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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돌, 연하남, 그 녀석
32
“자, 여기에요!”
“네?”
“얼른 내려봐요.”
갑자기 탁 트인 공원에 차를 세우더니 나보러 내리라고 재촉하는 현준씨. 현준씨의 말에 나는 안전벨트를 풀고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그러자 눈에 보이는 것은 탁- 트인 넓은 공원. 공원이라는 것보단 공터라는 표현이 더 잘 어울리겠지만, 간간히 나무들이 심어져있는 것이
보이는 게 공터는 아닌 것 같다.
“여기가 어디에요?”
“여기 우리 아지트요.”
“네?”
“되게 좋지 않아요? 여기만 오면 가슴이 탁- 트이는 거 같아서 정태웅이랑 나랑 되게 좋아하거든요.”
“아...”
그럼 우리의 아지트라는 게 정태웅과 자신의 아지트란 소리구나.
그 녀석에 대한 생각은 잠시 접어두고 싶었는데, 역시 저 사람도 정태웅의 사람이니 저 사람과 함께 있는 동안은
정태웅에 대한 생각이 안 날수가 없을 것 같다.
“태웅이가 여기 한 번도 안 데려 왔었죠?”
“네? 네...”
“그 녀석 여기 언제 오는 줄 알아요?”
“아... 모르겠는데요...”
천천히 앞으로 걸어 나가더니 벤치에 앉고는 날 보며 말하는 현준씨. 무슨 소리를 하려고 여길 데려왔는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내가 왜 여기 있어야 하는지도 잘 모르겠고...
“여긴 그 자식 정말 힘들어서 참지 못할 때. 다 포기하고 싶어질 때. 그럴 때 녀석과 제가 찾아오는 곳이에요.”
“......”
“아마 은호씨랑 싸운 날에도 어김없이 여기 와서 소리 한 번 확- 지르고 갔을 껄요?
녀석이 그러더라구요. 아무리 화가 나도 여기 와서 한 번 소리 지르고 가면 은호씨를 웃으면서 만날 수 있어서 좋다구요.”
“......”
“여기 가르쳐주면 안 될 거 같은데 그냥 오늘은 왠지 가르쳐줘야 할 거 같아서요.
앞으로 은호씨도 여기 종종 이용하면 좋을 것 같기도 하고.”
“저기...”
“아마 녀석 오늘도 여기 올 거에요. 곧 올 거 같은데 은호씨 어떻게 하실래요?
여기 계속 있으실래요? 아님 지금 저랑 같이 돌아가실래요?”
이 사람이 결국 날 이 곳으로 데려온 것도 정태웅 그 자식과 화해를 하라고 하는 것이었다.
현준씨의 물음에 내가 선뜻 대답을 하지 못하자 현준씨는 그럼 생각하고 오라며 차에 가 있겠다고 했다.
어떻게 해야 할까... 녀석이 여기에 오긴 할까... 만나면 무슨 말을 해야 할까... 녀석의 얼굴을 보고 아까처럼 마음이 차가워지지는 않을까...
결국 고민 끝에 나는 현준씨에게 먼저 가라고 말을 했고, 현준씨는 그럴 줄 알았다며 웃으며 이야기를 잘 해보라고 말하고는 공원을 빠져나갔다.
나는 도로 벤치로 돌아가 앉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핸드폰을 열어보지만 녀석에게서 온 문자는 한 통도 없다. 나는 뭔가 씁쓸한 마음에
핸드폰을 닫아 다시 핸드백에 집어넣고는 그냥 탁- 트인 공원을 바라다 보았다.
꽤나 넓어 보이는 공원인데 사람들이 거의 없다. 하나 둘 지나가는 사람은 있어도 나처럼 공원에 계속 머무르고 있는 사람은 없다.
이 곳이 어디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꽤나 마음에 든다. 정말 마음이 텅- 비어져 상쾌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매우 복잡했던 머리도 말끔해지는 것 같고...
“이은호...?”
아무 생각 없이 공원을 바라보며 있기를 얼마나 지났을까. 뒤에서 내 이름을 부르는 지독히도 익숙한 목소리가 들린다.
나는 그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지 않았지만 그 목소리의 주인이 내 앞으로 와 서는 바람에 누군지 정확히 확인할 수 있었다.
“너 여기에 어떻게...”
“진짜 왔네. 장난인 줄 알았는데...”
