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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글은 긴 글이옵니다.
설날을 앞두고
우리 시골 건너편 마을에 사시는 강원도 할매는,
어느 단풍잎 곱게 물든 가을날 목이 메여 말도 잘못하는
어메와 첩첩산산 깔딱 숨 고르는 산 고개 마루에서.........
간 다지 못 간 다지 생이별 서러운 눈빛으로....
“아이쿠 야야...인제가면 언제 다시 보나! “엄마, 걱정 마시래요. 나 잘 살 것시요.”
“그래 부디 가서 잘 살거래이!” 뒤돌아보고 또 뒤돌아보고..
마지막 산모퉁이 돌아 설 때에
어머니가 털썩 땅에 주저 않아서 땅치는 모습을 보고는 끝내 울고 말았다는 강원도 처녀.
그 분은 열여덟 산도라지 꽃 같은 산골 처녀 이였습니다.
“나 따라 가면 총각 좋고, 땅마지기도 제법 있는 집에 시집보내 주마”
하는 꿀 장수 아주머니 말만 믿고 검은 석탄가루 풀풀 날리는 기차타고
이 먼 곳 경상도까지 시집오신 분입니다..
그때 이곳저곳 다니면서 꿀 파는 아주머니 있었는데,
꿀 몇 되 박 사주면 중신을 서 줬습니다.
요즈음처럼 당일미팅은 고사하고 담 너머 지나가는 숫총각도 함부로 못 처다 보고 살다가
그저 꿀 때문에 우리 마을로 시집오신 분이 몇 분 더 있습니다.
우리 형님도 70년대 말 그 꿀 장수 할머니가 중신을 해서 장가들었고
나도 81년도인가? 그 꿀 장수 할머니가 중신을 서겠다고 울 어메 한데 이야기한 적이 있어...
우스개로 들릴지 모르지만 80년도 초 만해도 우리 고향에는
“그 집 며느리도 꿀 장사 할마이가 중신 섰니이껴?”
그런 말이 통용 되던 마을 입니다.
자우지간 그 삼척 처녀가 살았던 강원도 땅은 비집고 들따 (들여다 보다) 볼 수도 없는
쪼매한 숫처녀 젖가슴 땅이라면
경상도 땅은 아이 두셋은 낳은 아지매 엉덩이 정도는 된다하여
꿀 장수를 따라 기차타고 낮선 이곳 까지 올 때는....
아! 나도 이제 쌀 밥 먹을 수 있는 큰 대처로 시집가나보다 했답니다.
태어나 시집 올 때까지..... 쌀 한말 먹지 못하고 옥시기 감자만 먹는다는 곳에 태어나,
서글픈 가사로 이어지는 정선 아리랑 중 이런 가사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니 팔자나 내 팔자나 미군 담요 깔겠나-아-아 마뜰, 마뜰 참석자리에.....우짜고 저짜고.
요즈음 아무데나 구할 수 있는 미군 담요...
그저 고스톱 깔판으로 사용되는 그런 미군 담요를 깔고 잠잘 수 있는 팔자라면
더 바랄 것이 없다는 이 땅의 산골 사람들...
미군 담요가 울매나 아쉬웠고 부러웠으면 팔자 타령하는 정선 아리랑 가사로 토착 되었을까?
그러니 산골에서만 자란 그 처녀는 “나는 자라면 대처로 나가 살 거야!
대처로 나가서 꼭 쌀밥 실 것 먹으면서 살꺼야! 쌀농사 많이 지어서
첫 친정 나들이는 울 어메에게
백설기 쌀떡을 한 소쿠리 이고 갈꺼래요! 마음먹었지만 그런대...
꿀 장수 따라 나서서 경상도 땅에 와서 보니 이게 무슨 일인가?
강원도 고향 땅보다 결코 더 크지도 않은 이 쪼매한 이 산골! 낮선 마을에
엉거주춤 보따리 달랑 하나들고 들어서서 시어른 될 분들에게 큰 절 올리고,
안방에서 종일 고개도 들지 못 허고 않았는데...
저녁 무렵 품앗이 일터에서 돌아온 총각이 흙신발 툭툭 털고 들어서고...
어굴 한번 제 되로 처다 보지도 못 허고 결혼식도 아니 올리고
그저 덜덜 떨면서 치룬 첫 날밤.
오! 그대는 이날 이적(지금까지)까지 총각 휘 바람 한번 못 듣고 깊은 산골에서
그저 곤드레 나물만 먹고, 산도라지 같이 자란 처녀!
첫 새벽 닭 울 때까지 그저 순박(淳朴)이라는 치마를 벗고 박속보다 더 고운 속살을 바친 후
피붙이 한 명 없는 이 산골로 시집와서 경상도 여자로 탈바꿈 한 여자!
그런 삼척 할매가 우리 마을에 있습니다.
첫 시집살이 며칠 후 ....
