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시봉
경상북도 군위군 고로면 석산리
무시터골
강원도 삼척시 도계읍 마교리
강원도 춘천시 남산면 백양리
무시터재
강원도 삼척시 도계읍 마교리
무악골
전라남도 영광군 염산면 상계리
무악동(毋岳洞)
서울특별시 종로구에 있는 동.
인왕산 서쪽 기슭에 있으며, 동쪽의 사직동·누상동, 서쪽의 서대문구 현저동, 남쪽의 행촌동, 북쪽의 홍제동과 접해 있다.
면적 0.36㎢, 인구 8607명(2008)이다.
무악동은 ≪태조실록≫에 의하면 조선 초인 태조 5년(1396) 4월 1일 한성부 5부 방명(坊名)의 표지를 세울 때 한성부 서부 반송방(盤松坊) 지역이었다.
-영조 27년(1751)에 간행된 ≪도성삼군문분계총록≫을 보면 서부 반송방(성밖) 지하계에 속하였다.
-1895년 윤5월 1일 칙령 제98호로 한성부 서서(西署) 성밖 반송방 지하계의 모화현으로 되었다.
-1910.10.1 조선총독부령 제7호에 의해 한성부 서서에서 경성부 서부로 바뀌었고,
-1911.4.1 경기도령 제3호에 의해 개편된 서부 반송방의 모화현 지역이
-1914.4.1 경기도고시 제7호에 따라 새로 통합되면서 경성부 현저동으로 칭하였다.
-1914.9.27 경성부조례 제8호로 서부출장소 관할에 속하고
-1915.6.1에는 서부출장소의 폐지로 경성부 직할이 되었다.
-1936.4.1 조선총독부령 제8호로 경성부 관할구역이 확장되고 경기도고시 제32호로 동 명칭이 개정될 때 경성부 현저정(峴底町)이 되고,
-1940.7.1 경성부 서부출장소,
-1943.6.10 조선총독부령 제163호에 의해 구제도(區制度)가 시행되면서 서대문구 현저정이 되었다.
-광복 후 1946.10.1 서울시헌장과 미군정법령 제106호에 의해 일제식 동명을 우리 동명으로 바꿀 때 다시 현저동이 되었으며,
-1946.10.16에는 서대문구역소가 서대문구로 변경되었다.
-1975.10.1 대통령령 제7816호와 서울특별시조례 제979호로 의주로 동쪽의 서대문구 현저동(峴底洞) 일부가 서대문구에서 종로구 관할이 되면서 그 법정동명이 무악동으로 개칭되어 현재에 이른다. 이때 무악고개[毋岳峴, 무악현]에 있다고 하여 무악동으로 붙여졌다. 이와 동시에 동일자 서울특별시조례 제981호에 의해 이전의 현저제1동을 관할지역으로 하여 무악동사무소가 설치되어 명칭 변경된 무악동 일원을 관할하게 되어 오늘에 이른다. 2004년 12월 현재 무악동사무소는 무악동 일원을 관할구역으로 하고 있다.
법정동명과 행정동명이 같다.
무악동 동명은 이곳에서 홍제동으로 넘어가는 고개인 무악재 · 무악현 아래에 있는 마을인 데서 유래되었다. 무악의 유래는 첫째, 서울의 진산(鎭山)인 삼각산 인수봉이 어린아이를 업고 나가는 모양이므로, 그것을 막기 위하여 이 산 이름을 어머니의 산이란 뜻으로 모악(母岳)이라 하고, 산 남쪽 고개를 떡고개, 남산 동쪽 고개를 벌아령(伐兒嶺)이라 하여, 어머니가 떡을 가지고 나가려는 어린아이를 달래고 또는 때리겠다고 얼러서 나가지 못하게 한다는 풍수지리적 뜻이었는데, 이 모악이 변해서 무악이 되었다고 한다. 또 이 고개가 예전에는 몹시 높고 험하고 숲이 무성하여 호랑이가 자주 나타나는 무서운 고개였으므로, 이 고개를 넘으려면 여러 사람을 모아서 넘어 갔기 때문에 ‘모아재’라 부르던 것이 ‘모악재’로 변하고 다시 무악재로 변한 것이라고도 한다.
그리고 조선 태조가 도읍 터를 찾을 때 하륜(河崙)이 이곳 무악 남쪽을 적극 주장하므로, 태조가 무학대사(無學大師)를 데리고 와서 답사하였으므로 ‘무학재’라 하던 것이 변한 것이라 하기도 한다.
6·25 전쟁 이후까지 무허가 건물이 난립한 달동네였으나, 현재는 대부분 철거되고 지하철 3호선 독립문역 부근에 상가가 발달되어 있다. 개성, 평양, 의주로 가는 의주로의 무악재고개는 국방·통신상 중요한 위치에 있어서 시대에 따라 많은 이름으로 불렸다.
조선 말기까지는 중국 사신의 유숙소인 모화관(慕華館)으로 가는 길목에 있다고 하여 모화현(慕華峴)이라 하였으며, 홍제천을 사천(沙川)이라 했는데, 사천으로 향하는 고개라는 뜻에서 사현(沙峴)이라고도 하였다.
민속자료로 지정된 선바위[禪岩]는 그 모습이 중이 장삼을 입고 있는 것처럼 보여 붙여진 이름이다. 선바위 아래 1918년에 창건된 인왕사가 있다. 이곳은 우국지사들의 은신처와 현저동 서대문형무소에서 사형당한 사람들의 명복을 비는 사찰로 많이 이용되었다.
인왕사 옆에는 민속자료로 지정된 국사당이 있는데, 태조 이성계(李成桂)와 호신신장(護身神將)을 모시고 부당들이 굿을 하던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