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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목이동문명이란 무엇인가?
성을 쌓는 사람들과 길을 닦는 사람들
유목이동마인드를 깊이 체득하기 위해서는 정착문명과 유목이동문명의 차이를 이해하지 않을 수 없다. 우선 이런 질문을 해보자. 벤처시대 CEO는 성(城)을 쌓는 사람들인가? 길을 만드는 사람들인가? 나는 성을 쌓는 사람은 정착문명의 과거형 인간이고 길을 닦는 사람은 유목이동문명의 미래형 인간이라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서, 인간이 삶을 살아 온 형태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성을 쌓고 그 안에서 살아가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길을 개척하며 사는 것이다. 전자는 농경 정착민족이고, 후자는 유목민족이다.
달의 높이에서 지구를 내려다보면 단 하나의 축조물만 보인다고 한다. 중국의 만리장성이 그것이다. 그런데 이는 참으로 흥미로운 사실을 말해준다. 만리장성은 ‘중국’이라는 토지를 말(馬) 한 마리 들어올 틈도 없이 둘러싸서 막기 위한 것이었는데 이 어마어마한 규모의 성곽은 그 자체가 ‘무엇인가’에 대한 중국인들의 엄청난 공포심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는 것이다. 도대체 무엇에 대한 공포가 중원의 문명인들로 하여금 그렇게 엄청난 방어의식을 드러내게 했을까? 그것은 바로, 자기의 이익을 조금도 나누어주지 않겠다는 완고한 이기주의에서 발로한 공포이다. 정착문명은 성곽 즉, 지상에 거대한 ‘이익의 칸막이’를 세우는 것이고, 대지를 연속성을 단절시키며, 사회와 사회, 문명과 문명간의 소통을 차단시키는 것이다.
정착문명이 만리장성을 쌓으며 제 이익과 기득권의 보호에 혈안이 되었다면, 반면에 유목이동문명 길을 닦았다. 그것은 만리장성보다 더 소중한 인류의 유산으로 취급하는 ‘실크로드’이다. 실크로드는 유라시아 대륙 한 가운데 초원유목지대에 형성돼 있다. 유목이동문명세계의 인간들에 의해서 마침내 동양과 서양의 소통과 교류가 가능했던 것이다.
이것은 단지 우연이 아니다. 당시의 유목민들은 자신의 삶의 대원칙으로서 이미 확고한 유목이동마인드를 지니고 있었고 그것이 실크로드를 낳은 것이다. 예를 들어, 오늘날 몽골공화국의 수도 울란바토르에 가면 근교에 돌궐제국을 부흥시킨 명장 톤유쿠크의 비문이 있다. 이 비문에는 당시 유목민이 겪었던 눈물겨운 사연들을 구구절절 기록하면서 다음과 같은 장군의 유훈(遺訓)을 새겨 놓았다.
“성을 쌓고 사는 자는 반드시 망할 것이며 끊임없이 이동하는 자만이 살아 남을 것이다.”
닫힌 사회는 망하고 열린 사회만이 영원하리라는 이 말은 글로벌 인터넷티카 시대인 오늘날 벤처 CEO에게 있어서 영원한 교훈이다.
정착문명과 유목이동문명의 차이
뿐만 아니라, 정착문명과 유목이동문명은 사회, 정치, 경제 등 제반 분야에서 현격한 차이를 드러낸다. 이 차이는 우리가 극복해야 할 것과 지향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선명히 보여준다.
대체로 지리적으로 바닷가가 가까운 곳에서는 농사를 지으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고, 내륙 깊숙한 지역에서는 유목생활을 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 정착민족에게는 관료제도가 발달했지만, 유목민족은 방목 생활을 하고, 동물을 잡아야만 했기 때문에 군사제도가 발달했다. 또한, 정착사회에서는 인문과학이 발달했지만 유목사회에서는 자연과학이 발달했다. 유목민족들이 기술을 숭배하는 경향이 강한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정착 민족에게는 소유하려는 의식이 강하게 나타나는 반면, 유목민족에게는 개인 소유보다는 함께 공유하는 것이 강하게 나타난다. 정착사회에서는 군왕제가 발달하여 왕이 백성 위에 군림하지만, 유목사회에서는 리더를 중심으로 한 봉사정신이 발달한다.
