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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존 Layer 02 정여름
코코볼 연재번호 009
Layer 02 정여름 문을 쾅 닫고 바퀴의자를 굴렸다. 나는 새삼스럽게 바퀴의자를 훑어보았다. 할아버지가 거래하시는 상단에 부탁해서 특별히 얻어온 바퀴의자. 몸체가 나무가 아닌 금속으로 되어 있는데 그다지 무겁지는 않다. 바퀴는 나무틀에 가죽으로 테를 만들어 둘렀는데 신기하게도 가죽에 흙도 달라붙지 않고 물도 잘 묻지 않는다. 물론 나무틀에도 잘 달라붙지 않는다. 의자 뒤에는 할아버지가 밀어주실 수 있도록 손잡이가 달려있다. 무척 편리한 구조로 되어 있다. 특히 나 혼자서 집안을 굴러다니거나 용변을 볼 때나, 장작을 가지러 밖에 나갔다 오거나 집근처에서 할아버지 심부름을 하거나 할 수 있게 되어서 무척 편리해졌다. 그러고보면 이 바퀴의자를 가져오신 계기가 된 사건은……. 지금 다시 생각해 봐도 무척 부끄럽다. 아니 창피하다. 아아 기억하고 싶지 않다. 그 날 일만큼은 잊어버리자. 그러고보니 기껏 잊고 있었는데 다시 생각해 낼 필요는 없겠지. 암암. 아무튼 토마토가 잔뜩 든 샌드위치를 가져다 드려야 한다. 그러고보면 보존마법이라는 건 참 신기한 것 같다. 아무렇게나 두어도 토마토나 감자나 달걀이나 양상추 같은게 전혀 상하지 않으니 말이다. 덕분에 이런 추운 계절에도 얼마든지 채소를 먹을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보존마법은 간단한 마법이라서 우리 마을에 있는 창고 아저씨도 크리아에 있는 마법사 조합의 마법사에게 배웠다고 한다. 물론 창고 아저씨는 마법사는 아니다. 덕분에 보존마법 하나 배우는데 500세민이나 주고 일년이나 걸렸다고 한다. 그렇지만 아무런 기초도 없는 사람이 배울 수 있을 정도라니. 마법치고는 무척 간단한 마법일 것이다. 잘은 모르겠지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나는 마을쪽으로 바퀴의자를 굴렸다. 집에서 마을까지는 완만한 경사로였다. 내려갈 때는 편하긴 한데 올라올 때는 솔직히 좀 버겁다. 다행히도 그렇게 심한 경사로나 언덕은 아니라서 조금 힘을 더 주면 쉽게 올라갈 수 있다. 일단 마을을 통과해서 숲쪽으로 10분 정도 들어가면 아랫마을에서 도기를 받아다가 굽는 가마가 있다. 빚는 것은 아랫마을 장인들이 하고 그것을 우리 마을에서 사다가 구워서 크리아에 있는 도기상점에 납품하는 것이다. 사실 생산량을 도기상에서 정해주기 때문에 사고 판다는 느낌은 별로 안 들지만 말이다. 가마는 한번 할아버지와 함께 가본일이 있다. 크리아에서 나오는 도기를 전부 이 가마에서 굽는다고 해서 어마어마한 가마와 수백명의 인부가 있고 한번에 마차 수십대 분량을 구워댈 줄 알았는데 막상 가보니 마을 어른 몇 명하고 달구지 몇 대가 있고 가마는 집 두세 채 정도 크기였다. 잘은 모르겠지만 안쪽에 벽돌 칸막이로 나뉘어 있다고 한다. 내가 보기에는 그냥 붉으스름한 흙더미처럼 보이지만 여기서 흙이 도기로 변신한다고 했다. 음 그러고보니 그 때 할아버지가 해주신 말이 지금도 기억이 난다. ‘가끔 이가 나가거나 좀 어그러진 도기가 있단다. 사람들은 그걸 버리지. 그렇지만……’ 아야. 머리가 아찔했다. 누군가 머리에 돌을 던졌다. 아프다. 