보리쌀 삶는 법을 몰라 시어머니에게 호되게 꾸중 듣고는
그저 아무도 없는 집 뒤에 가서 찔끔 찔끔 울었다는 강원도에서 온 산골 새색시.
신혼살림이라곤 달랑 옷가지를 넣어두는 미군 부대에서 흘러나온 보루박스 하나에
삼척에서 들고 온 사기요강 하나가 전부 이였다 하데요.....
남들처럼 노랑 저고리 연분홍 치마는 고사하고,
모진 시집살이만 기다리고 있었다. 합니다.
시집의 논이라는 땅 쪼가리는 주먹돌 층층이 쌓아 올려서 만들어진,
묵 방티이 보다 더 작은 땅이요. 삿갓 벗어서 덮으면 가릴 수 있다는 일명“삿갓배미”
천수답 몇 떼기뿐. 가을걷이라 해봐야 볏단을 장정 지게로 서너 번 지고나면 없으니
귀한 쌀은 그저 보리밥에 한주먹씩 썩어서 시어른만 드리는데도 초봄을 넘기기 힘들었고.
밭이라는 땅 쪼가리는 통일신라시대 3층 석탑이 (탑은 지금도 홀로 있다,
초파일 되어도 골이 깊어선지 연등하나 없고
불자 한명 오지 않는다) 있는 대박 골에 증조부가 손수 손마디 피멍 들면서
개간한 돌나덜(돌 투성이 밭을 말함) 땅이 있으나,
제법 길지만 해가 들지 않는 음지 골이라
밤낮으로 땅에 업 드려서 흘린 땀에 비하면 소출이 너무 적었다 합니다.
육이오 사변이 끝나고 어느 해는 흉년으로 곡기가 떨어져 맨 날 쑥떡으로 연맹하다가
너무나 배가 고파서 덜 익은 보리 싹이라도 조금 잘라서 밥을 해 볼 심사로 밭에 갔다가
노고지리 새(지금은 그새가 사라졌다) 어지럽게 울어 되는 보리밭 뚜버리에 (밭둑) 홀로않아서
보리 이삭아 보리 이삭아! 헛 껍데기나, 깜부기는 들지 말고 그저 통통하니 실하게 여물 거라!
같은 값이면 한 여드레만 더 빨리 여물 거라! 울 시아부지 배 굶 는다.
한 여드레만 (8일) 더 빨리 여물 거라! 지발 적성(참으로 바라옵건데) 한 여드레만 더 빨리 여물 거라!
못 먹어서 퉁퉁 부어오르는 다리 종아리를 주무르시면서 울고 난후 몇 년째 보지 못한
고향부모 생각하니 자신이 너무 한스러워서 죽어도 다시 부르지 않으리라 했던
정선 아리랑이 저절로 입에서 나왔다는 분.
노랑 저고리 연분홍 치마 받고 싶어 받았 -나-아아 우리 어메 말한 마디에
울며불며 받았지-이이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오오..................................
누가 나를 아리오 누가 이 고생을 아리오 아라리요 노래 불으면서 아라리요 노래 주인공처럼
혼자 울었다는 강원도 새색시!
1950년대 초반에는 너나 할 것 없이 정말 힘든 세월 이였나 봅니다.
그 새색시가 늙은 할매 되기까지 50년간 그 밭 뚜버리에서 흘린 땀은 참으로 많았나 봅니다.
언젠가 울 어메 말씀이 “저 할매 그동안 남 몰래 흘린 눈물은 앞 논에 모를 심고도 남 는다!”
하였습니다.
날이면 말마다 뜨거운 땡 빛 내리는 밭에서 왼 종일 엎드려 호미질 하시고
저녁에는 삼베길쌈 다구 치는 시어머니 잔소리에 (길삼 바구니를 들고
우리 집에 오시어서 울 어메하고 같이 길 삼을 많이 하시는 것을
나는 보았다) 긴 긴밤 잠도 한번 제대로 못 자고....
언젠가는 부족한 잠을 그만 정낭(화장실)에서 엎드려 자다가
시어머니에게 담배 대로 등줄기 피멍이 들도록 얻어맞아서 신약은 엄두도 못 내고
그저 거름 구덩이에 피어나는 개 멀구 잎사귀를 손바닥으로 탁!탁! 쳐서 아물지 않는
상처부위에 몇 달씩 붙이고 다녔다 합니다.
참으로 우리 어메도 그랬고...
그 당시 이 땅의 시어머니 구박은..... 모진 회초리 소리보다 더 매몰찬 세월이 이였나 봅니다.
곡기라고는 가마솥 보리밥은 아예 못 건드리고 시부모 먹다 남은 식은 밥이나
혹은 물 멀건 숭늉이요 그저 요즈음은 돼지 사료로도 사용치 않을 벌건 밀기울 가루로
수제비를 해서 먹으면 50년대를 살았다는 분.............
