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체조배하는 방법 (성체 조배 하신 단원 한번꼭 읽어보세요)
성체조배하는 방법은 깊은 침묵 중에 성체 앞에 머물러 있으면서 삼위일체이신 하느님께 직접 배우는 것이다.성체조배는 성령께서 이끄시는 대로 하는 것이기에 그 방법은 바람이 부는 방법만큼 많다. 다양한 성체조배 방법을 모두 다 소개하기란 불가능하다. 그래도 성체조배를 처음 시작하는 형제 자매들이 성체 앞에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있도록 돕기 위하여 일반적으로 하는 방법을 소개하고자 한다. 이 방법으로 하다가 성체조배에 맛을 들이기 시작하면 이런 저런 방법에 연연해하지 말고 성령께서 이끄시는 대로 따르고, 성령께 주의를 기울여 성령께서 가르쳐 주시는 방법대로 하실 것을 권한다.
성체조배 방법은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살펴 볼 수 있다. 하나는 정신적이고 영적인 면에서 살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육체적인 면에서 살피는 것이다. 수련을 하기 위하여 두 가지로 나누어 생각하지만 사실 성체조배는 몸과 마음이 하나가 되어 하기에 한 가지이다. 왜냐하면 인간은 육체와 영혼으로 구성된 단일체이기 때문이다영혼과 육신을 살피는 방법도 성 토마스 아퀴나스와 십자가의 성 요한이 체계화한 영혼과 육신의 세밀한 인간학적 구조 안에서 살펴 볼 수 있겠지만 여기서는 단순화하여 먼저 육체적인 방법으로 몸을 살펴 보고, 그 다음에 영신적인 방법으로 마음을 살펴보며 간략하게 설명하고자 한다.
1. 몸
그러므로 우리는 흙으로 빚어진 몸을 통하여 물질 세상과 깊은 관계를 맺고 살고 있으며 하느님의 숨(영)으로 물질 세계를 초월하여 하느님과 영적인 대화를 나눌 수도 있다. 이런 우리 몸은 말씀이신 예수님이 우리의 몸을 취하시면서 한층 더 고귀하게 되었다. 또한 죽었다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통하여 우리는 우리 몸의 신비를 알게 되었다. 즉, 우리 몸은 비록 우리 눈에 썩어서 흙으로 돌아가 없어진 것처럼 보여도 완전히 소멸된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구원 계획 안에 존속하고 있다가 때가 되면 부활하여 새로운 몸이 된다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몸을 지나치게 무시하거나, 몸을 지나치게 위하면서 잘못을 저지른다. 특히 의학계에서 우리 몸을 단순한 소모품으로 여겨 나이가 들고 병이 들어 제 기능을 다 하지 못하면 쉽게 제거하려는 경향이나 고통을 받으며 어렵게 사느니 차라리 고통을 더 이상 받지 않도록 죽이는 것이 치료의 한 방법이라고 보는 경향도 생명을 지니고 있는 몸을 너무 업신여기거나 무시한 데서 비롯된 잘못이다.
우리는 거의 모든 것을 몸을 통하여 한다. 미사 전례에 참여하여 머리를 숙여 인사하거나, 목소리를 가다듬어 기도문을 외우고 성가를 합창하거나, 말씀으로 들은 것을 실천하려고 할 때도 몸이 함께 한다. 또한, 하느님께서 베풀어 주신 사랑에 힘입어 이웃을 사랑하려고 할 때도 몸을 통하여 한다. 그리고 영적이며 초자연적인 체험을 할 때도 몸이 함께 한다는 사실을 많은 영성가들의 자서전을 통하여 알 수 있다. 특히 오상을 입은 프란체스코 성인을 생각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하느님의 체험을 보다 풍요롭고, 깊고, 총체적으로 하는 데 우리 몸은 중요한 역할을 한다.
1-2. 몸 풀기
몸이 풀려 있어야 몸에 신경을 쓰지 않고 성체 안에 계신 예수님께 마음을 모아 기도할 수 있다. 오랜 시간 동안 하는 성체조배는 몸이 풀려 있어야 몸을 잊고 할 수 있다.
몸 풀기를 하는 것은 우리가 육체를 지니고 있는 존재임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겸손한 태도이다. 몸 풀기는 윤리적인 차원에서도 필요하고 영성적인 차원에서도 필요하다. 전인격적으로 부르시는 하느님의 부르심에 몸과 마음으로 조화를 이루어 응답하기 위해서, 그리고 정서적인 성숙을 위해서 어느 정도 몸 풀기를 해야 할 것이다.
