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만납시다 - 리경숙
거의 잠을 이루지 못한 가운데
새벽 1시 30분이 되어 가이드가 깨우러 왔다.
도시락을 부여받고 간단한 준비운동을 마치고
어둠속에 산행을 시작했다.
다행히 날씨가 개어 구름사이로 달빛이 비추었다.
그 넓은 백두초원에서 트래킹하는 이들은 우리 일행뿐이었다.
어둠을 헤치며 산속을 걸어가는 묘미는 해본사람만이 알수 있다.
등산을 시작한지 얼마 안되어 어둠속에 한줄기 폭포가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다.
옥계폭포였다. 그리고 가파른 고개를 하나 넘자 넓은 초원이 나타나며
멀리 일출이 시작되었다.
지리산의 일출은 3대가 덕을 싸아야 볼수 있다는데
백두산의 일출은 5대가 덕을 쌓아야 볼수 있을 정도로
보기가 힘들다 한다.
일출을 보며 기념사진을 찍고 용문봉에 오르니 발아래 천지가
그 위용을 드러 내었다. 감격적인 순간이었다.
모두들 애국가를 부르고 만세삼창을 외쳤다.
그리고 녹명봉을 지나 백운봉 정상에 올라서니 바로 눈앞에 백두산 최고봉
장군봉이 보이고 북한땅이 선명하게 보였다.
백운봉을 내려와 한허계곡에서 점심을 먹고 다시 산행을 시작했는데
마지막 구간인 청석봉에 오르는 길은 정말 험하여서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 들었지만 산행을 완료하기 전에 돌아갈 길은 없었다.
중간지점에 올라 잠시 쉬면서 노래자랑을 했는데 피로를 완전히 싹 날리는 듯하였다.
특히 일행중 제일 연장이신 분이 분위기를 많이 돋구어 모두들 흥겨운 시간이 되었다.
제일 난코스인 청석봉을 지나 마천우를 내려오니 멀리 5호 경계비로 향하는 계단길이
하얗게 보였다.
10시간이 넘는 대장정을 무사히 마치고 산을 내려오니 뜻밖의 복병이 기다리고 있었다.
중국공안이 북파산문에서 도장을 안받고 왔다고 우리를 무작정 기다리게 하였다.
겨우 서파로 내려왔으나 1시간 반이 넘도록 대책없이 기다리다가 우리끼리 그냥
내려오려니까 겨우 버스를 타게 해주었다. 이러한 일들은 중국에서는 비일비재하다고 한다.
종주가 늦어지는 바람에 금강대협곡 관람은 취소하고 버스를 타고
다시 통화로 이동하였다.
통화로 오자 일행중 많은 사람이 배앓이 고통을 호소하였다.
사실 나도 백두산 종주중에 배가 아파서 고생했는데 옆에 있있던 김사장님이
특효약이라며 정로환을 줘서 먹었더니 진정되는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작년 여름 북경을 갔던 딸애가 5일 내내 배앓이를 하며
밥을 못먹었다고 말했던 기억이 난다.
이러한 내용은 여행사측에서 사전에 안내를 해주고 현장에서도 대처법을 알려주면
고통을 덜 겪지 않나 생각된다.
백두산 종주를 마치고 통화에서 일박을 하고
집안의 고구려유적지를 관람한 후
꿈에 그리던 압록강으로 갔다.
압록강가에 도달한 첫느낌은 그저 평범한 강이었다.
압록강은 중국과 북한과의 국경선을 이루지만 강가에는 경비대원
한명 보이지 않고 국경이라는 느낌은 전혀 들지 않았다.
선착장에서 쾌속정을 타고 북한땅까지 근접해 갔다.
집안은 시가지가 깨끗하고 정비가 잘되었지만 강건너 북한땅은 급경사의 산간지대이고
아주 허름한 스레이트 형태의 집몇채만이 보였고 지나 다니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다만 강가에 어린아이 한명이 보이길래 “야 뭐하니”하고 큰소리로
불러 봤지만 대꾸가 없었다.
순간 울컥하는 마음이 치밀어 올랐다.
이 강건너 남쪽으로 조금만 내려가면 아버지가 평생 그리워 하셨던
고향땅이 있건만 더이상 갈 수가 없었다.
압록강 유람을 마치고 강가에 북한에서 운영하는 식당 묘향산으로 들어갔다.
실내는 생각보다는 좁았고 전면 작은 무대위에는 제복을 입은 아리따운 여성들이
합창으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그노래는 내가 이곳에 오기 전에 일부러 배워 가지고 온 노래였는데
이곳 압록강가에서 북한 여성의 목소리로 직접 들으니
감회가 남달랐다.
