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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주님의 이끄심을 바라며 원문보기 글쓴이: 주바라기
박은숙 권사님 간증 (2015년 7월 21일)_임마누엘교회에서
파란글씨는 지난번 7.19일 광주에서 하셨던 내용이 겹치는 부분입니다. 참고하셔서 보셔요.
기도:
기쁨으로 살다가 갈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시옵소서. 오늘도 하나님의 영광이 큰 아버지 놀라운 빛만 나타나게 하시고 친히 주님은 정말 이 강단에 서서 아버지 저와 함께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님 정말 임마누엘 교회를 세우시고 임마누엘 교회를 통하여서 더 알곡들을 모아주시고 또 주님의 아름다운 신부로 또 단장시켜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감사하며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영으로)로 기도 올려 드립니다. 아멘.
내용:
제가요. 말씀을 이거를 쓰는데 다섯 장을 쓰고 나니까 꾀가 나요. 그래서 좀 안 썼으면 싶어서 말씀을 드렸더니 더 쓰라 그랬어요. 그래서 임마누엘 교회를 주님이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올 때마다 이렇게 말씀을 길게 많이 주세요. 그래서 신부들을 이곳에 많이 모아주시는 그 주님의 뜻 깊은 일이 있는 줄을 믿습니다.
욥은 에덴이 되기까지 사단에게 부쳐져 말할 수 없는 시험을 받았다. 재산을 다 잃은 것도 힘든 일이지만 열 자녀를 한날에 다 잃은 그 슬픔과 아픔은 견딜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도 욥은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을 찬양하였다.
그런 욥의 찬양이 메시아 복이 된 것이다. 가죽이 썩어진 후에 이 육체를 벗어나서 내가 하나님을 뵈오리라. 내 마음이 조급하구나. 육체야 육체야 빨리 썩으라고 하는 찬양이었다(욥기서 19장 26절).
한 가정에 천국이 완성되는 것은 우주적인 대 변혁이다. 물이 변하여 포도주에 이른 것처럼 가정의 사랑이 이루어져야 한다. 땅에서 메이면 하늘에서 메이는 것처럼 휴거자들은 이 땅에서 에덴을 이루어야 한다. 땅에서 에덴이 안 된 자를 하늘 에덴으로 옮길 수는 없는 것이다.
에덴이라는 함수는 간단하다. 하나님 아버지가 되시고 성령님이 어머니가 되시는 하늘 가정이 영적으로 이루어진 곳이 에덴이다. 염려가 없고 다침이 없고 낙심이나 원망이 없는 곳이다. 내 것 너의 것이 없고 너의 것이 내 것이 없는 곳이다. 이러한 가정이 이 땅에서 아름다운 에덴의 가정이고 가족인 것이다. 하늘의 평안으로 채워지는 에덴 가정인 것이다.
2015년 광복절은 대한민국이 해방된 지 이방인의 70년을 맞이하는 아주 뜻 깊은 날이다. 이방인의 한 이레 70년을 맞는 것이다.
다니엘이 말한 이방인의 한 이레이다. 유대인의 한 이레로 넘어가는 때이기도 하다. 전 삼년 반 끝과 7년 대 환란 시작의 기로에 서 있는 것이다.
루즈벨트 대통령의 결단으로 원자탄을 일본에 떨어뜨려서 악한 짐승을 결박하여 무저갱에 던졌으니 땅에서 나온 짐승 히틀러와 일본이다. 그들 짐승들이 갇힌 시간은 70년이다. 2014년에서 2015년이 70년이다. 벌써 일본이 짐승 국이 되고자 꿈틀거린다.
아베 속에 사단이 들어갔다. 그들은 히틀러를 찬양하다가 개망신을 당하고 있다. 광복절은 휴거와 무관하지 않다. 광복절과 추석은 휴거를 위해 만든 비밀이다. 그러므로 지나버린 역사로만 생각하면 크게 후회할 것이다. 광복 이후 70년 동안 부자들과 교회와 대기업들이 왕 노릇 하여 왔다. 큰 교회 목사들의 연봉이 교회마다 경쟁하면서 올려주어 백억 짜리가 수두룩하다.
10억 짜리는 명함도 못 내미는 실정이다. 이런 것을 삯꾼이라고 한다. 그들에게 구원이란 이름이 맞는 말이라고 한다면 구원은 수치가 되지 않겠느냐?
구원은 세상 것을 다 누리고 얻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들이 누린 영광도 끝이 났고 끝나는 시간이다. 그들은 마지막까지 죄를 지고 있지만 휴거나 재림이란 단어만 들어도 알러지 반응이 한라산처럼 솟구친다.
92년 10월 28일 나팔절로부터 23년이다. 2015년은 놀라운 해이다. 임박한 종말의 때가 왔어도 깨어나지 않고 있다. 얼마나 그들의 마음이 철 옹벽이 되었길래 콘크리트 벽보다 더 강하게 굳어 있는 것이다. 휴거가 일어나면 땅을 치고 통곡할 것이다. 교회당은 불타고 그들의 금같이 아끼던 재물은 휴지조각이 된다. 예수님이 나사렛 목공소를 떠나 복음을 전할 때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들은 하류 계층이다 갈릴리 사람들은 인정받지 못하고 하류가 된 지역이다.