성체조배를 위한 몸 풀기는 운동선수들이 하는 준비운동과는 아주 다르다는 것이다. 운동선수의 준비운동이 능동적이고 힘으로 하는 것이라면 우리의 몸 풀기는 수동적이고 마음으로 하는 것이다. 성체조배를 위한 몸 풀기를 하면 근육이 발달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인대가 이완되고 몸과 마음을 하나로 하는 집중력이 향상된다.
- 굳어진 몸을 푸는 방법
* 예수님은 어떻게 몸을 풀고 기도하셨을까?
산에 들어가 밤을 새우시며 기도하시고, 먼동이 트기 전에 일어나 외딴 곳으로 가시어 오랜 시간 동안 기도하신 예수님도 몸 풀기를 하셨을 것이다. 하느님의 아들이시고 말씀이신 예수님도 우리의 몸을 취하셨기에 오랫동안 같은 자세를 유지하려면 몸을 풀어야 하셨을 것이다. 성서는 예수님이 어디서 얼마나 기도하셨는지에 대해서는 여러 번 전하면서도 기도 내용이나 기도하기 전에 하신 몸 풀기는 전하지 않는다.
단지 땅에 엎드려 기도하시는 예수님의 기도 자세를 전할 뿐이다. 그것도 예수님의 마음을 간접적으로 표현하느라 전한 것이다. 우리 가톨릭 신자들에게는 몸 풀기보다 기도 자세가 전해져 내려 왔다. 성서는 예수님의 제자들이나 예수님을 찾아 온 주변 사람들이 무릎을 꿇고 엎드려 기도하는 자세에 대해서 많이 이야기한다. * 성 도밍고의 아홉 가지 기도 자세
① 큰절을 하며 기도하는 방법 ② 바닥에 엎드려 기도하는 방법 ③ 불교에서 절수련을 하듯 무릎을 꿇었다가 일어났다를 백번씩이나 반복하며 기도하는 방법 ④ 기(氣)운동에서 감정이나 생각 등을 가라 앉히려고 하는 지감(止感) 수련처럼 손의 모양을 바꾸어 가며 기도하는 방법 ⑤ 십자가에 달린 모습으로 양팔을 벌리고 기도하는 방법 ⑥ 무엇인가 받으려는 듯이 양손을 모아 하늘로 향하여 기도하는 방법 ⑦ 의자에 앉아서 기도하는 방법 ⑧ 한적한 곳에서 거닐며 기도하는 방법 ⑨ 쇠사슬로 편태를 하며 기도하는 방법 등
몸풀기를 하며 마음의 평정을 얻고 차분하여지니까 몸풀기를 기도라고 생각하여 여기에 종교적인 의식을 첨부하고 신심행위를 하는 것처럼 착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또 몸이 건강하고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는 것이 곧 구원인 양 착각하여 신흥종교단체를 세우는 사람도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이것도 몸을 너무 지나치게 생각하는 데서 오는 잘못이다.
2. 마음
2-1. 마음과 기도
기도는 우리의 입으로 말하고 몸짓으로 표현하고 머리로 하는 것 같지만 성서는 기도는 우리의 마음으로 한다고 한다. 여기서 의미하는 마음은 우리의 이성이 의식할 수도 없고, 다른 사람도 알 수 없는 우리의 숨겨진 중심부를 가리킨다. 마음은 결단을 내리고 선택하는 곳이며 진리가 자리잡고 있는 곳이다. 그래서 성령님만이 마음을 살피고 감지하실 수 있다. 이 자리에서 하느님을 만나 서로가 약속을 하고 관계를 맺는 것이다. 그러기에 기도는 하느님의 행위인 동시에 인간의 행위이다. 즉 기도는 우리의 마음에서 솟구쳐서 바쳐지기도 하고 성령께서 불러일으키시어 기도하게도 된다.
기도는 무한히 선하신 아버지와 외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님 그리고 위로자이신 성령님과 활기찬 사랑의 관계를 맺는 것이다. 그러므로 기도는 하느님의 면전에서 그분과 영적인 눈을 마주치는 것이며, 그 목적은 그분과 하나되기 위해서이다.
