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동국대 문학콩쿠르 시 부문 장원>
이웃집
정지란 (광명정보산업고등학교 3학년 9반)
그들의 거리는 좁혀지지 않았다.
물가에 줄지어 선 포플러들도
가끔은 말이 통하지 않아
답답할 때가 있을 것이다.
그래서 답답한 속을 풀어헤치고
혼잣말을 할 때가 있을 것이다.
포플러 이파리가 펄럭거리며
새하얀 말들을 쏟아내는 강변길
이웃집 부부는 구불거리는 거리를 두고 걸었다.
첫 돌이 지난 아기를
포대기에 들쳐 업은 젊은 아내와
쉰이 넘은 남편은 말이 통하질 않았다.
포플러 이파리가 하얗게 뒤집히면서
쏟아내는 말을 들으며
거리를 두고 걸었다.
그렇다고 그들 사이에
할 말이 없는 건 아니었다.
아내는 남편의 축 쳐진 어깨를 보며
손깍지 낀 손으로 아기를 뒤로 껴안았다.
남편은 멀찌감치 떨어진
아내를 위해 걸음을 멈추었다.
그때마다 아내도
걸음을 멈추었다.
무거운 비닐봉지를 양손에 든 남편과
아기를 업은 아내가 장을 봐
과수원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잠에서 깨어난 아기가 칭얼거리자
남편은 비닐봉지를 내려놓고
한걸음에 달려갔다.
이방인 아내에게서
아기를 받아 안았다.
포플러 이파리가 알 수 없는
말을 쏟아내면서 빛나고 있었다.
<2010년 단국대백일장 시 부문 장원수상작품>
거울
김지수 (안양 예술고 3)
내 생, 유년의 돌담집
구멍 뚫린 돌 틈으로 보이던
바다는 큰 거울이었습니다
여름날 구렁이가 지나간 자리를 따라
섬 아이들과 걸어다니던 아침 올레길
돌담에 자란 이끼를 뜯으면
손바닥 위로 훅 끼쳐오던 흙 내음
목구멍으로 불어드는 바닷바람과
쌀슈퍼에서 산 사탕껌을 나눠먹으면
이에 감기던 달콤함이 나를 바다로 이끌었습니다
섬이 끝나는 바위 덮인 바닷가에서
흰 유리조각처럼 부서지며
발가락 앞에 멈춰 서던 파도
친구들이 모두 학교에 가면
가장 어린 나는 하루 종일 나뭇가지로
잔잔한 바다를 깨트리며 놀았습니다
빛을 뿌리며 내 눈 속에 자리 잡던 바다
밤늦도록 아버지가 돌아오지 않던 날
마당에 켜놓은 주황빛 전구에
꽃다발처럼 달라붙던, 조금 더 서로
가까이 하려 움찔움찔 모여들던 나방들
그들의 접힌 날개를 바라보다
나는 착각처럼 바다로 달려나갔습니다
달빛을 반사하며 조용히, 지나가버린
모든 나를 비추고 있던 바다, 거울이
나를 안아주려 밀려오고 있었습니다
그때 내 분신이 되었던, 바다는
이제 흐릿합니다. 손자국처럼
시간은 기억 위에 새 그림을 그렸기에
그러나 깨져 흩어져버린, 기억 속
바다의 파편들 사이사이에서
나는 가끔 몸 속 깊이 녹아있는
바닷바람의 모습을 봅니다
<2010년 서울산업대 백일장 시 부문 장원당선작품>
어머니의 몸
조주안
나는 지금 대숲의 무덤에서 부화중이에요
달빛으로 잉태한 꿈들이 비눗방울처럼 피어올라요
내 몸에서 자줏빛 아지랑이가 피어올라요
내 숨구멍에선 잎과 줄기가 자라나듯
징그러운 비늘이 울긋불긋 돋아나요
누런 햇살이 쏟아지는 날이면
우리는 혓바닥을 날름거리면서 잠에서 깨어나요
댓바람이 우리의 죄를 말갛게 씻어주나요?
우리는 능구렁이 , 어머니를 오돌토돌 뜯어먹고 태어났어요
그래서 그림자처럼 어머니를 점점 닮아가요
우리는 어머니가 걷고 걸었던
그 아득한 길을 생각하며 삶을 꾸려가요
내 몸이 부드러워지고
은하수빛 허물을 벗어나갈 때
나는 동백꽃처럼 환한 어머니의 몸으로
세상을 날름날름 핥아봐요
<2009년 단국대백일장 장원수상작품>
감꽃이 진다
임석훈 (전남 한빛고등학교 3학년 3반)
노을이 담긴 마당
할아버지는 아귀가 맞지 않은 걸음을 거닐며
북녘 하늘을 올려다본다
동생의 손을 놓치고
서로 다른 기차에 몸을 싣던 날 이후
주렁주렁 여물었다던 감은
몇 해 째 여린 감꽃만 모가지째 뚝, 뚝
호수에 몸을 던진다
전쟁 끝나면 교복을 물려받고
학교에 다시 다니고 싶다던
동생의 빛바랜 웃음은 여전히
지워지지 않는 지문과 함께
흑백사진 속에 갇혀있다
소식 전하듯
감나무 가지 휘도록 앉았다 가는 직박구리 울음소리가
할아버지의 가슴 속에 파문처럼 일렁인다
백태 낀 눈을 자꾸 씻는다
너도 나만큼 늙었을까
아직도 차가운 감각으로 느껴지는 어린 동생의 손
마른 가지의 까치밥이 파르르 흔들린다
할아버지의 한이 해소기침으로 터지고
툇마루 위 바랜 사진은 더 눈부신 웃음으로 내걸린다
꽃잎 같은 노을 진 자리에
감꽃처럼 뜬 별들
호수에 배가 뒤집힌 채 둥둥 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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