나는 화가나서 고개를 획 돌려서 날아온 방향을 쏘아보았다. “저기봐! 마녀다!” 아이들 여러명이 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중에 금발에 초록눈을 가진 남자애 하나가 내게 돌을 던진 모양이었다. 그런데 그 녀석이 나를 손가락질하면서 무언가 아이들에게 소리를 쳤다. 저주니 병신이니 마을에서 쫓아내야 한다느니. 앉아서 놀던 아이들과 뛰어다니면서 놀던 아이들이 그 이야기를 듣더니 갑자기 내 쪽으로 돌을 던지기 시작했다. “마을에서 나가라! 나가라!” “나가라!” “나가버려! 죽어버려!” 돌이 날아오기 시작했다. 나는 본능적으로 바퀴의자를 돌려서 등받이 뒤로 숨었다. 금속으로 된 등판은 돌이 부딪혀도 끄덕없었다. 게다가 안쪽에 붙어있는 면 등받이 덕분에 충격이 전해지지 않았다. 거기가 꽤 있어서 잘 맞지는 않았지만 아무튼 여기는 빨리 벗어나서 할아버지가 계신 곳으로 가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어른들은 할아버지를 생각해서 나에게 해코지를 하지 않지만, 아이들은 어떤지 모른다. 무서웠다. 나는 될 수 있는 한 빨리 피하기 시작했다. 마을에서 나가라고 떠들어 대는 녀석들이니까 도망치면 괜찮겠지. 하지만 그것은 내 오산이었다. “아! 저 이상한 의자 때문에 돌이 안 맞아!” “도망친다!” “아! 가마로 가는 거 아냐?” “아빠한테 또 저주를 걸러 가나봐!” “안돼! 잡아라!” 아이들은 자기들끼리 뭔가 결심한듯 내게 뛰어와 바퀴의자를 둘러쌌다. 나는 당혹스러웠다. 나보다 한두 살 정도 나이가 많아 보이는 녀석들이 두세 명 내 앞을 막아섰다. 그리고 갑자기 뒤에서 다른 남자애가 바퀴의자를 뒤집었다. 나는 땅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바닥은 아직 얼어붙어 있었다. 나는 뜻밖의 상황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머리를 부딪혔다. 아팠다. 도시락통을 놓쳤다. 바닥에 토마토 샌드위치가 흩어졌다. 흙위에 양상추, 토마토, 햄, 달걀이 흩어진다. 어쩐지 현실감이 없었다. 입속에서 찝찔한 맛이 느껴졌다. “야 이거봐! 다리가 저렇게 짧아!” “괴물 아니야?” “저거봐! 저주하는 상잔가봐!” 아이들은 잠시 널브러진 나를 보고 주춤하는 듯 했다. 순간 멍해졌던 머리가 다시 돌기 시작했다. 이틈에 어떻게는 피해야 한다. 내 머릿속에서 경보가 울렸다. 여기에 더 이상 있다가는 나는 죽는다. 도망쳐야해. 무서워. 할아버지. 나는 필사적으로 기었다. 어떻게든 바퀴의자에 다시 타서 여길 피해야 한다. 바퀴의자는 뒤집어져있지 않았다. 아마도 뒤에서 바퀴의자를 붙잡았던 녀석은 갑자기 바퀴의자를 기울여서 나만 떨어트린 모양이었다. 바로 등 뒤에 바퀴의자가 있었다. 나는 어떻게든 몸을 일으켜서 바퀴의자에 매달렸다. 그 순간 발길질이 날아왔다. “도망치게 냅둘줄 알고! 너 때문에 마을이 저주받았어!” “맞아! 이 괴물!” “나 들은 적이 있어! 마녀는 자기 몸을 저주 재료로 쓴대. 손이나 발 같은 거 잘라다가 다른 사람 저주하고 나중에 저주 받은 사람 손이랑 발을 잘라다가 붙인대!” 아이들의 발에 맞아 나는 다시 언땅에 쳐박혔다. 머리가 아찔했다. 나는 배를 보이지 않게 어떻게든 웅크렸다. 머리랑 배만 맞지 않으면 죽지는 않는다. 온몸을 거북이처럼 웅크린다. 