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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27: 6. 핏 값 - 마 27: 10. 토기장이의 밭
마 27: 6. 핏 값 - 대제사장들이 그 은을 거두며 이르되, 이것은 핏값이라. 성전고에 넣어 둠이 옳지 않다. 하고 ( 대제사장들이 그 은을 거두며 가로되 이것은 피 값이라. 성전고에 넣어 둠이 옳지 않다. 하고 )
유대 지도자들의 행위는 마치 불쌍한 나그네들을 위하는 것 같은 위선적 행위이었다.
위선자들은 언제나 사람들의 칭찬을 얻기 위해 선을 행하지만, 그들의 중심에는 의와 선과 진실이 없다.
1] 대제사장들이 그 은을 거두며 이르되, 이것은 핏값이라.
'이것은 피 값이라'는 유다가 '예수의 피(4절)를 팖으로써 벌어들인 돈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대제사장들이 이 같은 단정적 발언을 한 것은 적어도 유다의 행위가 사악한 자신들 의견에서 볼 때도 옳지 못했다는 점을 간접 시인한 것이다.
2] 성전고에 넣어 둠이 옳지 않다. 하고
대제사장들은 유다가 던져놓고 간 그 돈을 성전고에 넣어둠이 옳지 않다고 판단했다. 율법에 의하면 피 값으로 얻은 돈은 창기나 개 같은 자의 돈과 같이 취급되어 여호와께서 미워하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 신 23: 18 - 창기가 번 돈과 개같은 자의 소득은 어떤 서원하는 일로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의 전에 가져오지 말라. 이 둘은 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 가증한 것임이니라.
이런 유의 돈들은 자선과 구제 등의 사회적인 용도로 사용되거나, 헌금한 당사자에게 되돌려준 듯하다. 따라서 제사장들이 유다의 돈을 성전 금고에 넣지 않은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성전고'로 번역된 헬라어 '코르바나스'(*)는 거룩한 물건과 고르반 등을 보관하는 장소였다(Jos. Wars II,IX.4). 이곳의 재물들은 주로 각종 제사와 성전관리를 위해 활용되었다.
* 마 15: 5 - 너희는 이르되, 누구든지 아버지에게나 어머니에게 말하기를 내가 드려 유익하게 할 것이 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고 하기만 하면
가롯 유다에게 지급한 은 삼십은 이것에서 지출된 것이라고 추론할 수 있다. 대제사장을 위시한 유대 지도자들은 엄청난 불의를 자행했어도 의식상으로는 깨끗하려는 위선을 떨치지 못했다.
* 마 12: 9-14 – 9 거기에서 떠나 그들의 회당에 들어가시니 10 한쪽 손 마른 사람이 있는지라. 사람들이 예수를 고발하려 하여 물어 이르되, 안식일에 병 고치는 것이 옳으니이까? 11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 중에 어떤 사람이 양 한 마리가 있어 안식일에 구덩이에 빠졌으면 끌어내지 않겠느냐? 12 사람이 양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 그러므로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이 옳으니라. 하시고 13 이에 그 사람에게 이르시되, 손을 내밀라. 하시니 그가 내밀매 다른 손과 같이 회복되어 성하더라. 14 바리새인들이 나가서 어떻게 하여 예수를 죽일까? 의논하거늘
* 마 15: 1-9 – 1 그 때에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예루살렘으로부터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2 당신의 제자들이 어찌하여 장로들의 전통을 범하나이까? 떡 먹을 때에 손을 씻지 아니하나이다. 3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는 어찌하여 너희의 전통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느냐? 4 하나님이 이르셨으되,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시고 또 아버지나 어머니를 비방하는 자는 반드시 죽임을 당하리라. 하셨거늘 5 너희는 이르되, 누구든지 아버지에게나 어머니에게 말하기를 내가 드려 유익하게 할 것이 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고 하기만 하면 6 그 부모를 공경할 것이 없다 하여 너희의 전통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는 도다. 7 외식하는 자들아. 이사야가 너희에 관하여 잘 예언하였도다. 일렀으되 8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9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 도다. 하였느니라. 하시고
* 마 23: 23 -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마 27: 7. 나그네의 묘지 - 의논한 후 이것으로 토기장이의 밭을 사서 나그네의 묘지를 삼았으니 ( 의논한 후 이것으로 토기장이의 밭을 사서 나그네의 묘지를 삼았으니 )
그들은 서로 의논하여 그 돈으로 토기장이의 밭을 사서 나그네들의 묘지로 활용하도록 했다.