현준씨는 오늘도 정태웅이 이 곳에 올 것이라고 말은 했지만 나는 그것을 믿지는 않았다. 내가 여기에 더 있겠다고 한 것은 이 곳이 마음에 들었고,
이 곳에서 혼자 생각을 할 시간이 필요했다고 생각한 것이 첫 번째 이유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나타나지 않는 녀석의 모습에
정말 여기에 오기는 하는 것일까 기다려지기도 했다. 결국 녀석이 이렇게 나타났지만 말이다.
“여긴 어떻게 알고 왔어?”
“누가 가르쳐주더라고.”
“현준이형이 가르쳐줬구나.”
누가라고 말하자 그 사람이 현준씨임을 단 번에 알아차렸는지 녀석이 대답을 하면서 주변을 휘휘- 둘러본다.
“너 여기 어떻게 왔어? 여기까지 오는 버스도 없을 텐데. 차는 어쩌고?”
“그냥 걸어왔어.”
“뭐?”
걸어왔다는 내 말에 크게 놀라는 녀석. 여기가 걸어올 수 없는 곳에 있는 곳인가. 많진 않지만 사람들이 이 곳을 지나쳐 가기는 하는 걸 보면
걸어 다닐 수 없는 곳은 아닌 것 같은데.
“장난이야. 현준씨가 데려다 줬어.”
“뻥인 거 알고 있었어.”
내 옆에 털썩 앉는 녀석. 그 사이에 술 한 잔 했는지 알코올 냄새가 코끝에 와 닿는다.
“술 마셨어?”
“조금.”
“그럼 음주운전 하고 온 거야?!”
“그런가?”
“야!!”
취할 정도로 마신 것 같진 않은데 술 냄새가 날 정도면 그래도 적은 양을 마신 것 같진 않은데 그 상태로 운전을 하다니 미쳤다 정태웅.
“사람들 없다고 이제 막 소리도 잘 지르고 그러네, 이은호?”
“너 음주운전이 얼마나 위험한지 알고 그러는 거야?!”
“별로 안 마셨어. 취하고 싶은데 안 취하더라.”
“미쳤어 정태웅 너...”
“미치고 싶어도 못 미쳐. 이은호 때문에.”
“너 취했어.”
취했다는 내 말이 끝남과 동시에 내 어깨에 고개를 툭-하고 기대는 녀석. 그래 너도 힘들겠지.
안 그래도 힘든데 내가 차갑게 굴어서 더 힘들었겠지. 생각해보니 후회할 걸 왜 그랬는지 나도 참...
“그래도 음주운전은 혼나야 해, 너. 그게 얼마나 위험한 건지 알아?”
“아, 오랜만에 이은호 잔소리 들으니까 좋다.”
“장난치지 말고. 얼른 약속해- 다신 음주운전 안 한다고.”
“알았어, 이은호 말 잘 들을게. 약속해-”
“약속했다. 응?”
“약속 지킬 테니까 아까처럼 화내지마. 무서우니까.”
“응?”
“아까 이은호 무서워 죽는 줄 알았어. 진짜 너 가는 줄 알고.”
생각해보니 녀석에게 그렇게 화내면서 차갑게 말한 적은 오늘이 처음이었다. 생각해보면 그 동안 화를 낸 건 화를 냈다기 보다는
그냥 짜증을 냈을 뿐인데, 오늘은 정말로 녀석을 두고 쌩- 하고 나왔으니... 많이 놀랐나보다 녀석이. 조금 상처를 받았나 보다.
“알았어. 미안해, 아깐 내가 잘못했어.”
결국 이렇게 사과할 거면서 난 아까 왜 그렇게 화가 나서 입에서 나오는 말을 마음대로 내뱉은 것일까. 이은호 진짜 바보 같다.
“이은호.”
“응?”
“기분 상하면 나한테 짜증내고 투덜거려도 되니까 헤어지잔 소리는 절대 하면 안 돼.”
늘 철없게만 보이던 녀석이 가끔 내 머릿속에 들어와 내 생각을 읽어내는 듯한 말을 꺼낼 때면 가끔 놀라곤 한다. 지금이 그 때다.
이별이란 말에 대해 오늘 처음으로 생각했는데 그걸 어떻게 알았는지 절대로 헤어지면 안 된다고 말하는 녀석.
“그럼 나 너 막 때리고 히스테리 부려도 돼?”
“응, 헤어지잔 소리만 절대로 하지 않으면 다 돼.”
“태웅아.”
“응.”
“넌 내가 어디가 좋아?”
“다.”
“에이, 그건 너무 추상적이잖아. 구체적으로 나 어디가 좋은데?”
“다.”