전쟁터에서 보통은 왕이 군대 대열을 뒤따르지만, 예컨대 칭기스칸은 전쟁을 할 때에 자신이 가장 앞장서고 아들들이 그 옆에 따른다. 따라서, 리더를 뽑는데 몇 달이 걸리기도 하였다. 또한, 왕이 아닌 리더이기 때문에 이들은 평생 친구, 평생 동지의 인간관계가 형성된다. ‘태어난 곳은 달라도 죽는 곳은 같다’는 말을 신조처럼 언약한다. 따라서, 의형제를 맺어 한 명이 죽으면 그 죽은 이의 자식들을 자기 자식으로 삼기도 하는 데, 이렇게 해서 자식이 100명이 넘는 경우도 있다.
왜 이런 인간관계가 맺어지는가. 그것은 가축을 한 명이 한 마리를 갖는 것보다 여러 사람이 여러 마리를 갖는 것이 낫다는 것을 체험적으로 알았기 때문이다. 이 사람들은 동물이 뭉쳐 사는 것을 보고 많이 배웠던 것이다.
인류는 네 발로 살다, 두 발로 걸어다니며, 지금은 두 발도 쓰지 않고 자동차로 살아간다. 따라서, 예전에는 24시간 내내 먹을 것을 구하러 다녔는데, 그 시간이 많이 짧아졌다. 이처럼 편하게 먹을 것을 찾을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한 결과가 현재 우리의 모습이다. 또한, 연장을 발명하면서 사람들은 앉아서 생활하는 방식에 익숙해졌고, 씨앗을 발견하면서부터는 떠돌아다니지 않고 한 곳에 정착하여 농경생활을 시작하였다. 하지만, 유라시아를 중심으로 한 스탭 기후 내 지역에서는 농사를 지을 수 있는 기후조건이 되지 못하기 때문에, 동물들을 기르는 생활을 하였다. 대륙 아래쪽으로는 식물과 더불어 살고, 위쪽은 동물과 더불어 살아가는 모습이 일반적이었다. 식물과 더불어 산 사람과 동물과 더불어 산 사람들 사이의 종교관, 운명관, 인생관, 여성관, 문명관, 부부관 등은 하늘과 땅 차이다. 그런데,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세상을 바꾸고 있는 21세기 정신과 문명들의 모태는 바로 동물과 더불어 산 사람들에게서 나온 것이다.
이 사람들은 세 가지 방법으로 살았는데, 하나는 무역을 해서 살아가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같이 살면서 왔다 갔다 하든지, 한 영토에서 모여 살든지 하는 것이고, 마지막으로 약탈을 해서 살아가는 것이다. 약탈은 남에게서 물건을 뺏는 것이다. 만약, 한반도 전역에서 쌀 한 톨 나지 않는다면 우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 몽골의 초원 전체에 초지가 없어져 풀을 먹고사는 동물들이 죽음으로써 사람의 먹을거리가 없어져 한두 명이 아닌 수십만 명이 죽어간다면 이들은 어떻게 살 수 있을 것인가?
처음에는 구걸을 할 수도 있겠지만, 그 방법도 통하지 않는다면 결국 식량을 뺏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런 약탈행위가 법적으로 허용된 것은 아니지만, 수천 년 전 이 지구상에는 어쩔 수 없는 생존의 요구 상 약탈행위를 하였고, 이것은 최초의 경제행위였다.