기도는 영성 생활에 있어서 가장 근본적이고 핵심적인 행위이지만 우리는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 모른다. 그러나 성령님이 우리를 이끄시고, 가르쳐 주시고, 예수님이 하신 모든 말씀을 되새겨 주시면서 주님과 함께 할 수 있도록 도와 주시기에 할 수 있다. 더욱이 성령님은 우리를 진리에로 인도하시면서 우리가 더욱 주님과 일치할 수 있도록 성령의 일곱 가지 은총을 베풀어 주신다. 또한 헤아릴 수 없는 무한한 그리스도의 신비를 한계를 지닌 우리의 말로 표현할 수 있도록 도와 주시어 새로운 기도문이 자꾸 생기게 하신다.
2-1. 마음
사실 우리가 기도할 때, 우리가 기도하려는 의지보다 하느님께서 먼저 우리를 부르셨다는 것을 알면 우리는 기도하며 큰 위안과 기쁨을 얻을 것이다. 사실 주님은 우리가 당신을 잊고, 당신을 멀리 떠나 숨어 있고, 우상 숭배를 하며 죄를 지어도, 또 터무니 없는 말로 당신을 비난하여도 끊임없이 우리를 이 신비로운 생활로 부르신다.
우리가 성령님과 함께 하기 위해서 세상의 재물, 사회적 지위, 외모, 친분관계, 등이 주는 기쁨을 포기하면 성령님은 우리 몸을 당신이 머무는 성전이 되도록 마련하신다. 또한 성령님은 우리와 사랑의 관계를 맺고, 가끔 우리의 깨달을 수 있는 능력, 즉 지력에 빛을 주시어 그 능력을 충분히 발휘하게 하여 예수님의 말씀이나 행적 가운데 숨겨진 의미를 알게 해 주시며 더욱더 친밀하게 당신 품으로 오게 하신다. 성령님은 우리 안에서 활동하시면서 우리가 태어날 때와 세례성사 때 받은 천상의 은총과 자연적인 은총의 기쁨을 맛보게 하시고 그 능력을 발휘하게 하시며, 강렬한 사랑의 불을 지르시어 타오르게 하시고 우리를 당신처럼 완전하게 하신다. 그래서 우리로 하여금 삼위일체이신 하느님 아버지와 예수님 그리고 성령님의 관계를 관상할 수 있도록 영적으로 깨우신다. 그러면 우리는 영적인 사람으로 변형되어 관상생활을 하게 된다.
성령님이 사랑하는 사람 안에 머무시면서 진리를 깨닫게 하시고, 거룩하게 하시는데 그 활동이 너무 은밀하여서 우리가 잘 의식하지 못하고, 또 어느 경우 의식해도 우리 말로 표현할 수 없으니까 많은 경우 우연한 일로 생각하거나, 무의식적인 현상으로 돌리지만 성령님이 하시는 것이니 깨어 감사드려야 한다. 대부분 은밀하게 활동하시기도 하지만 어느 경우는 세찬 불길과도 같이 맹렬하여서 그 불길로 우리가 고통을 느끼지만 이렇게 하시면서 우리의 더러운 때를 깨끗이 하기도 하신다. 이런 과정을 반복하면 장작 나무가 불이 붙어 활활 타고 마침내 불과 나무를 구분할 수 없이 되는 것처럼 성령의 불길에 싸인 영혼은 성령과 온전히 일치하여 구분이 안 될 정도로 일치를 이룰 수 있다. 이런 일치를 영적 결혼의 일치라고 부른다.
2-1 . 마음과 기도
기도는 무한히 선하신 아버지와 외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님 그리고 위로자이신 성령님과 활기찬 사랑의 관계를 맺는 것이다. 그러므로 기도는 하느님의 면전에서 그분과 영적인 눈을 마주치는 것이며, 그 목적은 그분과 하나되기 위해서이다.
기도는 영성 생활에 있어서 가장 근본적이고 핵심적인 행위이지만 우리는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 모른다. 그러나 성령님이 우리를 이끄시고, 가르쳐 주시고, 예수님이 하신 모든 말씀을 되새겨 주시면서 주님과 함께 할 수 있도록 도와 주시기에 할 수 있다. 더욱이 성령님은 우리를 진리에로 인도하시면서 우리가 더욱 주님과 일치할 수 있도록 성령의 일곱 가지 은총을 베풀어 주신다. 또한 헤아릴 수 없는 무한한 그리스도의 신비를 한계를 지닌 우리의 말로 표현할 수 있도록 도와 주시어 새로운 기도문이 자꾸 생기게 하신다.