어느 새 내 어깨에 기대고 있던 녀석의 머리는 내 무릎 위를 베고 하늘을 향해 제대로 누웠고 녀석은 눈을 감은 채 내 말에 대답해 주었다.
“근데 왜 물어 그런 건.”
“그냥... 갑자기 궁금해져서.”
“그럼 넌?”
“뭘?”
“넌 나 어디가 좋은데?”
“나 너 안 좋아하는데?”
“뭐!!”
취기가 도는 것처럼 하고는 내 무릎을 벨 때는 언제이고 갑자기 벌떡 일어나 나를 보는 녀석. 그런 녀석을 보면서 웃고는 녀석을 도로 눕혔다.
“사랑해.”
“어?”
“좋아하는 게 아니라 사랑한다고.”
“누구를?”
“이것도 무지 창피하니까 더 이상 깊게 들어가지 말자, 응?”
내 말에 피식 웃으며 입가에 미소를 띤 채 잠이 오는지 슬슬 말수가 줄어드는 녀석. 어느새 녀석은 잠이 들었는지 숨쉬는 소리만 내며
더 이상 내 질문에 대답하지 않는 녀석. 그런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한참을 그 자리에 앉아 생각했다. 앞으로 우리는 어떻게 될까.
이 마음 절대 변하지 않을 수 있을까. 생각할수록 머리만 복잡해지고 결론이 나지 않는다. 우선 지금 가장 중요한 건 난 이 녀석이 너무 좋고,
그래서 헤어지고 싶지 않다는 것. 꽤 오랜 시간 함께 해왔기 때문에 녀석이 없는 내 모습을 상상할 수 없다는 것. 그래서 이 힘든 일들도
이겨낼 수 있을 것 같다는 것. 그것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버틸게. 괜찮은 척이 아니라 정말 괜찮을께. 그러니까 미안해 하지마 태웅아.”
-
“은호야! 이리와 봐!”
“아침부터 뭔 일이야?”
아빠가 하시는 일이 워낙 바빠 아빠께서 집을 비우시는 일은 빈번했지만 엄마도 함께 집을 비우시는 일은 흔치 않지만 이번 아빠의 출장은
좀 길어질 것 같다며 엄마도 함께 하시게 되었다. 그로인해 집안일은 방학 중인 내 몫이 되었다. 아침 일찍 출근하는 오빠에게 꼬박 밥을 챙겨 먹여
보내라는 엄마의 말씀에 알겠다고 대답했지만 엄마는 내가 늘 불안한지 아침마다 전화하여 내가 일어났는지를 기어코 확인하신다.
오늘도 역시 엄마의 아침 모닝콜을 받고 비몽사몽으로 일어나 냉장고를 열어 물 한 모금 마신 다음 오늘 아침은 뭘 해야 할까 고민하다
계란찜을 하기로 생각하고는 계란을 꺼내 깬 다음 그릇에 풀고 소금으로 간을 하고, 냄비에 중탕하여 가스 불에 얹혀놓고는 일어나자마자
취사 버튼을 누른 밥이 잘 되었나 확인을 하고 있는데 이제 일어난 듯한 오빠가 날 큰소리로 부른다. 오빠의 목소리에 오빠의 방으로 들어가니
아침부터 노트북 앞에 앉아 모니터를 빤히 쳐다보는 오빠의 모습이 들어온다.
“왜? 무슨 일인데 아침 하느라 바쁜 사람 찾는 거야?”
“야, 이게 뭐냐?”
“뭐가?”
오빠가 가리키는 컴퓨터 모니터 화면을 보니 며칠 전 은아의 결혼식에 다정히 참석한 정태웅과 유하늘의 모습이 찍힌 사진이 보였다.
뭐야, 이거 며칠 전 사진인데 이제와서 오빠는 왠 호들갑이냐.
“정태웅 결혼해?!”
그 아래 기사를 보니 신부의 부케를 받은 게 유하늘이고 두 사람의 결혼이 가까워진 것이 아니냐는 추측 기사 내용이었다.
오빠는 며칠 지난 기사와 사진을 가지고 아침부터 이렇게 호들갑을 떠는 것인지.
“오빠 아무리 일이 좋고 연예인 얘기 관심 없는 거 알지만 이건 좀 심했다.”
“뭐? 무슨 소리야? 좀 알아듣게 얘기해봐. 정태웅 진짜 결혼해?”
“이거 며칠 전에 사람들이 다 본 기사를 오빤 이제 와서 보면서 호들갑 떨어야겠어?”
