템즈 강변에 도착했을 때, 빗방울이 약간 떨어져서 국회의사당과 빅벤 시계탑이 선명하게 잘 보이지는 않았다. 공사 중이어서 지붕 첩탑도 곳곳이 가려져 있다. 그러나 우리 부부는 이번이 두 번째로 왔기 때문에 예전에 뚜렷이 보았던 기억으로 위안이 되었다. 영국은 하루에도 날씨가 여러 차례 바뀌어서 어쩔 수 없다. 금새 해가 나다가도, 금새 비가 오는 곳이 영국이다. 템즈 강 건너 맞은 편에 고딕 양식의 국회의사당 건물이 크고, 길고, 화려한 자태로 서 있다. 국회의사당은 영국 정치의 심장부로 현재의 건물은 국회의사당으로 사용되던 웨스트민스터 궁전이 소실되자 팔리 배리경에 의해 새롭게 복원한 것이다. 국회의사당은 국회가 열리는 기간 중에서 방청목적으로 관람이 가능하다. 궁전을 지을 목적으로 건축을 시작하였고, 역대 왕들이 거주하며 계속 증축하여 왔다. 그런데 한 사람이 지은 것처럼 보인다. 그것은 동일한 양식으로 통일해서 증축해 왔기 때문이다. 대단한 업적이라는 생각이 드는 대목이다. 2차대전시 파괴 되었으나 다시 복구하여 현재의 모습이 되었다. 바라보는 쪽에서 국회의사당 건물 오른 편에는 빅벤이, 왼편에는 빅토리아 타워가 오롯하게 솟구쳐 오른다. 방향으로는 국회의사당 동쪽 끝에 거대한 시계탑 빅벤이 우뚝 서 있다. 빅벤은 96m이고, 유니언 잭이 휘날리는 빅토리아 타워는 106m다. 영국의 국기인 유니언잭Union Jack은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북아일랜드의 깃발을 조합해 만든 것으로 중세 십자군 원정부터 사용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두 개의 직선이 가로 세로로 교차한 십자가(성 게오르기우스의 십자가)는 잉글랜드 국기, 흰색 X자로 되어 있는 성 안드레아의 십자가는 스코틀랜드 국기, 붉은색 X자로 되어 있는 성 파트리치오의 십자가는 북아일랜드 국기로, 이 세 국기가 합쳐진 것이다. 유니언잭은 1603년 스코틀랜드 국왕이 잉글랜드ㆍ아일랜드 왕위를 물려받고 제임스 1세로 즉위하면서 유래됐다. 이후 1707년 스코틀랜드가 잉글랜드에 병합되고 1801년 북아일랜드를 상징하는 디자인이 추가되며 현재의 유니언잭이 됐다. 한편 영국연방을 구성하는 웨일스의 상징인 붉은 용의 경우, 13세기 말경에 이미 웨일스가 잉글랜드에 병합되었기 때문에 유니언잭이 만들어질 당시 잉글랜드와 웨일스는 하나의 국가로 인식되어 유니언잭에서 빠져 있다. 웨일스 주민들은 웨일스의 상징인 붉은 용이 추가되어야 한다며 유니온잭 디자인의 변경을 요구하고 있다.
국회의사당은 회이트홀이 끝나는 템즈 강변에 있으며, 700년이 넘는 동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영국 의회정치의 전당이다. 이곳에는 원래 웨스트민스터 궁전이 있었는데, 1834년 대화재로 소실되고, 지금의 모습으로 재건되기 시작해서 1860년이 되어서야 완공되었다. 대화재 이후 디자인 공모에 참가한 97개의 작품 중에서 당선되어 그것을 기반으로 훌륭한 예술가들과 합세하여 만들어진 고딕 스타일의 건물이다. 하나의 예술 작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건물 정면의 길이가 300미터가 넘고, 1천 개 이상의 방을 갖추고 있다. 그 유명한 빅벤은 높이 95m로 아직도 시간을 손으로 감는 전문적인 시간지기가 있다. 꼭대기 조그만 방에 불이 켜져 있으면, 의회중이라는 것이다. 야경이 특히 아름답다. 국회의사당은 폭탄 테러 이후 입장이 어려워졌지만 방청 형식으로 입장이 가능하다. 매년 이곳을 방문하는 수백만 명의 세계인의 시선을 사로잡는 것은 빅벤이다. 빅벤은 1859년에 완성된 거대한 시계탑이다. 런던에서 가장 유명한 건조물 중 한다. 언제 봐도 멋지지만 특히 국회의사당의조명이 빅벤 위로 쏟아지는 모습이 시작되는 밤의 풍경이 환상적이다. 빅벤의 크기를 짐작할 수 있는 높이는 넢이 97m다. 시계의 숫자 크기가 60cm다. 분침의 길이가 4m로 그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그리고 시간마다 울리는 종 중에서 가장 큰 것의 무게는 13톤이고, 4면의 시계의 지름이 7m가 넘는다. 빅벤은 시계탑 자체를 부르는 이름이 아니고 매 시간마다 13개의 종 중에서 가장 큰 것을 말한다. 빅벤의 시계는 정확한 것으로도 명성을 얻고 있다. 런던 시민들은 물론 런더을 방문하는 이들도 빅벤의 종소리를 듣고 시간을 맞추고 있다. 1941년 세계 2차대전의 격전 속에서 국회의사당 건물 중 하나가 파괴되는 와중에도 그 모습 그대로 살아남아 정확한 시간을 알려주고 시간마다 울리며 영국 사람들을 깨우고 있었다. 정말 대단한 건축물이며, 대단한 역사의 아픔까지도 온몸으로 막고 있는 가슴 훈훈한 국회의사당, 빅벤이란 생각이 든다.