예수님의 열두 제자 중 상당수가 갈릴리 출신이고 가룟 유다와 문둥이 출신 시몬 등만 갈릴리 출신이 아니다. 빌립이나 나다나엘 요한 안드레 베드로 모두 갈릴리 출신이다. 이들 갈릴리 출신은 예루살렘 출신 유대인에 비하면 나중 된 자들이다. 더 나아가 세리들과 창기들이 예수님을 먼저 영접했으니 예수님을 따르는 대부분 사람들이 사회적으로 서민층에 속한다.
상류층이 예수님을 고발하고 로마에 넘겨주어 십자가 매달아 죽였다. 유대 상류층의 불신은 민족의 재앙을 초래했으니 히틀러에게 육백만 명씩이나 학살을 당하면서도 예수 죽인 조상의 죄 값인 줄 깨닫지 못한다는 것이다. 아직도 이스라엘 정부는 예수를 이단시하고 있다. 예수를 영접한 유대인들은 현재 몇 프로에 불과하다. 모세 오경에만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재림 복음도 마찬가지로 나중 된 자들의 복음이다. 가난한 자, 병든 자, 빚더미에 앉아서 우는 자, 외로운 자, 갇힌 자 등이다. 교인들이 백 명만 되어도 재림 복음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부자들에게는 휴거 소식이 미친 소리로 들리는 것이다. 그래서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바늘구멍이다. 그들의 부요는 7년 대 환란의 불이 그들의 금과 은을 불태운다. 하나님 보다 더 사랑하는 그들의 은과 금이 환란의 날에 불에 탈 때 그들은 울부짖으며 통곡한다.
휴거는 심령이 가난한 자들만이 귀가 열리고 눈이 열리는 것이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돌들로도 찬양을 하게 하신다.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 듣지 못하는데 어떻게 휴거 길을 가겠느냐. 전하지 않는데 누가 듣겠느냐 보내지 않으면 누가 가겠느냐 마음을 다 비우고 인간의 생각을 버리면 영원한 복음을 들을 수 있다. 이것이 휴거 복음이다.
바울은 로마서 11장 25절에서 26절에 유대인과 이방인의 구원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유대인들이 대망하는 메시아가 왔건만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고 매달아 죽여 버렸다. 유대인들이 기대하는 메시아상은 모세가 애굽을 굴복시키고 이스라엘을 노역에서 구원한 것처럼 로마 학정에서 구원해 줄 메시아를 기다렸던 것이다. 예수 죽이는 일에 손을 떼겠다는 빌라도에게 그들이 하는 말인즉 예수 죽인 피 값은 우리와 우리 후손들이 받을 터이니 죽이라고 소리쳤다. 예수님을 죽이고 38년 만에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는 역사 속에 사라졌다. 예루살렘은 돌 위에 돌 하나도 남기지 않고 다 훼파되었다. 주후 70년 예루살렘 성이 불탈 때 백만 명이 죽고 십만 명은 노예로 팔려갔다. 이스라엘의 종말은 그렇게 끝이 났다. 이것은 예수님이 열매 없는 무화과 열매를 저주한 것으로 마태복음 21장 20절에서 예고하신 것이다.
예수님의 저주로 말라죽은 무화과나무는 주후 70년에 망한 이스라엘을 말한다. 마태복음 24장 32절에 무화과나무 소생 비유는 다시 역사위에 등장하는 이스라엘 정부를 예언한 것이다.
세계 1차 대전 때, 영국을 도와 화약을 만들어준 이스라엘 과학자 때문에 독일을 이긴 고마움으로 영국은 팔레스타인을 관리 감독하는 통치 권한을 가지고 1919년부터 흩어져 사는 이스라엘인들에게 조상의 땅으로 돌아가 살 수 있는 기회를 주어 비공식적으로 영국 국민 자격으로 팔레스타인 땅에 들어가 농사를 지으며 농장을 운영하게 되어 독립이 되는 1948년 까지 가지가 연해지는 시간이었다가 1948년 5월 14일 미국의 적극적인 지지로 아랍나라들의 방해를 이기고 유엔에서 압도적인 승리를 얻어 독립을 한 것이다.
바울이 말한 이방인의 때는 복음이 로마로 영국으로 미국으로 그리고 땅 끝인 한국에 와서 한국에서, 한국에서 재림 복음이 다시 온 세계로 전해지기 까지였다. 이제는 이방인의 시간이 꽉 찼다.
예수 죽인 유대인들이 회개하고 돌아올 시간이다.