“꿈과 같이 만났다 우리 헤어져 가도
해와 별이 찬란한 통일의 날 다시 만나자
잘있으라 다시 만나요 잘가시라 다시 만나요
목메어 소리 칩니다. 안녕히 다시 만나요“
노래를 듣는 순간 눈물이 나는 걸 억지로 참았다.
한 여성의 명찰을 보니 나와 성이 같았고 고향을 물으니 평안도라 하였다
북쪽에는 아버지 형제 오남매가 남아 있고 같은 평안도라서
어쩌면 친척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관람을 마치고
한장 찍자고 했더니 흔쾌히 응해줬다.
우리끼리는 이렇게 금방 가까와 지건만
왜 육십년이 되도록 우리는 통일을 이루지 못할까
노랫말처럼 다시 만나자고 악수를 하고 헤어졌지만
답답한 마음을 안고 압록강가를 떠나 졸본성이 있는 환인으로 향했다.
압록강과 아쉬운 이별을 하고
고구려 첫번째 도읍이 잇었던 졸본성으로 향했다.
환인시내를 가로지르는 혼강너머 천연요새 졸본성이 보였다.
혼강은 주몽의 아버지 해모수가 최후를 마친 곳이라 한다.
중국에서는 오녀산성이라고 이름을 바꾸고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하려 한다고 한다.
해발 800m에 달하는 졸본성에 오르고 보니 멀리
그림같은 풍경이 펼쳐진다.
심양은 끝없이 넓은 들이 펼쳐지지만
북한과 국경을 가까이 하고 있는 남만주일대는 붉은 집만 제외하면
우리나라 충청도나 강원도를 달리는 듯하다.
환인에서 마지막 밤을 맞이했건만 모두들 피곤해서인지
그냥자려 한다.
나는 예쁜이 가이드 용매와 함께 인근 가게에서
맥주 5병을 사서 숙소로 왔다.
그리고 그동안 혼자 온 나에게 정말 따뜻하게 대해 주셨던
안성의 낙농인 부부들과 함께 중국에서의 마지막 밤을 보냈다.
사무실에서만 근무하는 나와 달리 그분들은 정말 몸과 마음이
건강하신 분들이며 무엇보다도 남을 배려할 줄 알고
부부애가 깊은 분들이다.
왜 혼자 왔냐고 묻기에 아내는 산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하였더니
그럴수록 자꾸 같이 다녀야 된다 하시고
나이들수록 부부밖에 없다고 하셨다.
마지막 날은 심양에 가서 평양관에서 점심을 먹고
청태종의 묘를 구경하고 귀국하는 코스이다.
심양은 요령성 수도이며 인구 700만이며 나날이 발전하는 도시이고
누르하치의 아들 청태종이 최초로 도읍지로 잡은 곳이기도 하다.
심양 중심가에 자리잡은 북한식당 평양관에 들어서니
압록강가 묘향산 식당과 분위기가 다르다.
복무원들이 더 많으며 용모도 뛰어난 듯 하다.
그중 우리 테이블을 맡은 김양은 정말 예쁘다.
북한의 미녀들은 남한과 달리 얼굴이 동그랗고 복스럽고
애교가 많고 목소리는 은쟁반에 옥구슬 굴러간다는 표현이 딱 맞다.
우리는 북녀들의 도움을 받으며 오랜만에 포식을 하였고
북한 특산 물개주도 여러병을 비워 취기가 올랐다.
공연이 끝나자 대장님이 다시만납시다를 앵콜하여 들었는데
정말 가슴이 뭉클하여 큰소리라 따라 부르다가
눈물이 나오려 해 중단했다.
공연이 끝나고 여성 복무원들과 기념사진을 찍었는데
그중에서도 딱 눈에 뛰는 아가씨(북한에선 아가씨라 부르면 실례라 함)
가 있었다. 등반대장님이 수양딸로 삼았다는데
다른 아가씨와 달리 희고 갸름한 얼굴에 상까풀 없는 눈
을 하였다. 전형적인 북방형 미인의 얼굴을 한 은심이와
기념촬영을 하고 평양관을 나와 청태종묘가 있는 북릉으로 갔지만
청태종 홍타이가 병자호란을 일으켜 우리 민족에게 씻을수 없는
상처를 주었기에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리고 심양공항에서 40분 연착을 한 남방항공을 타고
인천에 도착하니 왜 이리 더울까.
집에 돌아오니 밤 11시 다시 매일매일 스트레스가 가중되는 일상속으로 돌아왔다.