학가 산 너리티 고개에 미군 쌕쌕이가 꼬박 이틀을 폭격 하던 다음날
허연 옥양목 옷자락에 붉은 피, 가득 묻은 채로 지게에 걸처서 집 마당에 내려진 남편은
전쟁 끝 난 후 시름시름 앓다가 60년대 중간쯤 세상을 뜨셨고…….
남겨진 딸 하나 아들 둘 키우면서. 이 고개 넘고 저 고개 넘어 다니면서
묵 장수, 떡장수, 나물장수로 시어른 잘 모시고
동네 사람들로부터 “저사람 참 양반이지! 남편 복이 없어서 고생고생 했지만,
암 조선 없는 양반이야! 그런 소리 들어가면서 살아온 지난 세월입니다.
없는 살림에 어렵게 키운 딸...초등학교 끝나자마자 달랑 보따리 하나 들고
서울 식모살이로 나간 후 우째 우째하여 의정부에서 살다가 코쟁이 신랑 따라 미국에 가고. ..
공부를 괘나 잘했던 둘째 아들은 서울 부자 집 딸과 눈이 맞아 결혼하고
처가 집에 살면서 귀여운 손자도 보았다지요.
마을 사람들이 올커니, 이제야 강원도 할머니 고생 끝이다!
할매는 한동안 이 동네 저 동네 마실 길에는 서울 며느리,
아들 자랑으로 무척 기쁜 세월 이였습니다. 이제 고생 끝에 낙이라꼬...
마을 모든 이들이 강원도 할매를 부러워했었지요.
그런대..... 꼭 그런 것만은 아닌 것으로 보였습니다.
이제 그분에게도 팔순을 내다보니 머리에는 희디흰 갈대꽃이 은빛으로 내리고
귀도 잘 들리지가 않아 전화 소리도 못 듣습니다.
몇 해 전 아들 생일 때 참기름, 꼬들빼기 김치, 골짠지(무우 말랭이로 만든 김치) 호박 말린 것.
깻잎, 땅콩, 검은 콩, 자두 빛 팥. 누렁 된장, 고구마 싹, 말린 토란대궁, 태양초, 청양 고추 가루 한 사발.
가을 햇살 머금고 깜께 익은 산초가루..........
바리바리 챙긴 밥부제 보따리 머리에 이고, 손에 들고,
새벽 일찍이 그 머-언 길을 읍네 까지 걸어서 기차역에 당도 한 후
“서울 가는 차표 중 기중 헐한 것(제일 싼 것) 주이소” 새마을이나 무궁화는 엄두도 못 내고
통일호 입석을 타고 출세한 아들집에 갔지만…….
철없는 막내 손자 놈 대뜸 "엄마 저 할매 누구야?" 할 때는...
그저 검게 탄 자신이 너무 무안스러워서 헛웃음 웃으시고,
“아이고 내 새끼야 내가 너거 친 할매다!” 하셨다는 분.
부잣집 딸로 자란 서울 며느리,
행여 그 며느리에게 촌 시어머니 행색지절로 아파트 이웃들에게 흉보일까 봐.
문밖은 일체 나가지 아니하시고 넓은 창문으로 살짝 밖을 보시면서
"아이쿠 동네 집들도 조오타! 우짜면 저리 집도 조으노! 하셨다는 분.
별 말없는 며느리........ 너무 격이 높은 안 사돈 눈치....... 보며 단 하룻밤을 주무시고.
"야야 나 내려가야겠다.“ “아니왜요?” “.송아지가 굶 는다...말 못하는 짐승 배고프면 우짜노,
야야 나는 고마 오늘 내려 갈란다” 서울 올라 올 때 옆집 소산 댁 어른에게 서울 아들집에
가서 며칠 묵고 오신다면서 소여물 한 사나흘 부탁 하고 가셨지만 당체 아파트가 갑갑하고,
안사돈과 말없는 며느리 표정이 가시방석이라 점심 전에 청량리 역으로 나서면서
“며늘아 며늘아 우짜든지 싸우지 말고 얼나들(아이들) 잘 키우고 잘 살거라!
나는 걱정 말거래이.“ 몇 번씩 다그치듯 부탁하고 청량리 역에서 완행열차 타고
다시 시골로 내려 오셨다는 할머니. 그분은 우리 고향 고갯마루에 사십니다.
지금까지의 이야기는 고향에 자주 가는 놈이다 보니 자주 우리 집에 오시어서 양대 콩을
까면서 두런두런 울 어메하고 주고받는 이야기를 들은 것도 있고....
별도로 울 어메 한데 들어온 것도 있는 강원도 할머니 이야기 입니다.
이제 그분도 세월을 이기지 못하시고 누군가 버리고 간 아기 유모차를 밀고...