사실 우리가 기도할 때, 우리가 기도하려는 의지보다 하느님께서 먼저 우리를 부르셨다는 것을 알면 우리는 기도하며 큰 위안과 기쁨을 얻을 것이다. 사실 주님은 우리가 당신을 잊고, 당신을 멀리 떠나 숨어 있고, 우상 숭배를 하며 죄를 지어도, 또 터무니 없는 말로 당신을 비난하여도 끊임없이 우리를 이 신비로운 생활로 부르신다.
우리가 성령님과 함께 하기 위해서 세상의 재물, 사회적 지위, 외모, 친분관계, 등이 주는 기쁨을 포기하면 성령님은 우리 몸을 당신이 머무는 성전이 되도록 마련하신다. 또한 성령님은 우리와 사랑의 관계를 맺고, 가끔 우리의 깨달을 수 있는 능력, 즉 지력에 빛을 주시어 그 능력을 충분히 발휘하게 하여 예수님의 말씀이나 행적 가운데 숨겨진 의미를 알게 해 주시며 더욱더 친밀하게 당신 품으로 오게 하신다. 성령님은 우리 안에서 활동하시면서 우리가 태어날 때와 세례성사 때 받은 천상의 은총과 자연적인 은총의 기쁨을 맛보게 하시고 그 능력을 발휘하게 하시며, 강렬한 사랑의 불을 지르시어 타오르게 하시고 우리를 당신처럼 완전하게 하신다. 그래서 우리로 하여금 삼위일체이신 하느님 아버지와 예수님 그리고 성령님의 관계를 관상할 수 있도록 영적으로 깨우신다. 그러면 우리는 영적인 사람으로 변형되어 관상생활을 하게 된다.
성령님이 사랑하는 사람 안에 머무시면서 진리를 깨닫게 하시고, 거룩하게 하시는데 그 활동이 너무 은밀하여서 우리가 잘 의식하지 못하고, 또 어느 경우 의식해도 우리 말로 표현할 수 없으니까 많은 경우 우연한 일로 생각하거나, 무의식적인 현상으로 돌리지만 성령님이 하시는 것이니 깨어 감사드려야 한다. 대부분 은밀하게 활동하시기도 하지만 어느 경우는 세찬 불길과도 같이 맹렬하여서 그 불길로 우리가 고통을 느끼지만 이렇게 하시면서 우리의 더러운 때를 깨끗이 하기도 하신다. 이런 과정을 반복하면 장작 나무가 불이 붙어 활활 타고 마침내 불과 나무를 구분할 수 없이 되는 것처럼 성령의 불길에 싸인 영혼은 성령과 온전히 일치하여 구분이 안 될 정도로 일치를 이룰 수 있다. 이런 일치를 영적 결혼의 일치라고 부른다.
2-2. 성체조배 이렇게 한 번 해보세요.
나) 흠숭의 예 성체조배실에 들어가면 먼저 겸손한 자세(무릎을 꿇거나, 장궤)로 성호를 긋고, 성체 안에 계시는 예수님께 온 마음, 온 정성으로 큰절을 올리면서 흠숭의 예를 드린다. 이 때 예수 성심 호칭 기도나 모든 성인 호칭를 기도를 드리면 좋다.
다) 몸과 마음의 일치 성체조배하는 때의 장소와 환경에 따라 시각, 청각, 촉각, 후각, 미각을 통하여 몸과 마음을 일치하게 한다. 예를 들어 주변이 시끄러우면 청각을 이용하여 몸과 마음을 고요하게 하고, 냄새가 많으면 후각을 이용하고, 입 안에 맛을 많이 느끼면 미각을 이용하여 몸과 마음을 모을 수 있다. 또한 성체께 시선을 모으며 시각을 통하여 할 수도 있고, 몸의 촉각을 느끼며 몸과 마음을 하나로 할 수 있다. 눈을 감거나 뜨는 것은 자유롭게 할 것이다. 기도하다 보면 살짝 눈이 뜨여지기도 하고, 감게도 되기 때문에 구태여 한 가지 방법만 고집할 필요는 없다.