이방인들은 2000년 동안 교회를 세워 재림 신앙을 존중하다가 1992년 10월 28일이라는 나팔절이 오자 옛날 유대인들이 예수 죽이듯 재림 복음을 외치는 종들을 처참히 짓밟았다. 휴거 시간이 임박해 오고 있어도 휴거를 외치는 종들을 물고 뜯으며 배도를 하고 있다. 유대인들은 초림 예수님을 죽였고 이방인들로 구성된 교회는 재림 신앙자들을 죽이고 있다. 지금도 한국 교회는 휴거 파들을 미친 사람 취급하고 있다. 92년 10월 28일에 동원된 이방인의 유대인들의 휴거 파에 시간이 찼고, 92년 10월 28일 모르는 이방인들의 시간도 다 찼다는 것이다.
교단은 사단의 위가 되었다. 계시록 2장 13절, 계시록 3장 9절, 교황청도 개신교 교단도 불교 사원과 법황청과 같은 굴이다. 거기에 앉은 자는 하나님은 절대 아니다. 한국 속담에 우물가에 여인들에게 누가 지나갔냐고 하면 사람과 소와 중이 지나갔다고 한다. 중을 사람 측에 넣지 않고 소 측에 넣어 말한다. 지금도 아마 사람과 소와 중과 목사가 지나갔다 할 것이다. 목사나 중이나 인간 대접을 받지 못하는 종말이다. 그래서 7년 대 환난과 666 심판은 반드시 필요하다. 휴거를 사모하는 믿음은 죽으면 죽으리라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 휴거가 아니면 죽음이라는 각오를 가지고 결단하는 믿음으로 가야한다. 오늘 하루의 삶으로 족하고 내일 일은 주님 소관이니 주님 되시는 주님께 맡겨야 한다.
희년은 50년 만에 온다. 희년은 초막절을 지키는 것으로 시작한다. 6000년의 지구에서 천년의 안식은 초막절이다. 초막절은 1000년 그리스도의 시간을 말한다. 대한민국이 일본이라는 적그리스도의 국가로부터 해방되는 날인 1945년 8월 15일은 희년이며 초막절이었다. 벌써 70년이 되어 2015년 대희년의 영광의 날을 눈앞에 두고 있다. 2015년은 이방인의 70년 한 이레와 대 희년 수장절과 테트라와 한 축을 이루고 있다. 휴거자들이 소망하고 고대하던 새 예루살렘 성 본향으로 이주할 시간이 눈앞에 와 있다. 준비된 신부들을 매일의 삶이 설렐 것이다. 기뻐할 것이다. 평안하며 그 평안 속에서 감사할 것이다.
2000년 교회사는 예수님과 성령님이 합동 구원의 시간이다. 마치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듯 이제는 여호와 하나님의 구원의 날이시다. 예수님과 성령님의 구원의 문은 좁다.
마태복음 19장 21절에는 영생을 얻기 위하여 예수님 교훈, 부자 청년이 낙심하고 간 내용이다. 청년의 전 재산을 가난한 자들에게 다 주고 예수님을 쫓으라 하시니 누가 실행하겠느냐 근심하고 가는 청년의 뒤를 보시며 예수님께서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가 바늘구멍이라고 하셨다. 확실히 예수님의 구원의 폭과 하나님의 구원의 폭이 다르시다. 천년 지구의 역사에서는 선지자가 필요 없다. 누가 선지자라고 하면 돌로 쳐 죽이라고 하셨다. 스가랴 13장 3절.
지복 천년의 때에는 직업이 모두 농부다. 스가랴 13장 5절. 그 때는 여호수아 같은 정복자들이 지구에 분봉 왕들이 되어 천 년간 지구를 주님 뜻대로 다스릴 것이니 환경에 오염이 없고 배고픈 사람이 없다. 그때는 사람들의 양심에 유법이 새겨져서 그 양심으로 하나님의 자녀답게 산다. 여호수아 같은 백말부대가 구름을 타고 이 땅에 강림하여 아베정권 푸틴정권 유럽과 로마 정권을 물리치고 그리스도의 정권을 세운다. 순교자들이 다시 살아나서 왕들이 된다. 모세 유월절 양은 예수님으로 성취하였고, 여호수아의 가나안 정복은 지구가 천년 동안 그리스도의 나라가 될 것을 미리 보여준 것이다. 휴거자들이 백말을 타고 올 자들이 많이 있다. 그러나 대부분 환란 날에 셀 수 없이 많이 죽을 것이다. 낙원으로 인도되는 것으로도 감사해야 한다.
구약에서 남자들만 세 번 여호와의 전에 올라가서 제사를 드려야 한다. 출애굽기 23장 17절. 유월절과 오순절과 초막절 또는 수장절 또는 장막절이라고 한다. 유월절은 예수님 절기다. 오순절은 성령 하나님의 절기다. 수장절은 성부 하나님의 절기다. 예수님과 하나님은 믿음으로 가야 되고 성령 하나님과 하나 되는 길은 거듭나서 새 사람이 되어야 하고 성부 하나님의 집에서 살려면 제 2의 예수 형상의 아들이 되어야 한다.