힘들게 마을을 다니십니다. 손자 없는 유모차를 몰고 다니십니다. 3년 전이던가?
고향 마실 들어서는데 어느 호호 백발 할머니가 ㄱ자로 굽은 허리를 펴지 못하시고 유모차를 밀데요.
가까이 가보니 강원도 할머니 였습니다. “할매는 왠 유모차를 밀고 다니시니이이껴?
그 할매 웃으시면서 유모차가 허리 아플 때는 지팡이보다 훨씬 안전하고 편하다고 하셨습니다.
발통이 네 개라서 잘 넘어 지지도 아니 한다는 것입니다.
그분은 내가 시골가면 자주 나물을 한 그릇을 담은 유모차를 밀면서 울 집에 놀러 오십니다.
늘 잘해드리지는 못하지만 내차 드렁크에서 꺼낸 성북동 나폴레옹 제과점에서 산 카스테라를 받아들고
소녀처럼 좋아라 하시던 허리 굽은 강원도 할머니.
이분도 한때는 나 어릴 때 개울가에 가면 울 엄마와 우유 빛 탱탱한 젖가슴 보일 듯 말듯 가리시고
찬물 한 바가지 퍼서 등목도 허시고 미나리 자라는 우물가 빨래터에서는
마을 건너 산이 동당거리며 울릴 정도로 야무지게 빨래 방망이 휘두르셨고,
읍내 오일 장날은 연분홍 치마 봄바람에 나풀거리면서 팔팔했던 젊은 새댁이 아니셨던가?
이젠 울 어메도 우리 8남매에게 피골을 다 빼앗기고 관절로 거동이 불편하시고
그분도 허리가 굽어 거동이 불편해서 예전처럼 자주 울 집에는 못 오시지만 늘 상 우리 집을,
멀리 있는 친척보다 더 가까이 하고 울 어메 보고 “동상, 동상(동생동생)” 하시면서
친 동기 이상으로 살아온 분입니다.
(친척은 아니지만 그분도 밀양 박씨, 울 어메도 밀양 박씨다.)
몇 해 전 구정 설 전날, 즉 섣달 그음날 이였습니다.
시간도 많아 겨울이면 아직도 지게를 지고 나무를 해서 군불 지피시는 고향집 어메 생각에
산에 나무나 할까하고 나는 미리 고향에 내려가 있었습니다.
모두들 정든 땅 버리고 객지로 떠난 텅 빈 마을!
한마디로 우리 시골은 그저 구멍 숭숭 난 빈 벌집보다 더 허허 합니다.
설 전날 동네 꼬마들이 이 골목 저 골목 참새 떼처럼 몰려다니던 더 이상 그런 농촌이 아니고
그저 허물어진 빈집만이 잎 떨어진 잡초 대궁사이로 머 얼거니 서있고 깨진
사발그릇 몇 개씩 뒹구는 빈집 뒤 안에는 거미줄만 가득하고,,,
도회지로 떠나면서 버리고 간 세간살이가 이 마당 저 마당 빛바랜 무명치마가 갈래갈래
너울져 내린 것처럼 너부러져 모든 것이 마치 숨조차 멈춘 적막만이 있을 뿐 입니다.
그저 꼬마 아이 한명도 안돌아 다니는 그런 고향인지라 나만 보면 얼씨구 서울 양반 또 왔구나!
꽁지를 사타구니에 틀어서 넣고 낑낑거리면서
오줌을 질질 싸기도 하고 버얼것게 길쭉한 물건을 삐죽이 내밀기도 하는...
그런 숫 똥개 한 마리 거느리고 마을 여기저기 허물어진 빈집을 기웃거리며 어릴 적 재잘거리며
골목길 나오던 친구도 생각하고 어슬렁 어슬렁 왔다리 갔다리 하는데..
구정 하루 전날이라서 선지 멀리 기차 기적소리도 더 크게 들리고
마을 앞길에도 산 넘어 이웃 동네로 가는지...
도회지 승용차가 헤드라잇 불빛을 번뜩이면서
동구 밖을 돌아 지나가는 차들이 많았습니다.
그런 차량 불빛이 일렁일 때
마을 입구 어둑어둑한 동구 밖에 누군가 우두커니 서 있었습니다.
누구인가? 어둑어둑한 이 밤에...가까이 가보니 강원도 할매가 홀로 유모차 잡고
동구 밖 느티나무 아래에 목 길게 빼고 서 계셨습니다. "왜 여기 나와 계시니껴? 추분데.." “
아이고 조카네! 그냥 답답해서 나왔지 뭐.....” “
근데, 누구 기다리 니이껴 왜 여까정(여기까지) 나와 있니이껴? “
아니 그냥 나와 있어......갑갑하고”
나는 알고 있습니다.
나는 강원도 할매가 왜 동구 밖까지 나와 계시는지 나는 잘 압니다.
