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차 -
나는 대한민국 사무관이다.
당당한 발걸음으로 정부청사에 들어서면 마주치는 모든 이들이 거수경례를 하며 존경을 표하고 탁트인 광화문광장을 내려다보면서
천하를 손에 얻은 영웅의 심정으로 나라의 미래와 국민의 행복을 걱정하는 내 모습...
내 의사결정 하나하나가 나라의 명운을 좌우한다는 생각에 날카로운 눈빛으로 업무를 시작한다.
퇴근 후 8시, 종로타워 탑클라우드에서 몽트라쉐 한 잔을 음미하며 즐기는 영어회화 스터디, 사실은 인맥관리 차원이다
텝스 950점과 토익스피킹 만점을 자랑하는 능숙한 고급영어로 모두를 놀라게 하고, 그런데 상당한 미모의 여자 변호사 Y의 눈길이 심상치 않다
지하주차장에 세워둔 은색 재규어XJ에 시동을 걸려는 순간 Y의 요염한 목소리...
"댁이 청담동이시면 가는 길에 좀 내려주시겠어요?"
불꽃이 튄다. 그러나 아직 점화는 이르다.
- 2일차 -
"사무관님, 3번 화상폰에 VIP 이십니다"
나도 이 순간만은 긴장된다. 이른 아침부터 어인 일이신지...
넥타이를 고쳐 매고 앉는다.
국회와 협의중인 현안에 대한 질의셨다. 아직 펜딩 중이지만 궁금해 하시는것 같아 급하게 아웃라인만 보고드리고, ㅇㅇㅇ의원실에 독촉전화를 건다.
"예, 사무관님. 아직 그건은 당내 여론이 규합되지 않아서..."
"이봐요, 강 보좌관! 당신은 늘 그런식인가요? 국민들은 목말라하고 있는데 그렇게 우유부단해도 되나요? 당장 금요일까지 보고해 주세요."
다선의원을 세 분이나 모신 보좌관이지만 공과 사는 구분해야 한다. 따끔하게 일침을 드리고 약속을 받아낸다.
11시다. 오디오를 통해 흘러나오는 오카와리의 신곡이 참 좋다. 비서를 통해 점심 약속을 확인한다.
"ㅇㅇ그룹 부사장단과 12시에 요코즈나에서 약속 있으시고, 2시부터는 ㅇㅇ로펌 파트너분들과 업무협의가 있으십니다."
피곤한 하루다. 약속 두 건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오니 5시반...요코즈나의 오도로는 예전만 못하다.
장관께 하루일정을 간단히 브리핑하고 퇴근 준비를 한다.
7시엔 한남동 리스퀘어에서 리더들을 위한 인문학 연구모임의 니체 원전 세미나가 있다. 주말 내내 매달렸는데 역시 독일어는 만만치 않다.
오늘은 다행히 독일에서 유학한 박 상무의 발제라 믿을만하다. 니체의 통찰력은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데 도움이 될 터...
막 퇴근하려는 찰나 문자메시지가 온다.
"여름휴가 일정은 잡으셨어요? 저는 홍콩 1박2일 다녀오려는데^^"
Y변호사다...부담스럽다...이 여자 어찌해야 하나? 난 아직 할일이 많아, 연애는 별 생각이 없다.
- 3일차 -
무서운 꿈을 꾸었다. 혼자 어두운 산길을 걷고 있는데, 갓과 도포를 입은 조선시대 선비 복장이었다.
타임머신을 타고 있나 생각이 들었는데,
그 순간 산적 떼가 나타나 시퍼런 언월도를 들이대고 윽박지르기 시작한다.
승냥이 같은 눈빛과 섬뜩한 칼날의 촉감이 극도의 공포감을 주었다. 눈을 감고 용기를 내어 기도를 시작했다.
“하느님, 여기서 이렇게 허무하게 죽을 수는 없습니다. 대한민국의 재도약을 이끌어야 합니다.
중국과 선진국들 사이에서 이렇게 넛크래커가 되어 허무하게 무너지는 모습을 볼 수 없습니다. 구상 중인 수많은 위업들을 달성하여 창조경제를 실현해야 합니다.”
뜨거운 눈물줄기가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 순간 멀리서 엄청난 광명이 굉음과 함께 내려 비추기 시작했다.
산적 떼들은 소스라치게 놀라 뿔뿔이 흩어져버렸고, 나는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사무관님, 사무관님..정신이 좀 드세요?”
귀에 익은 목소리다. 눈을 떠보니 새하얀 병실..서울대학교병원 VIP룸이었다. 김 주무관이 안쓰럽다는 표정으로 서 있다.
주치의인 듯 한 은발의 의사가 온화하지만 단호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과로입니다. 나라일도 중요하지만 몸도 챙기셔야죠. 아직 젊다고 자만하면 큰일납니다. 다행히 위기는 넘겼으니 좀 더 요양하면서 후일을 도모하세요.”
정신이 번쩍 든다. 오늘 날짜를 보니 7월 23일...젠장..이틀이나 정신을 잃었던건가?
이제 중국 상무부와의 협상이 닷새 앞으로 다가왔다. 가까스로 몸을 일으켜 노트북을 찾았지만 보이지 않았다.
“김 주무관..내 노트북 어디 있어요? 협상 날짜가 코앞인데 이게 뭐야...아, 정말 미치겠네.”