예수님의 구원은 음부에서 낙원으로 올리시는 구원이고 성령 하나님의 구원은 양자의 영을 주어 비록 세상에 살지만 하나님의 말씀으로 양육을 받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성부 하나님의 구원은 죽음을 보지 않고 빛나는 육체를 입혀 휴거로 구원을 이루시는 것이다. 요즘에 초막절 즉 수장절을 지키는 교회가 세상에 어디 있겠느냐? 한국 교회의 절기란 맥추절 추수감사절 성탄절이다. 헌금 걷는 절기로 탈바꿈 되었다. 천년 지구의 시간에는 오직 한가지의 초막절 그 수장절뿐이다.
사람들은 북한의 숨은 속내를 알지 못한다. 그들은 거짓의 아비인 마귀 자식들이기 때문에 회담 자체가 시간 낭비일 뿐이다. 개성 공단 무대는 이미 끝이 났다. 그들은 김일성과 김정일의 꿈을 이루기 위하여 지금 남한과 가까운 척 하므로 시간을 벌고 있다.
이번 광복절과 추석 사이에 그들의 속내를 들어 낼 수도 있다. 잠자는 교회를 깨우는 것은 북한의 몽둥이이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곁에 아랍 나라 블레셋을 둔 것은 이스라엘이 깨어 살게 하기 위해서이다.
아이들은 부모의 회초리를 보면서 바르게 행동하려고 노력한다.
부모님이 회초리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자식을 사랑해서이다. 하나님은 절대로 사단의 이념인 북한식 공산주의를 사랑하지 않으신다. 인민을 파리 목숨 보다도 여기지 않는 악의 축을 사랑하실 리가 만무하다.
하나님께 잠자는 교회들을 깨우시기 위하여 북한 김정은의 채찍을 사용하실 것이다. 하나님께서 내리치시는 그 채찍에 한국 교회는 불타고 한국 교회 목사들이 재 위에 앉아서 교만하고 탐욕스러운 자신들을 미워하며 회개할 것이다.
한국 교회는 한 이레인 8월 15일 광복절을 알고나 있는지, 테트라와 수장절을 알고 있는지 모르는지 소경이 되어도 귀머거리가 되어도 분수가 있는 것인데 그들의 눈과 귀는 아주 절벽이 되어 보지도 듣지도 못하고 있는 것이다. 휴거가 임박한 때이니 북한의 태도를 늘 예의주시하며 긴장감을 잃지 말아야 한다. 주후 70년에 이스라엘이 흔적도 없이 불타고 없어질 것을 주님은 마태복음 24장에 말씀하셨다.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내가 너를 암탉이 병아리를 품듯 품으려고 하였던 것이 몇 번이더냐 하시면서 슬피 우셨다. 돌 위에 돌 하나도 남지않는다고 하셨다. 그러나 택한 자들을 위하여 비밀을 말씀하시고 예루살렘 성이 포위되는 것을 보거든 산 위로 도망을 가라고 하셨다. 지금도 한국 교회는 666 찬양파, 666 반대파, 휴거 반대파, 휴거 찬성파가 대조를 이루고 있다. 깨어 고개를 들어야 한다.
하나님의 세계는 인간의 머리로서는 억만 분의 일도 알 수 없는 것이다. 태양이 지구 백만 배나 더 크고, 달은 지구보다 훨씬 작지만 사람의 눈에는 크기가 같게 거리를 조성하신 하나님의 솜씨는 말로는 표현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보이지 않아서 믿을 수 없다는 것은 핑계다. 하나님을 배올 목적으로 설립된 신학교들이 세속화되어버렸다. 그런 자들로 인해 지구가 채워졌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신학으로 채워진 것이 아니라 혼과 지식으로 설립되어 부패되고 세속화 되었다. 지구가 불탈 운명인 것은 하나님을 외면한 인간들 때문이다.
계시록 21장은 예루살렘 성에 규모와 구조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다. 22장은 성령과 신부가 혼인잔치에 오라고 초청을 하는 장이다. 듣는 자도 올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신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단의 손에서 구하시려고 하나님의 피로 변상하시고 우리를 구하셨다. 하나님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부활하여야 하는 중요한 절기이다. 부활절은 매우 중요하다. 죽으면 부활이 있다.
죽는다는 말은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내 속에서 사시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모든 왕들의 여왕은 교황이다. 계시록 17장 1절에 많은 무리의 앉은 큰 음녀가 나온다. 그 음녀는 땅의 임금들로 더불어 음행을 하였다. 그 음녀란 타락한 교회를 말하는 것이다. 타락한 교회는 서기 500년에 로마의 국교가 된 로마 캐톨릭 교회로 극도로 타락해 버렸다.
동서 로마로 나누어지면서 교회도 동서로 나누어졌다. 그래서 생긴 러시아 정교회, 그리스도 정교회, 로마 캐톨릭들이다. 이 세상에서 어느 나라도 로마 교황청을 무시할 수는 없다.