아이들은 한참 나를 짓밟았다. 그러다 내가 움직이지 않고 신음소리 한번 내지 않는 것을 보고 자기들끼리 뭐라고 떠들기 시작했다. 왱왱거리는 소리 이외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눈앞이 흐릿했다. 갑자기 아이들은 내 팔을 잡아당겼다. 들어올려진 팔을 무심코 쳐다본 얼굴에 발길질이 날아왔다. 겨드랑이 사이로 나무막대가 날아왔다. 아이들은 겉옷위로 때리는 게 효과가 덜하다는 걸 깨달았는지 내 겉옷을 벗겨버렸다. 도망쳐야 한다. 나는 기어서 피하려고 했다. 어떻게는 할아버지께만 가면…가면… “죽어라 마녀! 죽어라!” 얇은 내의 위로 발길질과 몽둥이가 날아온다. 아프다. 한 번 두 번 세 번 맞을 때마다 마치 머리 위로 벼락이 내려치는 것 같다. 아파 아파 아파 아파 아파 아파 아파 아파 아파 아파 아파 아파 아파 아파 아파 아파 아파 아파 아파 아파 아파 아파 아파 아파!! 싫어. 이젠 싫어! 그만해! 그만 둬! 아파! 나는……어라? 그런데 나는 왜 이런 꼴을 당하고 있는 거지? 왜 밥을 못 먹는 거지? 할아버지 점심 도시락을 전해드려야 하는데? 아! 토마토가 싫어서 그런 걸까? 눈앞에는 빨간 토마토 즙이 터져나오는 게 보인다. 어라? 언제 점심을 먹었더라? 좀 급하게 먹었나? 왜 다시 뱉고 있지? 어라? 가슴이 답답하다. 아, 춥다. 아직 겨울이었지? 어라? 아하하하? 아? 바람이 피부에 직접 닿는 게 느껴졌다. 발 뒷굼치가 아팠다. 발가락도 아팠다. 발등도 아팠다. 종아리도 아리다. 아프다. 점심 도시락을 전해드려야 하는데……. 귓가에 왱왱거리는 소리는 윙윙소리가 나면서 점점 작아진다. 조용해 지는 것 같다. 눈앞이 번쩍 했다. 바퀴의자 타고 할아버지께…… “너희들 그만두지 못해!!” 왱왱거리는 소리를 뚫고 누군가의 일갈이 들렸다. 할아버지 오신 건가? 점심시간인가? 나는 안심했다. 점심을 제대로 드실 수 있겠구나. 아하하. 그리고 어쩐지 졸렸다. 춥긴 하지만 졸리면 잠을 자야지. 나는 착한 아이니까. 눈앞에 있는 사람은 바닥에 처박힌 내 몸뚱아리를 끌어안았다. 나는 그녀의 품속에서 잠이 들었다.
이번회 정보
Layer 02 정여름 연재번호 009 |
글틀 5.0 |
첫댓글 마녀라고 해서 여자인줄 알았는데, 남자였다는... 전체적으로 계속 짧은 문장들이 나열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감정을 고조시킬때는 좋을 것 같지만, 아닐 경우는 단순해지지 않을까...(허접 발언)
아니 잠깐.. 누가 남자에요! 버럭!
예고문에... 사랑에 커져간다고 적어놓으셔셔... 순간 남자인줄 알았어요. 죄송...
오, 박진감 넘치는 격투씬입니다. 아니, 추격씬인가. 재미있게 읽고 있습니다.
오, "저기봐! 마녀다!" “마을에서 나가라! 나가라!” “나가라!” “나가버려! 죽어버려!”
“야 이거봐! 다리가 저렇게 짧아!” “괴물 아니야?” “저거봐! 저주하는 상잔가봐!"
“도망치게 냅둘줄 알고! 너 때문에 마을이 저주받았어!” “맞아! 이 괴물!” “나 들은 적이 있어! 마녀는 자기 몸을 저주 재료로 쓴대. 손이나 발 같은 거 잘라다가 다른 사람 저주하고 나중에 저주 받은 사람 손이랑 발을 잘라다가 붙인대!”
“죽어라 마녀! 죽어라!” 마녀아찌한테 맞아 죽겠다야.
이 사람들이 아주-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