“뭐야... 그럼 사실이란 소리야? 정태웅 진짜 결혼해?”
“아, 오빠!”
“아, 뭔 소리야. 뭐가 뭔데? 이 자식을 내가 만나야겠네! 너네 헤어진 거야?”
남들 앞에선 점잖고 잘 나가는 로펌 회사 변호사지만 이럴 때 보면 정말 이 사람에게 믿고 변호를 맡겨도 되나 싶을 정도로 흥분을 잘 한다.
특히나 어릴 적부터 내 일에 있어서는 아빠 엄마보다도 더 나서는 사람이었으니 이런 오빠의 모습이 내겐 더 익숙하다. 오빤 정말 당장이라도
정태웅과 만날 생각인지 노트북 옆에 놓여있던 핸드폰과 차키를 들고는 일어선다. 아직 제대로 씻지도 않았으면서 저런 모습으로 어딜 나가려는지.
“안 헤어졌어. 그리고 그거 다 거짓말 기사니까 오빠 그렇게 흥분할 필요 없어.”
“거짓말 기사? 뭔 소리야?”
“정태웅 기획사에서 스캔들 터진 거 이용해서 가짜로 공식 연인화 시켜버렸어. 상대쪽이 요즘 잘 나가는 신인이거든.
당분간 그걸 이용해서 서로 이득을 보려고 하나봐. 태웅이도 곧 새 앨범 나온 댔거든.
그래서 당분간 내가 넓은 아량으로 이해해주기로 했어. 그러니까 오빠 그렇게 흥분 안 해도 돼-”
내 말에 한 순간 축 쳐진 눈 꼬리를 하며 나를 보는 오빠. 아마 오빠 눈에는 내가 측은해 보였겠지.
오빠는 내 말을 듣더니 일어서서 나를 품에 꼭 안고 다독여준다.
“아무튼 정태웅 그 자식 마음에 안 들어.”
“언제는 마음에 제일 든다고 해놓고-”
“다 취소야. 감히 누가 우리 이은호를 힘들게 해, 응?”
“나 괜찮으니까 오빠 신경 안써줘도 돼. 정말 나 괜찮아.”
“정말 괜찮아?”
“응, 괜찮아-”
“혹시라도 힘들면 말해. 내가 가서 정태웅 그 자식을 반 죽여 놓고 올 테니까.”
“알았어- 오빠 얼른 씻어. 회사 늦겠다.”
괜찮다는 내 말에도 계속해서 측은한 눈빛으로 날 보는 오빠를 화장실에 밀어 넣고는 숨을 크게 들이쉬며 다시 한 번 마음을 다 잡았다.
괜찮아, 정말로.
-
“너 이렇게 나와도 돼? 요즘 녹음하느라 정신없다며-”
“아, 모처럼 오붓하게 밥 먹으러 나와서 걱정만 하다 갈래?”
“알았어. 걱정 안 할게.”
요즘 하루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르겠다. 2주 간의 연수가 끝난 이후 나는 웬만해선 TV를 보지 않고 인터넷을 하지 않았다.
뭐 아무리 독하게 마음을 먹었다 해도 자꾸 보다보면 힘들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내가 내린 결정이다. 평소에 많이 하는 것이 아니었기에
TV를 보지 않고, 인터넷을 하지 않는 것은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그래도 방학하고 나니 남는 시간에 할 일이 마땅히 없다.
그래서 뭔가 바쁘게 지내볼까 하는 생각에 영어학원에도 등록해서 열심히 나가고, 엄마가 없는 요즘 요리에 재미가 빠져 요리학원에도 등록해서
요즘은 나름 바쁘게 지내고 있다. 녀석과는 그 날 이후 특별히 다투거나 감정 상하는 일도 없었고, 늘 그래왔듯이 하루 한 두 번씩 전화하고
일주일에 세 번 정도 얼굴을 보고 하며 지내왔다. 물론 녀석과 유하늘 사이에 어떠한 일이 벌어지고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녀석과 나는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이 그에 대한 이야기는 그날 이후 입 밖으로 꺼내지 않고 있다. 무언의 약속이라도 한 마냥.
녹음하느라 바쁜 듯한 녀석의 연락이 뜸한 요즘은 얼굴을 볼 시간도 없어 일주일에 한 번 보는 것이 그나마 자주 보는 것이 되어 버렸다.
주변 사람들 시선 때문인지 전화를 하기가 불편한 듯한 녀석은 요즘 내게 보내는 문자가 부쩍 늘었다. 그러는 녀석이 오늘은 아침부터 문자를 했다.