원리는 감각 기능이 느끼는 것을 의식이 따라 가는 것이다. 오관이 느끼는 것을 의식이 따라 가면 긴장이 해소되고 몸과 마음이 고요해지며 하나가 된다 그 이유는 느낌을 의식하여 느낌에 집중하면 자연스럽게 마음과 몸이 따로 놀 수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주변의 큰 소리에서부터 작은 소리로 옮겨 가며 듣다가 마침내 자신의 숨소리를 규칙적으로 듣고 있으면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몸과 마음이 하나가 되어 같이 움직인다. 여기서 조심할 것은 감각 기능을 이용하여 몸과 마음을 모으는 이유는 성체조배를 하기 위한 것이라는 것이다. 몸과 마음을 일치시키는 훈련을 하느라 이것 저것 하는 것이나 너무 오래 하는 것은 시간 낭비이며 아무 쓸모가 없다. 성체조배 회원들과 함께 해 본 결과 대부분 잠시 동안만 오관의 느낌에 집중하여도 몸과 마음이 일치되는 것을 보았다. 자신의 숨소리를 규칙적으로 듣게 되면 즉시 예수님께 집중해야 한다.
여기서는 지면 관계상 모든 감각 기능을 이용한 몸과 마음을 일치하는 방법을 소개할 수 없다. 성체조배회에 나오면 실습을 하며 배울 수 있을 것이다. 몸과 마음이 일치된 후에는 사랑, 믿음, 희망, 이웃, 용서, 등과 같이 한 가지 주제를 선정하여 성체조배를 하는 것이 좋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성체조배를 하다 보면 길을 잃고 헤메듯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경우가 있는데 이 때 선정된 주제가 있으면 길잡이 역할을 한다.
라) 자기소개와 봉헌기도 오관을 통하여 몸과 마음이 고요하게 하나가 되면 성체 안에 계신 예수님을 ‘예수님, 예수님, 예수님’ 하고 세 번 정도 부르며 예수님 앞에 내가 있음을 의식하고 예수님을 느낀다. 그리고 성체 안에 계신 예수님께 자신이 누구라고 무엇을 하러 왔다고 소개하며 인사드린다. 매일 성체조배하는 경우는 하루 동안 있었던 일을 간략하게 말씀드리고, 일주일에 한 번 하는 사람은 일주일 동안 있었던 일을, 한 달에 한 번 피정하듯이 하는 사람은 한 달 동안의 일을 간략하게 말씀드린다. 예수님께 자신을 자꾸 소개하다 보면 자기 자신이 자기를 어떻게 평가하고, 수용하고, 대하는지 알게 되고 점점 자기를 올바르게 평가하게 된다.
자기 소개가 끝나면 성모님께, 하느님 아버지께, 예수님께, 성령님께 자신을 의탁하고 봉헌하는 기도를 드린다. 특별히 성령님께 우리의 마음을 비추어 주시도록 도움을 청한다. 자기를 봉헌하는 기도는 자유롭게 하는 것이 좋으나 어떻게 할 줄 모르는 사람은 아래에 나오는 예문 중에서 자유로이 한 둘을 선택하여 드려도 좋고, 모두 드려도 좋다.
+ 성모님께 자신을 봉헌하는 경우 "첫 감실이시고, 누구보다도 주님과 일치하셨던 성모님, 우리의 경배는 너무나 불완전하므로 베들레헴에서 예수님을 품 안에 안으셨던 성모님, 나자렛에서 예수님과 함께 사셨던 성모님, 다락방에서 제자들과 함께 기도하셨던 성모님, 이 시간 성모님과 함께 일치하여 기도를 드리고 싶습니다. 성모님께 저를 드리오니 저를 받아 삼위일체이신 성부, 성자, 성령님께 봉헌해 주십시오."
위와 같이 자유롭게 기도할 수도 있고 ‘성모님께 자신을 봉헌하는 기도문’을 바쳐도 좋다.
하느님 아버지께 자신을 봉헌하는 경우 "천지창조 이전에 우리를 뽑아 주시고, 이 자리에 불러 주신 아버지 감사드립니다. 우리를 향한 아버지의 극진한 사랑에 저를 맡겨드립니다. 언제나 아버지께서 뜻하시고 기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 들을 수 있도록 이 시간 아버지와 함께 있게 해 주십시오. 저의 보다 더 큰 선을 위하여 모든 것을 미리 보고 마련해 주시는 아버지, 제 뜻대로가 아니라 언제나 아버지의 보다 큰 영광을 위하여 저를 당신께 맡기고 드리고 봉헌합니다."