작년 12월 31일, 전 세계는 새로운 밀레니엄을 위해 호주 밑에 있은 테즈메니아반도에서 아일랜드를 거쳐 워싱턴, 서울에 이르기까지 지구적인 행사를 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몽골 고원의 3천 3백만 마리 가축(양, 염소, 말, 소, 낙타 등 5가지)에게는 축제의 밀레니엄 맞이가 아닌 죽음의 밀레니엄 축제였다. 엄청난 건조기후와 추위가 닥쳐 초원이 붕괴돼 작년 6월말까지 3백만 마리 이상의 가축이 죽었다. 가축이 죽으면 사람의 먹을거리가 없어져 사람이 죽는다. 적당히 죽으면 상관이 없는데 가축들이 이렇게 죽어나갈 때는 상황이 다르다. 이와 같은 자연의 악조건 속에서 먹을 것을 위해 끊임없이 자기 영역의 밖, 열린 세상을 향해 진격해 나간 것이 유목민족의 특징이다.
요컨대, 우리가 현재 사용하는 인터넷, 디지털, 벤처, 지구촌, 세계 경영, 열린 마음, 지구공동체, 연방제, 지방자치, 다국적기업 등의 개념들은 정착민족보다는 이러한 유목민족의 특성에서 기인하였음을 알 수있다.
21세기 유목이동문명의 도래
미래학자들의 그림 속에 ‘숨은 그림’
도대체 우리는 어디서 어디로 가고 있는가?
오늘날 세계는 새로운 문명의 전환기를 맞이하고 있다. 이 말은, 과거 인류가 석기문명시대에서 청동기문명으로, 다시 철기문명으로 바뀌면서 이전과는 상상할 수 없는 새로운 삶을 누리게 되었듯이 오늘날 일어나고 있는 전지구적인 격변의 대폭풍은 인류의 삶을 전혀 새로운 세상으로 옮겨놓는 거대한 지각변동을 의미한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다시 한번 생각해 보자. 도대체 우리는 어디서 어디로 가고 있는가? 이것이 오늘 우리의 화두(話頭)다.
이 변화의 거센 물살은 거기에 자기 몸을 던져 함께 굽이쳐 흘러가는 사람만 데리고 간다. 그렇지 않은 사람은 낙오자가 되어 역사발전의 바깥으로 버려질 수밖에 없다. 유전학에서 말하는 적응과 도태의 법칙은 자연환경과의 관계에서만이 아니라 역사 환경과의 관계에서도 그대로 적용되는 것이다.
국내외의 수많은 학자들은 이 격동의 전환기를 다양한 개념으로 설명해왔다. 잘 알다시피 앨빈 토플러는 <제3의 물결>이라는 말로, 피터 드러커는 <글로벌 경제>라는 말로, 그리고 래스터 서로우는 <지식의 지배>, 사무엘 헌팅턴은 <문명의 충돌>이라는 말로 이 거대한 변화의 윤곽을 그려보려고 애썼다. 이들 설명에 따르면 변화의 키워드들은 디지털 또는 인터넷, 벤처, 글로벌, 탈냉전 등이다. 그러나 나는 이 모든 설명들이란 따지고 보면 결국 부분적인 설명에 그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미래학자들이 제시하는 그림들 속의 숨은 그림, 우리가 지금 정신없이 흘러가고 있는 변화의 핵심은, 한마디로 정착문명의 긴 지배가 마감되고 드디어 유목이동문명의 시대가 시작되고 있다는 것이다.
21세기는 유목이동마인드가 지배한다
인간은 지난 오랫동안 정착문명 속에서 살아왔다. 정착은 반드시 어떤 근거지를 필요로 한다. 처음에 그것은 농경지 즉, 땅이었다. 그리고 다음에는 자본이었고 영토였으며 또한 자원이었거나 때로는 이념이기도 했다. 개개인들에게는 학벌과 기득권과 안정된 직업과 평생직장 등이 정착문명세계에서 살아가는 근거지들이었다. 이것은 본질적으로 이익의 칸막이, 생존의 고정된 경계라는 성질을 지녔다. 그러나 이제 모든 칸막이는 무너지고 있으며 경계는 파괴되고 정착의 고정된 근거지들은 안개 속으로 사라지고 만다. 이제, 자신의 칸막이 안에서 안주하며 살고자 하는 욕망은 더 이상 허락되지 않는다. 일찍이 마르크스가 현대문명의 미래를 예상하며 말했던 “모든 것은 공기 중으로 사라진다”는 예언이 마침내 실제가 되고 있는 것이다.