저녁에 시간을 비워두라고. 오전 중에 영어학원을 갔다가 오후에 있는 요리학원이 시간이 애매한지라 빼 먹고는 녀석과 만났다.
녀석은 꽤나 비싸 보이는 레스토랑으로 데리고 가더니 날 앉히고는 히죽히죽 웃고 있다. 난 바쁜 녀석이 이렇게 한가롭게 굴어도 되나 싶어서
물어봤는데 잔소리한다며 또 뭐라 한다.
“근데 밥 먹으러 와서 밥은 안 시켜?”
“배고파?”
“아니, 배고픈 건 아닌데 안 시키고 계속 있음 좀 그렇잖아.”
“조금만 기다려봐. 곧 올 거야.”
“오다니? 뭐가?”
그러고 보니 녀석은 아까부터 힐끔힐끔 출입구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뭐가 오냐는 내 말에 딱히 대답하지는 않고서
기다리라고 하는 녀석. 그런 녀석을 따라 나도 출입구 쪽을 지속해서 바라보고 있자 익숙한 얼굴이 보인다.
“왔다! 형! 여기야!”
“아, 늦어서 미안. 촬영이 생각보다 늦게 끝나서- 은호씨 오랜만이에요.”
무슨 촬영을 하다 왔는지 얼굴엔 화장기가 남아있고 한껏 멋을 낸 머리에 옷도 잘 차려입고 나온 현준씨. 여태까지 만났을 때 모습 중에
오늘이 가장 멋있어 보인다. 그 동안 연예인이라는 생각이 든 적이 없었는데 오늘은 왠지 정말 연예인 같다고 해야 할까.
“아, 안녕하세요.”
“이은호 내숭떤다. 둘이 친한 거 같던데 뭘 그렇게 어색해하냐?”
“정태웅 너-”
“하하, 정태웅 너가 은호씨 어색해하는 게 매력이라며.”
“형 헛소리 할 거면 나 간다?”
“잘 가라- 난 오늘 은호씨한테 밥 사러 온 거다.”
“은호도 데리고 갈꺼야. 이은호 가자.”
내 손목을 잡고 일어날 듯한 녀석의 행동에 내가 곤란해 하자 우리의 앞에 앉은 현준씨는 아까보다 더 크게 웃으며 알겠다고 말한다.
“형, 비싼 거 시켜도 돼지?”
“너가 사는 거지?”
“아, 형!”
현준씨를 통해 친하단 말은 듣긴 했지만 얼마만큼 친할까 궁금했었는데, 두 사람 정말 친한 사이인가 보다. 정태웅 저 녀석이
사람한테 살갑게 구는 모습 보기 힘든데 녀석은 현준씨에게 정말 살갑게 군다. 그리고 틱틱대는 녀석을 마치 친동생 대하듯
시원스레 웃으면서 말하는 현준씨.
“은호씬 뭐 드실래요? 여기 해산물 요리 괜찮은데.”
“얘 해산물 못 먹어. 그거 말고...”
“너가 못 먹게 하는 게 아니라?”
“내가 왜 은호 해산물을 못 먹게 하냐?”
“와, 두 사람 얼굴만 닮은 게 아니라 체질도 닮았구나?”
“얼굴 닮아? 우리 둘이?”
“응, 몰랐어? 두 사람 진짜 많이 닮았는데. 특히 분위기가.”
사람들에게 잘 어울린다는 소리는 들어봤어도 닮았다는 소리는 처음 들어본다. 현준씨의 말에 날 한 번 쳐다보는 정태웅.
“뭐, 은호씨한텐 죄송해요. 이렇게 못난 녀석하고 닮았단 소리해서-”
“아, 형!”
“이 놈아, 형 여기 있다. 그러니까 그렇게 자꾸 안 불러도 돼.
은호씨 그럼 뭐 드실래요? 여긴 스테이크로 유명해요. 고기가 싫으시면 파스타류도 괜찮은 편이구요.”
“음... 전...”
뭔 메뉴가 이리 이름도 어렵고 많은지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르겠다. 내가 메뉴판만 빤히 보며 고민하고 있자 내 손에 들린 메뉴판을 쏙- 빼가는 정태웅.
“못 고르겠지? 그냥 나랑 같은 걸로 먹어.”
“그러지 뭐.”
녀석이 주문한 스테이크와 같은 걸로 주문을 하고는 녀석이 알아서 익힘 정도와 사이드 메뉴까지 알아서 시키고는 날 본다.