1] 의논한 후
구체적인 토론을 한 것이기 보다 신속하게 결의안을 통과시켰음을 암시한다(1절).
그들의 믿음은 악을 도모하는 일에 하나가 되었다.
2] 이것으로 토기장이의 밭을 사서
사도행전에 의하면 유다가 밭을 산 것으로 되어 있다.
* 행 1: 18 - 이 사람이 불의의 삯으로 밭을 사고 후에 몸이 곤두박질하여 배가 터져 창자가 다 흘러나온지라.
제사장이 밭을 샀다고 하여도 그 돈의 원(原) 주인은 유다였으므로, 유다가 산 것과 같다고 설명할 수 있다(Roberton).
이 밭의 소재지는 점토지대인 예루살렘 남쪽, 곧 힌놈 골짜기 맞은편에 있다고 전해진다. '악한 회의의 언덕'(the Hill of Evil Counsel) 이라는 별칭이 붙어 있다고 한다. 이곳은 더 이상 토기 굽는 장소로서 효율 가치가 없어진 불모지(不毛地)로 잘 알려져 있었던 듯하다.
왜냐하면 매우 싼 가격으로 쉽게 이곳을 구입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유대 지도자들이 이런 결정을 신속하게 된 것은 '나그네의 묘지'에 대한 필요성올 느끼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이 일로 인해 슥 11: 12-13의 예언이 온전히 성취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 슥 11: 12-13 – 12 내가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좋게 여기거든 내 품삯을 내게 주고 그렇지 아니하거든 그만두라. 그들이 곧 은 삼십 개를 달아서 내 품삯을 삼은지라. 13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그들이 나를 헤아린 바 그 삯을 토기장이에게 던지라. 하시기로 내가 곧 그 은 삼십 개를 여호와의 전에서 토기장이에게 던지고
3] 나그네의 묘지를 삼았으니
'나그네'란 이방인들이 아니라 타 지방에 사는 유대인이나 개종한 이방인들을 가리키는 용어이다.
'나그네의 묘지'란 그들이 명절 등의 일로 예루살렘에 입경했다가 죽는 경우 묻어주는 묘지를 말한다. 이곳은 현재에도 가난한 예루살렘 주민이나 치욕스런 자들의 무덤으로 사용되고 있다.
그것은 마치 불쌍한 나그네들을 위하는 것 같은 위선적 행위이었다. 위선자들은 항상 겉보기의 선행을 한다. 그러나 그 중심에는 의와 선과 진실이 없는 자들이다.
마 27: 8. 오늘날까지 - 그러므로 오늘날까지 그 밭을 피밭이라. 일컫느니라. ( 그러므로 오늘날까지 그 밭을 피밭이라 일컫느니라. )
예루살렘 주민들은 이 땅을 '아겔다마', '피의 땅' 이라고 불렀다. 이 차이의 극복을 위해 다음과 같이 추론할 수 있다.
유다가 제사장들이 산 밭에서 죽었다고 가정한다면 마태복음과 사도행진의 이야기는 일치된다. 제사장들은 그 날은 아니었지만 지체하지 않고(예수의 부활이 있을 일요일로 여겨짐<Carson>) 밭을 샀을 것이다.
그리고 돈이 어떻게 사용되었는가를 알고 있었으며, 또 극심한 후회로 절망에 잠겨 있던 유다가 이스라엘의 계약에 따라 나그네를 위한 묘지로 삼은 그 밭에서 자살하기로 결심했다고 볼 수 있다.
1] 그러므로 오늘날까지
이 한정적 표현은 본서가 기록된 그 시점에 이르기까지라는 뜻으로 이해된다.