과거의 낡은 정착문명의 마인드를 가지고 21세기 새로운 유목이동문명 시대를 살겠다고 아무리 몸부림쳐봐야 그 어떤 것에서도 성공할 수 없다. 그에게는, 미안하지만, 오로지 시대로부터의 도태, 역사로부터의 가혹한 처벌만이 있을 것이다.
실제로, 오늘날 세계는 우선 지구를 두개의 칸막이로 나누었던 경직된 이념의 대립구도가 무너지고 있다. 또한 거대한 전자통신망으로 지구촌이 하나로 연결되면서 이제까지의 지식과 정보의 수명이 갈수록 단축된다. 디지털 기술과 인터넷을 통해 지식과 정보의 칸막이가 일순간에 무너져 내리는 이 변화는, 종이와 인쇄술의 발명 이후 인류 최대의 지적 혁명을 불러오고 있다. 과거에는 남보다 먼저 획득한 지식과 정보로 몇 십 년 동안 잘 살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 아무도 지식과 정보를 독차지할 수 없으며 그것을 제 칸막이 안에 가두어 놓고 자신의 평생을 거기에 의탁할 수 없게 되었다. 항상 새로운 지식과 기술, 정보를 찾아 나서지 않으면 안되는 유목이동시대가 된 것이다.
뿐만 아니라, 20세기는 ‘대량생산-대량소비’ 중심의 산업시대였다. 생산설비도 엄청난 규모였으며 고용규모, 매출액, 경영조직 등이 모두 어마어마한 대규모성 속에 사로잡혀 있었다. 이런 ‘규모의 경제’는 시장의 변화에 유연하게, 그리고 적극적으로 대응할 수 없다. 생산되는 제품을 바꾸려면 설비전체를 뜯고 다시 갖추지 않으면 안되었다. 또 경영조직도 상명하복식 부서체계여서 위에서 명령하지 않으면 실행되지 않는 경직된 업무체계를 벗어나지 못했다. 대량생산을 지향하는 대규모 생산체제였으므로 상품도 획일적이었고 시장 역시 대규모의 단일지배시장이 중심이었다.
그러나 이제 단일한 거대시장이 붕괴되고 수많은 틈새시장(niche market)과 틈새문화가 창궐한다. 모든 주변부의 것들이 새로운 중심을 형성하는, 인류문명사상 새로운 시대가 열리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산업은 과거의 거대기업 중심․상명하복식 부서체계․거대설비와 경직된 경영구조․소품종 대량생산체제 등을 특징으로 하는 20세기적 산업구조와 결별하고 있다. 시장과 문명의 급격한 변화에 기동적이고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 다품종 소량생산체제, 유연생산(flexible production)전략 중심의 유목이동문명형 산업체제로 전환되고 있는 것이다. 벤처기업은 이 새로운 유목이동문명의 새로운 기업형태이다.
과거에는 자원이 많은 나라가 잘 살수 있었고 학벌이 좋은 사람이 기회를 얻을 수 있었으며 한번 시장을 지배한 자는 거의 고정적인 시장점유율을 누릴 수 있었다. 직장도 처음 취업한 곳에서 정년퇴직까지 하는 평생직장제 사회였으며 상품의 라이프 사이클(life cycle)도 10년 20년씩으로 길어서 한번 시장에 등장한 상품은 오랫동안 팔릴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한가지 기술을 익혀서 평생을 먹고살 수 있는 숙련공의 시대였다. 시장도 상품도 기업도 모두 변화가 없는 고정성, 정착성 속에 있었으며 그런 조건 아래에서 각자 자기들의 이익의 칸막이를 치고 그 속에서 기득권을 지키는 것이 주된 일이었다.
