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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시고 삼일 만에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그래서 그 주님의 부활을 기념하여 오늘 우리가 부활절예배를 드립니다. 전국 기독교 뿐 아니라 온 세계가 예수님의 부활을 축하하는 예배를 드리고 기념합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날을 주일인데 왜 그 날이 주일이 되었는가? 오늘 읽은 성경에 보면 ‘안식 후 첫 날’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고난 받으시고 돌아가신 날은 금요일이었습니다. 유대인에게 있어서 안식일은 토요일입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금요일 저녁부터 토요일 저녁까지입니다. 안식한 후 첫날 즉 일요일 주님이 부활을 하신 것입니다.
유대 회당예배는 원래 안식일 즉 토요일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초대교회가 시작되면서 안식 추 첫 날 예배를 드리게 되었고 오늘같이 주일이 일요일이 되었습니다. 유대교와 분리되고 기독교가 확산되어 로마에서 AD313년 로마황제 콘스탄틴 황제가 기독교를 공인한 후 기독교는 일취월장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콘스탄틴 황제는 일요일을 공휴일로 선포했습니다. 그리하여 주일이 오늘같이 내려져 오게 되었습니다.
이 주일은 주님의 부활의 날입니다.
20:1에 보면 [안식 후 첫날 일찍이 아직 어두울 때에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에 와서 돌이 무덤에서 옮겨진 것을 보고]라고 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와 여러 여인들이 안식일이 지나고 첫 날 일찍이 새벽에 주님의 시체에 향품을 바르기 위해 무덤이 있는 동산에 올라왔습니다. 그런데 보니, 무덤의 문이 열려있고 무덤은 비워져 있었던 것입니다. 주님이 부활하시고 주님의 몸을 감쌌던 세마포만 개여 있었던 것입니다. 얼마나 깜짝 놀랐는지 모릅니다.
그렇게 주님의 부활이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제일 먼저 제자들에게 보여진 것이 아닙니다. 막달라 마리에게 제일 먼저 보여지고 그리고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에게 보여지고 그리고 나중에야 주님이 제자들에게 보여졌는데 그 이유는 제자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잘 믿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에 나타나신 예수님
성경을 볼 때 부활하신 예수님을 제일 먼저 목격한 사람은 제자들이 아니고 막달라 마리아였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막달라 출신 마리아라는 뜻입니다. 막달라는 갈릴리 호수 서남쪽에 있는 작은 고을인데 이 지방 출신 마리아라는 뜻입니다. 당시 여인들의 이름에 마리아는 우리나라 영희처럼 많이 쓰는 이름입니다.
이 막달라 마리아는 이전에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 일곱 귀신이 들렸던 사람이었습니다. 귀신 하나가 들려도 사람이 미칠 것인데 일곱 귀신이 들렸으니 얼마나 고통스러웠겠습니까! 자기 마음대로 살아갈 수 없고 자기 의지대로 할 수가 없습니다. 귀신이 시키는 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머리가 아프고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모릅니다. 그리고 마음은 늘 불안하고 평안이 없습니다. 희망도 미래도 없습니다. 어떻게 인생이 흘러가는지도 모릅니다. 세상 사람들은 손가락질 하고 자신은 스스로 통제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그가 주님을 만나고 나서 귀신이 나갔습니다. 예수님이 그 여인 속에 있는 귀신을 쫓아낸 것입니다. 그 예수님은 부활하셔서 지금도 살아계십니다. 오늘날에도 누구든지 예수님을 만나면 귀신이 나갑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낼 수가 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가 귀신이 나가고 나니 너무 기뻤습니다. 이루 다 말할 수가 없습니다. 정신이 온전해졌습니다. 스스로 무엇이든지 자발적으로 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마음에 기뻤습니다. 그렇게 기쁠 수가 없습니다. 뭘 해도 기쁩니다. 희망이 생깁니다. 용기가 생깁니다. 무엇이든지 하면 될 것 같습니다. 주님을 만나고 나니 마음에 잔잔한 평안이 강같이 넘치는데 이루 형용할 수 없는 은혜였습니다.
그래서 그 여인은 세상에 다른 일을 하는 것보다 주님을 위해서 살기로 작정했습니다. 살아도 주를 위해 죽어도 주를 위해 나아가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주님이 가시는 길이라면 어디든지 따라가서 밥도 하고 빨래도 하고 섬겼습니다. 그리고 주님이 제자들에게 들려주시는 천국복음을 같이 들었습니다. 그 천국의 말씀이 얼마나 즐거운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주님의 공생애 3년 마지막 해에 느닷없이 주님이 체포되시고 그리고 억울하게 죽임을 당하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주님은 자신이 이 땅에 오신 사명을 감당하시기 위해 십자가의 길을 가셨지만 그 옆에서 지켜보는 사람들은 이해가 안 되었습니다. 그 완악하고 간교한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팔아넘겼습니다. 그리고 그 포악한 로마 군병들은 빌라도 총독의 언도를 따라 십자가형에 처형했습니다.