중동의 평화는 교황이 앞장을 서서 이루려고 하고 있다. 미국도 교황을 도와 중동의 평화를 도모하고자 한다. 교황 즉위식에서 세계 평화헌장을 말한 것이다. 중동은 예수님이 구름을 타고 오시는 심판의 날까지 싸움이 그치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평화를 이루기 위해 모든 왕들이 머리를 맞댈 것이다. 휴거자들은 구름을 타고 오시는 심판주 예수님을 영접한 것이 아니다.
도적같이 오신 재림 주님을 영접하고 있는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영접하는 자에게는 휴거의 영을 주시어 느낌으로 주님이 곁에 계신 것을 알 수 있다. 기도하면 금방 응답해 주시는 주님이시다.
언제 휴거가 일어나느냐고 수없이 묻고 있지만 주님은 말씀하시지 않으신다. 그 기간이 나팔절로부터 수장절까지이다.
나팔절에서 수장절까지 23년 기다리며 온 세월이다. 휴거자들은 세상을 버려야 한다. 옛 사람을 버려야 한다. 죄 없으신 예수님도 사단에게 버리셨기에 구원받는 자들이 사단에게서 풀려나온 것이다. 사단은 대가가 없는데 구원자들을 풀어줄 리가 없다. 하나님의 아들을 지옥으로 보내신 대가 때문에 지옥에서 풀어준 것이다.
휴거의 예복은 인내하는 믿음이다. 기다리는 것이다. 주님만을 사랑하는 마음이다. 세상과 결별하는 것이다. 휴거되지 못하고 남은 자들은 순교할 기회가 많다. 순교할 기회가 오거든 피하지 말고 맞서야 한다. 순교의 영광은 휴거의 영광과 같기 때문이다. 휴거자가 되는 것은 평소에 산 순교의 생활을 한 자들이다. 슬퍼도 기쁜 자 같이, 아내가 있어도 없는 자 같이 산 자이다. 아파도 안 아픈 자 같이, 가기 싫은 길도 가야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미쳤다고 폄하하여도 주님만을 의지한 자들이 산 순교를 한 휴거자 들이다. 이러한 자들이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며,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따라가는 자들이다.
환란 날이 얼마나 끔찍하고 처참한지를 상상하겠느냐?
아비가 어미를 고발하고, 어미가 아비를 고발하여 사형장으로 넘기는 일을 한다. 어제의 친구가 내일의 원수로 변하여 단두대로 끌고 가는 것이다.
죽음이 무서워서, 기름 가마가 무서워서 666 낙인을 받는 것이다. 그러나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들은 단두대에 목숨을 내어놓고 순교할 것이다.
휴거라는 사건을 본 일도 없지만 본 것처럼 믿는 것이다. 반드시 휴거될 것을 믿고 세상 모든 것을 버리는 것이다. 인내하며, 따라오는 것이다. 이러한 자들이 예복이 준비된 자들이며 휴거자 들이다.
휴거가 일어나면 세상 정부는 세계 시민권을 만들어 원하는 자에게 666 표를 찍는다. 그러나 666을 거부한 자들은 테러분자로 낙인을 찍어 사살한다. 미국은 한시가 급하게 666 표를 가지고 통제하길 원하고 있다. 휴거가 일어나면 그대로 시행한다. 666을 거부하고 순교를 하면 그것이 영광이 된다.
휴거자들이 떠나고 나면 모든 재난이 한꺼번에 지구촌에 쏟아지려고 재앙을 담은 대접을 들고 천사들이 배열해 서 있다. 대 재앙이다. 달이 핏빛으로 변하고 태양풍이 모든 것을 녹인다.
행성이 떨어지면 수 천 수만이 죽는다. 사람들이 아무리 부인할지라도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막을 자는 없다는 것이다. 테트라와 수장절이 같이 맞물려 있다. 지구의 재앙은 멈추지 않는다. 계시록 16장 8절에 넷째 대접을 든 천사가 대접을 해에 쏟으니 해가 권세를 받아 불로 사람을 태운다고 한다. 해가 사람을 태우려면 섭씨 50도 이상이 되는 것이다. 36도만 넘어도 사람의 호흡기에 이상이 생기는 것이다.
해가 권세를 받는다는 것은 태양풍을 두고 하는 말이다. 지구촌에 불 심판은 이미 예고된 강력한 심판이다. 베드로후서 3장도 지구가 체질이 녹는 것을 말하고 있다. 홍수 심판이 사실일 진저 불 심판 또한 면할 수 없는 명백한 사실이다.
인간들이 돈을 버는 것에만 치중하여 자연을 얼마나 많이 훼손했는가이다. 문명은 지구의 운명을 단축시킨 저주가 된 것이다. 빠른 왕래, 전자문명, 인터넷 세상 등 이제는 불에 녹아 없어질 문명이 되었다.
지구촌이 이렇게 된 것은 선인과 악인이 공존하였기 때문이다. 문명의 발전은 전쟁에서 승리하려는 것이 목적이었다.
