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이 좋아서 통채로 퍼왔습니다
2023년 2월 15일. 그리스에서 세일 요트를 사서 출항 준비하시는 한국분과 전화통화를 했다. 마음이 영 불편하시다. 지금 카타마란을 사서 출항 준비를 하는데, 육상 계류장에 수상폰툰보다 훨씬 비싸다는 거다. 엥? 그럴 수가 있나? 한국은 일반적으로 육상계류비가 해상 계류비보다 저렴하다. 그리고 이달에 전 선주로부터 berth(선석)를 인수해서 육상 계류장을 14일만 사용했다는데, 규정상 한 달 치를 내야 한다는 거다. 2,800유로(약 378만원). 헉! 하루에 13만5천원이다. 이건 뭐 웬만한 호텔보다 비싸다. 전기도 물도 사용하지 못하는데. 그럴 바엔 아예 수상에 계류하시지요? 그렇지 않아도 그럴 생각입니다. 와서 보니 그리스 사람들은 내일이라는 게 없네요 하루 일하고 하루 돈 받아 가면 연락도 안 되고. 뭔가 못사는 이유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스의 요트 산업은 오직 챠터 산업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네요. 그분의 답답함이 내게도 전이 된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엄청 친절한데도 나 역시 답답한 부분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런데 여기보다 더 답답하다면? 참 상상하기 싫은 상황이다. 이렇게 세일 요트를 산다는 것은 돈 주고 배를 사는 것만 문제가 아니다. 보험문제 (돈 준다고 쉽게 가입되는 일이 아니다.), 선박의 자잘한 수리 문제, 선박 계류비 문제, 각종 인허가 서류. 감기 몸살 등 질병, 현지에 머무르는 동안 먹고 사는 일. 빨래. 한국과 마찬가지로 사람을 잘 만나야 한다. 그건 순전히 개인의 운에 따른 문제다. 이 모든 것이 바로 항해의 종합 판이다. 전에 이야기한대로 바다로 나가는 것은 오히려 항해의 일부분이다. 아침에 배를 물청소하며 이런저런 생각이 많다. 오늘 경유통 10개가 확보되면, 내일 배와 경유 통에 기름을 가득 채워야 한다. 마리나 사무실에 이야기 해 두어야 한다. 내일 날씨가 좋아야 할 텐데.
오전 10시에 Pescara로 갔다. 마리나스베바에서 60Km, 1시간 거리다. 당연히 페스카라 마리나를 보고 오기 위해서다. 페스카라 가는 길은 협곡이 많았다. 그 협곡 사이마다 드넓은 포도밭들이 펼쳐져있다. 경사진 면에 햇살이 잘 들고, 바다에 비친 햇살까지 모두 포도 속살을 잘 영글게 하는 요소다. 나중에 검색해 보니 역시나 포도주가 유명하고 와이너리 투어 상품도 많다. 나는 이제 술을 마시지 않으니 별 무상관이지만. 고속도로를 진출하여 상당히 긴 터널을 두 개 통과하고 나니 페스카라였다.
페스카라 마리나는 지금까지 바스토, 산살보, 테르몰리, 바리에서 본 마리나 중 가장 규모가 크고 시설이 잘 되어있다. 폰툰이 콘크리트 고정식이라 배가 조수 차에 의해 조금씩 상하로 움직이는 방식. 마리나 클럽하우스에는 레스토랑과 현금인출기, 어린이 놀이터, 기념품 가게 등이 잘 배치되어 있었다. 노인네들이 클럽 하우스 앞에 모여 수다를 떠는 것은 이탈리아 마리나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광경. 나 역시 저렇게 노년을 맞고 싶다. 세월이 흘러 강릉마리나선주협회 회원들이 다 함께 나이 들면 저런 모습을 만들게 될 거다. 그때쯤엔 강릉에도 멋진 국제마리나와 진정한 요트문화가 자리 잡게 되길 소망한다.
페스카라 마리나 곁엔 멋진 Ponte del Mare(바다 다리)가 설치되어 있다. 사람과 자전거 전용의 기념비 적인 교량이다. 아주 높고 아름답게 세워져 있다. 다리에 오르기 전, 입구에 멋진 스타일의 카페에 잠시 들렀다. Toto e Peppino cafe. 시설도 최신 유행으로 멋지지만 화덕에 데워 주는 피자가 제대로 였다. 벽에 걸린 사진과 그림들을 보다 문득 주인장의 얼굴과 똑 같다는 것을 알았다. 저게 주인장 그림이요? 묻자 카페 주인은 신나게 이탈리아 어로 설명한다. 물론 나는 눈치로 때려 맞힐 수밖에. 듣자하니 그는 배우 생활을 좀 했고 그 당시 사진들이며, 사진에 함께 있는 분들은 유명 배우라는 것 같다고, 아내에게 동시통역(?)해 주었다. 아님 말고. 아무렴 어떠냐? 이탈리아 페스카라에 여행 온 한국인이 멋대로 상상 통역하는 것일지라도 무슨 문제 있나? 그런 게 여행이지. 문득 Marvin Gaye - I Heard It Through The Grapevine 이 생각난다. 번역하면 ‘풍문으로 들었소’ 다. 와인으로 유명한 페스카라에서 흘러나온 이야기니 딱이다.
