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정관념
기존의 제도나 방법에서 벗어나 변화를 시도해보고 싶을 때가 있다. 변화 후에는 예기치 못한 위험이 따를 수도 있다. 어느 쪽을 선택해야 될지 망설여지기도 한다. 그럴 땐 용기와 결단력이 필요하다. 전혀 뜻밖의 일이었지만 그런 광경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지난해 봄, 모임의 두 친구가 한 달 간격으로 아들 장가를 보냈다. 두 가정이 다 주례사를 혼주의 덕담으로 갈음하는 결혼식을 올렸다. 두 친구는 ‘주례 없는 예식을 치러보자’고 약속을 한 줄 알았다. 울산에서 예식을 먼저 올린 친구는 자신이 덕담을 한 후 신부 어머니가 했다. 서울에서 예식을 치른 친구는 자신이 덕담을 한 후 신부 아버지가 했다.
서울에서 예식을 치른 혼주와 함께 관광버스를 타고 내려오다 알았지만 둘은 그런 약속을 하지 않았다. 주례 없이 치르자는 신랑신부 두 쌍의 의사가 우연히 일치했을 뿐이었다. 두 친구는 형편상 예식에 서로 참석하지 못하여 상대가 주례 없는 결혼식을 치른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
두 친구가 주례 없는 예식을 치른 까닭은 주례를 선정하고 답례를 하는데 신경이 쓰여서 였다고 한다. 인물을 선정하기도 그렇거니와 사례비를 얼마나 줘야 할지 아니면 선물을 어떤 것을 줘야 할지 좀 망설여진다는 것이었다. 예식장에 의뢰하면 전속 주례를 쉽게 정할 수 있으나 주례사의 내용이 틀에 박힌 것이라 식상하게 느껴진다는 것이었다. 그럴 바에야 주례를 서게 하는 것보다 ‘자신들을 잘 알고 있는 부모가 덕담을 하는 게 낫다’는 신랑신부의 발상이야말로 ‘고정관념으로부터의 과감한 탈출’이라 할 수 있다.
두 친구로부터 그런 이야기를 들었음에도 나는 딸 혼사를 치르면서 ‘주례를 세웠다. 부모의 덕담으로 주례사를 대신한다는 게 왠지 쑥스럽게 느껴졌다. 주례사에는 신랑신부의 결혼을 선언하는 의미가 담겨 있기도 하지만 결혼 생활을 하며 지켜야 할 교훈적 요소가 담겨 있기도 하다. 그런 주례사를 어찌 부모가 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는 자신에게는 흔히들 ‘스님이 제 머리 깎지 못 한다’라는 말과 ‘제 자식 교육 못 한다’는 말이 고정관념으로 자리 잡고 있어서 였다.
작금 대구지역에도 서울을 비롯한 대도시처럼 주례 없이, 심지어 부모의 덕담도 생략한 채 사회자에 의해서 진행되는 결혼식도 있다고 한다. 사회자와 부모의 덕담으로 진행되는 결 혼식이 뿌리내릴 지는 미지수이지만 바람직한 현상이라는 생각이 든다.
주례 없는 결혼식이 좋게 느껴지는 점은 가문의 자랑이나 과시가 드러나지 않아서다. 혼주나 그 자녀와 친분이 있는 유명인사가 주례를 선 예식에 주례의 약력이 소개되면 돈도 배경도 없는 하객에겐 가문의 과시로 비칠 수 있어서다.
주례사를 혼주의 덕담으로 대신하는 것과 달리 결혼 초대장은 고급 용지에 인쇄하여 우편으로 보내고 있는 가정이 많다. 인쇄된 초대장이나 혼주 측에서 손수 만든 초대장을 스마트 폰의 사진에 담아 카톡이나 문자메시지 보내는 이도 있다. 격식을 중시하는 이들은 그런 통지 방법을 두고 성의가 부족하거나 예의에 좀 벗어난다고 할 수 있다. 디지털 시대의 신속함과 편리함을 추구하며 사는 게 보편화 되어가고 있는 지금, 종이 초대장을 꼭 우편으로 발송해야 할까. 스마트폰을 사용하지 않는 고령층에게라면 모르지만.