그러나 이제 문명의 전환이라는 거대 폭풍이 불어닥치면서 지금까지의 모든 정착세계와 이익의 칸막이들은 사정없이 파괴되고 근원적으로 붕괴된다. 이것을 어떤 사람들은 '크로스 오버(Cross-Over)시대‘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그 가장 정확한 본질은 ’유목이동문명‘의 도래라는 말로밖에 달리 설명할 도리가 없다.
여러 미래학자들 가운데 유목문명의 도래를 정확하게 읽어낸 사람은 프랑스의 석학 자크 아탈리 정도이다. 최근의 저서 《21세기 사전》을 통해 국내에도 잘 알려진 그는 앞으로 21세기는 '도시유목민'의 사회가 될 것이라고 전망하였다. 그는 ‘유목민’이 21세기 인간의 전형이며 유목민의 가치와 사상, 그리고 욕구가 사회를 지배할 것이며 이미 지난 30년 전부터 인류의 5%가 유목화되었고 향후 30년 안에 그 비율은 10%로 늘어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마디로, 지상 위에 고정되어 있던 모든 것들은 이제 더 이상 그 지배권과 기득권이 보장되지 못한다. 그것이 기업이든 학교든 군대든 정부든, 급격한 세계의 변화에 얼마나 유연하게, 얼마나 창조적으로 대응하느냐 그렇지 못하느냐에 따라 그 운명이 결정된다.
실제로, ‘유목성’, ‘이동성’ 이 말을 얼마나 깊게 자각하느냐 아니냐에 따라 우리 운명이 바뀐다는 것이 이미 여러 사례로 증명되고 있다. 손정의, 빌 게이츠, 한 사람의 평범한 인간에서 기껏해야 10여 년의 짧은 시간에 일약 세계적인 CEO, 세계적인 거부(巨富)가 된 이 주인공들은 모두 유목이동문명의 도래를 누구보다도 일찍 발견하고 그 문명 전화의 선두에 나섰던 사람들이다.
자, 그러면 우리의 현재 사정은 어떠한가? 요즘 한국 벤처기업들이 위기에 빠졌다고 한다. 다시 굴뚝산업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는 형편이다. 왜 그럴까? 실상을 들여다보면 시쳇말로 ‘무늬만 벤처’인 벤처기업이 하나둘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껍데기만 모방한다고 다 벤처기업이 되는 것은 아니며, 형태가 비슷하다고 무조건 유목이동형 벤처기업으로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벤처정신을 이끄는 CEO의 유목이동 마인드이다.
‘제1차 유목이동문명세계’를 개척한 13세기 칭기스칸
그러면, 유목이동마인드의 전형을 어디서 얻을 것인가? 그 해답은 13세기 칭기스칸에게 물어야 한다. 우리는 그의 대제국 경영으로부터 유목이동문명 시대 CEO의 교과서를 발견하게 된다.
칭기스칸, 그는 당시의 농경정착문명을 밀어젖히고 인류 역사상 최초로 유목이동문명의 지배시대를 연 인물이며 그가 이룩한 13세기 지구촌은 유목이동문명에 의한 최초의 글로벌체제였다. 나는 이 13세기의 ‘팍스 몽골리카’가 말하자면 ‘제1차 유목이동문명의 세계’가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맞이하고 있는 21세기의 ‘팍스 인터넷티카’는 그러니까 ‘제2차 유목이동문명세계’의 도래가 되는 셈이다.
