이야기가 많다.
아무래도 박사과정을 마치면 강단에 남을 녀석이다.
이 뒷고기 집의 특징은 막걸리를 노란색 양은주전자에 담아서 내온다. 그래야 막걸리가 제맛이 난다고 주인 할머니는 말했다.
막걸리를 양은주전자로 세 통이나 비울 동안 진도와 진도의 여자친구에 관해서 얘기했다. 형석은 중간중간 시계를 보았다. 들어가서 아이들을 돌려보내고 화실 문을 닫아야 할 시간이라고 했다.
“학원이 아니고 왜 자꾸 화실이야?”
시 교육청에 학원으로 등록하지 않았단다. 그냥 낮에는 형석이가 공부하며, 심심풀이로 작업하고 밤이면 학교를 마치고 오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개인 화실이라고 했다. 자리가 길어지자 형석이가 잠깐 가서 아이들을 보내고 문을 닫고 오겠노라고 했다. 그러더니 마음이 바뀌었는지 전화로 아이들에게 지시했다.
“효민아. 오늘 그만하고 아이들 돌려보내고 문을 닫고 열쇠를 여기로 가져와!”
그 말을 하고는 뒷고기 집의 위치를 설명해 주었다. 화실은 뒷고기 집에서 가까운 곳에 있다. 중앙시장 부근이라 재개발 지구로 묶여서 세도 싸고, 무엇보다 대중교통이 좋은 곳으로 자리를 잡는다고, 이곳에 세를 얻은 모양이다. 해평시내로 출발하는 모든 시내버스의 시발점은 바로 중앙시장 부근이다. 여기서는 광명 안과도 가깝다. 시장 골목을 빠져나가 큰길을 건너면 유명약국이 있고 바로 위가 광명 안과다. 광명 안과도 노인들을 상대로 하기에 그런 점을 염두에 두었을 것이다.
12일, 다음 주 수요일!
페르세우스는 속으로 날짜를 또 한 번 곱씹었다. 허름한 뒷고기 집이지만 담배는 뒷문으로 나가서 피워야 한다. 흡연실이 따로 있는 게 아니고 뒷문으로 나가면 플라스틱 의자가 두 개 놓여 있고 헌 탁자에 재떨이가 놓여 있다. 시장 뒷길로 통하는 고시이고 공동화장실을 가는 지름길이다. 술을 마시면 담배가 더 당기는 건 당연한 이치, 벌써 형석과 교대로 서너 번 나갔다가 들어왔다.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두 녀석이 화실 열쇠를 가지고 왔다.
두 녀석은 집에 갔다가 왔는지 교복이 아닌 사복을 입고 있었다. 녀석들은 형석과 마주 앉은 페르세우스를 보자 꾸뻑 인사를 했다.
“너희들 출출하겠네. 고기 좀 먹을래?”
페르세우스가 물었다.
녀석들은 이구동성으로 예! 하고 큰소리로 대답했다. 안 물었으면 서운해할 뻔했다. 페르세우스는 의자를 내주고 형석의 옆으로 앉으며 맞은 편에 앉으라고 하고는 주인 할머니에게 고기를 큰 것으로 한 접시 달라고 했다.
이 할머니는 이 자리에서 사십 년이 넘도록 뒷고기를 장사해서 중앙시장에서는 나름대로 유명한 할머니다. 뒷고기 할머니라고 하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다. 그리고 무엇보다 할머니의 인심이 후덕하고 손이 커서 양이 푸짐하다. 그게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이다.
페르세우스가 고기를 뒤적이며 굽자, 녀석 둘은 설익었지 싶은데 거침없이 집어 먹는 것이었다.
“막걸리 한 잔씩 할래?”
페르세우스가 녀석들을 보고 물었다.
형석이가 아이들한테 그러지 말라고 하며 사이다를 주문했다.
“확실히 선생은 다르네!”
페르세우스가 빈정거리는 투로 말하며 녀석들에게 사이다를 따라주었다.
“대학은 어디를 가고 싶냐?”
“홍대 미대요.”
고기를 마구 쑤셔 넣어 우물거리던 두 녀석은 똑같이 대답했다. 가고 싶겠지. 미술에 관심이 있는 놈이라면 당연히 가고 싶겠지. 그렇다고 다 되는 건 아니다. 형석은 홍대 미대 출신이다. 단번에 합격한 것이 아니라 재수해서 어렵게 들어갔다. 들어가서는 생각이 달라져서 미술로 먹고 살길을 찾는다고 교육학을 이수하고 정교사 자격을 취득한 경우다. 녀석들은 형석의 눈치를 보며 또렷하게 홍대 미대를 들먹였다.