“괜찮지?”
“응-”
나에게 괜찮냐고 물어보고는 주문을 받고 있던 웨이터에게 그럼 됐다고 말하고는 보내는 녀석을 빤히 보던 현준씨.
“은호씨, 이 녀석 맨날 저렇게 해요?”
“네?”
“완전 자기 멋대로 하는데 괜찮아요?”
“아- 괜찮아요. 익숙해져서-”
“이은호까지 왜 이래? 형 순진한 은호 꼬시지 마!”
“정태웅 너 말 좀 가려가면서 쓰랬지? 꼬시는 게 뭐냐.”
“아, 몰라. 안 들어-”
안 듣겠다며 귀를 막아버리는 정태웅의 행동에 나와 현준씨는 동시에 웃음이 터졌다. 앞에서 웃고 있는 나와 현준씨를 보기 싫다는 듯이
아예 눈까지 감아버리고는 ‘마음대로 해!’라고 말하는 녀석 때문에 나와 현준씨는 한참을 웃었다.
“어? 태웅오빠!”
나와 현준씨는 정태웅 놀리기에 신났고, 놀림 당하는 녀석은 인상을 팍팍- 써가며 조용히 음식만 먹는다. 현준씨와 알게 된 지는
얼마 되지 않았는데 뭔가 잘 맞는다는 느낌이 든다.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물론 정태웅은 빼고― 식사를 마치고는 디저트로 나온
와플과 아이스크림을 먹는데 누군가 정태웅의 이름을 부른다. 고개를 돌아보니 유하늘이다.
“어, 여긴 어쩐 일이야?”
촬영이 있는지 한껏 예쁘게 화장을 하고는 멋진 의상을 입고는 우리가 앉아 있는 테이블로 다가오는 유하늘.
“오늘 연예프로 인터뷰가 여기서 있거든. 어? 은호언니랑 현준선배도 여기 있었네요?”
“오랜만이에요 하늘씨.”
밝게 웃으며 아는 척을 해오는 유하늘의 모습에 가만히 있기 민망하여 나는 보기에 더 민망한 미소를 지어가며 하늘씨에게 인사를 했다.
그런 내 모습을 바라보고 있더니 얼굴이 굳어지는 녀석. 하지만 난 정말 진심으로 쿨하게 굴기 위해 그런 녀석의 모습과 상관없이
유하늘에게 웃어가며 말을 건넸다.
“식사했어요?”
“아뇨- 배고파요, 언니- 오늘 아침부터 지면광고 촬영 있어서 제대로 밥도 못 먹었어요. 언닌 식사 다 하신 거에요?”
“네- 아, 식사 안 했음 여기서 식사할래요?”
“아, 그러고 싶은데 안 돼요- 저 곧 여기서 인터뷰 촬영 있거든요.
은호언니가 태웅오빠랑 친한 건 알고 있었지만 현준선배랑도 친한지는 몰랐네요. 세 사람 되게 친한 가 봐요.”
“뭐... 그런가?”
“아, 부럽다. 은호언니는 이렇게 멋진 남자들 데리고 밥도 먹고. 아, 언니 남자친구 없어요?”
“응?”
갑자기 나에게 남자친구가 없냐고 물어오는 유하늘의 말에 나는 순간 당황을 했다.
지난번과는 다른 내 모습에 두 남자 모두 놀란 듯 나와 유하늘을 번갈아 바라보다 유하늘의 질문에 나에게로 시선이 고정되었다.
“아, 없어...”
“언니 남자들이 가만 둘 거 같지 않은데- 그쵸, 현준선배?”
“어? 뭐 그런가?”
“에이, 선배 그 때 은호언니 예쁘다고 했잖아요- 내가 그 때 분명 똑똑히 들었는데!”
“그랬었나? 하하.”
“완전 내숭이에요, 선배! 은호언니, 그 때 분명 선배가 언니 예쁘다고 했어요-”
“하하, 알았어요. 하늘씨-”
우리 사이에서 가장 신나게 말을 하는 유하늘. 그리고 우리 사이에서 아예 말 없는 정태웅. 유하늘은 신나게 말을 하다가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알겠다고 하고는 테이블에서 일어서서 촬영이 준비된 테이블 쪽으로 가자마자 어떤 남자 하나가 우리의 테이블로 왔다.
“태웅씨, 인터뷰하는 데 같이 가지 그래.”
“네?”
“스텝들도 이미 태웅씨 다 본 마당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기로 한 거
마치 알고서 응원온 거처럼 해서 인터뷰도 같이 하고 그러는 게 나을 거 같은데.”