오랜만에 모두들 구정이라고 손자, 며느리 앞세우고
차량 불빛이 번쩍거리며 고향 들어오는 동구 밖 저 차들 속에.
행여 내 손자들 올까 하마나 우리 출세한 아들 올까.......
하마나 어여쁜 울 서울 며느리 올까.....
왼 종일 동구 밖에만 내다보시다가 결국 느티나무 근처까지 나와서 기다리고 계신다는 것을.
내가 우째 모를까 마는 ..
찬 섣달 금날 저녁 무렵 그저 동구 밖도 을씬스럽고...
홀로 자식 기다리시다가 나에게 들키신 것이 못내 쑥스러워 하시는 모습은
정말 나도 가슴 아파 씁니다.
빈각보다 六角이 후손에게 더 좋을세라
소수서원 學子木 주변에 赤松을 심은 心精으로 무변무언으로 밤늦도록 홀로 서있건만
그날... 그 눈발 날리던 그날, 울 어메에게 수백 번은 더 자랑하는
서울 아들, 며느리는 끝내 오지 않았습니다.
울 어메 이야기로는 벌써 몇 년째 서울 아들은 명절이 와도 고향에 아니 온다 합니다.
이미 먼저 세상 뜬 큰 아들...
자신처럼 일직 홀로 사는 며느리에게 조금 땅을 뛰어 준 것이 화근(禍根) 이였나 봅니다.
나머지 많지도 않은 땅 떼기도.. 서울 아들이 밤에 내려와,
팔아 간지 이미 오래되었다 합니다.
니 집 내 집 할 것 없이 별 쓸모도 없는 산골 땅...
재산 분배 할 때 젊은 도회지 며느리나 자식들은 그 일로 삐지는가 봅니다.
그런 서울 아들, 손자, 며느리가 내일이면 구정 설이니 하마나 도착할까 하마나 도착할까...
동구 밖에서 홀로 木神처럼 기다리시는 할매를 모시고 나는 울 집으로 왔습니다.
울 어메 부탁으로 할 수 없이 서울에 전화를 했습니다.
아마도 할매는 지금쯤 서울 아들 내외가 보고 싶은 손자들 태우고
괴산 지나고 문경 지나고 예천 지나고 이곳 두멧골로 내려오는데....
행여 휘날리는 이 눈보라로 차 사고라도 날까봐 영영 걱정 되었는가 봅니다.
그런 할매 걱정스러움을 알아차리고 울 어메가 “언니 잠간 기다려,
울 아들이 서울 언니 아들집에 전화 해 본다카이 기다려! “전화번호 주이소,
내가 해봄시더어, 서울서 몇 시에 출발 했는지” 띠리링, 띠리링....서울로 전화를 걸었습니다.
여보세요? 누구세요? 거기 상계동이지요? "네 맞는데요.(고등학생 같다)
“여기 시골 할매 집이데..
너거 아빠 있냐?” “아빠요? 지금 우리 엄마하고 스키장 갈려고 준비하는데요? ...................
아니지 아니지 그건 아니지....뭣이여 용평으로 스키 간다꼬?
그것도 모르고 강원도 할매는 읍내에 나가서 참기름 짜서 맥주병 몇 번이나 세척 후에
두병씩이나 병에 담아 놓고 ...
아들 먹을 고추는 햇살고운 처마에 가을 내내 말려서 행여 농약 묻어있으랴
일일이 하나하나 닦아내고 겨울 나생이가 더 맞 있다 하시면서
며칠 전부터 양지바른 이 밭뚜버리 저 밭뚜버리 돌아다니면서 나생이 캐서 놓고. "
서울 울 아들은 속새김치도 좋아해" 밋밋한 속새는 대충 다듬어 이녁이 무쳐 드시고
씹으면 꼬들꼬들할 알토란같은 속새는 알뜰히 다듬어
고방에 재워두고 그럼 호박도 얼굴이 있지,
암 얼굴이 있고 말고 울 서울 며느리는 나 같은 일자무식한 시어머니와는 다르지
호박도 며느리처럼 방실방실한 인물 좋은 것으로 만들기 위해 여름 내내 비바람 천둥에
이리 뒤집어 놓고 저리 뒤집어 놓고 골고루 햇빛 받게 키운 것 중 가장 방실방실한 이쁜 것만
골라서 놓고 참 요즈음 겨울 무우가 몸에 그리 좋다지.. .
제일 실한 것은 구정 설 아들 오기 전에 바람 들세라 땅속에 깊이 꼭꼭 묻어놓고
감자도 삶아내면 뽀하니 분이 터질 것만 같은 것으로 미리 골라서 마다루 포대에 싸놓고
행여 지난번 손자들 내려 왔을 때 불만처럼
“우이-씨 시골 화장실에선 냄새도 나고 똥이 안나와!
