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자식은 이와 같은 모든 수레의 말을 듣고 곧 때에 분주하게 앞다투어 가면서 달음박질하여 나와서 빈 땅에 이르러니, 모든 괴로움과 난리를 여의었느니라. .................이 때 모든 자식은 아버지께서 편안히 앉았음을 알고, 모두 아버지의 거처로 나아가서 그리고는 아버지께 아뢰어 말하되, 「원하옵건대, 저희들에게 앞에서 허락하신 바와 같이 세 가지의 보배수레를 내려주시옵소서. 모든 자식이 나온다면, 마땅히 세 가지의 수레로써 너희가 하고자 하는 대로 따르리라고 하셨나이다. 지금이 바로 그 때이오니 오직 베풀어주시옵소서.」"
이것은 부처님의 가르침이 괴로움을 없이 하는 발고(拔苦)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즐거움을 주는 여락(與樂)에 까지 미치고 있음을 설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부처님의 가르침은 우리의 괴로움을 없이하고 현세안은(現世安隱)의 즐거움을 가져다 줍니다.
우리의 괴로움을 없이 한다는 것은 괴로움의 근본인 미혹을 제거할 수 있는 가르침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잡초를 제거하자면 뿌리째 뽑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다시 자랍니다. 이처럼 우리의 괴로움을 없이 하자면 괴로움의 근본인 미혹을 제거해야 합니다.
그러나 단지 괴로움을 제거하는 것만이 신앙의 목적이 될 수는 없습니다. 신앙의 궁극적인 목적은 현세안은의 즐거움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법화경을 열심히 신행하는 것도 단지 괴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를 통한 즐거움을 찾아, 우리의 생을 윤택하게 하는데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그러한 즐거움은 세속적인 즐거움은 아닐 것입니다. 예를 들어 부처님과 같은 경지는 아니더라도 어떠한 일이 벌어질 때, 미리 그 일을 알았던 것처럼 편안한 마음으로 대할 수 있는 그러한 현명함 같은 것, 또는 그러한 현명함으로 주위사람들을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는 것, 이런 것들이 즐거움이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것들은 바른 신앙과 불퇴전의 신행에 의해서 자연적으로, 일부러 구하려고 애쓰지 않아도 얻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