다행히 아리마대 사람 요셉과 니고데모가 이 두 믿음이 공회원이 금요일 해질 무렵에 예수님을 아리마대 사람 요셉의 새 무덤에 안치를 하였습니다. 유대인의 무덤은 석회석 동굴을 파서 그 안에 시체를 천으로 감고 향을 바르고 안치를 합니다. 그리고 밖에서 큰 돌문으로 문을 막습니다. 이것이 무덤입니다.
삼일째 되는 새벽 즉 안식 후 첫 날에 다시 향품을 바르기 위해 일찍이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여러 마리아와 여인들이 그 동산에 올랐습니다. 그런데 보니 무덤 돌문이 열려있고 안에는 비워있었습니다. 그리고 천이 개어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천사가 나타나서 ‘너희가 찾는 주님은 다시 살아나셨느니라 여기 계시지 아니하시다’고 하였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무덤 밖으로 나와서 그 동산 무덤가에 앉아 울었습니다. 우리 주님의 시체를 누가 가져갔단 말인가? 그 때에 동산지기인줄 알았는데 누군가 그녀에게 ‘마리아야!’라고 불렀습니다. 처음엔 동산지기인줄 알고 ‘우리 주님의 시체를 어디 두었는지 알려달라, 향품을 더 발라야 합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예수님이셨습니다. 예수님이 친히 말씀하시기를 다시 살아났으니 제자들에 가서 이 사실을 알리라고 하셨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정신없이 달려가서 제자들에게 알렸습니다.
“주님이 다시 살아나셨는데 제게 말씀하시기를 제자들에게 알리라고 하셨습니다.”
라고 했습니다. 제자들은 믿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베드로와 요한은 아무래도 이상해서 그곳으로 달려갔습니다. 그리고 무덤 안에 들어가 보았습니다. 정말 무덤이 비워져 있었습니다.
그래도 어느 제자 하나 예수님의 부활을 믿을 사람이 없었습니다. 죽었다가 다시 살아날 것이라고는 믿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두려워서 문들을 꼭꼭 닫고 숨어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을 따르는 자는 유대인들의 공동체에서 추방되고 또 어떤 봉변을 당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원하시는 것은 제자들이 눈으로 직접 목격하지 않더라고 주님의 부활을 믿을 것을 원했습니다. 그것이 믿음입니다. 믿음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사실로 믿는 것이 믿음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그 믿음을 가지는 것이 좀처럼 쉽지 않습니다.
오늘날에도 우리가 부활절을 이렇게 지키고 주님의 부활을 기념합니다. 그 주님은 부활하셔서 지금도 살아계십니다. 우리는 그 주님을 믿는 것입니다. 그것이 믿음이고 신앙입니다.
그런데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예수님을 믿습니까?
예, 믿을 것입니다. 믿는다고 합니다. 기독교인들은 다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주님은 부활하신 것을 믿습니까? 예, 다 그렇다고 합니다. 주님의 부활을 믿습니다. 그렇다면 그 주님은 지금도 살아계셔서 우리와 함께 하심을 믿고 우리를 지키시고 인도하실 것을 믿습니까? 예, 말로는 그렇게 다 말합니다.
그런데 정작 어려움이 닥치고 또 인생에 문제가 생기면 주님을 의지할 생각보다 인간적인 생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고 그 주님을 신뢰하지 않는 그리스도인들이 사실 많습니다. 그것이 문제입니다.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에게 나타나신 예수님
그리고 그 날 오후에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가 있었습니다. 엠마오는 예루살렘에서 북쪽을 몇 킬로 떨어진 고을입니다. 여기로 가던 두 제자는 예수님의 12제자는 아니고 예수님을 따르던 성도요 제자였습니다. 그들도 신실한 제자들이었습니다. 그 중에 하나는 글로바인데 예수님의 이모부 정도 됩니다.
두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엠마오로 가는 도중에 대화를 나누며 갔습니다. 아마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이야기하고 갔을 것입니다. 주님을 그렇게 바라보고 왔는데 이렇게 허망하게 가시게 되었으니 이제 어떡하나라고 했을 것입니다.
그 때에 그들 가운데 부활하신 예수님이 나타나셨습니다. 주님이 새로운 모습으로 그리고 두건을 둘렀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그 제자 둘이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그들에게 질문을 합니다.
“당신들은 무슨 이야기를 그렇게 하면서 가는가?”
그 때 그들이 반색을 하면서 예수님께 말합니다.
“아니 당신은 예루살렘에 살면서 최근이 있었던 사건도 모른단 말이요?
우리 예수님이 우리의 구세주로 오셨는지 유대인들이 고발하여 로마 군인들에게
십자가에 죽임을 당하셨는데 그것을 모른다니 말이 되는가요?”
그 때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성경에 읽어보지 못했는가? 구약성경 모세의 글과 시편과 선지자의 글에 메시야가 죽임당한 후에 사흘만에 다시 살아날 거라는 말씀을!”
그리고 주님이 성경을 풀어서 설명을 해주시기를 그 메시야는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실 것이며 인간의 죄를 사하시고 구원하시며 영광에 이를 것이라고 일러주셨습니다.
