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3:16
요즘은 걸핏하면 눈물이 납니다. 사람이 악하면 악한대로 선하면 선한대로
살아야지 변하면 죽는다는데 이제 제가 죽을 모양입니다. 누가 내게 무슨 짓을
한 것이여? 과거 대한민국이 개발도상국일 때는 독일도 가고 월남도 가고
중동도 원하면 갈 수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나라가 어중간히 돈을 버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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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D직종은 모자라도 일자리는 없습니다. 나이 쉰 줄에 앉아서 제2의 인생을
시작하려고 팔방으로 모색을 하였지만 길이 보이지 않습니다. 사-람-살-려.
이젠 마지막 수단으로 '아미랜드를 날리고 대한민국을 떠야야 하나'를 고심 중에
있습니다. 세상 나라와 하나님 나라의 차이는 ‘사랑의 원리‘가 지배하는 것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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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16)” 저는 이 구절을 8살
때, 라면 땅 받아먹으러 여름 성경학교에 갔다가 처음 들었고, 저절로 암송을
한 후 유일하게 기억하고 있는 구절입니다. 요한은 1장에서 나다니엘 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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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하신‘하늘이 열리는 것을 보리라’는 대 주제를 제시해놓고 2장부터 표적의
책을 시작했습니다. 첫 번째 표적인 가나의 혼인 잔치 이야기에서 형식주의에
빠진 유대교와 예수그리스도를 대조함으로 구원은 오직 예수그리스도에게
있음을 보여줍니다. 이어지는 성전 파괴의 사건은 두 번째 표적인데 새 성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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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을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이어서 니고데모 이야기를 통해 거듭남의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니고데모와 예수님의 대화 말미에 있는 이 구절은 기독론에 있어
서 보석입니다. 하나님의 사랑 방식 “이처럼”은 자신의 가장 소중한 아들을
내어주시는 방식이었습니다. 그들의 심판을 면하게 해준 대 그치지 않고 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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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구원하여 영생, 영원한 기업에 참여하게 하신 사랑이었습니다.
거부하고 반항하고 심지어 돈보다 더 미덥지 못한 분으로 취급하다 파멸을
자처한 피조물을 돌이켜 세우고 잡아끄는 사랑입니다. 이젠 과거를 묻지 않고,
지금부터라도 주를 내 왕으로 삼아 살기로 작정하면(하나님 사랑),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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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시는 세상을 나도 사랑하면서 살기로 작정하면(이웃사랑), 하늘에서
은혜가 내려와, 내려와 지금이 땅에서부터 하늘을 살고 영원을 사는 자로 참여
하게 하시는 사랑입니다. 심판과 구원은 동전의 양면이지만 하나님의 뜻은
심판이 아니라 구원입니다. 몸소 찾아가 한 명이라도 더 잃은 양을 찾으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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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을 보내신 것입니다. 심판은 그분이 내리시기 전에 내가 자초한 것입니다.
사랑은 자유라는 모판(자유의지)에서만 살 수 있습니다. 물론 하나님의 줄기찬
구애를 외면한 자는 자기가 선택한 길을 맞이할 것입니다. 자신이 얼마나
끔찍한 선택을 했는지는 마지막 날에 드러날 뿐 그들은 행복하게 살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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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죽기도 할 것입니다. 그런데 내가 만약 심판 받은 자의 호사가 부러움의
대상이 아니라고 여긴다면 나는 벌써 하늘에 속한 자고 성령에 속한자입니다.
빛과 어둠을 가른 것은 진리입니다. 어둠은 빛이신 예수님의 말씀이 아니라
자기 자신, 자신의 욕망을 기준으로 삼고 맘대로 삽니다. 그것이 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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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이 빛을 싫어한 것은 자기가 틀렸다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고, 자기
주도권을 내어놓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옳고 그름이
아니라 현상유지에 기여하는지 여부입니다. 사랑으로 통치하는 나라는 어둠을
뚫고 침노하는 자들만이 누릴 수 있는 좁은 문의 나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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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기독교의 탑 시크릿 입니다. 박대통령 게이트의 키워드는 ‘출생의
비밀’과 ‘왕의 남자’가 누구냐 인데 이 둘은 어느 부분 겹쳐지는 공통분모가
있습니다. 정유라가 공주인 것은 거의 확실해보입니다. 만약 유전자 검사를
할 수 있다면 간단하겠지요. 근데 어떤 간덩이 부은 피 풀이 왕의 허락도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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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짓을 할 수 있습니까? 그렇다면 왕의 남자는 누구인가? 나이로 보면 정씨
가 가깝지만 여러 정황으로 미뤄볼 때 친부는 최 씨가 될 개연성이 더 높습니다.
독일은 차관을 얻기 위해 그 옛날 우리 누나 형님들이 몸으로 때우러 갔을 때
부터 만들어 놓은 나와바리 같은 곳입니다. 그곳에 공주와 왕자를 숨겨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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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어른들이 알아서 해결하겠다고 공사를 치는 수법 같습니다.
저는 암만봐도 최 순 실은 ‘고모이지 엄마가 아니다.’ 에 한 표 걸겠습니다.
아무리 화가 난다고 엄마한테 ‘대학도 안 나온 게 지랄이라고’ 말하는 딸내미
를 50평생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럼 정씨는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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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씨의 운전기사, 박 대표의 수행비서, 그리고 정인이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