인류는 약 1만년, 수렵과 채취 생활을 그만두고 문명이라는 이름으로 정착하기 시작했다. 우리가 아는 메소포타미아문명, 황하문명, 인더스문명 하는 것이 그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농업혁명이라는 정착민을 위한 최고의 비약을 겪게 되고, 문자라는 또 하나의 혁명적 발명을 하게 된다.
한편, 당시에 온대와 아열대가 아닌 곳에서 사는 사람이 있었다. 지금의 몽골지방 같이 대단히 자연조건이 열악한 상태의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그들이다. 그들의 대지는 그들에게 농사를 지으며 한 곳에 가만히 머물러 사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들의 삶은 계속 수렵과 목축, 혹은 약탈만으로 생존이 가능한 것이다. 가진 것이 있는 자들과 서로 바꾸어 먹을 수만 있어도 좋으련만, 정착하여 사는 사람들은 견고한 칸막이를 쳐놓고(높은 성곽과 닫힌 사회구조) 도무지 나누어주지 않으려고 했다.
세계지도를 펼쳐 보면, 유라시아 대륙 한 복판에는 가혹한 시련의 들판이 동서를 가로지르는 띠 모양으로 펼쳐져 있다. 음산하기 그지없고 황량한 들판! 그곳은, 풀 한 포기 구경하기 어렵고 나무 한 그루 찾아 볼 수 없다. 이것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 몰아치는 모래바람 속에서 마른 목을 적실 물 한 모금 찾아보기 어려운 그곳은, 방향을 가리켜 줄 만한 그 어떤 표식도 없고 사방을 둘러봐도 불러볼 사람 하나 없다. 영하 40도의 추위와 맹렬한 더위만이 자리를 바꿔가며 인간의 방문을 한사코 거부하는 땅이다. 그곳엔 인간 영혼을 위로할 꽃의 향기도 없고 수고로운 인생을 잠시 쉴 나무 그늘도 없으며, 대지에 심어 놓고 생명의 육성을 노래하며 수확을 기다릴 씨앗 하나 날아오지 않는 곳이다.
몽골을 한번이라도 여행해 본 사람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경험이겠지만, 몽골 초원 들판에 처음 섰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잠시 입을 다물고 순간적으로 긴장하게 된다. 그 들판을 바라보는 순간, 그 동안 머리 속에 저장돼 있던 생존방법이 단 하나도 먹혀들 것 같지 않은 어떤 한계상황을 눈앞에서 만나게 되기 때문이다. 인간이 정착문명 속에서 누려온 생존의 방법이 그 황량한 들판에서는 전혀 쓸모 없이 돼버리는 당혹스러움으로부터 누구도 쉽게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이처럼, 생존조건이 이토록 처참하게 열악한 그 곳의 사람들에게 선택은 두 가지 밖에 없었다. 가서 뺏어먹느냐 아니면 그냥 살다가 굶어 죽느냐. 적어도 12세기까지는 그냥 굶어죽는 방법을 택하는 경우가 많았다. 왜? 그들의 힘이 정착민보다 약했으니까.
그러나, 13세기가 되면서 이 비극과 불행의 역사는 마침내 뒤집힌다. 칭기스칸이 등장한 것이다. 칭기스칸은 그 스스로가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척박한 땅을 끝없이 이동하면서 살아야 하는 자신들의 유목 운명과 그 비극적 슬픔 속에서 유목이동마인드라는 가치를 찾아내어서 오히려 유라시아 대륙을 지배하는 힘으로 만들었던 인물이다. 이것이야말로 오늘날 벤처정신의 핵심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칭기스칸. 우리보다 훨씬 작은, 유라시아 동쪽의 한 약소국에 지나지 않는 몽골 부족에서 태어났으나 다른 누구도 생각할 수 없는 놀라운 발상의 전환과 유연한 사고를 지니고 거기다가 어떤 고통도 견뎌내는 비범한 인내력을 가진 이 사내는, 사분오열(四分五裂)되어 서로 죽고 죽이던 몽골족을 통일하여 칸이 되었고 광활한 유라시아대륙 전체를 지배하였다.
