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다른 프리미엄 브랜드들과 마찬가지로 메르세데스-벤츠도 전동화에 적극 나서고 있다. 하지만, 기존 승용 라인업을 잇달아 전기차로 전환하는 것이 아닌, 메르세데스 EQ라고 하는 서브 브랜드를 통해 순수 전기차를 선보이는 방법을 채택하고 있다. 이러한 독자적인 브랜드를 통한 전기차 라인업 확대는 메르세데스-벤츠가 신중하게 전기차 전환에 임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부분이다.
2021년에 출시된 EQS는, S클래스에 준하는 크기와 고급감을 중시한 전기차지만, 이 즈음에 S클래스 역시 풀모델 체인지를 통해 신형 모델을 선보였다. 2022년 4월 20일에 공개된 BMW 7시리즈가, i7이라는 이름의 순수 전기차를 선보인 것과는 다른 방향이다.
EQS와 같은 전기차 전용 플랫폼 ‘EVA2’를 기반으로 개발된 EQE도 차명만으로 볼 땐 E클래스의 전기차 버전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EQS과 단순히 S클래스를 표방한 전기차가 아닌 EQ 브랜드의 최상위 모델의 포지션을 하고 있는 만큼 EQE 또한 규범이나 현상의 경계를 허문 운전자 중심의 전기차라고 메르세데스-벤츠는 말하고 있는 것 같다.
EQS와 흡사한 외관디자인은 매우 대담하며, 이른바 일반적인 비즈니스 세단과는 방향을 달리 하고 있다. 차량의 크기는 전장 4946mm, 전폭 1961mm, 전고 1512mm로 EQS에 비하면 전장은 270mm 짧지만, 의외로 전폭은 35mm 넓다. 전고는 거의 동일한 수준. 마찬가지로 휠베이스는 90mm 짧지만, 여전히 3120mm의 넉넉한 길이를 보여준다. EQE의 휠 사이즈는 21인치가 최대로, 이 외에도 19인치, 20인치 크기의 타이어를 선택할 수 있다.
전용 플랫폼을 통한 넓은 실내 공간
크게 다른 것은 사이즈 뿐만은 아니다. EQS가 테일게이트 전체가 열리는 해치백 타입이라면, EQE는 일반 세단과 마찬가지로 열리는 트렁크 도어를 가지고 있다. 비즈니스 세단을 표방하기 때문이라고 이해할 수도 있지만, 단순히 컨셉의 차이는 아니라고 보인다. EQS보다 차량의 전체 길이가 짧은 만큼, 뒷좌석의 헤드룸 뒤로 테일 게이트용의 힌지를 장착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에 이러한 방식을 채택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 E클래스와 실내 공간에서도 차이를 보인다. 실내공간은 E클래스 세단보다 80mm 길고, 무릎공간도 27mm 더 여유롭다. 차량 하부에 탑재된 배터리 때문에 시트의 위치는 65mm 높다. 2열에 착석했을 때 무릎의 위치가 살짝 높아진 부분을 확인할 수 있지만, 큰 차이는 없다.
운전석에 앉으면, 외관에서 보았던 유려한 스타일 덕분에 프론트 윈도우의 경사가 낮은 것이 느껴진다. A필러가 다소 시야를 가리지만, 전체적인 공간은 차량의 크기에 비해 훨씬 넓고 쾌적한 분위기를 느끼게 한다.
EQS에서 인상적이었던 전체 길이 141cm의 거대한 하이퍼 스크린은 EQE에서는 옵션 사양이다. 유럽에서의 옵션가격은 대략 1천만원 정도인 만큼, 옵션을 통해 선택할 수 있게 하고 있다. 시승한 EQE 350+는 모두 신형 S클래스나 C클래스와 같이 센터 콘솔에 세로형 터치 스크린를 설치한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이 적용된다. 사실 이것만으로도 실내의 디지털화된 모습과 첨단의 이미지는 충분히 체감할 수 있었다.
3개의 대형 스크린이 가로로 배열된 ‘MBUX 하이퍼 스크린’의 경우 조수석 앞쪽의 스크린을 통해 동영상 시청이 가능하다. 하지만, 운전자의 경우 계기판에 위치한 카메라가 시선을 인식해, 동영상으로 시선이 가는 경우 영상재생이 중단된다. 운전자의 주의력을 분산시키지 않기 위한 안전장치다.
2열 시트의 경우 발을 놓는 공간이 여유롭다. 반대로 헤드룸에 여유가 있다고는 말하기 어렵지만, 머리 위에 위치한 대형 선루프를 통해 뛰어난 개방감을 연출한다. 차량의 외형처럼, 좀 더 쿠페라이크한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뒷좌석은 4:2:4 분할 방식으로, 시트를 접는 경우 적재공간을 확대할 수 있다.
기본 적재공간은 430리터로 현재 E클래스를 운전하는 분이라면 다소 좁게 느껴질 수도 있다. E클래스에 비해 100리터 정도 적재공간이 좁지만, 외관디자인을 위한 작은 희생 정도로 볼 수 있다.