“홍대 미대? 좋지! 그럼 선생님 직속 후배가 되는데? 꼭 가도록 노력해라. 재수하지 말고.”
재수라는 말은 들먹이지 않아도 좋았을 것이다. 재수, 그 말을 듣기가 거북했던지 형석은 탁자에 놓인 담배를 챙겨 들고 일어서 뒷문으로 나갔다. 그때 페르세우스의 머릿속에 언뜻 스쳐 지나가는 게 있었다.
“너희 둘이, 형 심부름 하나 할래?”
“뭔데요?”
석쇠 위의 고기가 어지간히 비었다.
“여기 나가서 큰길 건너가면, 유명약국 있지?”
녀석들은 안다고 했다.
페르세우스는 유명약국 위에 있는 광명 안과의 사무장이라고 하면서 핸드폰을 열어 비밀번호를 알려주었다. 한 녀석이 비밀번호를 볼펜으로 손바닥에 받아적었다.
페르세우스는 태연하게 말했다.
거기 문을 열고 들어가면 접수부 뒤에 메인 스위치가 있다. 그걸 올리면 병원 전체에 불이 다 들어온다. 원장실에 들어가서 컴퓨터 몸체를, 내일 아침에 수리 맡겨야 하니 몸체를 떼오고, 거기에 꽂힌 USB를 잘 챙기고, 원장실에 달린 작은 문으로 들어가면, 형이 쓰던 디지털카메라가 두 대 벽에 걸려 있는데 그것을 좀 가져오라고 했다. 저녁에 집에 들어가서 작업할 게 있노라고 했다. 컴퓨터가 고장이 나서 작업을 못 했는데 다시 가지러 가야 하는데 술을 먹으니 그것조차 귀찮다고 했다. 녀석들은 알았다고 하면서 일어서서 석쇠 위에 남은 나머지 고기를 얼른 집어서 입에 넣었다.
“고기 한 판 더 구울까?”
페르세우스는 일어서는 녀석들을 보고 물었다.
“예. 고맙습니다. 고기 굽히는 사이에 후딱 갔다가 올게요.”
그렇게 말하고 나가는 녀석들 뒤통수에 대고 페르세우스는 메인 스위치를 꼭 내리고 문단속을 잘하고 오라고 소리를 질렀다. 녀석들은 알겠다고 했다.
공부도 좋지만 한창 먹을 나이다.
모양새를 보니 이 시간까지 저녁을 먹지 않은 모양인데 얼마나 출출할까?
페르세우스는 할머니를 불러 뒷고기를 한 판 더 준비하라고 주문했다. 옆자리에 앉아서 정치 얘기로 시끄럽게 떠들던, 회사원으로 보이던 사십 대 무리도 사라진 다음이었다. 뒷고기 집의 손님이라곤 페르세우스의 일행뿐이었다. 재래시장은 일찍 문을 닫는 모양이다. 골목이 어두컴컴했다.
녀석들이 최소한 성공은 못 하더라도 디지털 자물쇠 비밀번호가 바뀌었는지, 아닌지 그건 알 수가 있다. 그것도 소득이라면 소득이 분명하다.
뒷고기 옆집은 젓갈을 파는 집이다. 뒷문으로 나가면 흡연구역은 같이 쓰는 모양이다. 젓갈을 사러 와서 흡연실을 이용하는 사람이야 없겠지만 짭짤하고 고리한 냄새가 흡연구역까지 풍겼다. 녀석들을 보내고 페르세우스도 담배를 챙겨 들고 뒷문으로 나갔다.
“아이들은 갔냐?”
뒷문으로 나가자 담배를 피우고 있던 형석이가 물었다.
“아니야. 고기를 더 먹겠다고 해서 한 판 더 시켰지. 고기가 굽히는 동안 내 차에 가서 뭘 좀 가져오라고 심부름을 시켰어.”
형석은 전혀 의심하지 않고 아이들 편에 서서 말했다.
“한창 먹을 나이이지. 저녁에 늦게까지 봐주려면 어떤 때는 아이들에게 미안하기도 하다. 저렇게 공부해서 뭐하나 싶기도 하고, 저녁을 먹었느냐고 물으면 먹었다고는 하는데, 눈치를 보면 마트에서 컵라면으로 때운 경우가 대부분이야.”