아무래도 유하늘의 매니저같아 보이는 남자는 정태웅에게 소곤소곤 말했지만 나에게까지 그 대화 내용은 다 들렸고,
정태웅은 남자의 말을 들으며 빤히 나를 바라보기만 했다. 아무래도 녀석은 나 때문에 고민하는 것 같아 나는 웃으며 녀석을 바라보았고
녀석은 그 남자에게 잠시만 생각해보겠다고 대답하자 남자는 알겠다며 유하늘 쪽을 향해 사라졌다.
“괜찮으니까 갔다 와.”
“이은호.”
“정말 괜찮아. 나 현준씨랑 있을 테니까 신경 쓰지 말고 잘 하고 와.”
“어떻게 신경을 안 쓰냐?”
남자가 사라지기 무섭게 인상을 팍- 쓰며 말하는 녀석. 난 정말 괜찮을 자신 있는데 녀석은 여전히 나에게 미안한 표정이다.
“그럼 나 먼저 나가있을까?”
“그런 소리가 아니잖아.”
“알아. 나 바보 아니라서 실제랑 일이랑 구별 할 수 있으니까 걱정 마.”
“진짜... 진짜 괜찮아?”
“응, 너 나 몰라? 나 거짓말 못 하잖아. 나 진짜 괜찮아서 괜찮다고 하는 거야.”
“...알았어. 얼른 끝내고 올께.”
내가 웃으며 녀석을 일으켜 세우자 녀석은 마지못해 일어나 촬영 준비가 된 테이블로 터덜터덜 걸어갔다. 녀석이 들어가며 주변 스텝들에게 인사하자
사람들의 반응은 ‘오-’ 같은 환호성이다. 그런 녀석의 모습을 바라보던 나는 앞에 놓인 물잔을 들어 물을 한 모금 마셨다.
“은호씨 대단해요.”
“현준씨 우리 그 말 하지 말고 딴 얘기해요. 현준씨는 뭐 영화나 드라마 같은 거 안 하세요?”
촬영이 막 시작된 테이블에서 눈을 떼고 내가 현준씨에게 말을 건네자, 현준씨는 알겠다는 눈빛을 하고는 내 뜻에 따라주었다.
현준씨와는 얘기하고 있지 않지만 사실 현준씨 너머로 보이는 촬영모습에 솔직히 조금 속이 쓰리다. 기분이 좋지 않다.
하지만 오늘 지금 순간만 잘 참으면 앞으론 어떤 일이 생겨도 잘 참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인내심을 기르는 테스트에
놓였다고 생각하고는 오늘 울지 않고, 기분 나빠하지 않고, 화내지 않고 잘 참을 것이다. 그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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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편입니다~!! 생각보다 일찍 왔죠??? ^^ 오늘 마지막 수업이 휴강되는 바람에 생각치도 못한 시간이 생겨서 얼른 후딱 쓰고 올립니다!
제 생각엔 주말 쯤에나 여유가 생겨서 올릴 수 있을까 생각했는데 말이죠~ 제가 말했던 것보다 빨리 찾아와서 반가우시죠????
그러시리라고 믿습니다~^^ 아니시라면 저 섭섭할지도 몰라요ㅠ!!