엄마 빨리 서울 가자!” 소리 지르던 손자넘 생각에 컴컴한 정낭에 전등불도 하나 달고,
깨끗한 화장지도 갖다놓고 세뱃돈은 장터에서 아름아름 새 돈으로 바꾸어 준비했거늘
며칠째 전화통만 기다려도 소식이 없다가....지금 와서 스키장이라니!.
그런대 이띨띨한 넘이 눈치도 못 차리고 꼴에 강원도 할매한데 인심 쓴다꼬......
서울에 덜컥 전화를 걸긴 걸었는데...이를 우짜노? 난감하다. 스키 간다는데 이를 우짜노?
님들.도대체 뭐라 캐야 되니이껴? 하이고 나 미치고 한장 하겠네......
우짜노 우짜노 하는데
울어매도 눈치 코치도 없이 자꾸 다그치시네!
"아애비야 언니 서울 아들집에 전화 안받나?
우짜면 좋을까? 두 눈 따-악 감고 귀먹은 강원도 할매에게 큰소리로 "할매요
아들내외는 강원도로 스키간다 카니더어" 화-악 일러 줘뿌까?
차마 울 엄마와 아랫목에서
떡국 설면서 힐긋 힐긋 전화 거는 나를 쳐다보시던
강원도 할매를 보니 그 말을 못했습니다.
이런 젠장....강남 아지매들 될꾸 분위기 있는 가페에서 차 마실 때는 말도 잘하던 놈이
우째 할매 앞에서는 말도 못 허네 그려! 여보세요? 아 여보세요?.
.아 서울 대치동 아닌지요?
어 전화 이상하네.....잘 못 걸렸나? 이상타 눈이 와서 전화선이 고장이라? ..중얼 중
시외전화가 잘 안 되네...뚜뚜뚜. 어이쿠 띨띨헌 이눔아 전화통 팽개치고
괜히 마시다가만 정종을 단숨에 들이켜 씁니다.
“어 정종 맛 한번 조오타! 탁! 소리가 날정도로 잔을 바닥에 내려놓자 울어메
“아이고 야야 통화 했으면 말을 해줘야지 술은 왜 자꾸 마시노?
니도 제발 술 쫌 고마 마시래이 내사 니 술 그래 벌컥벌컥 마시는 것 보니 애간장이 다 탄다,
기수도 작년에 술 때문에 죽었잖나(기수는 내 친구다) 술 좀 고마 마시라!
할매 아들 전화 안 받드나? 어메는 눈치도 없이 또 묻습니다.
그래서 내가 큰소리로 말했습니다.
“강원도 할매 정종 한 잔 할라니이껴? “안해....울 아들이 전화 안 받던가?”
“이 술 엄청 좋으더어 할매 한잔 해뿌소!
지난번 일본 군마겐에서 나 찾아온 도꾸다가 갖고온......
이게 이래도 물 건너 온 왜놈 술이씨더, 할매 고마 나하고 한잔 하시더!” “
나는 딴죽을 떨었다.
아직도 눈치 못 차린 강원도 할매는 "전화 통화 안 되는가?" 또 물었다.
할매요 오늘은 눈이 와서 그런지 서울 전화가 잘 안되니이더어!
할매 보소 우리도 팔남매 아이껴..
그런대 우리도 나만 왔잖니이껴! 이번에는 눈 때문에 시골 오기 힘들 것 같니이더어,
지금 전화도 안되니이더어! 고마 올해 설 떡국은 우리 집에서 먹시더어........
물론 오늘 늦게라도 부천 사시는 형님도 오고 구미 사는 동생도 오고 조카들도 오고하여
온 방안이 곧 야단법석이 일어 날것이다. 나는 괜스레 이 마당에, 강원도 할매 사정도 모르고
형님네나 동생 내가 우루루 들어 닥칠까 겁이 났다.
갑자기 속에서 울컥 욕이 튀어 나왔다. 우이씨 이런 빌어 먹을 띨띨한 넘아!
미련 곰탱이 같은 놈!
까짓것 요즈음 무심한 일부 도시 며느리들 역부로 흉이라도 시원하게
할매 한데 해드려야 하거늘!
자식 언제 내려올까 궁금해 하는 늙은 할매 한데 거짓말을 하다니!
에라 이 무우 청, 씨레기 국에 몇고기(멸치)만도 못한 넘!
영덕 어시장에 물간 오징어 뒷다리만도 못한 넘!
육간대청 마루에서 오줌 누다가 처마에서 떨어져 부알 떨어질 넘!
니 팔자 내 팔자나 함흥 요 보루 못 깔고 덜덜 떨다가 객사로 얼어 죽을 넘!
스키장 급경사 활강하다가 뚱뚱한 아지매 엉덩이에 쿵! 하고 받쳐서 잠시 요절 할 넘!
이놈아 이놈아 하이쿠 띨띨한 이놈아!
