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사람이 제 목숨을
무엇과 바꿀 수 있겠느냐?" (26)
'목숨을'로 번역된 '프쉬켄'(psychen)의 원형 '프쉬케'(psche)는 '숨쉬다', '바람불다'
라는 뜻을 가진 '프쉬코'(psycho)에서 유래한 명사인데, '목숨'(life; 요한10,17)이라는
뜻뿐만 아니라 '영혼'(soul; 마태10,28)이라는 뜻도 가지고 있다.
즉 이것은 육체의 생명 뿐 아니라, 육체의 죽음 후에도 소멸되지 않는 영혼도 가리키는
이중적인 용어이다.
마태오 복음 16장 25절에 나오는 역설적인 교훈은 이러한 육적 생명과 영적 생명 간의
대조 관계로 이해할 때, 그 의미가 더욱 분명해진다.
즉 자신의 육적인 생명에 대한 애착만을 갖고 이것을 지키려는(히브2,15) 자는 끝내는
육적인 목숨과 더불어 영적 목숨까지 잃게 되지만(루카12,20), 예수님의 참 제자로서
자신의 육적인 생명을 주님을 위해 바치고자 하는 헌신된 삶을 살 때, 오히려 그의 영혼이
살 뿐 아니라 종말에 그 육체 또한 주님 안에서 진정한 의미의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될 것임을 뜻한다(야고1,19; 묵시21,4).
또한 '얻고도'에 해당하는 '케르데세'(kerdese; he gains)는 능동태인데 반해,
'잃으면'에 해당하는 '제미오테'(zemiothe; lose)는 수동태로 되어 있다.
이처럼 서로 상반되는 '태'(voice)는 본문의 의미를 더 깊이 있게 전달해 준다.
즉 이 문장은 사람이 온 세상(천하)을 얻고자 적극적으로 힘쓰는 노력은 자발적으로
얼마든지 가능하겠지만, 이와 대조적으로 하느님께서 그의 목숨을 거두어가심은
인력으로서는 어찌할 수 없다는 사실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사람이 제 목숨을 무엇과 바꿀 수 있겠느냐?'
이 구절을 직역하면, '사람이 자신의 목숨을 위한 대가로 무엇을 줄 수 있겠는가?'
(what shall a man give in exchange for his soul?)이다.
한글 새성경에서 '제 목숨을' 다음에 '주고'에 해당하는 '도세이'(dosei; shall give)가
빠져 있는데, 이것은 미래형이다.
이것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그 일이 관습적으로 일어날 것임을 나타내는 '격언적 미래형'이다.
이것은 이 세상의 사람들 모두가 자신의 목숨을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가장
귀한 것으로 여기고 있음을 나타낸다.
결국 인간 생명의 최고 가치성과 생명의 단(일)회성을 강조한 말이다.
그런데 앞절인 마태오 복음 16장 25절에서 예수님께서 당신을 위해 세상 모든
사람들이 최고로 소중히 여기는 하나밖에 없는 목숨을 바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래서 읽는 이로 하여금 상당한 혼란을 가져오게 한다. 그러나 이것은 역설적인
진리이다.
말하자면, 사람들에게 있어 목숨보다 더 소중한 것은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을 통해,
유한한 육적인 생명보다 훨씬 소중한 영생의 가치를 강조함으로써, 영생의 큰 보상을
얻기 위해서는 그토록 소중한 목숨까지도 권능의 예수님께 기꺼이 바칠 수 있는 각오를
촉구하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