소련과 미국, 독일은 머리 좋은 유대인들을 유치하여 핵을 만들었다. 지구촌은 핵 천지로 돌변하였다. 그러나 지구촌이 재앙을 유보된 것은 휴거자들이 아직 이 땅에 머물고 있다는 것이다. 휴거자들이 떠나고 없으면 지구촌은 인정사정 없이 대접 재앙들이 쏟아진다.
노아가 방주를 만드는 100년 동안 모든 사람들은 노아를 미쳤다고 하였다. 비가 어떤 것인지도 모르던 그 당시 사람들에게는 홍수라는 재앙을 믿을 수가 없었다.
노아 때에 지구는 지금처럼 구름이 비를 만드는 시스템이 아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92년 휴거가 아니고 나팔절이었는데 휴거가 일어나지 않았다고 낙심하며 저주하고 돌아간 자들은 충을 맞아 회개할 기회를 잃어버렸다. 충총을 맞으면 회개할 수 없는 무시무시한 지옥만이 그들의 것이 된다는 것이다. 모르면 입을 굳게 닫고 있는 것만으로도 지옥을 면하는 것이다.
92년 10월 28일은 나팔절이었다. 나팔절이라고 외치는 종들을 그들은 미쳤다고 비방하고 없수이 여기고 무시했다. 죽은 자처럼 버려 버렸다. 매도했다.
노아가 홍수가 났을 때에야 비로소 하나님의 사람임을 인정받았다. 만일의 홍수 일주일전에 하나님께서 강제로 노아, 노아 가족들을 방주에 넣고 바람으로 문을 닫지 않았으면 사람들의 돌격으로 방주는 미어터졌을 것이고, 모든 물속에 수장되었을 것이다.
지금도 휴거를 외치고 베리칩을 외치는 종들을 맹비난하고 있다는 것이다. 휴거자들도 환란 전에 지구촌에서 새 땅으로 이주를 시킨다. 환란 중간과 환란 통과는 사람이라면 할 수 없는 것이다. 미련하고 어리석은 것은 자신을 환란 가운데 던지는 올무가 되는 것이다. 인간의 머리로 지식으로는 알 수 없는 것이다. 순수해야 한다.
2015년은 휴거 보너스의 해로, 같은 짝을 이루고 있는 테트라와 수장절이다. 같은 짝으로 된 아주 중요한 해이며, 영광의 대망의 날이 될 것이다. 대변혁의 해일 것이다. 2015년은 휴거자들이 동시에 이룰 나팔절과 초막절 수장절이다. 세상 교회들이 알지 못하는 비밀한 날이 될 것이다. 오직 하나님의 빛의 자녀들에게만 알게 하실 날이 된다.
세상이 알 수 있는 휴거의 날의 증표는 전쟁뿐이다. 북한이 남침을 하는 전쟁이므로, 서울, 부산, 대구, 광주, 대전에 미사일이 떨어지고 신경을 마비시키는 생화학 탄으로 사람들이 떼죽임을 당하고 북한군이 땅굴을 통해 한국군 복장을 하고, 공중으로 서울을 점령하면 그 때서야 사람들은 고개를 들 것이다. 교회들이 그 때 고개를 들고 아우성을 칠 것이다. 2015년은 늦은 수장절을 보너스로 받은 아주 끝자락 끝나는 시간이다. 이제는 감사를 넘어 기뻐하며 사는 것이 휴거될 자들의 삶이다. 새 예루살렘 성 영광의 주님 만날 기쁨과 환히 웃음꽃이 피어 있어야 한다.
에덴은 창조적인 장소이다.
실제 에덴은 태양계 저 너머 어느 별이 에덴이다.
인간의 조상 아담은 에덴에서 태양계 안의 지구로 유배된 것이다.
지구로 쫓겨나면서 짐승의 가죽인 육체를 입게 되었다.
원래는 빛나는 신비한 육체였다. 옷을 벗어도 빛으로 가려져서 부끄럽지 않은 육체였다.
하와의 선택이 아니었다면 지구촌이 이렇게 인간으로 넘쳐날 수가 없었다. 선악과는 인류의 본성이 보장되는 대신 정령 죽는 십자가의 희생이 필연적인 것이다. 그러므로 하와와 마리아와 예수님은 한통속이다. 세트라고 부를 수 있다. 모두 성령의 속성이다.
하나님 아버지 집은 창조적인 장소가 아니다. 창세전에 하나님 아버지가 계신 곳이다. 이곳은 아무에게도 공개되지 않았으나 이제는 제 3의 창조가 시작되고 휴거가 시작되면 하나님의 자녀들은 방문할 수 있다.
모든 인류는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산다. 새 하늘과 새 땅의 수도는 새 예루살렘 성이다. 새 예루살렘 성은 성령님의 성이고, 신부들의 성이다. 그래서 계시록 22장 17절에서는 성령과 신부가 예루살렘 성에서 초청을 한다.
아버지 집은 다르다. 사랑을 가지고 천국을 가는 것이다.
사랑이 식은 사회는 재앙을 면치 못한다.