“1주일간 꼼짝 말고 몸조리만 하시라는 장관님 특별 지시입니다. 죄송합니다.”
“협상은? 그럼 협상은 누가 들어가고? 주무관님까지 왜 이래요? 나 없이 어떻게 하겠다는 거야?”
김 주무관은 묵묵부답이었다. 게다가 문 밖을 철통같이 지키고 서 있는 검은 수트의 건장한 청년들...
머리를 쥐어뜯으며 울부짖는 찰나 건장한 청년들 사이로 장관님이 모습을 드러내셨다.
과일바구니를 손수 들고 오신 장관님은 아빠 미소로 내 손을 꼭 잡으셨다.
“소탐대실이라는 말을 아나? 협상 성공시키겠다고 자네를 잃을 수는 없었네. 물론 피 같은 세금이 들어간 매몰비용을 낭비할 수는 없지.
그래서 우리 측 대표로 중국통상 전문가를 급히 섭외했네. 와병중이라 서로에게 결례겠지만, 협상이 코앞이니 이야기 나누게. 윤 변호사, 들어와요.”
잠시 뇌리 속에 정적이 흘렀다. 잔잔한 샤넬 향을 풍기며 아이보리 계열로 맞춰 입은 Y변호사가 들어섰기 때문이다.
서로 너무 놀랐기에 오히려 우리는 덤덤하게 목례를 나눴다.
장관님을 수행한 박 서기관이 프로필 낭독을 시작한다.
“새라 윤 변호사는, 대원외고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에서 경영학과 법학을 전공하였습니다.
재학 중 사법시험에 합격한 후 미국 예일대 로스쿨과 중국 칭화대에서 공부한 재원이십니다.
현재 ㅇㅇ로펌에 근무 중이며, FTA 관련한 태스크포스에 여덟 차례 참여해보신 경험이 있습니다. 그리고 미혼이십니다.^^”
삭막하기만 했던 병실에 웃음이 터졌다. 역시 박 서기관님의 유머는 알아줘야 한다.
“윤사라입니다. 반가워요. 수많은 분들을 만나봤지만 이렇게 병실에서 뵙는 것은 처음이네요. 이번 협상 건, 워낙 볼륨이 커서 만만치 않아요.
그래서 사무관님이 필요했던 것이고, 그런데 상황이 여의치 않으니 일단은 제가 자격을 부여 받아 테이블에 들어갑니다. PT 준비해 주세요.”
문 앞을 막고 서 있던 검은 옷의 덩치들이 어느새 상냥한 도우미가 되어 부지런히 프리젠테이션 준비를 한다.
그리고 이어진 5분간의 간략하면서도 핵심을 찌르는 프리젠테이션...
80% 정도 완성해 놓았던 협상안이 이미 윤 변호사에게 전달된 듯 싶었다. 거기에 그녀가 19%를 보탰다. 99%...완벽했다. 나머지 1%는 함께 채워가면 될 터...
어느 정도 안심이 되었다. 스터디에서는 부담스럽게만 느껴졌던 윤 변호사가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여자로서가 아니라 업무 파트너로, 프로페셔널한 커리어우먼으로 말이다.
“이제 그만들 가죠. 환자 쉬어야지. 나머지 진행사항들은 온라인으로 계속 연락하는 것으로 하고, 자네는 걱정 말고 푹 쉬라고...좋은 소식 들려줄 테니 열심히 기도나 해.”
모두가 떠난 하얀 병실에는 다시 정적이 흘렀다. 처음으로 창밖을 내려다본다. 마침 윤변호사도 병실 창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저 여인의 턱선이 저리 고왔던가?
그러나 결코 서두르지 않았다. 그녀는 가벼운 눈인사만을 남기고 유유히 차를 타고 사라졌다.
저 멀리 북악산 정상이 오늘 따라 더욱 푸르다. 조국의 미래도 푸르리라....
개쩌네ㄷㄷ
첫댓글 소름돋는다
스누라이프버전인가
소설 돋네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아좆나웃깁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현실은 월화수목금금금
ㅋㅋㅋㅋㅋ 연재부탁드림
세연넷임..
1일차부터 빵터졌다.
아직 점화는 이르닼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조국을 위해 제철보국의 일념으로 매일매일 퇴근시간을 기다리는 철강인들의 삶도 소설로 써주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관련 정보는 드릴게
말도 안되는 소리~사무관(5급)이 무슨 비서가 있어? 100%엉터리 거짓말~정부청사(서울) 가보면 일반 사무실과 별반 다른거 없음~ 정부청사(대전)도 같음.거짓말을 해도 어지간해야 ....지어내도 너무 나갔다 ㅋㅋㅋ
사무관이면 중앙부처에서는 계장, 구(군)청 과장임.가끔 장관 얼굴은 보겠지.내가 너무 현실을 이야기 했군
개그글인데ㅋㅋ 호가호위라도 국회의원 보좌관한테 사무관은 을. 통화패턴 저 반대일듯
도청 계장, 중앙부처 실무자
ㅇㄱㄹㅇ
이거 완전 개구라성 행시준비생들의 소설이네 ㅋㅋㅋㅋㅋㅋㅋ 재밌게 봤다 ㅋㅋㅋㅋㅋ
이거 레알임 ㅇㅇ 내가 아는 사무관들 다 저정도 한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소설재밌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존나 웃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개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