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서는 “조금 있으면 너희는 나를 더 이상 보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다시 조금 더 있으면 나를 보게 될 것이다.”라는 말씀으로
당신의 죽음과 부활을 예고하신다.
그러나 제자들은 아직 이 말씀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복음).
오늘 복음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표현은
‘조금 있으면’과 ‘조금 더 있으면’입니다.
‘조금 있으면’ 예수님을 보지 못하나
‘조금 더 있으면’ 예수님을 보게 된다고 합니다.
이 표현이 예수님의 말씀에서 두 번이나 나오고,
제자들의 입에서도 한 번 나옵니다.
‘조금 있으면’과 ‘조금 더 있으면’이라는 표현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느끼게 합니다.
지금 제자들은 예수님과 함께 있어서
든든하고 행복하며 은혜롭습니다.
그러나 이 시간은 잠깐입니다.
‘조금 있으면’ 예수님을 보지 못하게 될 것이고,
따라서 그들은 든든함 대신에 불안을, 행복 대신에 불행을,
은혜 대신에 고통을 겪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불안과 불행, 고통도 역시 영원히 지속되는 것이 아닙니다.
‘조금 더 있으면’ 예수님을 다시 볼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때는 불안과 불행, 고통은 사라지고
든든함이, 행복이, 은혜가 이어질 것입니다.
이는 제자들만이 아니라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가운데 지금 행복한 삶을 누린다고 느끼는 사람은
그것이 영원하지 않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이고,
반대로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 또한
그것이 조금 더 있으면 사라지게 될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조금 있으면’ 사라지게 될 것을 두고 행복감에 젖을 필요도 없고,
‘조금 더 있으면’ 사라지게 될 것을 두고 절망할 필요도 없습니다.
좋은 일이라고 항상 좋은 것으로 남지 않고,
나쁜 일이라고 항상 나쁘게만 남지 않습니다.
주님께서는 이 모든 체험을 통하여 결국에는
우리를 영원한 행복으로 부르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조금 있으면 너희는 나를 더 이상 보지 못할 것이다.”
스승님께서는 비장한 말씀을 남기십니다.
하지만 제자들은 알아듣지 못합니다.
함께 계실 분으로만 믿고 있습니다.
“무슨 이야기를 하시는지 알 수가 없군.”
그들은 이렇게 서로 수군거릴 뿐입니다.
예수님의 죽음이 아직은 현실이 아닙니다.
의지했던 사람이 떠나가면 누구나 허우적거립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방황을 모르실 리 없습니다.
그렇지만 ‘홀로서기’를 기다리십니다.
그래야 당신의 참제자로 다시 태어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신앙생활도 결국은 ‘혼자’ 가는 길입니다.
세례를 받는다고 ‘모든 것’이 깨달아지는 것은 아닙니다.
모르는 것이 더 많습니다.
친절하게 가르쳐 주는 이도 없습니다.
알아서 해야 합니다.
고해성사도 봐야 하고, 묵주 기도도 알아서 바쳐야 합니다.
힘든 것을 스스로 해야만 ‘홀로서기’가 가능해집니다.
그 사람은 머지않아 은총의 이끄심을 만나게 됩니다.
신앙심은 저절로 자라나지 않습니다.
공동체 안에서 부딪치고 어울려야 자라납니다.
지식 위주의 교리는 언제나 안내자일 뿐입니다.
사람과의 만남 속에서 ‘실천하는 믿음’이라야
신앙생활이 공허해지지 않습니다.
사막을 걷지 않으면 오아시스를 만날 수 없는 법입니다.
첫댓글 "신앙생활도 결국은 ‘혼자’ 가는 길입니다.
세례를 받는다고 ‘모든 것’이
깨달아지는 것은 아닙니다.
힘든 것을 스스로 해야만
‘홀로서기’가 가능해집니다.
신앙심은
저절로 자라나지 않습니다."
오늘도
구구절절 주옥의 말씀 새겨 듣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