전쟁이 나면 대형 마트들과 대형 백화점들은 군부의 소유가 된다. 국민들이 타고 다니는 4륜 찝차도 군용으로 전용이 된다. 전쟁은 불가피한 것이다. 사랑이 식은 사회가 되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없는 사회는 사랑이 없다. 사랑이 없는 사회는 죽어있기 때문에 죽은 사회를 장사하는 방법은 전쟁밖에 없는 것이다.
북한은 남한을 때리기 위해 준비된 채찍이다. 북한은 절대로 남한과 화합하지 못한다. 그들의 야욕은 남침을 적화 통일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북한이 아무리 후덕스런 제휴를 한다 해도 그들의 미소 뒤에는 짐승과 같은 눈이 있다. 핵과 미사일로 한방을 노리고 있다는 것이다. 북한은 항상 남한을 돌격하려고 하는 노림수가 있다.
항상 주시하고 고개를 들어 상황 파악하고 깨어있어야 한다.
북한의 남침 때는 휴거자들은 전쟁을 보지 않는다. 데살로니가전서 4장은 이미 죽은 자들의 대하여 말하고 있다. 사회적 사건이 아니다. 예수님의 초림복음으로 살다가 순교를 당한 자들은 구름을 타고 오실 때 죽은 자들의 영혼들을 데리고 오셔서 예수님이 부활하시듯이 다시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셔서 살리시는 내용이다. 엘리야는 에녹만 올라가는 것은 아니다. 휴거가 일어나면 땅이 겹쳐지는 것 같은 신비한 두 세계가 공존하는 것이다.
수장절의 문은 넓고 쉬운 문이다. 누구든지 목마른 자는 와서 생명의 물을 마실 수 있다. 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면 하나님 아버지의 넓은 구원의 팔에 안길 수 있다. 누가복음 15장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을 찾으시는 목자의 마음과 방탕하게 살다가 굶어죽게 되었을 때 돌아오는 탕자를 기다리시는 아버지의 마음이시다. 탕자는 인간뿐만 아니라 타락한 천사들도 탕자다. 루시퍼가 탕자 왕초다. 인류는 거의 루시퍼의 자식들이다. 마태복음 13장에서 곡식으로 인류를 비유한다. 가라지를 사단이 뿌린 인간들로 묘사하였다. 그러므로 휴거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기 때문에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자에게 주시는 은혜다. 이러한 자들에게만 허락하신다.
세계를 장악한 부자들과 정치가들이 북한을 롤 모델로 하여 평양시민 2백만을 위하여 죽도록 부려먹다가 죽인다. 2300만 인민들처럼 말이다. 1% VIP들이 세계를 장악하여 60억을 다 죽이고 5억만 사는 지구촌을 만들 계획을 세우고 3차 대전을 준비하고 있다.
2015년 8월 15일 광복절은 70년 한 이레로 이방인의 때는 끝이 난다.
수장절 끝 시즌은 9월 28일이다. 광복절부터 추석시즌까지다.
테트라도 맞물려 있다. 지금 매우 중요한 시간때에 살고 있는 것이다.
많이 안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휴거 때에 구경꾼이 되면 그 때에 말할수 없는 애곡이 될 것이다. 휴거는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되는 사건이다.
머리로 아는 것이 되지 말고 가슴으로 주님을 만나라. 머리로 지식으로 아는 자들이 따지고 헛소리 하는 것이다.
마태복음 24장 19절, 아이 밴 자들과 젖먹이는 자란 목회자들이라고 보면 된다. 휴거 시킬 목회자에게는 양이 없게 한다.
그들이 제단 아래서 신원의 날을 기다리는 산 순교자들이다. 휴거를 소망하다가 교인이 없다고 낙심할 이유가 없다. 기뻐해야 할 것이다.
화가 미치지 않기 때문이다. 휴거가 임박한 때에 기저귀를 차고 있다는 것이 슬픈 일이다. 젖을 먹고 있는 것도 슬픈 일이다.
휴거자는 단단한 식물만을 먹는 자들이다. 모든 환란 고난도 통과한 자들이다. 대형 교회들이 기저귀를 채워 놓고 젖을 먹이고 있는 것이다. 목회자들은 많은 영혼을 살리기도 하고 사망에 골짜기로 인도하기도 한다. 그래서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 주는 목회자를 주님은 무한정 사랑하고 있다는 것이다.
휴거는 우주적인 대 사건이다. 우주의 있는 별들도 숨을 죽이고 기다리고 있는 대 사건이다. 휴거로 새로운 피조물이 된 만물의 시간이 되기 때문에 사람만 휴거와 관계된 것이 아니라 만물이 휴거와 관계가 있다는 것이다.
로마서 8장 19절에서 21절, 휴거 목사를 떠나면 롯의 운명을 쫓아가는 것이다. 롯은 창세기 19장에서 모았던 전 재산을 불 속에 다 태우고 겨우 두 딸만 데리고 구원을 받은 것이다.
목사는 교인들의 숫자가 목사 개인의 목회 성공 점수가 아닌 것을 알아야 한다. 교인이 수만 명인데 왜 목사가 지옥으로 떨어지겠느냐? 목사는 천국 가려면 큰 예배당과 교인들로 인해 마음과 생각을 내려놓고 버려야 한다.
