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나라 군대” 운운 유감
최근 “당나라 군대” 운운의 주장이 파장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어느 공영방송의 논설위원이라는 사람이 자신의 트위터에서
다름 아닌 우리 대한민국 국군이 모든 면에서 ‘당나라 군대’ 같다고 표현한 것입니다.
‘당나라 군대’란 군기가 빠져 오합지졸인 형편없는 군대를 지칭하는 일종의 속어입니다.
북한의 연평도 포격사태와 관련해 우리 군의 대응자세가 미덥지 못했다는 여론이 있다고는 하지만,
너무 지나치다는 생각입니다.
대한민국 국군이 졸지에 당나라 소속 군대가 되고,
금쪽같이 귀중한 아들을 군대에 보낸 부모 역시 당나라 국적이 되고 말았으니 쓴 웃음이 나옵니다.
도대체 명예를 먹고사는 군을 그렇게 폄하하고 희화화할 이유가 무엇인지 묻고 싶습니다.
‘당나라 군대’가 어떤 유래를 갖고 있는지 알고서 그런 소리를 했는지 묻고 싶습니다.
사실 ‘당나라 군대’라는 말 자체가 얼핏 모순이 있어 보입니다.
당나라야말로 중국 역사를 통틀어 가장 강성한 왕조였고,
그 토대가 강력한 군사력이었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당나라가 급격한 쇠락 과정을 밟았고, 군대 역시 그랬다는 것입니다.
현종 말기 안녹산의 난이 휩쓸고 지나가면서
당나라 군대는 일사불란한 지휘통솔 체계가 무너집니다.
지방마다 군벌이 난립하고 사병화된 군대의 기강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어지러워집니다.
당나라는 외세의 침략에 속수무책 당할 수밖에 없었고,
서역 등 대부분의 식민지를 잃고 맙니다.
그래서 조롱하고 비아냥대는 말로 ‘당나라 군대’가 생겨났다는 것입니다.
한편 벤처업계의 전설 이민화 카이스트 교수는 저서를 통해 색다른 주장을 해서 눈길을 끕니다.
이 교수에 의하면 ‘당나라 군대’라는 어원은 ‘나당전쟁’
즉 신라와 당나라가 한반도 패권을 놓고 싸웠던 상황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당나라는 동쪽에서는 신라와 싸우고 서쪽에서는 토번과 싸우면서 진퇴양난의 늪에 빠집니다.
이 때 특히 멀리 신라에 원정왔던 당나라 군대가 전의를 잃고 우왕좌왕합니다.
그래서 ‘당나라 군대’라는 말이 생겨났다는 것인데, 퍽 설득력이 있어 보입니다.
이번 연평도 사태 때 우리 국군은 강한 투혼과 감투정신을 보여주었습니다.
어느 병사는 철모가 불에 타들어 가는 것도 모른 채 싸웠고,
마지막 휴가를 나왔던 어느 병사는 급히 부대에 복귀하다가 전사하고 말았습니다.
우리 국군은 결코 ‘당나라 군대’로 폄하될 만큼 허약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초동대처나 무기관리, 전략전술 등에 있어 문제점이 많이 드러난 것도 사실입니다.
대통령과 정부가 총체적인 국방개혁방안을 마련한다고 하는데,
꼭 전화위복이 될 것으로 믿습니다.
지금 우리 국군에게는 호된 질책과 함께 따뜻한 격려도 필요합니다.
다시는 ‘당나라 군대’ 운운의 부끄러운 자학성 주장이 나오지 않기를 바랍니다.
2010년 12월 9일
전 한나라당 안성시위원장 현 개성공단 지원재단사무국장 안상정 올림
첫댓글 명장 밑에 약졸 없다고 했습니다. 천안암 사건에서도 그러했듯이 반복된 거짓말, 말 바꾸기 등등 국가 안보를 책임진 분들이야말로 오합지졸 이었습니다. 말은 늘 번지르르해도 모든것이 속수무책이었습니다. 오즉하면 병역 기피자가 군복을 입고 보온병을 포탄의 탄피라 했을까요? 민간인이 군복을 입으면 그것이 법을 어기는 것이라는것 조차 모르는 무지한 사람들이 이 나라의 안보를 책임지고 있습니다. 범법자들, 전과자들이 이 나라를 통치하고 있습니다. 그들이야말로 당나라 장수를 닮았겠지요.
우리 해병은 귀신잡는 해병 맞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귀신잡는 해병의 총의 방아쇠가
푸른지붕의 통제 아래 있지 않나 생각이듭니다.
아무쪼록 우리 국민의 안보를 책임지고 이 엄동설한에 보초를 서고 있을 우리 군인을 폄하하지 마ㄹ았으면 합니다.
참으로 민감하고 난감한 말들입니다.
나름대로 군인의 길을 묵묵히 가면서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정치적인 논리로 군인의 길을 가는 사람들도 있는 듯 하고 나라야 어찌 되든지 말든지 출세지향적인 군인의 길을 가는 사람들도 있을 터...
지,덕, 용장을 우리는 기대하지만 그렇게 만만한 일도 아니고...어쨋거나 지금의 상황은 많은 개선과 현실에 맞는 여건이 필요할 때라 생각됩니다.
실제로 열혈남아로 의무 복무를 실천하고 있는 젊은이들을 위해서라도.
실제 상황과 현실의 간극은 얼마쯤이나 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