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하는 입맛, 변하지 않는 그리움
나이가 드니 입맛도 변하는가 보다. 전에는 생김치를 좋아했는데 이제는 잘 익은 김치로 끓인 찌개가 좋고, 밥도 된밥보다는 진밥이 편하다. 어디 그뿐이랴. 술도 맥주에서 막걸리로 바꾸고 보니 오히려 그 맛이 더 좋다.
특히 여름에는 더위 때문에 입맛을 잃기 쉽다. 그래서 이맘때면 특별히 해 먹는 반찬이 있는데, 바로 ‘고추 다대기’다. 일반 고추에 청양고추를 섞어 잘게 썰고, 다진 마늘과 곱게 빻은 멸치를 넣어 불판에 올려 이글이글 볶아 만든다. 밥에 한 숟갈 얹어 먹으면 없던 밥맛도 되살아난다.
오랜만에 아들이 휴가를 얻어 라우어에 왔다. 며칠 쉬다가 오늘 떠나는 날이었다. 며칠 동안 비가 오락가락하는 바람에 별다른 음식도 먹지 못했다. 그러다 문득, 예전에 복어탕을 주문해 배달시켜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나는 원래 복어탕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데 그날 먹었던 복어탕은 유난히 맛이 좋았다. 수소문 끝에 그 집을 찾아냈다.
점심때 아내와 아들과 함께 그 집을 찾았다. 기장 차성로에 있는 집으로, 기장역에서 시장을 지나 1km쯤 떨어진 곳이었다. 식당에 들어서니 빈자리가 없어 대기표를 받아야 했다. 번호는 24번이었다. 예전 같았으면 다른 곳으로 갔을 텐데, 이날은 기다렸다. 그러고 보니 나도 이제 기다릴 줄 알게 되었으니, 참 많이 변한 것 같다. 덥기도 했지만 참고 기다린 끝에 드디어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역시 생각했던 그 맛이었다.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국물까지 남김없이 비우고 나니 속이 개운했다. 아들에게 맛이 어떠냐고 물으니 아주 좋다고 했다. 혹시 입맛에 맞지 않으면 어쩌나 내심 걱정했는데, 맛있다고 하니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았다. 또 하나의 맛집을 마음에 새겨 두었다. 다음에는 친구들과 함께 한번 와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맛있게 음식을 먹고 있으니 문득 기억 하나가 떠올랐다. 몇 년 전, 지금은 고인이 되신 이 바울로 대주교님과 함께 감포성당을 방문한 적이 있다. 그곳 본당 주임 신부님은 내가 다니던 성당에서 보좌신부로 사목하셨던 분이라 더욱 반가웠다. 성당을 둘러본 뒤 그곳 교우가 운영하는 아래쪽 횟집으로 자리를 옮겼다.
음식이 차려져 나오고 회가 나왔는데, ‘복어회’라고 했다. 처음 먹어보는 회였다. 그 맛을 무엇이라 표현해야 할지 모를 만큼 특별했다. 복어를 회로 먹어도 괜찮은 것인가 싶기도 했다. 맛있게 먹으면서도 혹시 탈이 나지는 않을까 은근히 걱정했지만, 그것은 기우였다. 그날의 복어회 맛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오늘따라 대주교님과 함께 바닷가를 거닐었던 그날의 추억이 아련히 떠오른다. 맛있는 복어탕을 먹으면서 옛 기억이 되살아나니, 그분이 더욱 그리워진다. 옛 고전에서도 운명을 받아들이며 사랑하라고 했고, 인생은 영원하지 않으니 먹고 마시며 즐기라고 했다.
생각해 보면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사람은 겉모습만 변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도 변한다. 음식의 맛도 달라지고, 좋아하는 음식도 달라진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입맛은 변해도, 함께했던 사람과 그때의 추억까지 모두 변하는 것은 아닌가 보다.
복어탕 한 그릇이 오래전의 한 사람을 떠올리게 했듯이, 음식에는 맛만 있는 것이 아니라 세월과 추억도 함께 담겨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