중국의 총통 장개석이 일본에게 전쟁 위자료를 포기한 것은, 일본에서 예수님을 영접하고 중국에서 신학교를 세워 복음을 증거하여 장개석을 그리스도인을 만든 화천풍월 목사 때문이었다. 목자는 하나님이 기업이지 교인과 예배당이 아니다. 그래서 주님은 말씀하시기를 나는 사람을 믿지 않고 의지하지도 않는다고 하신 것이다.
92년 10월 28일 나팔절 이후로 23년 세월이다. 23년을 기다리며 온 자들이 맞이하는 수장절이다. 세상을 버리고 마음속에 주님 한 분 만으로 족한 삶을 살아왔다. 아름다운 열매들로 빛을 비출 것이다.
세상은 인간들의 영혼을 사냥하기 위한 사악한 덫이다. 돈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사냥하기 위한 밭이다. 휴거자를 가까이 하고 휴거자의 친구가 된 것만으로도 큰 복이다. 양과 염소로 나누는 심판 날에 양으로 심판을 받을 것이다.
사람 앞에서 휴거를 시인하면 두 가지 큰 효과가 있다. 코드가 맞지 않는 자는 접근하지 않고 비방한다. 코드가 맞는 자는 듣고 기뻐한다. 이것이 분별하는 좋은 자료다. 휴거가 되고 나면 비록 그들이 남을지라도 666을 이길 수 있다. 그래서 피 값을 면한다.
전도의 목적은 구원만이 아니다. 피 값을 면하기 위함이다. 홍수 심판이 홍수 나기 전 1000년부터 계시된 것을 모르는 목사들이 있겠느냐? 홍수 전 1000년에 에녹에게 홍수 심판을 계시하셨다. 에녹이 65세에 아들을 낳았는데 그 아들 이름이 죽으면 홍수가 터진다는 뜻이다. 그리하여 아담 후 1600년 경 므두셀라가 죽은 해에 홍수가 터졌다.
BC 2348 년 경 노아는 홍수 100년 전에 홍수 심판 계시를 받았다. 홍수가 주전 2348년에 터졌다. 그 때 므두셀라 나이 969세 일 테니 에녹이 태어난 때는 므두셀라의 나이를 더하고 65년을 더하면 에녹의 탄생년도다. 주전 3382년인 것이다. 에녹이 365세 때 승천했으니 주전 3017년에 에녹은 산 채로 승천하였다. 노아가 태어난 해는 홍수가 주전 2948년이다. 그 때 노아 나이 600세이므로 주전 2348년 홍수 해이다. 600년을 더하면 노아의 탄생해이다. 주전 2948년이다.
에녹은 주전 3017년에 승천했고 노아는 주전 2948년에 태어났으니 에녹 승천 후 96년 만에 노아가 태어으니 그때는 므두셀라 나이는 696세였다.
홍수 계시는 노아에게 일주일 전에 최종적으로 계시하셨다. 노아의 여덟 식구들을 방주에 먼저 넣으시고 바람으로 방주 문을 닫아버리셨다. 지금은 휴거가 임박한 때이다. 휴거의 나팔소리도 마감을 지으려고 하는 때이다. 많은 날들과 시간이 촉박하기 때문에 마무리 할 때이다. 휴거의 방주 문이 닫히기 직전에 와 있다고 보면 된다.
8월 15일 광복절에서 한 달 되는 추석 후 일주일 하면 반달이다. 믿음과 소망과 사랑으로 수장절을 기다리고 깨어 있어라. 빛의 자녀들은 알게 하신다. 신랑을 만나는 기쁨으로 살아가야 한다. 준비 다 된 사람들은 춤을 출 것이다. 두려워하고 조급해 하는 것은 사단이 하는 것이니 속지 마라. 사단은 휴거되라고 회개하라고 세상을 버리라고 말하지 않는다. 휴거자는 휴거의 말만 하고 세상에 미련을 두지 않는다. 주님만 죽도록 사랑한다는 것이다. 행동하는 믿음이 죽도록 충성하고 순종하는 것이다.
주님 감사합니다. 오늘 아버지 하나님 준비한 것 말씀 말씀들을 주님께서 아버지 일일이 아버지 하나님 정말 한자 한자 가르쳐 주시며 아버지 쓰게 하시고 또 이제 아버지 주님의 시간이 다가오므로 아버지 이제 또 모든 말씀들을 아버지 마무리하시려고 하시는 이때입니다. 주님 저희를 더 깨어서 아버지 하나님 주님만을 더 뜨겁게 사랑하고 내 이웃을 사랑하며 주님 오시는 그날까지 아버지 정말로 기쁨과 감사와 사랑 가운데 승리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오늘도 아버지 귀한 시간 남은 시간들을 일일이 주님께서 친히 붙잡아 주시기를 원하며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올려 드립니다. 아멘~~~
첫댓글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