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방 야화> 신정왕후 조씨
고종을 왕으로 만들다
풍양 조씨 세도정치의 기폭제
혼인한 효명세자 요절 후 어린 아들 헌종 즉위하지만 순원왕후 존재로 2인자 머물러
시어머니 승하하자 정국 주도 철종 계승자로 흥선군 아들 선택
1863년 철종이 후사 없이 승하하자 누가 왕위를 계승하게 되느냐는 문제가 조정의 최대 관심사로 떠올랐다.
당시 왕실의 최고 어른은 신정왕후(神貞王后·1808~1890년)로 그녀의 선택이 가장 중요한 시점이었다.
신정왕후의 최종 선택은 흥선대원군의 아들인 12세의 명복(命福)이었다.
순조·헌종·철종 3대 60여년간 지속돼온 안동 김씨 세도정치의 종식에 흥선대원군과 신정왕후는 뜻을 같이했고, 고종은 이러한 시대적 배경 속에서 조선의 26대 왕이 됐다.
신정왕후의 본관은 풍양(豊壤)으로, 1808년(순조 8년) 조만영(趙萬永)과 은진 송씨의 딸 사이에서 두모포 쌍호정(雙湖亭)에서 태어났다.
쌍호정은 현재 서울 성동구 옥수동 인근이다.
증조부 조엄(趙엄)은 조선 후기에 고구마를 도입해온 인물이다.
풍양 조씨 집안은 19세기에 들어와 안동 김씨 버금가는 세도를 휘둘렀다.
특히 신정왕후가 세자빈으로 간택되면서, 조만영은 조인영과 함께 풍양 조씨가 세도 가문으로 자리를 잡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신정왕후는 1819년 한살 연하의 효명세자(1809~1830년)와 혼인해 세자빈의 자리에 올랐다.
1827년에는 원손(훗날 헌종)까지 출산하면서 그녀의 위상은 더욱 높아졌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였다.
1830년 혼인한 지 11년 만에 효명세자가 창덕궁 희정당에서 요절한 것이다.
1834년 헌종이 8세의 나이로 즉위하자 신정왕후의 시어머니인 순원왕후가 수렴청정하게 됐고 그녀는 일단 정치 일선에서는 물러났다.
헌종이 승하하고, 철종이 왕위에 오를 때에도 순원왕후가 주도적인 역할을 하면서 안동 김씨의 세도정치는 더욱 탄탄해졌다.
순원왕후의 존재로 인해 늘 여성 서열 2인자에 머물렀던 신정왕후에게 기회가 왔다. 1857년 순원왕후가 승하하면서 명실공히 왕실의 최고 어른이 됐다.
1863년 12월 철종이 후사 없이 승하하면서 신정왕후는 왕위 계승의 최고 결정권자가 됐다.
흥선군(이하응)은 발 빠르게 그녀에게 접근했고, 안동 김씨 세도정치 척결이라는 공통의 목표로 두사람은 의기투합했다.
그리고 그의 둘째 아들 명복(훗날 고종)을 다음 왕으로 삼았다.
고종의 나이가 12세밖에 되지 않아서 관례상으로는 신정왕후가 수렴청정해야 했지만 그녀는 형식상으로만 위치하고 실권은 대원군이 된 흥선군에게 맡겼다.
아들의 즉위와 함께 흥선대원군이 10년간 섭정(攝政)할 수 있게 된 데는 신정왕후의 동의가 있었다.
고종은 경복궁을 중건하면서 자경전(慈慶殿)을 따로 건립했다.
자신을 왕으로 만들어준 대비 신정왕후에 대한 보답으로 지은 것이다.
자경전은 오늘날에도 그 원형이 잘 남아 있어 보물 809호로 지정돼 있다.
최근에는 궁궐에서 차를 마시는 의식인 다례(茶禮)체험 공간으로도 활용되고 있다.
자경전의 북쪽에는 십장생도가 그려진 굴뚝이 눈에 들어오는데 이 굴뚝은 따로 보물 810호로 지정됐다.
고종은 신정왕후를 위한 잔치를 베풀었는데 그 모습을 의궤(儀軌)의 기록으로 남겼다.
신정왕후 회갑연을 담은 <무진 진찬의궤(戊辰進饌儀軌)>, 칠순 잔치와 팔순 잔치의 모습을 담은 <정축 진찬의궤>와 <정해 진찬의궤>를 통해 고종의 배려 속에 말년을 보내던 신정왕후의 모습을 읽을 수 있다.
정작 왕비의 자리에는 오르지 못했지만 헌종·철종·고종의 즉위를 지켜보았던 신정왕후는 1890년(고종 27년) 4월17일 83세의 나이로 경복궁 흥복전(興福殿)에서 승하했다.
고종은 신정왕후가 승하하자 시호를 신정(神貞)으로 정했고, 효명세자(익종으로 추존)의 능인 수릉에 신정왕후를 합장할 것을 결정했다.
익종의 수릉은 원래 경종의 의릉(懿陵) 왼편에 조성된 것으로 연경묘라고 했는데, 헌종 즉위 후 효명세자가 익종으로 추존되면서 수릉이라 했다.
1846년 경기 양주 용마산(현재의 서울 광진구)으로 옮겨졌다가, 철종 때인 1855년(철종 6년) 8월 다시 건원릉 왼쪽 언덕으로 옮겨졌다.
신정왕후의 무덤은 이곳에 조성됐고 익종과 합장됐다. 현재 경기 구리시 동구릉 경역 내에 조성된 수릉은 동구릉 전체 입구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