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습관화되는 일을 경계하자 ♣
벌써 2월이 시작되었습니다.
나이가 많아지면은 시간이 더 빨리 간다고들 하는데 정말로 그런 것 같습니다.
그러나 언제나 자기 시간이라는 것은 현재일 뿐 내일은 아직 자기 시간이
아닙니다.
내일은 하나님께서 주서여만 자기 시간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일은
하나님의 시간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현재 시간을 충실하도록 살며
그렇게 사용하는 그런 사람을 기뻐하십니다. 그러므로 지금 각자에게 주신 일
그 일에 충실하기를 바라시는 것이며 그렇게 할 때 하늘의 복이 주어
지며 또 현재에 충실한 사람 마니 꿈을 키우며 그 꿈을 향하여 달려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우리에게 가장 무서운 적은 바로 창조적이기 보다 무엇이나 습관화된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목사라는 자리는 대접하기보다는 대접을 받는 편이 더 많은 자리입니다.
그러다 보니 자신도 모르게 받는 일에 익숙하고 주는 일에는 둔한 편입니다.
그래서 오랜만에 찾아오는 후배나 제자나 심지어 자식들까지도 빈손으로
오는 경우 겉으로는 반갑게 맞이한 것 같은데 속에서는 안 좋은 생각을
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이는 나누어줌으로 오는 기쁨을 잘 모르기도 하지만 받는 일에만 익숙한
습관에 젖어버린 속마음이 잘못 길들여져서 그렇습니다.
이년 전에 어느 세미나에 참석을 했더니만 50이 넘은 여전도사 한 분이
저를 보고 반갑게 인사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전도사는 저와 같은 신학교
동문이었습니다.
지금까지 결혼도 하지 않고 가장 목회하기 힘든 곳에서 사역을 하시는 분이며,
신학교 졸업하기까지 수도 없는 금식과 철야로 기도하며 어렵게(특히
경제적인 문제로) 졸업을 하셨던 분인데 좋은 목회 지를 다 뒤로하고
하나님의 응답이라며 어려운 목회의 길을 가는 전도사였습니다.
"목사님 이 세미나에 매주일 오십니까?"하고 묻기에 그렇다고 대답하고
헤어졌는데, 그 다음 주 세미나에 참석했더니만 세미나가 끝나고 쫓아와서
무엇인지 포장된 선물하나를 주는 것이었습니다.
"무슨 일인데 이걸 절 주는가?"하고 물었더니만 그 대답은 하지 않고
전도사는 지금까지 한 번 저를 위해서 기도하지 아니한 날이 없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마지막 학기 저 때문에 졸업하게 된 일을 잊지 않고 있다며
특유의 웃음을 웃는 것이었습니다.
주는 것 별로 큰 것도 아니었는데 저는 그 전도사의 20년도 넘게 저를 위해서
드린 중보 기도를 받고 있었구나 싶어서 한편으로는 놀랬고, 한편으로는
부끄럽고 감사했습니다.
그래서 저도 그 전도사를 위한 기도를 다시 시작하기로 했던 일이 있었습니다.
받는 것 보다 주는 것이 이렇게 큰 일인데 받는 일에만 익숙한 자신의
습관화된 사실이 새삼 부끄러웠던 일이 있었습니다.
정말로 습관화되는 일은 경계하고 또 경계해야 할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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