마치 어렸을때 여행후유증을 알았듯이 나이 50이 되어서도 현실에 적응하기가
쉽지 않은 듯 하다.
하지만 백두산에서의 일출과 종주경험은 내인생에 깊은
감동으로 영원히 남을 것이다.
긴글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첫댓글 좋은구경합니다....ㅎ
감사합니다. 즐거운 주말되시기 바랍니다!
기정수님~
아이고 부럽습니다
천지 구경도 다 하시고
졸본성도 구경 하시고
난 죽었다 깨도 못 갑니다
글치만 정수님 덕에 구경 잘 했네요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때만 해도 젊어서 겁없이 중국쪽 백두산종주를 했는데 여자분들과 아이들은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졸본성 일대 사진도 많았는데 찾지 못해서 장수왕릉사진만 추가했습니다. 즐거운 주말 되시기 바랍니다!
하이고 오대가 덕을 쌓아여
볼 수 있는 그 일출을 보셨으니
축복이네요
그렇게 일출 보기가 힘든 곳인가
봅니다 정말 이 고단한 산행도
취미가 아니고는 못할 것 같아요
잘 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가이드말이 오대덕을 쌓아야백두산 일출을 볼수 있다했는데 요행이 일출을 봤습니다. 그덕인지 아직까지 건강히 잘지내고 있습니다^^ 장백폭포와 천지관광도 한참을 걸어야 하기에 일반인들이 가실려면 미리 체력단련을 해야 될것 같습니다. 즐거운 주말되시기 바랍니다!
10여년전 백두산종주를 다시 추억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님과는 역방향으로 10시간 종주를 했었지요~~
백두산,백운봉, 이도백하는
평생 못잊을 이름들입니다~~
반갑습니다. 2006년에 다녀왔는데 그감동은 평생 잊지 못할것 같습니다^^ 북한쪽 종주를 마저해야 하는데 그날이 올수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입고계신 우비가 제 것과 거의 같습니다
오래 전에 지하철에서 산 것입니다
비싼 우비보다 가볍고 간편해서 자주 입었습니다
그래도 비바람은 없었던 듯해서 다행입니다
모자가 벗겨져 날라가고 난리도 아니었습니다
무척 추웠습니다. 한여름이었는데도...
산행기 잘 읽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저도 저 우비를 사서 백두산 일본북알프스 쓰구냥산 등 입고 다녔습니다. 싼가격인데도 찢어지지 않고 보온효과도 좋았습니다. 2600m 내외의 고봉들이라 한여름에도 많이 추웠습니다. 즐거운 주말되시기 바랍니다!
이게 바로 사람사는 맛. 아니겠습니까? 감동적으로 잘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등산을 좋아해서 여기저기 참 많이도 돌아다녔습니다. 지금은 아내와 둘이 자동차 여행만 다닙니다^^ 즐거운 주말되시기 바랍니다!
잘읽고 갑니다.
그 눈물이란게 무언지
잠시 생각에 잠겨봤네요.
부친의 태생지가 그쪽이기에
더 했겠어요.
감사합니다. 아버지 생전에 압록강에서 북쪽에 있는 가족을 만나게 해드린다고 했었는데 병환으로 돌아가시는 바람에 이루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압록강가를 꼭 가보고 싶었습니다. 즐거운 휴일 되시기 바랍니다!
와~~~대단해요.
저도 지금 글을 읽으면서 사진을 보면서 노래를 들으면서
애국자가 되고 있습니다.
기정수님의 게시글을 컴퓨터 화면으로 보아야
제 맛이랍니다.
모두 컴 화면으로 오소서
감사합니다. 북한가요중에 다시만납시다를 제일 좋아합니다. 제가 만난 북한여성들 개인개인은 모두 착하고 좋은데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하여 조종당하는거 같았습니다^^ 즐거운 주말되시기 바랍니다!
백두산 일출, 천지와 압록강 모습 보여주셔 감사합니다.
백두산종주! 가장 힘들고 값진 산행 후기를 잘 쓰셔 글로 남아있으니 소중한 자산입니다.
그 추억은 영원히 잊을 수 없으시겠죠.
역사와 현실을 곁들인 귀한 후기 숙독하였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저는 10여년전에 백두산에 올라 천지를 감상하면서 환호하였던 추억이 있습니다.
한사코 천지곁으로 걸어가 손을 담그었던 생각이 납니다.
통일을 생각하면 서유석 '홀로 아리랑' 을 듣곤 하지요.
