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까지 버린 친일 목사들... 해악이 이렇게나 컸다
김종성별 스토리 •20시간
신앙까지 버린 친일 목사들... 해악이 이렇게나 컸다© 제공: 오마이뉴스
한국 기독교의 분열상은 심각하다. 일례로, 기독교장로회가 있는가 하면 예수교장로회도 있다. 예수교장로회도 하나만 있는 게 아니다. 한국예수교장로회도 있고, 대한예수교장로회도 있다.
대한예수교장로회라고 불리는 교단도 한둘이 아니다. 동일한 명칭으로 불리는 교단이 3백 개를 넘는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그래서 대한예수교장로회라는 이름만 갖고는 어느 교단인지 알 수 없다.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이니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이니 대한예수교장로회(백석)이니 대한예수교장로회(고신)니 하는 식으로 괄호를 병기해야 될 정도다.
중국이 '하나의 중국' 원칙을 주장하며 대만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데서도 나타나듯이, 동일한 명칭이 여럿에 의해 사용될 때는 자기의 정통성을 강조하고 상대방의 합법성을 부인하고 싶어 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대한예수교장로회에서는 자기 교단을 소개할 때도 합동·통합·백석·고신 등을 붙이는 게 상례처럼 되어 있다. '하나의 대한예수교장로회' 원칙에 따라 자신들의 교단이 정통이라고 자부한다면 이렇게 병기하지 않을 것이다. 그만큼 분열이 익숙해져 있는 것이다.
지난 8월 31일 일제청산연구소와 기독교미디어평화포럼이 경기도 하남시 초이화평교회에서 개최한 제3차 월례포럼의 발표자인 양진우 기독교신문사 신학전문기자는 "남북한이 분단된 것도 서러운데, 왜 이렇게 분열됐을까?"라며 "이것은 종교성이라든가 기독성과는 관계가 없다"고 강조했다. 한국 기독교 자체의 문제점 때문에 생긴 현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전통적인 대동정신·두레정신·품앗이 등을 거론하면서 교회 분열은 한국인의 민족성과도 무관하다고 강조했다. 원인은 일제강점기에 있다는 것이다.
일제의 신사참배 강요... 교회 분열의 씨앗이 되다
신앙까지 버린 친일 목사들... 해악이 이렇게나 컸다© 제공: 오마이뉴스
구한말 한국에 들어온 미국 남장로회 및 북장로회, 호주 장로회, 캐나다 장로회는 일제 강점 2년 뒤인 1912년에 조선예수교장로회총회라는 단일 기구로 통합됐다. 이런 통합 상태가 동요하기 시작한 것이 일제강점기 말기다. 일본제국주의가 한국 기독교의 신앙 대상을 하나님에서 일왕(천황)으로 교체하려 한 것이 발단이다.
새로운 신(神)에 적응하도록 만들기 위해 일본이 강요한 대표적인 정책이 신사참배다. 이는 일본 왕실과 그 조상신에 대한 숭배의 강요다. 이를 수용한 교인도 적지 않지만, 위험을 무릅쓰고 저항한 교인들도 상당했다.
이로 인해 한국 교회는 말도 못 할 시련을 겪었다. 양진우 신학전문기자는 "5천 개 교회가 1200개 정도의 교회로 줄어들었다", "잡혀 갔던 교역자만 2천 명 정도였다", "수십 명이 순교를 당했다" 등등의 상황을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