요즈음 도시 일부 살찐 부자 집 며느리들이 떼 거지로 몰려다니면서 골프다, 스키다,
애로(愛路)빅이다 살판나게 즐기시는 문화를 몰라서 그러야?
시어머니는 50년 전에는 밀기울 죽도 못 먹고
모진 시집살이에 등창이 날정도로 고생하였지만
세상이 살기 좋아지고 고부간에 살붙이 정도 달라지고
극히 일부라 하지만 남편 일가고 나면
경춘가도에 비까번쩍 외제차 끌고서 떼거지로 흐느적거리면서 몰려다니는 며느리 세상!
온천욕 즐기시고, 호화판 레스토랑에서
스데익에, 보졸랜가 저졸랜가 프랑스 와인 마시며 살아도 ...
재산 분배로 삐지고, 참기름 반병에도 삐져서....
늙은 시어미에게 일 년에 단한통의 안부 전화도 없이 사는 며느리
어디 한 둘인 줄 아나 이놈아!
미친 넘! 멀쩡한 사지 옷 나무 묶어서 양철 영감 웅뎅이에 처박을 넘아! 엉?........
이거 내한데 욕하는거 맞지? 암 절대 강원도 할매 둘째 아들 한데 하는 욕은 아니지!
내가 나보고 하는 욕이지!
왜넘 사께인지, 사까다찌 술인지 정종이나 한잔 더하자! 크-윽 좋타!
전라도 말로 입안으로 한잔 탁 털어 넣으니 “우메잡것 한잔하께 열 더받어 부러!”
아이고 이넘아 이넘아 자고로 부모란 열 자식 하나같이 키워 놓아도
덜컥 그 부모 병이라도 난다면 열 아들 열 며느리들 서로들 눈치 보다가 공평? 운운 하면서
큰 아들집 보름 모시고, 둘째 아들 집 보름 모시고... 셋째 아들집에 보름 모시고
병든 부모 탁구공처럼 이리저리 돌리다가 급기야 오줌 똥 싸는 시어머니 머리맡에 두고
이혼 도장 팍!팍! 찍는 집안 한두 집 인줄 아느냐?
야 이 뻔데기 우려낸 국물에 갈비뼈를 소금에 저릴넘아!
젊어서 지화자 좋다 술만 마시고 놀기를 좋아하던 할배들은
어느 날 덜컥 수족 못쓰고 누워버리면 남은 할매 만 죽사발 나시게
할배 병 수발로 몇 년씩 고생하고
덜컥 영감 세상 뜨고.......
빌려온 보릿자루처럼 텅빈 고방에서 혼자 중얼중얼 하시면서
살아야하는 요즈음 시골 할매들......
차라리 못 먹던 옛날 같으면 어여쁜 손자라도 업고 마실 다니지!
이제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소주 녀석들은
저 멀리 객지에 있어 얼굴도 잘 모르고 ,
허리한번 못 피고 땅만 파고 살아온
이 땅의 시골 할매들은 이제는 설날이 와도 혼자구나!
결국엔 할매 홀로 남는 법! 이래저래 할매들만 억울하다,
나는 평소 지은 죄가 많아서 다시 환생한다면 똥개 정도로 태어나도 감지덕지이겠지만
행여 하나님 은혜로, 채시라 같은 허리에 효리 같은 가슴에 혜교 같은 붉은 볼에
주현미 같은 목소리를 준다 캐도 이 땅에 할매 팔자로 태어나는 것은 싫다!
그래 이넘아!
네놈이라고 용빼는 제주 있을 줄 안다면 큰 착각이지!
허긴 우리 8남매도 언제가 울 어메 늙고
병들어 오쭘 똥 싸시면 모르긴 해도 팔남매 다들 귀잖아 할 것이다! 그런대,,,,
삼척 할매 서울 아들 분 재산분배로 삐져서 구정 설날 전화 한통 없이
강원도로 스키 간다한들
네놈이라고 욕할 입장이 아닐 것이다! 어? 적고 보니 맞는 말이네,
나도 그래 되고 충분히 남을 넘이다!
밤 삼척 할매는 결국 울 집에서 떡국을 드셨다.…….
그리고 늦은 밤 눈발 날리는 골목을 따라서 집까지 바래다 드렸다.
집 앞에 서서 들어가지도 아니하시고 성성한 머리카락 눈발과 함께 날리시면서
“이이구 고맙네 고마워, 추분데 어서가게! 하시면서 눈물 글썽이던
삼척 할매 모습을 나는 영영 잊을 수 없습니다.
이제 구정설이 다가옵니다. 눈발이 날리면 "야 자연설 타러가자!"
홍천으로 용평으로 무주로 겨울을 즐기려 가시겠지요. 물론 가족과 행복한 스키 후에
따뜻한 콘도에서 아내와 속살도 흐브지게 태우셔야 합니다.