감사합니다. 천지에 가셔서 깊은 감동을 느끼셨군요. 저도 한돌 작곡의 홀로아리랑을 좋아합니다. 그도 흥남철수때 내려온 실향민 2세로 거제도에서 태어났고 터, 개똥벌레,유리벽 등 좋은 노래를 많이 작곡했습니다. 북한에서는 홀로아리랑을 구전가요로 알고 많이들 좋아한다 합니다^^ 즐거운 주말 되시기 바랍니다!
박두산기행과 동북산성 방문 못가봐서요
대신 한여름 묘향산에서 하루자고 백두산 자락 계곡에서 보위부 동생들과 개고기 파튀를 열며 백두산 계곡 아래서 여름휴가를 ㅎㅎ
반갑습니다. 저는 북한땅에 한발자국도 못들어갔는데 지존님은 부친의고향 황해도도 가봤고 최고의 명산 묘향산도 가보셨군요^^ 북쪽 백두산은 바라만 봤는데 갈수 있는 날을 고대합니다
사진이나마 백두산 천지를 보고 압록강을 보고 졸본성도 듣고
아! 감격스러운 백두산 기행과 동북산성도...
올려주신글과 사진을 감격스런 마음으로 바라봅니다.
감사합니다. 백두산 천지에 가보신 분들은 모두 감격에 겨워 하십니다. 북쪽만 열리면 우리민족은 만주와 시베리아를 거쳐 대륙으로 뻗어 갈수 있는데 분단이 너무 깁니다. 빨리 갈수 있는 날을 기다려봅니다
가슴 찡한 글과 음악, 그리고 좋은 사진 잘 보고 갑니다! ^^
단순한 기행문을 넘어선 플러스 알파가 있는 글,
그것이 기정수님의 글입니다. 엄지 척!
우리는 하나인데, 통일은 요원할지라도 최소한 평화만큼은 유지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김원중의 직녀에게, 라는 노래 아시나요?
분단된 조국 현실을 노래한 곡입니다.
잠시만요, 유튜브 가서 업어 올게요. ^^
https://youtu.be/DQAU8t-HjK4
PLAY
반갑습니다. 사실 제희망이 통일부에 가서 통일의 일익을 담당하고 싶었는데 꿈을 이루지 못하고 평범한 직장생활을 했습니다^^ 올려주신 김원중의 직녀에게는 몇번 들어보긴 했는데 그런 깊은 뜻이 있는줄 몰랐네요. 조회해보니 문병란시인의 분단의 아픔을 쓴시를 노래화 했더군요. 좋은 음악 소개해주셔서 감사드리고 즐거운 주말되시기 바랍니다!
기정수님의 기행문을 보며 저도 추억에 잠기네요.
제가 동남아에 있을때 한국에서 손님이 오면
무조건 북한식당에 초대했습다.
아리따운 아가씨들이 서빙후 연주하면 한국인들 환호 하며 거액의 팁을 내놓습니다.
그런데 북한 음식맛의 비결은 다시다입니다.
한국마트하는 지인이 살짝 알려 주었답니다.ㅎㅎ
북한식당에 또 방문할 기회가 되신다면 단고기(개고기)잡숴보세요.양도 많고 맛있다고 하네요.
아, 북한식당직원 대거 탈출한곳이 제가 자주 갔던곳이어서 유튜브를 보니 얼굴이 익더라구요.
반갑습니다 저도 중국과 네팔갔을때 북한식당을 가본적이 있습니다. 여종업원탈출사건이후 많이 문닫았고 한국사람들도 이젠 안간다고 합니다. 저는 북한식당에서 단고기는 안먹어봤는데 기회가 오면 한번 주문해보겠습니다. 즐거운 주말되시기 바랍니다!
기정수닝 직접 경험한 글이라
막힘없이 제가 현장을 다녀온듯
너무 정성스럽게 잘 쓰셨네요.
멋진 풍경들 잘 감상하고
꾀꼬리 목소리도 가슴 찡
중국에 동생이 사업상 살고있을때
중국 방문 압록강에서
이북 군인들 우리가 지닌 소품들
원해서 돈과함께 주고온
기억들이 다시 살아나네요.
기행문 너무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산에 갔다오면 항상 제블로그에 산행기와 사진을 남겨둡니다. 시간날때 다시 꺼내보면 그때는 그랬었지 흐믓한 미소를 짓습니다. 압록강 검문소에서 이북군인을 직접 만나셨군요. 같은 동포인데도 그들을 보면 섬특한 기분이 드는건 어쩔수 없습니다. 장벽이 걷히는 날이 언제 올지 기약이 없는것 같네요. 즐거운 주말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