카페에서 배를 채우고 Ponte del Mare(바다 다리)에 올랐다. 날씨는 맑고 따듯하다. 아드리아해의 바람은, 다리에 오르는 나그네의 이마에 친절하게 불어 준다. 호오 다리 난간에 자물쇠들이 많이 걸렸다. 사랑을 불안해하는 것은 한국이나 이탈리아나 마찬가지로군. 얼마나 불안하면 저렇게 많은 자물쇠를 걸어 둘까? 다리에서 내려다보니 다리 아래 산책로 여기저기 누가 누구를 사랑한다는 글귀가 커다랗게 쓰여 있다. 안타까운 일이다. 그들은 젊기에 여전히 가슴 아픈 사랑의 가시밭길을 걷고 있다. 아내와 아기를 안고 이 다리를 건너는 나는 얼마나 다행인가? 나는 그 치열한 전쟁의 생존자다.
오후 4시 15분 마리나스베바로 돌아와 전 선주 까를로를 만났다. 20리터 경유통 7개를 들고 왔다. 이제 총 10개. 내일 중 배의 기름통과 함께 모조리 꽉 채울 예정이다. 시험항해를 하려면 VHF 채널 10번으로 마리나 사무실을 호출하면, 마리나 직원들이 이안과 접안을 도와준단다. 유럽식의 폰툰은 혼자 접안이안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내일 가족끼리의 시험항해를 할 예정이다. 위성전화기는? 내가 묻자 까를로가 뚜마로(내일)! 하고 웃는다. 내일 오전 10시에 새로운 SIM 카드를 받기로 했단다. 확실하게 다 시험해 보고, 너 일 다 마치고 오후 4시에 여유 있게 오라고 말해주었다. 아직 우리의 뚜마로는 현재진행형이다.
오후 6시. 사방이 어두워진다. 마리나 이웃 폰툰에서 beneteau cyclades 43.4 세일 요트에 시동을 걸고 있는 이탈리아 선주를 만났다. 내가 먼저 다가가 인사했다. 차오! 그의 이름은 Nico. 까를로와 친구란다. 해질녘 마리나에서 이탈리아와 한국의 뱃사람끼리 수다가 시작됐다. 그는 내가 한국으로 세일링 한다는 것을 알고 용감하다며 놀라워했다. 그는 내게 뭐하는 사람이냐? 고 해서 요트 체험 일을 한다고 했더니, 자기도 같은 직업이라며 더 반가워했다. 그러면서 이탈리아 요트 차터 사업의 내용을 술술 이야기 해주었다. 이탈리아에서 차터 사업은 법적으로 33피트(10미터) 이상의 배들만 가능하고, 사업용 배들은 일 년에 오직 42일만 일할 수 있다. 그래서 사업자들은 배를 여러 대 사서 각 배마다 42일 씩 일한단다.
이탈리아에서 차터 비용은 하루에 1,000유로 (135만원)고, 배 한대 당 일 년에 20,000 ~ 30,000유로(2,700만원 ~ 4,050만원)를 번다. 배가 두 대면 두 배를 버는 거다. 이중 20%는 세금이다. 세금 쎄네! 니코는 그래도 그 정도 벌면 자신은 충분하다고 한다. 니코와 까를로는 함께 배를 한 대 씩 더 샀다고 한다. 아하, 이들의 요트 차터링 사업 환경과 시스템을 확실히 알겠다. 나더러 한국은 어떠냐? 물어서 한국은 연간 날짜 제한은 없지만, 대략 250일 정도는 일한다. 그러나 이제 겨울에는 일하지 않고 오키나와나 필리핀으로 장거리 여행 항해를 하려고 더 큰 배를 샀다라고 하자, 니코도 겨울에는 일하지 않고 일 년에 3~4개월만 바짝 일하고 노는 맛에, 이 사업을 한다고 한다. 당연하다. 돈보다 삶이 인생이 소중해야 진짜 요트 일 제대로 할 수 있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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