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천연기념물이 한자리에
대전 천연기념물센터
우리나라 문화유산에는 국보, 보물, 유형문화재, 무형문화재뿐 아니라 천연기념물이란 것이 있다. 전국 각지에 산재한 천연기념물은 현재 459종. 전국을 돌며 천연기념물을 모두 둘러보기란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대전광역시에 자리한 천연기념물센터에 가면 우리나라 천연기념물을 다양하게 둘러보며 그 가치를 새겨볼 수 있다.
천연기념물센터 전경
천연기념물이란 무엇일까?
천연기념물은 “학술 및 관상적 가치가 높아 그 보호와 보존을 법률로 지정한 동물의 종과 서식지, 식물의 개체·종 및 자생지, 지질 및 광물”을 말한다. 천연기념물에는 동물과 그 동물의 서식지, 번식지, 도래지, 노거수, 자생북한지, 자생지, 숲, 성황림, 방풍림 등의 수림지, 동굴과 암석 등이 포함된다.
천연기념물은 독일의 자연과학자 훔볼트가 처음 사용한 명칭이다. 훔볼트가 저서 《신대륙의 열대지방기행》에서, 베네수엘라에서 발견한 큰 자귀나무를 처음으로 천연기념물(Naturdenkmal)이라 명명한 데서 유래한다. 우리나라는 일제강점기인 1933년 ‘조선 보물·고적·명승·천연기념물 보호령’을 만들면서 천연기념물의 역사가 시작되었고, 광복 후인 1962년에 문화재보호법이 제정되었다. 대구광역시 동구에 있는 도동 측백나무 숲이 천연기념물 제1호로 지정된 것을 시작으로 현재 천연기념물 제546호 제주흑우까지 총 459종이 이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왼쪽/오른쪽]천연기념물센터에서 해설사의 설명을 듣고 있는 어린이들 / 천연기념물센터 내부 전시 공간
천연기념물은 서울에서 제주에 이르기까지 대한민국 곳곳에 산재해 모두 둘러보기란 쉽지가 않다. 대전에 자리한 천연기념물센터는 우리나라의 천연기념물을 한자리에 만나볼 수 있는 곳이다. 천연기념물의 가치와 중요성을 알리기 위해 2007년에 개관한 국가연구기관으로 1층에 천연기념물을 직접 접하고 학습할 수 있는 전시 공간이 마련돼 있다.
전시관에는 노거수와 희귀식물을 비롯해 마을, 숲, 강과 바다에 서식하는 다양한 천연기념물의 박제 표본을 생동감 있게 전시해놓았다. 또 화석과 암석을 대표하는 천연기념물 지질을 통해 한반도 생성 이전부터 수십억 년의 역사를 살펴볼 수 있다. 이밖에 명승과 천연보호구역, 독도 천연보호구역, 제주도의 천연기념물 등도 만나볼 수 있다.
천연기념물센터 내 체험 공간에서 수호 인증 스탬프를 찍는 가족
천연기념물의 가치와 소중함을 배우는 곳
천연기념물센터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노거수가 반긴다. 사람과 가장 친숙한 나무 이야기를 만나는 곳이다. 노거수는 사람과 친밀하다 보니 많은 이야기가 함께 전해진다. 벼슬을 하사받은 충북 보은의 정이품송, 세금 내는 소나무로 알려진 경북 예천의 석송령, 토지를 많이 가지고 있는 예천의 황목근이 대표적이다.
천연기념물센터에서 가장 먼저 관람객을 맞이하는 것은 실물 크기의 커다란 소나무 한 그루다. 경북 문경 존도리에서 온 이 소나무는 아련한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다. 이 소나무가 어떻게 이곳까지 왔을까? 존도리 소나무는 천연기념물 제425호로 지정되었다가 2006년 주변 환경의 악화로 고사해 천연기념물에서 해제되었다. 수령 약 500년, 높이 7m가 넘는 정말 잘생긴 소나무다. 존도리 소나무는 마을 사람들이 매년 정월 보름이면 별신제를 지내며 소원을 빌던 당산목이었다. 이 소나무는 2009년에 천연기념물센터로 오게 되었다. 존도리 주민들의 동의를 얻어 천연기념물센터로 옮겨진 뒤 진혼제가 열리기도 했다. 마을의 수호신 역할을 했던 유서 깊은 소나무인지라 마을 사람들이 소나무를 어루만지고 막걸리를 뿌리면서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존도리 소나무는 생명으로서 수명은 다했지만, 천연기념물센터에서 제2의 삶을 살며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존재 가치를 보여주고 있다.