결혼식에 참석하는 하객의 수가 많아 놀라기도 한다. 하객이 많이 북적대는 결혼식에 가면 혼주나 그 자녀의 사회적 활동 영역이 넓다는 선입견을 갖는다. 하객수가 불과 몇 십 명 정도의 작은 결혼식을 치른 이가 인산인해를 이루듯 하는 결혼식장에 가면 열등감을 느낄 수도 있다.
일전에 하객을 가까운 친인척이나 몇몇 친지들로 한정하고 예식비용도 최소화하였다는 어느 저명인사의 ‘작은 결혼식’이 언론에 보도되었다. 하객들이 문전성시를 이루기를 좋아하는 한국인의 정서에 맞지 않을 수도 있다. 몇몇 선진국에서 행해지고 있는 ‘작은 결혼식’을 본받았는지 모르지만 바람직한 예식 문화로 여겨진다. 그런 결혼식을 올린 이도 ‘고정관념으로부터의 과감한 탈출’을 시도하였다고 할 수 있다.
고정관념은 생각이 한 방향으로 굳어버린 것이다. 생각에 고장이 생겨 멈춘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양속을 해치지 않거나 법에 저촉되지 않는 한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방법을 달리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변화를 체험해 보는 ‘고정관념 탈출’은 관행이나 인습에 대한 거부며 도전이기도 하다. 이전의 방법과 달리 실천하는 것이 이전의 것보다 꼭 낫다거나 옳다고 할 수는 없다. 방법의 변화를 시도하는 그 자체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다.
2016. 4.
첫댓글 너무나 빠르게 변하고 있는 세상에 맞춰 고정관념도 다소 변하고 있는거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최상순드림
시대에 따라 세월에 따라 그 시대 배경이 변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각도 변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아직도 인간은 구석기나 신석기 같은 원시시대의 삶을 살아가고 있겠지요. 그렇지만 어느 시대에 어떤 변화를 가지고 오든 인간이 가져야 할 근본 정신은 잘 지켜져야 하겠지요. 정의라든지 예절과 효 등과 같은 도덕심은 시대를 초월한 인간이 갖추어야 할 덕목이라고 생각합니다. 공감하며 잘 읽었습니다.
‘고정관념 탈출’은 약간의 용기가 필요한 일이겠지요. 하지만 어느시대를 막론하고 사람이 살아가면서 기본적으로 지켜야할 도덕은 존재하니, 그 덕목에 크게 어긋나지 않는 범위내에서 시대의 변화에 호흡을 맞추어 나가는것도 좋을듯합니다. 많은 생각을 하며 잘 읽었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고정관념의 틀에 스스로 갇히기 쉽습니다. 탄력적 사고로 세대 간 소통에 노력을 기울이는 마인드도 필요한것 같습니다. 후손에게 물러줘야 할 훌륭한 정신이나 미풍양속은 오히려 권장해야겠지만 번거로운 관습이나 지금 시대에 전혀 맞지않는 가치관 같은 것은 개선과 변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입니다. 공감하며 잘 읽었습니다.
고정관념 이라기 보다는 옛 부터 내려오는 미풍양속이란 생각을해 봅니다. 미풍양속도 시대에 따라 조금씩 변하는게 당연하듯 모든 예법도 시대와 환경 자신의 소신과 능력에 따라 다르듯 고정관념에서 벗어날수 있는 지혜와 용기가 필요할 듯 합니다.많은 생각을 하면서 잘 읽었습니다.감사드립니다.
수필창작교실 란은 현재 수강중인 회원들이 작품을 올려서 서로 보고 공부하는 공간입니다. 현재 수강회원이 아닌 분은 글을 올리지 않도록 되어있습니다. 올린 글을 2018.10.21까지 내리기 바랍니다. 그후에는 글이 지워집니다.
급변하는 현실에서 고정관념은 수정이 필요한가 봅니다. 잘 읽었습니다.
고정관념 탈출은 그리 쉽지 않습니다, 과감한 노력이 필요하고 사회 분위기도 외면하지 못한다고 봅니다. 잘 읽었습니다.
결혼문화도 변화라는 흐름을 거스를 수는 없겠지만 오랜 미풍양속의 정신은 그대로 지켜져야 하겠습니다. 주례, 결혼 초대장, 작은 결혼식에 대한 의견과 현재의 모습들을 짚어주셔서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