그러나 시골서 늦가을부터 이것저것 챙겨 놓고 도회지에서
살고 있는 자식 기다리는 노모를 두고
스키장 가시면 안 됩니다. 가시더라도 할매델꼬 가시길 바랍니다.
물론 자식 챙피 할까봐 선뜻 따라 나설 시골 할매 단 한명도 없을 것입니다만.
혹 모시고 가신다면 몇 코스 돌고 콘도로 들어서면,
꼬둘뻬기 김치에 할매가 만든 따뜻한 이밥이 기다릴 것입니다.
그분이 귀하처럼 젊은 나이에는 꿈도 못 꾸었던 따뜻한 이밥이 기다릴 것입니다.
비록 핵가족으로 정들지 못한 시어머니일지라도 따뜻한 콘도 목욕물 받아서
등이라도 한번 밀어주시면 어르신 돌아가실 때
"아가 내 정영 限도 援도 없다! 하실 것입니다"
아니 안될꾸 가시더러도 전화라도 한통 해 주시길 바랍니다. 그렇습니다.
해마다 이런 눈 내리는 섣달 금 날이 닦아오면 새벽녘 시골 방구들은 한기가 서려
윗목에 마시다만 물그릇은 살얼음이 얼고 청춘가자 백발이 문밖이라고
노인들은 홀로 빈방에서 마치 무서리 내린 밭에 떨거지 고추나무처럼 외롭고 춥습니다.
누구오지도 아니하는 새벽이건만 괜히 찬바람에 미닫이문만 덜컹해도.........
머얼리 시집보낸 딸 걱정으로 혼자 두런두런 하시는 노모들이 계십니다.
막내 딸 울음소리는 죽어서 땅속에서도 듣는다 합니다.
그런 할매들이 말 상대할 할배도 없이 그저 혼자 두런두런 하시며
사시는 외로운 세상 입니다.
올해도 그런 우리들의 할매들이 구정 연휴 며칠 전부터 동구 밖에서 서성거릴 것입니다.
허리가 굽어서 버려진 유모차를 끌고서라도 동구 밖에 홀로서서 먼발치로 들어오는
도회지 차량을 기다릴 것입니다. 머나먼 외국 땅 살아서 비록 올 수 없는 자식이라도....
세밑 절절한 그리움으로 동구 밖까지 나와서 홀로 서성거릴 것입니다. 끝. --------------
후기: 강원도 할머니는 2년 전 소천 하셨습니다.
전라도 순천 장에 내려 갔다가 맞있는 갓김치 들고 고향에 갔더니 이미 기력이 다하시어
저를 못 알아보시데요. "할메요, 부디 좋은 곳으로 가이소!" 살빠진 손 잡아 드리고
서울 올라온 몇주 후에 하늘 나라로 가시였습니다. 이제 구정이 몇일 남지 않았네요..
문득 그날 어둑 어둑해진 동구 밖에서 홀로 서성거리시던
강원도 할머니가 몹시도 그리분 밤입니다.
2016년 1월 설날을 앞두고....................
나도 그래 되고 충분히 남을 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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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긴 글이였지만 재미나게 가슴아프게 읽었습니다 양가 부모님 다 별세하시고 이제는 내가 자식을 맞이하는 나이가 되었네요 시골이 아니라 손수 지은 농작물은 없지만 오면 들려보낼 밑반찬이랑 이것저것 한다고 벌써 바쁨니다
맏집이라 아직 동서네들 오고가니 ~이젠 힘에 부치네요 스키장~ 여행~아직 내게는 어림 반푼어치도 없는 일이네요
명절 잘 보내세요
긴글을 끝까지 잘보셨음을 감사드립니다.
강원도 산골에서 아름답게, 순박하게 자란 처녀가 아무것도 모르고 시집을 가서 갖믄 고생을 하면
자식들을 키워지만 말년을 편안하게 지내지 못하고 그저 자식을 생각하면 기다리는 마음,
부모님의 자식 사랑이란 내리사랑을 나타내며, 자신은 헌신적으로 사랑을 바차는 어머님의 삶이
오늘에 현실 그리고 시골의 어머님의 현실의 삶과 과거의 비참한 생애의 삶이 현실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실제삶을 글로 표현한 것입니다. 우리의 세대는 어떻게 변할지, 어떤한 현실일지.....
저도 자식을 키우고 아직은 출가를 시키기는 못했지만, 설날이 돌아오니 강원도 할머니 생각하니
마음이 어려워지네요.
명절을 앞두고 여러가지 생각에 잠기셨군요
잘 보고 갑니다
이헌 조미경님!
긴 글을 보시느라고 고생하셨습니다. 끝까지 보셨음을 감사드립니다.
어머님의 삶을 나타나응 것중 하나의 표현이라고할까요.
우리의 앞세대의 어머님의 현실 아니 산골 시골의 어머님의 삶의 현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