그러니 듣는 사람들이 마음이 뜨거워지고 얼마나 재미가 있고 은혜가 되는지 몰랐습니다. 그렇게 이야기를 하다 보니 어느 듯 엠마오까지 도착을 했고 밤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더 가려고 하시 붙잡고 날이 어두우니 가지 마시고 여기 머물며 더 말씀을 해달라고 간청을 했습니다.
그리하여 집안으로 들어가서 음식을 먹게 되었습니다. 빵을 준비해서 그 빵을 떼어서 나눌 때 예수님이 그들을 위해서 축사했습니다. 그랬더니 그들이 영안이 열렸습니다. 그 주님이 부활하셔서 나타나신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좋다고 기뻐할 때 주님은 떠나셨습니다. 그들이 의논하기를 ‘이대로 있을 것이 아니라, 예루살렘에 다시 가자, 그곳에 주의 제자들이 근심하고 숨어 있을 텐데 우리가 이 기쁜 소식을 알려주자.’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밤에 다시 예루살렘으로 달려갔습니다.
그리고 그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알렸습니다. 주님이 부활하셔서 이렇게 우리에게 나타나셔서 자세히 설명해주셨습니다. 그 때에 우리가 마음이 뜨거워졌습니다. 그리고 주님이 떡을 떼어서 주시면서 축사하실 때 우리의 영안이 열려서 보았는데 주님이 살아계십니다. 이렇게 제자들에게 알렸습니다.
그런데 주님의 제자들이 믿지를 않았습니다. 주님께 3년 동안 따라다니며 배우고 또 그렇게 수없이 기적을 보고 또 천국 말씀을 듣고 또 주님이 미리 말씀하시기를 자신이 죽고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날 것이라 말씀하셨으나 제자들이 믿지 못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잘 믿습니까?
저와 여러분들은 주님의 부활을 확실하게 믿습니까?
그 주님이 지금도 살아계심을 믿습니까?
인생에서 불안해하고 슬퍼하고 낙심하지는 않습니까?
부활하여 살아계신 주님이 지금도 우리와 함께 하시는데 여러분은 인생에서 슬퍼하십니까?
우리는 주님을 잘 믿어야 될 줄 확신합니다. 아멘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예수님
엠마오에서 돌아온 제자들이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말을 막 하고 있는 그 때에 주님이 들어오셨습니다. 당시 제자들은 두려워서 문들을 꼭꼭 닫고 있었습니다. 당시 분위기는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은 다 잡아 죽이는 분위기였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두려웠겠습니까!
그런데 문이 닫혔는데 주님이 들어오신 것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의 모습은 새로운 모습이었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이 깜짝 놀라 유령이다라고 했습니다. 눈이 휘둥거래져셔 쳐다만 보고 있는데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유령이 아니고 다시 살아왔다. 영은 살과 뼈가 없느니라!
자 내 손을 보고 내 허리를 보라, 내 손에 못자국을 만져보고 내 허리 창자국을 만져보라!
나는 살과 뼈가 있느니라!
그리고 여기 무슨 먹을거리가 있으면 가져오너라.”
그 때에 생선조각이 남아 있어서 같이 먹었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셔서 음식도 같이 드시고 대화도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너희에게 평안이 있을지어다.”
주님은 평안을 주십니다. 제자들이 얼마나 두려웠는데 주님을 만나고 나서 다시 평안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인생의 험한 길에서 두려울 때 주님을 찾으면 다시 평안을 찾게 됩니다. 당장 문제가 다 해결되지 않아도 일단 마음은 평안합니다. 그리고 침착하게 생각하며 기도할 때 주님은 길을 열어주십니다. 아멘
20절 말씀에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니 제자들이 주를 보고 기뻐하더라]고 했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의 손과 옆구리를 보니 기뻤습니다. 그 고통의 손과 옆구리가 증거가 되고 이제 부활이 되니 기뻤습니다. 제자들이 주님을 보고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주님의 손과 옆구리를 보십니까?
여러분은 그 못 자국난 손과 창자국이 있는 주님을 보면서 기쁨을 되찾았습니까?
그렇다면 이제 우리에게 사명이 있습니다.
21절에 [예수께서 또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 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예수님은 제자들을 파송하십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낸 것같이’라고 했습니다. 아버지께서 아들을 세상에 파송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주님은 이 세상에서 자신의 사명을 다 감당하셨습니다. 주님이 아버지께로 다시 가시면서 이제 우리를 이 세상에 파송하십니다.
우리는 세상에 나가서 그 주님을 증거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우리 구주가 되시고 그 예수님이 십자가를 통해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주님은 부활하셔서 지금도 살아계십니다.
결론) 성령을 받으라!
22절에 [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향하사 숨을 내쉬며 이르시되 성령을 받으라]고 하셨습니다.
마치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고 아담을 만드신 후에 그 코에 생기를 불어넣은 것처럼 우리 주님이 숨을 내쉬어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말씀하시기를 ‘성령을 받으라!’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오순절 성령을 받고 나니 모든 것이 깨달아졌고 능력이 생겼고 용기도 생겼습니다. 그리고 담대히 나가서 예수님을 증거했습니다.
사명을 감당하려면 성령을 받아야 합니다. 성령충만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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