“그래 맞아! 저렇게 공부를 해서 뭐하냐?”
페르세우스는 회의적인 말로 맞장구를 쳤다.
죽도록 공부해서 학교를 졸업하면 갈 곳이 없는 게 사실이다. 공부가 밥으로 연결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형석과 공부에 대해 회의적인 소리를 주고받으며 담배를 피우고 들어가니 주인 할머니가 석쇠 위의 고기를 뒤적이고 있었다.
“고기 먹다가 다들 어디 갔누?”
할머니의 말이었다. 페르세우스는 어지간히 먹은 다음이라 고기가 시들해졌지만, 아이들을 위해서 고기를 구워야 한다. 할머니에게 집게를 받아서 페르세우스가 고기를 뒤적이기 시작했다.
“안주가 또 생겼는데 한 잔씩만 더 할까?”
형석이 그러자고 했다. 할머니를 불러서 막걸리 한 주전자를 더 시켰다.
막걸리가 나오고 한 잔씩 마셨을 때 아이들이 돌아왔다.
“카메라가 두 대가 아니라 세 대가 걸려 있던데요? 어느 건지 몰라서 세 대 다 가져왔어요.”
페르세우스는 출입구에서 반대 방향으로 돌아앉아 있어서 아이들이 가게로 들어오는 것을 보지 못했다. 아이들의 한 소리에 돌아보니 한 녀석은 컴퓨터 몸체를 안고 있었고 한 녀석은 어깨에 끈이 달린 카메라를 세 대나 양쪽 어깨에 나누어서 메고 있었다. 순간적이지만 그 광경은 한 폭의 그림처럼 여겨졌다. 그렇게 보기가 좋았다.
“세 대? 그래 내가 잘했다. 문단속은 잘했지?”
“예 전원 스위치도 내리고.”
녀석들은 걱정하지 말라는 투로 말했다. 문단속은 안 해도 상관없는 일이지만 그렇게 묻는 것이 의심을 덜 할 것이다. 형석도 아이들이 어디 갔다가 왔는지 관심이 없다. 차에 심부름을 보냈다고 했으니 그런 줄 알고 있는 모양이다.
“그래 저기 올려놓고 고기 먹자.”
페르세우스는 옆자리의 빈 테이블을 가리켰다. 녀석들은 빈 테이블에 올려놓고 자리에 앉았다. 테이블은 중앙에 화덕 구멍이 뚫린 원형 철판 테이블이었다.
녀석들은 냉큼 들고 메고 있던 물건들을 올려놓고 자리에 앉아 고기를 먹기 시작했다. 조금 전에 먹은 고기보다 확실히 노릇하게 굽혀 맛이 더할 것이다.
“많이 먹어라.”
페르세우스는 녀석들에게 그 말을 하고 술잔을 들면서 관심이 없는 척 옆 테이블 위에 놓인 물건을 살폈다. 카메라는 망원렌즈까지 끼어 있었고 자그마한 컴퓨터 몸체는 선이라곤 하나도 없이 깔끔하게 테이블 위에 올려져 있었다.
녀석들은 사이다를 마시고 목을 축이며 고기를 먹는데 정신이 없다. 형석은 아이들이 고기를 먹는 모습을 넋을 놓고 보고 있다.
“이런 고기 먹어봤어?”
“아니요. 무슨 고기인지 몰라도 굉장히 맛있어요.”
그렇지 뒷고기는 집에서는 못 먹는다. 집에서 구워 먹는 삼겹살과는 맛이 다르겠지.
“얘들아. USB는? 내가 분명히 몸체에 꽂아두었지 싶은데?”
그 말을 하자 한 녀석이 아차, 했다는 표정을 하며 일어서서 바지 주머니에 든 USB 하나를 꺼내 페르세우스에게 내밀었다. 녀석은 입에 고기가 잔뜩 들어있어 말을 할 수가 없는 지경인 모양이었다. 페르세우스는 그것을 받아 바지 주머니에 넣었다. 일이 깔끔하게 끝이 났다. 상당히 수월한 수단과 방법이었지만 전리품은 출중했다.
아무래도 오늘 먹은 것은 페르세우스, 자신이 계산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친구 제자들에게 한턱내는 셈 치고, 친구에게 인심사고, 녀석들에게 인심사고 얼마나 좋아. 페르세우스는 막걸리를 단숨에 들이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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