예수님께 자신을 봉헌하는 경우 "예수님, 저를 주님께 봉헌합니다. 이 시간 저를 이끌어 주시고, 주님이 원하시는 방법으로 이 성체조배를 바칠 수 있도록 저의 마음을 열어 주십시오. 예수님이 저를 사랑하시는 것처럼 저도 예수님을 사랑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십시오." 위와 같이 자유롭게 기도할 수도 있고 ‘예수성심께 자신을 봉헌하는 기도문’을 바쳐도 좋다.
성령님께 자신을 봉헌하는 경우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도 모르는 저를 대신해서 말로 다 할 수 없을 만큼 깊이 탄식하시며, 하느님께 간구해 주시는 성령님, 이 시간 저를 당신께 봉헌합니다. 저의 지성과 기억, 의지와 영을 드리오니 저를 비추어 주십시오. 제 안에 슬기와 지식, 총명과 분별의 은혜를 더해주시어 이 시간 주님의 가르침을 잘 알아 듣고, 주님의 사랑 안으로 저를 인도해 주십시오." 위와 같이 자유롭게 기도할 수도 있고, ‘성령감림송’을 바쳐도 좋다.
마) 겸손의 기도 주님께 잘못한 것에 대해 용서를 청하고, 주님의 자비를 구하는 기도를 한다. 여기서 조심할 것은 자기 죄에 너무 오래 머물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성체조배는 예수님을 조배하는 것이지 죄를 보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성체조배를 하며 비록 우리가 예수님 앞에 나올 자격도 없고 그분과 하나될 처지도 아니지만 그분의 사랑이 우리의 어떤 죄보다도 크시기에 감히 죄의 용서를 청하고, 하나될 것을 청하는 것이다. 하느님은 아무리 큰 죄인이라도 그 죄인이 죽기를 바라지 않으시고 구원을 받게 되길 원하신다: "하느님 나의 제사는 통회의 정신, 하느님은 부서지고 낮추인 마음을 낮추 아니 보시나이다." (시편 50,19)
바) 묵상 기도 묵상기도를 하면서 내적으로 갖추어야 할 기본 마음 자세는 "주님은 사랑이시다."라는 성서 말씀이다.
+ 성서 말씀으로 성서 말씀으로 묵상할 때 갖는 기본 마음가짐은 묵상할 말씀이 하느님께서 바로 나에게 지금 하시는 말씀으로 받아 들이는 것이다. 즉 예수님의 말씀이 그대로 내게 이루어지기를 바라며 묵상하는 것이다.
방법은 예수님의 탄생, 수난, 부활, 설교, 기적 사화 등을 자유로이 선택하여 묵상할 수도 있고, 매일 성체조배를 하는 경우는 그날의 복음 말씀을 읽고 묵상하여도 좋다. 많이 읽고 묵상하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읽고 많이 예수님을 만나는 것이다.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마음과 뜻, 말 마디에서 풍기는 분위기와 느낌, 전해져 오는 움직임과 마음 상태 등을 조금씩 헤아리며 예수님을 깊게 아는 것이다. 예수님의 말씀 중에 예수님을 잘 느낄 수 있는 구절이나 단어가 있으면 계속 반복하며 충분히 머물고 예수님을 깊게 만나는 것이 좋다.
시편으로 기도할 때도 하느님을 잘 느낄 수 있는 구절이나 단어에 머물며 계속 반복하면서 기도를 드리면 하느님을 깊게 만나 하느님을 아는 지식과 사랑이 자랄 것이다. 이 때 호흡에 맞추어 하면 집중력이 더 커진다. 예를 들면 예수님 그리스도, 예수님 그리스도를 반복하며 있어도 좋고, 예수님 마음 내 마음 되게 하소서, 또는 하느님은 사랑이시다,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 하느님 사랑합니다, 예수님 사랑합니다, 성령님 사랑합니다, 성모님 사랑합니다, 등을 반복하여도 좋다.
혹은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행복하다와 같이 진복팔단 중의 하나를 선택하여 할 수도 있고, 내 영혼이 주를 찬송하며와 같이 성모님의 노래 중에서 선택하여 할 수도 있다. 이 때도 호흡에 맞추어 하면 집중력이 커진다.
