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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시회(URIS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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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시, 낭송시 스크랩 `우리詩` 10월호의 시
홍해리洪海里 추천 0 조회 76 16.10.10 03:29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피지에서의 휴식 - 이윤진

 

야자수 사이로 하늘이 파랗다

고요한 바다에 어여쁜 딸과 등을 대고 누웠다.

뜨거운 백사장에 발을 내놓고 찰칵찰칵 셔터를 눌렀다.

맨발이 참 많이 닮았다.

실핏줄이 불거진 발등 위로 딸아이의 손이 말을 건넨다.

쏴아쏴아 언제부터 이렇게 부풀어 오른 거지.

찰칵찰칵 지나가는 파도소리에 세상 돌아가고

귓속말이 소곤소곤 오늘도 생을 달구어 끝없이 넘실거린다.

        

 

男兒不讀五車書 - 김세형

 

무슨 큰 재산 같았었는데 무거운 빚이었다

그래서 이사하면서 다섯 수레 분량만큼의 책을 버려버렸다

그랬더니 돌짐을 벗어던진 듯 영육이 가벼워졌다

모름지기 남아는 다섯 수레 분량만큼의 책을 버릴 줄 알아야 한다

사서오경이고 성경이고 불경이고 詩經이고 모두 버릴 줄 알아야 한다

그런데 이사 온 집 책장과 방에 책이 산처럼 쌓여간다

또 참을 수 없는 존재의 무거움이 느껴져 온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 이르긴 영 글렀다

        

 

호수 - 박동남

 

새는 호수 속을 날고

물고기는 하늘을 유영한다

수초 속으로 숨는 새

달을 먹는 물고기

        

 

 

엽서 - 성숙옥

 

단풍은 산을 칠해 가을을 그리고 있다

바람과 비와 먹구름이 섞인 선명한 색,

모네의 그림 속 같다

붉고 노란 잎사귀들

무용수처럼 턴을 하며

내 어깨까지 별을 그려준다

 

나도 이런 황홀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나눠 줄 때가 있을까

붉은 엽서에 적는 한 줄 소망

 

나의 끝 무렵도 저 잎만 같기를

        

 

풍경風磬 - 조봉익

 

   물고기는 부처의 말도 뎅겅뎅겅 자르는 제자다 절간 처마에 매달려 물고기가 없어도 유연하게 헤엄치는 모습을 보면 특단의 깨달음을 전수받은 것이 분명하다 예불조차 깡그리 무시하고 버릇없이 제멋대로 끼어드는 소리는 물을 차고 오르는 자맥질인가 물을 떠난 자유를 얻었다가 다시 물을 찾아나서는 한 모금의 물고기인가 풍경風磬으로 풍경風景이 되어 풍경諷經이나 하라는 기원전 당부는 이미 녹슬었을 텐데 그러고 보면 참 진득한 제자이기도 하다 묵언을 깨고 울리는 소리가 묵언이 된다 어떠한 종도 근본을 벗어나 진화될 수 있다고, 바람자락이 된 물고기가 어느 경전을 외우는지 때맞추어 비가 내린다 몇 천 년 만에 맛보는 물맛인 양 오랜 순례의 길을 떠나는 자맥질이 사방으로 경전을 뿌린다

        

 

석류나무가 있는 풍경 - 나호열

 

심장을 닮은 석류가 그예 울음을 터뜨렸을 때

기적을 울리며 떠나가는 마지막 기차가 남긴 발자국을 생각한다

붉어서 슬픈 심장의 공동소리가 남긴

패역의 녹슬어가는 철로와

인적 끊긴 대합실 안으로 몸을 비틀어 꽃을 피운 칡넝쿨과 함께 무너져내리는 고요가 저리할까

스스로 뛰어내려 흙에 눈물을 묻는 석류처럼

오늘 또 한 사람

가슴이 붉다

    

 

 

굴비 - 윤순호


차츰 몸이 불어날수록, 그때마다

세상 작명가들은 서슴없이 개명을 했다

물살 위에 안개 순하고

바람결에 청보리 남실거릴 땐

황석어가 제격이었지만

뱃살에 노란 꽃 피어

제법 탐스러워지자 참조기로 살았다

짠물 간이 밴 날렵한 날개로

험한 물살을 가른 것은

치열한 속도전에서 살아남기 위한 것

 

뭍에서는, 태양이

조름을 뜯어낸 비린내를 풀어놓자

바닷바람이 맛을 박제하느라 채반을 누볐다

거친 물살 막아주던 은빛 갑옷들이

꼬들꼬들 오그라들어도

한사코, 입 벌려 아랫배를 부풀리는 것도

뱃속에 뭉친 수만 혈통을 위해

굽히지 않으려는 모성애

 

급기야 굴비의 할복에

밥상머리 고급 입맛들이 평정을 잃는다

      

    

 

각설탕이 녹는 시간 - 나영애

 

툭하면 왜

딱딱하고 뾰족한 말을 내뱉느냐고요?

새하얗게 각을 세우냐고요?

 

제가 그랬군요

풍진 세상이라 그렇게 된 것 같군요

저 혼자선 힘들 것 같아요

 

촉촉한 말

따듯한 손 내밀어 주실래요

 

각진 마음 말랑하게 둥그러지도록

참고 기다리고 있으니

가둬진 말 풀려 나올 거라 믿어요

당신과 내 가슴, 달달하게 적실·

 

 

   * 월간 우리’ 10월호(도서출판 <>, 2016.)에서

           사진 : 요즘이 한창인 용담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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