당분간은 현준의 역할 비중이 좀 클 것 같습니다. 그럴 것 같죠?? 도훈이 때와는 달리 현준에 대한 반응은 많은 분들이 상당히 긍정적이시네요~
현준이 어떤 사람이 아직 잘 모르시나 보네요???? 하하, 장난이에요^^;;
앞으로 언제 올린다고 약속 드릴 수 없는 상황이지만 그래도 이렇게 뜬금없이 빨리 올 때도 있으니까 조금만 참고 기다려주세요~
그럼 32편에도 좋은 댓글들 많이많이 달아주시고, 31편에 댓글 남겨주신
낭이ⓥ님, _keith_님, 완전내스타일님, 구짓말님, Trust0님, 하늘을 날다♡님, 졸려ㅠ_ㅜ님, 두시삼분님,
아l교쟁이버즈님, harusong님, 짱구액션가면님, 토순리님, 꼴통머리소녀님, 돌똘이님, 피키랑영이랑님,
시나클s님, 핑크공주♥님, 혜수,님, 니가곰탱이냐님, 감나무 낌씨님, story가 좋아님
댓글 모두 감사드리구요, 아/연/그 (길게 쓰기 귀찮아서^^;;) 읽어주시는 모든 분들 감사합니다!! 진심으로요~
아, 그리고 18편이 검색이 안 되신다고 했는데요. 글번호가 21974번 이거든요~
제가 올려드리고 싶지만 삭제가 된 게 아니라서 다시 올려드리기가 좀 그래요^^;;
가끔 검색 안 될때가 있으니 한 번 찾아보시고 정 안 되시면 말씀해주세요 제가 메일로 보내드리던지 방법을 찾아보도록 할께요^^
첫댓글 은호가 넘 불쌍해요..~~ 뭔가 썸씽좀 만들어주세요.. 일부러 그런거 아니지만.. 그래도.. 태웅이 위해서 넘 애쓰는 거같어 !~~잉잉^^
은호 맘이 무진장 아프겠어요~~ 태웅이두 그렇구~~~ 은호 쫌만? 아프게 해주세요~ㅋㅋㅋㅋ
아.. 은호 불쌍 ㅠㅠ
아무리 은호가 괜찮다고해도 태웅이는 거절하면 될텐데 은호가 괜찮다는말에 바로 달려가구,, 흑,, 정말 오늘따라 태웅이가 미워지네요 ㅠㅠ 담편도 기다릴께요~
은호,,ㅠㅠ 화이팅!! 아,,,유하늘인가,,,갑자기 막 싫어진당,,,ㅠㅠ
은호가 너무 안쓰러워요~ 차라리 뻥 터뜨려서 속시원하게 만나는게 더 좋겠어요~
재미잇어요!>.< 아긍 태웅이랑 은호랑 얼른 잘됬음!!! 하늘이랑 그만 가짜연인하고 은호랑 공개 파바바바박 다음편기대할께요!♥
현준이가은호좋아하게해주세요!!!은호넘힘들어보여요..ㅋㅋㅋㅋㅋ하지만마지막엔태웅이랑은호인거아시져?ㅋㅋㅋ
언제까지 태웅이랑 하늘이 가짜연인하는 걸까요~;;은호가 안쓰러워
ㅠㅠ 착한 은호,,, 하늘이싫어요 ㅠㅠ 이제그만 연기는 끝나게해주세요~
으하항 너무재밋어요~! 분량이 좀 길어보여요!!!>^ㅡ 이제태웅이가 은호속좀그만썩엿으면좋겟어요..엉엉
아ㅠㅠㅠㅠㅠㅠㅠㅠㅠ 진짜 하늘이 짜증나요 ㅠㅠㅠ 태웅이랑 은호랑 ♡
윗분들 말에 동의 합니다..^^ 이제 은호랑 태웅이랑 더욱더 잘되야 하지 않나요?
으아.. 어떻게요,.. 우리 은호.. 맘이 짠하네요,.ㅜㅜ
♡
작가님 후기보고 갑자기 현준씨가 좀 미워지네요. 예쁘다고 한 것도 그렇고. 근데요 아무리 생각해봐도, 유하늘 이미지는 떠올라도, 태웅이 이미지는 정말 전혀 떠오르지 않네요. 이미지를 올려주시는게 어때용?? ㅋㅋ 항상 재밌게 보고 있는거 아시죠? 은호가 쿨한척 하는거 괜찮은척 하는게 더 가슴아프네요. 그래도 태웅이도 착하고 은호도 착하니까 항상 유하늘이든 서도훈씨든 언제든 항상 사이를 위태롭게 하는거 아니겠어요 그래도 이게 매력인 걸요. 착한 커플. 그게 매력이고 이 소설의 묘미(?) 인걸요 ㅋㄷ 작가님 화이팅 팅이이이잉
빨리 은호랑 태웅이 사이 밝혔으면 좋겠어요 ㅠㅠ 현준이의 역활이 못된 역활로 나오는건 아니죠~?
악...요즘엔 커플들이 틀어지는게 왜 이리 좋을까요.옛날엔 싫었는데...<악질-_-?
휴-은호랑 태웅이 제발 사랑하게 해주세요ㅋㅋㅋㅋㅋ히히히- 작가님 이렇게 빨리 올리실줄이야! 감사하고 또 감사합니다~~
작가님 !!! 꼭!!! 은호와 태웅이 해피엔딩으로 지내게 해주세요~~ㅠㅜ// 연인으로!!!
작가님 !!근데 다음 편은 언제쯤 올리시나요??0_0?? 태웅이와 은호가 보고파요^^ㅎ p.s. 작가님 카페있으시면 갈려주세요^^
불쌍해요..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