국회의사당과 함께 런던의 가장 유명한 명물로 뽑히는 빅벤은 엘리자베스 타워로 명칭을 변경했다. 1859년 E.베켓의 설계로 영국 국회의사당의 북쪽 끝에 있는 탑에 달린 높이 106m, 시침 길이 2.7m, 분침 길이 4.3m의 대형 탑시계이다. 설계로 당시 4만 파운드를 들여 주조된 시계이다. 원래 빅벤(BigBen)이라는 명칭은 당시 공사를 담당한 벤저민 홀경(卿)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붙인 이름으로서, 원래는 종의 이름이었으나 지금은 시계를 가리키는 말이 되었다. 2012년 엘리자베스 2세의 즉위 60년을 기념하여 엘리자베스타워(ElizabethTower)로 개명하였다. 종의 지름은 약 274cm, 무게는 13.5t이며 시계탑의 전체 높이는 106m, 시침의 길이는 2.7m, 분침은 4.3m이다. 엘리자베스타워는 여러 번의 실험 끝에 1869년현재와 같은 200kg의 당목(撞木)을 설치한 이후 114년 동안 별 고장 없이 정확한 시계의 대명사로 불리어왔다.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 때 독일군의 폭격도 버텨낸 엘리자베스타워도 1976년과 1997년에 기계 고장으로 작동이 중단된 적이 있다. 2004년 4월말에는 종에 문제가 생겨 5월 9일까지 15분마다 울리던 종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우리나라의 보신각처럼 엘리자베스타워는 새해를 알리는 1월 1일에 영국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다.
오늘날 런던은 영국의 수도이자 유럽의 관문으로 그리고 국제적인 금융·문화 중심지로 널리 알려져 있다. 런던은 원래는 변방에서 중심도시로 성장한 도시다. 이 도시가 영국 경제를 넘어 세계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유럽의 다른 도시보다 월등하게 높아진 것은 18세기의 후반의 일이다. 물론 그 이전만 하더라도 런던의 도시 규모나 인구는 대륙의 경쟁 도시를 크게 앞지르지 못했다. 18세기 이전 런던의 인구 증가율은 매우 미미했으나 18세기에 접어들면서 산업화와 영제국의 확대 그리고 국제무역의 번영에 힘입어 급속하게 높아진 것으로 보인다. 원래 런던은 제정 로마시대에 브리튼 섬에 주둔하는 로마군의 주요 병참기지였다. 로마군이 여기에 주둔한 것은 런던이라는 이름의 어원에서 나타나듯이 템스 강 하구에 위치한 지리적 이점 때문이었을 것이다. 브리튼 섬에서는 오직 런던만이 이런 의미를 충족할 수 있는 도시였다. 런던이 중세 초기부터 정치적 수도였던 것은 아니다. 노르만왕조와 그 뒤를 이은 플랜태지닛 왕조의 왕들은 전국을 순행하면서 통치하는 관행을 지켰다. 왕과 신하들이 상당 기간 머무는 장소로는 런던뿐 아니라 브리스톨이나 요크 같은 지방 도시들도 포함되었다. 그러나 백년전쟁 이후 왕의 통치는 주로 웨스트민스터 궁(PalaceofWestminster)을 중심으로 이루어졌고 의회 또한 같은 장소에서 열리기 시작했다. 15세기에 이르러 런던은 상업 중심지 시티와 행정 중심지 웨스트민스터 시구를 포함하는, 명실상부한 수도가 되었다. 런던의 성장은 근대국가 영국의 발전과 동일한 궤적을 그리며 전개되었다. 17세기 후반 이래 영국은 경쟁국 네덜란드와 프랑스를 제치고 국제무역과 해외 식민지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했다. 이러한 발전 과정은 금융혁명, 산업혁명, 영제국 형성으로 이어졌다. 바로 이 같은 변화가 런던의 도시 풍경에 그대로 각인되었다. 1660년대에 대역병이나 대화재 같은 재앙을 겪기도 했지만, 런던은 영국의 발전과 병행해 급속하게 성장했다. 영국의 뉴스창에서 메인으로 뜨는 국회의사당 건물은 참으로 웅장하고 아름다운 건축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