칭기스칸은 나폴레옹과 히틀러, 알렉산더 대왕이 정복했던 면적을 모두 합친 것보다 더 넓은 777만 평방 킬로미터의 영토를 정복했다. 그 후대인 쿠빌라이칸 때에는 중국을 점령하여 그 규모는 두 배 이상 늘어나게 된다. 언뜻 보기에 영토가 넓다는 것이 자랑인가 싶겠지만, 100만~200만의 인구를 가지고 1억~2억의 인구를 10~20년 내의 시간에 모두 정복하고 150년 동안 그 제국을 이끌어 나갔다면 놀라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일본이 아무리 악랄하게 우리를 정복했을지라도 그 점령 기간은 반세기도 채 못된다. 이를 볼 때, 몽골제국이 그토록 오랫동안 제국을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력과 힘에 의한 강압적인 정복이 아닌 다른 이유를 갖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1995년 워싱턴포스트지가 ‘지난 1천년 중 인류사에 영향을 준 가장 중요한 인물’로 칭기스칸을 선정하면서 이렇게 평가했다. “지나간 1천년에서 가장 거대한 사변은 한 단일 민족이 전 세계에 자신의 기질을 완벽하게 발휘한 것이다. 그와 그 후손들은 유라시아 대륙에 광대한 자유무역지대를 만들어냈고, 동서양 문명의 연결을 강화했다. 이는 중세의 GATT 체제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인터넷이 발생하기 7세기 전에 이미 전 세계적인 콤비네이션을 구축해 놨다. 그는 사람과 기술을 이동시켜 세계를 좁게 만든 인물이다.”
실제로 그의 세계정복과 지배는 인류 역사에 엄청난 결과를 불러왔다. 우선, 칭기스칸의 유럽 정복과정에서 흑사병이 일어났다. 그 결과 유럽 인구의 3분의 1이 사라지게 되었고 개인 노동력의 가치는 전에 없이 높아졌다. 그에 따라 유럽의 봉건체제는 그 기반이 무너지게 되었으며 자본주의가 등장할 수 있게 만들었다. 또한 문학적으로도 ‘기행문’이라는 장르가 탄생할 수 있었다. 저 유명한 마르코폴로의 여행기가 그것인데 이는 마르코폴로가 몽골의 쿠빌라이칸 지배하의 중국을 여행한 기록이었다. 콜롬버스는 바로 이 여행기를 읽고 ‘중국으로 가는 길’을 새롭게 찾아가다가 신대륙을 발견했던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칭기스칸의 전쟁은 소수가 다수를 향해 벌여서 이긴 전쟁이며 그것도 원정전쟁이었다는 사실이었다는 점에서, 우리는 정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칭기스칸과 그의 동지들은 중국과 이슬람, 유럽 등 풍요로운 땅을 누리면서 수많은 인구와 군사를 거느리고 있던 주변의 거대한 정착문명 세계와는 비교조차 안 되는 소수의 군대와 소수 인구의 명백한 약자였다. 그들은, 그와 같은 핸디캡을 안고서도 인류역사상 정착문명의 시대를 중지시키고 최초로 유목이동문명의 지구촌을 건설하였다. 도대체 이것은 어떻게 설명가능한가.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그것은 CEO의 리더쉽이 이룩한 승리였다고 밖에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고 본다.
칭기스칸의 이야기는 힘없고 가난한 수많은 약자들에게 들려주는 어떤 희망의 이야기이다. 그리고 그것은 오늘날 손정의나 빌 게이츠 등 벤처시대의 성공한 사람들로 이어지고 있다. 약자도 강자가 될 수 있다는 것, 비록 한밑천 단단히 쥐고 있지 못하지만 창의와 아이디어, 기술을 가지고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유연성을 무기로 크게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이 칭기스칸과 벤처시대 영웅들의 공통된 이야기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