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7월 6일. 월요일.
어제는 주은 손님이 오는 날이어서 나는 도봉산에 다녀올 생각이었지만 잠이 부족하여
한 시간쯤 더 자고나니 도봉산에 갈 생각이 바뀌어 검단 산으로 방향을 바꾸
었다. 아침과 점심을 먹기 위해 밥을 넉넉히 준비하고 7시경 집을 나섰다.
주은 아직 꿈나라.
여름철이 아니면 아침을 먹고 출발하여도 되지만 여름은 기온상승이 빨라
에너지 소모가 많아 아침 일찍 시작하는 게 좋기 때문이다.
도봉산에 혼자 갈 경우, 대체로 7시 경부터 등산을 시작하여
아침은 자운 봉 근처에서 먹고 점심은 집에 와서 먹을 때가 많았다. 오늘은
동네 산이지만 일찍 서둘렀다. 아주 천천히... 역사적으로 가장 천천히 오르면서 요즘의 생각들을 정리하기로 했다.
지난 달 26일 있었던 콘서트를 되돌아보며
올 가을과 내년 봄에 예정하고 있는 개인 콘서트와 나 홀로 자전거 여행과
산행, 렛슨 문제, 송파문화원 소모임에 관한 일 등과 거기에 따르는 자금문제
등이다. 과연 어떻게 하는 것이 최대의 효과를 얻을 수 있을까...? 그리고 내
건강과 죽음에 대해서도....
코로나19로 인하여 등산인구가 옛날과 같이 많아졌다.
올라가는 길도 내려오는 길도 사람이 줄을 잇는다. 개인적으로 또는
친구끼리, 모임을 산에서 하는 사람들도 보인다.
며칠 전에 산 책(인간의 마지막 순간에서)을 읽기 시작했는데, 처음부터
속도를 낼 수 없게 나를 붙들어 맨다. 쉽게 쉽게 읽어 낼 수 있을 것이란
내 생각이 처음부터 어긋나고 있다.
오래된 불교명상법에 이런 글이 써 있다고 한다.
“나는 본래 나이가 들 운명이다. 나는 본래 병이 들 운명이다. 나는 본래
죽을 운명이다. 나에게 소중한 전부와 내가 사랑하는 모든 사람은 본래
변할 운명이다. 그런 운명에서 벗어날 방법은 어디에도 없다.”
우리 삶의 중심엔 늘 내일이 있다는 생각이 자리 잡고 있다.
내일은 빨래가 다 끝났을 때일 수 있고, 내가 은퇴한 뒤에 올 수 있다.
내일은 여름휴가를 시작하는 날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위험한
상황에 처해 있음을 인식한다면 내일은 없다.
내년도 없다. 오로지 지금만 있다.
그래도 우리는 계획을 세운다.
씨를 뿌리고 열매가 맺기를 기다리는 것 말고는 달리 살아갈 방도가 없기
때문이다. 그 열매가 빨래든 은퇴든 다음 여름휴가든 간에 말이다. 그런데
문제는 다음 여름이 약속되지 않았다는 걸 알면서도 다음 여름휴가를
계획한다는 데 있다. 현실을 직시하면, 이러한 비영속성(非永續性)이
고통과 즐거움의 핵심이다.
영화 트로이에서 주인공 아킬레우스는 포로로 잡혀온 트로이의 공주
브뤼세이스에게 인간의 매력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네게 아무도 모르는 비밀 한 가지를 얘기해 줄까? 신은 인간을 질투해,
왜냐하면 인간은 언젠가는 죽을 운명이거든.”
그의 말 속에는 인간과 인생에 대한 진실이 담겨 있다.
인간은 죽을 운명이라는 것과 그것으로 말미암아 인생이 아름다울 수가
있으며 영원히 사는 것은 결코 아름답지 않다는 것이다.
“우리는 왜 자신을 특별하게 대우하려 하는가? 탄생과 죽음을 만물의
탄생과 죽음으로 이해한다면 그것은 더 이상 문제가 아니다.
세상만물에게 해당되는 문제는 더 이상 문제가 아니다.“라고 스즈키 순류
선사는 말한 것처럼 우리들 자신은 자연에서 특별한 개체가 아니다.
자연만물의 하나라는 것이다.
인생은 누구나에게 생로병사의 대상이며 피할 수도 없다.
하지만 사람들은 탄생은 인정하지만 죽음에 대해서는 자신과는 관련이
없거나 아주 멀리 있는 것처럼 생각하려고 착각하고 있다
“철학적으로 사색한다면 죽을 준비가 됐다는 뜻이다.”라고 일찍이 키케로는
역설했다. 죽음에 대해 논할 때가 아니라면 대화 도중에 키케로의 이름이
거론될 일은 거의 없을 것이다.
내가 하고 싶은 콘서트나 자전거 여행 등은 없을 수도 있을 터무니없는 착각
속에서 세워진 계획일 수 있다.
확실한 것은 지금 내가 이 글을 쓰고 있다는 것만이 현실인 것이다. 잠시 후
잠자리에 들어 내일 아침에 눈을 떠야만 내일의 내가 있는 것이다. 6개월
전에 어느 새벽 내가 대학병원 응급실에 있을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말이다.
며칠 전 동창회장인 백두현 친구에게 놀랄 문자가 왔다.
동창 홍명시가 뇌출혈로 보라매 병원 중환자실에 있다는 말.
벌써 한 달이 되어가고 있다고 한다.
지금 우리는 인생 80을 바라보고 있다.
누가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했나?! 어제와 오늘의 컨디션이 다르듯이
우리들의 건강은 하루가 다르다. 코로나19로 인하여 우리들의 일상은
옛날 같지 않다. 옛날의 그 일상들이 지금에 와서는 기적이었다. 동창회에서
친구들의 얼굴을 대한 지도 반년이 넘고 있다.
어떤 어려움도 없이 친구들을 만났을 때는 그리움이 무엇인지 알지도 못했다.
친구들의 모습도, 잔을 부딪치며 웃던 그 자리가 그리움으로 밀려온다.
아~! 세월이여! 친구들이여! 보고 싶구나!
나는 오늘 저녁, 내가 죽을 때 있고 싶은 곳을 주은에게 말했다.
두메산골 나 혼자 있으면서 죽음을 맞이하고 싶다고 했다.
건강하면 좋겠지만, 아프면 아픈 대로 그냥 버티면서....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면서 읽고 싶은 책을 읽으며 그 때를
맞이하고 싶다고 했다. 하고 싶은 것은 아직도 많지만 이미 경험한
것으로도 충만한 삶을 살았다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2020년 7월 6일 밤. 하남에서 상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