+ 자신의 삶으로 하루 중에 있었던 체험적인 사건이나 일상의 삶을 가지고 주님과 대화하면서 기도할 수도 있다. 체험적인 사건이나 일상의 사건 중에 함께 하신 예수님을 만나는 것이다. 이 때 조심할 것은 예수님을 만나고 예수님 안에 머물러야지 자기 자신을 바라보고 자기 자신을 분석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나를 자꾸 바라보면 소심증, 세심증, 신경증 등에 빠지기 싶고 구원으로부터 멀어지기 때문이다. 자기 스스로 자기를 완벽하게 하려는 유혹에 빠지면 교만해지고 끝장이다. 우리는 구세주가 아니라 죄인이기 때문이다. 광야에서 뱀에게 물린 사람들이 구리 뱀을 보고 살아 난 것처럼 아픈 부위만 보며 슬퍼할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살아 날 수 있다. 예수님은 구세주이시기 때문이다.
+ 분심으로 분심은 그 날 그 날의 내적 숙제를 하지 않아서 생기는 경우가 많다. 밀린 내적 숙제가 분심이다. 제 때에 자신을 바라보며 풀어주지 않은 숙제들이 앙금으로 남아서 떠돌아 다니는데 분주할 때는 있었도 느끼지 못하여 마치 아무 문제가 없는 듯이 살다가 조용히 앉아 있으니 보이는 것이 분심이다.
갑자기 생겨난 듯이 호들갑을 떨지만 항상 내적으로 함께 했던 근본적인 자신의 문제들이 분심이다. 모두 자기를 버리지 못하는 데서 비롯한 것이다. 한 마디로 믿음이 없는 결과이고 욕심이 많은 결과다. 때로는 게으른 탓도 있다. 그러므로 분심이 많다고 걱정할 것이 아니라 이제부터 하나씩 숙제를 하듯이 조급하게 서둘지 않으며 여유를 가지고 조금씩 풀어 가는 것이다. 한꺼번에 단번에 풀어보려는 욕심만 버리면 분심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감당하기 어려운 경우는 분심의 내용을 메모지에 적어 정리하고, 그 내용을 의식하면서 주님께 봉헌하여 정화시켜 주시길 청원한다. 사사로운 분심은 인내를 가지고 물리치려고 노력하면 될 것이다. 재물이 있는 곳에 내 마음도 있다는 말씀을 새겨 듣는 것이 분심을 푸는 열쇠다.
+ 성인전이나 영적독서 분심이 많이 들고, 기도가 어렵거나 무미건조할 때는 성인전이나 영적 독서를 하며 묵상하면 도움이 된다. 이 영적독서나 성인전에 나오는 사람의 체험을 간접적으로 체험하며 따라서 해 볼 수도 있다. 또 주님께 성인이 받은 은총을 자신에게도 주시도록 청할 수도 있고 성인에게 은총을 받을 수 있도록 전구해 달라고 도움을 청할 수도 있다. 이 때도 많이, 빨리 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예수님을 체험한 것에 머물며 간접적인 체험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사) 사랑의 기도 몸과 마음과 영혼이 침잠되면 고요히 성부와 성자와 성령님께 자신을 내어 드리면서 침묵으로 사랑의 대화를 시작한다. 삼위일체이신 하느님께 자신을 내어 드리고 마음으로 주님을 바라보면서 고요히 사랑을 고백한다. 주님 사랑에 자신을 내어 맡기는 마음으로 기도한다.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하는 것이다. 이 때 ‘오소서 성령님’을 반복해서 하며 성령님께 나의 온 몸을 조목 조목 드릴 수 있다. 내 안에 성령으로 가득 차도록 성령님께 자신을 내어 드리는 것이다. 그리고 성령께서 이끄시는 대로, 사랑하는 연인이 서로 대화를 나누듯이 많은 시편을 쓴 다윗처럼 사랑의 찬미가를 삼위일체이신 하느님께 드리는 것이다. 그리고 사랑의 밀어를 듣는 것이다.
아) 청원기도와 결심 기도를 마칠 때가 되면 주님께서 내려주신 은총에 감사드리는 기도와 함께 기억해 주고 싶은 형제들과 친지, 본당 신부와 수녀들, 교구장과 어려움 중에 있는 사람들과 나라, 교회를 위하여 청원기도를 하고, 주님과 이웃에게 행할 수 있는 구체적인 사랑의 실천을 결심한다.
그리고 마침기도를 자유로운 기도로 바치고 성체 안에 계신 예수님께 큰절을 드리고 조배실을 나온다.이렇게 성체조배를 마친 후 성체조배실에서 나와 적당한 장소에서 주님을 더욱 사랑하는 데 도움이 되는 깨우침과 영적 체험이 있으면 개인 묵상 노트에 적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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