문경 존도리 소나무
이름은 많이 들어봤으나 실제로 거의 볼 수 없거나 사라진 것으로 알려진 동물도 많다. 크낙새, 따오기, 황새, 먹황새, 고니, 큰고니, 흑고니, 두루미, 재두루미, 팔색조, 저어새, 노랑부리저어새, 흑비둘기, 산양, 사향노루, 장수하늘소 등이다. 얼마 전 1970년대 이후 우리나라에서 멸종된 황새가 전남 영광군 바다에 나타났다는 보도가 있었다. 고니류와 두루미, 저어새 등은 철마다 도래지에 나타나면 화제가 될 정도로 귀한 손님이 되었다. 특히 산양과 사향노루는 다큐멘터리에서나 볼 수 있는 희귀한 존재가 되었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어류와 파충류도 직접 만나볼 수 있다. 파충류인 남생이를 비롯해 어름치, 미호종개, 한강의 황쏘가리 등 어류가 관람객을 기다린다. 자연의 품은 아니지만 천연기념물의 소중함과 가치를 일깨워주기에 충분하다.
[왼쪽/오른쪽]남생이를 보고 있는 어린이 /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한강의 황쏘가리
광물, 동굴, 암석, 화석 등 지질과 관련한 천연기념물과 자료도 만나볼 수 있다. 우리나라는 가장 오래된 지층인 선캄브리아누대에서 신생대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한 지층이 분포한다. 천연기념물 제395호 진주 가진리 새발자국과 공룡발자국 화석, 천연기념물 제414호 화성 고정리 공룡알 화석 등도 실물을 살펴볼 수 있다.
지난해 무주에 갔다가 찾지 못하고 돌아왔던 무주 구상화강편마암도 이곳에서 만나볼 수 있었다. 구상화강편마암은 특별한 환경에서 만들어진 공처럼 둥근 암석이다. 대체로 화강암 속에서 발견되는 데 비해 무주의 구상화강편마암은 높은 온도와 압력에 따른 변성 작용으로 생기는 변성암에서 발견되어 희귀성이 높다고 한다.
[왼쪽/가운데/오른쪽]무주의 구상화강편마암 / 함안의 한국새발자국 / 화성 고정리 공룡알 화석
이밖에도 ‘문화재보호법에 따라 예술적, 관상적인 측면에서 기념물이 될 만한 국가 지정 문화재’인 명승과 보호할 만한 천연기념물이 풍부한 천연보호구역도 살펴볼 수 있다. 명승 1호인 강릉 명주 청학동 소금강을 비롯해 2013년에 명승으로 지정된 설악산 공룡능선, 청송 주산지 일원, 강릉 용연계곡 일원까지 모두 104곳이 명승으로 지정되었다.
천연기념물 관람 후 수목원 산책
천연기념물센터 야외에도 눈여겨볼 것들이 많다. 정원 곳곳에서 중생대 쥐라기의 역암, 파호이호이와 아아용암으로 나뉘는 제주도의 용암, 천연기념물 제53호 진도의 진돗개, 천연기념물 제368호 경산의 삽살개, 천연기념물 제540호 경주개 동경이 등을 만날 수 있다. 주말과 휴일 오후 3시부터 1시간 동안 기념 촬영이 가능하다.
[왼쪽/오른쪽]천연기념물센터 외부에서는 진돗개와 삽살개, 동경이를 만날 수 있다. / 천연기념물센터 산책로
천연기념물센터는 한밭수목원과 이웃해 있다. 한밭수목원은 도심 속에 조성된 인공 수목원으로 면적이 39만 ㎡에 이른다. 각종 식물의 유전자를 보존하는 한편 자연학습체험과 휴식 공간으로 지난 2005년에 개원했다. 한밭수목원은 대전문화예술의전당, 대전시립미술관, 이응노미술관과 함께 둔산대공원으로 조성되어 있다. 갑천 건너편으로는 1993년 세계엑스포가 열렸던 엑스포과학공원과 연결된다.
한밭수목원은 엑스포시민광장을 중심으로 동원과 서원으로 나뉜다. 서원은 야생화원, 무궁화원, 관목원, 졸참나무 숲, 버드나무 숲, 명상의 숲으로 꾸며졌다. 동원은 단풍나무원, 목련원, 상록수원, 약용식물원 등 19개 테마 정원으로 구성되었다. 빌딩 숲 사이로 자연을 만끽할 수 있는 숲과 산책로, 수변 데크가 인상적이다.
천연기념물센터와 담장 하나를 사이에 두고 지난 2011년에 개원한 열대식물원이 자리했다. 열대식물원은 맹그로브원, 야자원, 열대화목원, 열대우림원 등 4개의 테마로 구성되었다. 열대 기후의 특징을 살려 건물 전체를 유리로 만들었다. 마치 열대 우림에 들어선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특히 열대나 아열대의 갯벌과 강 하구 진흙에서 자라는 맹그로브 21종을 식재해 이색적인 풍경을 연출한다. 산책로를 걷다가 2층 높이에서 열대 우림을 내려다볼 수도 있다.
천연기념물센터와 이웃한 한밭수목원 내 열대식물원
글, 사진 : 문일식(여행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