놀라운 정숙성
이번 시승은 독일 프랑크푸르트 일대의 다양한 시승코스에서 진행되었다. 독일 프랑크푸르트 시내. 메세에 가까운 곳에 위치한 호텔을 기점으로, EQE 350+와 EQE 500을 시승했다. 이번 시승기를 통해 소개하는 차량은 국내시장에도 가장 먼저 도입될 예정인 EQE 350+. 최고 출력 292마력, 최대 토크 56.5N·m을 발생하는 전기 모터를 리어 액슬에 탑재한 후륜 구동 모델이다. 구동용 배터리의 용량은 90kWh로, 주행가능 거리는 WLTP 기준 최대 654km이다. 참고로 EQE 라인업에는 이미 EQE 500 4MATIC과 함께 고성능 모델인 ‘AMG 43/AMG 53’도 공개되었다.
퇴근 시간이 다가오면서, 정체가 시작된 프랑크푸르트 시내를 주행하며 가장 먼저 느낀 점은 압도적인 정숙성이다. 그리고 노면이 고르지 않은 도로에서도 대단히 매끄러운 주행질감을 보여준다는 것이었다. 전기차기 때문에 차량에서 들려오는 소음도 거의 느낄 수 없지만, 주변 차량의 소음도 잘 차단하고 있다.
전기차인 만큼 조용한 것이 당연한 이야기로 들릴 수도 있지만, 사실 국내 출시된 많은 전기차들은 속도를 높여 주행하면 엔진소리가 들리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주변의 소음이 더 크게 들리는 경향이 있다. EQE의 수많은 전기차 가운데에서도 정숙성에 있어서는 탁월한 모습을 보여준다. 이것을 능가하는 것은, EQS 정도라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EVA2 플랫폼의 전기 구동 시스템인 ‘eATS’는 섬세한 진동을 흡수하기 위해서 서브프레임에 마운트되어 있고, 이 서브프레임은 차체에 고무 마운트로 연결되어 있다. 게다가 고주파 노이즈를 차단하기 위해 수지 커버로 덮여 있다. 열이 상당히 많이 나는 부분인데도, 이렇게 처리할 정도로 정숙성에 공을 들였다는 의미이다.
E클래스 이상의 주행 질감
가속페달을 조작하면 전기모터의 순간적이고, 압도적인 출력을 쏟아내는 타입이라기 보다는 온화하게 속도를 높여간다. 짜릿한 가속감을 추구하는 것이 아닌, 운전자와 동승자에게 스트레스를 주지 않는 것은 확실히 기존 메르세데스-벤츠의 차량들에서 경험했던 맛이다. 토크는 넘치지만, 절대적인 파워는 차량의 무게를 감안할 때 적절한 수준이다. 그래서 가속페달에 힘을 실어도 느리진 않지만, 눈이 번쩍 뜨일 정도로 빠른 것은 아니다. 현시점에서는 EQE 350+가 엔트리 모델이다. 이 정도의 성능이면 충분하다고 느껴지며, 불만은 갖을 수 없다.
2.3톤에 달하는 무게의 의식되는 움직임이지만, 대부분의 도로 상황에서 쾌적한 주행을 이어갈 수 있다. 스티어링을 좌우로 움직이면 전륜의 움직임 또한 경쾌하게 이어지며, 적당한 페이스를 유지하는 한 와인딩 로드도 즐겁게 주행할 수 있다. 휠베이스는 3120mm에 달하지만, 시승차에는 후륜 조향 시스템이 적용되어 좁은 도로에서 U턴 시에도 불편함을 느낄 수 없다. 실제로 후륜이 움직이는 모습을 차량 외부에서 보면 저 정도나 움직이나 싶을 정도로 각도가 크게 느껴지지만, 실제 운전 중에는 큰 위화감을 느낄 수 없다.
고속주행시의 안정감도 뛰어나다. 독일의 아우토반에서 200km/h가 넘는 속도로 주행했지만, 비가 내리는 가운데도 화살처럼 직진하는 모습에 감탄하게 된다.
EQE는 독일 브레멘과 중국 베이징의 총 2개 공장에서 생산되며 2022년 하반기에 전 세계 시장에 출시되며, 국내 시장에도 물론 출시될 예정이다. 디자인에 있어서는 EQS와 마찬가지로 호불호가 있는 것으로 보이며, 제품 구성면에 있어서도 의아한 부분이 있지만, EQE 또한 메르세데스-벤츠에서 경험할 수 있었던 고급감과 편안함, 쾌적성을 고스란히 이어오고 있다. 여기에 전기차의 장점을 살려 더욱 벤츠다움을 증폭시키고 있다. 유
유럽시장의 경우 벤츠는 기업들의 비즈니스 세단으로 적극 사용되고 있는 만큼, 환경을 중시하는 회사들의 법인차량으로 탄탄한 지지를 받지 않을까 생각된다. 그리고, 충전에 대한 걱정만 없다면, 이제 E클래스를 선택해야 하는 이유가 떠오르지 않을 만큼 주행질감도 뛰어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