결국 이 말은 본서가 예루살렘과 그 주변이 완전히 파괴되고 황폐화되어 버린 A. D. 70년의 예루살렘 멸망 전에 이미 기록되었음을 간접 시사하고 있다.
유다의 자살과 본서 기록 시점과는 어느 정도 시간 간격이 있었음을 보여 준다.
2] 그 밭을 피밭이라. 일컫느니라.
마태복음에 의하면 '피 밭'이라는 이름은 피 값을 주고 그 땅을 산 것에서 유래한다고 한다. 사도행전에서는 유다의 피가 거기에 흘려졌기 때문에 그렇게 불린다고 한다.
* 행 1: 18-19 – 18 (이 사람이 불의의 삯으로 밭을 사고 후에 몸이 곤두박질하여 배가 터져 창자가 다 흘러 나온지라. 19 이 일이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알리어져 그들의 말로는 그 밭을 아겔다마라 하니 이는 피밭이라는 뜻이라.)
이와는 달리 유다가 돈을 성전에 던져 넣고 나가서 즉시 자살했다면 그 시기는 제사장들이 그 돈으로 밭을 사기 전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유다의 시체를 그곳에 옮겨 묻었다면 앞의 이야기는 무리 없이 받아들여질 수 있다.
마 27: 9. 예레미야로 하신 말씀 - 이에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이 이루어졌나니 일렀으되, 그들이 그 가격 매겨진 자. 곧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가격 매긴 자의 가격. 곧 은 삼십을 가지고 ( 이에 선지자 예레미야로 하신 말씀이 이루었나니 일렀으되 저희가 그 정가 된 자 곧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정가한 자의 가격 곧 은 삼십을 가지고 )
마태는 “이에 선지자 예레미야로 하신 말씀이 이루었나니 일렀으되 저희가 그 정가(定價)된 자 곧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정가한 자의 가격 곧 은 삼십을 가지고 토기장이의 밭 값으로 주었으니 이는 주께서 내게 명하신 바와 같으니라 하였더라”고 말했다.
하나님의 이 섭리적 사건은 이미 구약 스가랴 선지자의 글에 예언된 바이었다(슥 11: 13). 마태가 스가랴의 예언을 예레미야의 예언이라고 증언한 이유는 분명치 않다.
주석가 라이트푸트는 유대인 학자 데이빗 김치의 글을 인용하여 예레미야가 선지자들 가운데 첫 번째 지위를 가졌고 그의 책이 선지서들 중에 첫 번째로 놓였기 때문에 이렇게 불리었을 것이라고 설명하였다(브라운). 구약성경의 예언은 이와 같이 놀랍게 성취되었다.
1] 이에 선지자 예레미야로 통하여 하신 말씀이 이루어졌나니 일렀으되, 그들이 그 가격 매겨진 자. 곧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가격 매긴 자의 가격. 곧 은 삼십을 가지고
하나님의 이 섭리적 사건은 이미 구약 스가랴 선지자의 글에 예언된 바였다.
* 슥 11: 13 -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그들이 나를 헤아린 바 그 삯을 토기장이에게 던지라. 하시기로 내가 곧 그 은 삼십 개를 여호와의 전에서 토기장이에게 던지고
구약 예언의 성취를 강조하는 전형적인 마태의 문구이다.마태가 스가랴의 글을 예레미야의 예언이라고 증언 한 이유는 분명치 않다.
구약 예언의 성취를 알리는 이 문구는 스가랴의 예언으로 보아도 좋을 만큼 대부분이 슥 11: 12-13에 의존하고 있다. 그러나 렘 18: 3에서 토기장이의 집을 방문한 것에 대하여, 그리고 렘 32: 8에서 밭을 산 것에 대해 말하고 있어서 예레미야서가 완전히 배제될 수는 없다.
* 렘 18: 3 - 내가 토기장이의 집으로 내려가서 본즉 그가 녹로(轆轤 오지그릇을 만드는 데 쓰는 물레.)로 일을 하는데
* 렘 32: 8 - 여호와의 말씀과 같이 나의 숙부의 아들 하나멜이 시위대 뜰 안 나에게 와서 이르되, 청하노니 너는 베냐민 땅 아나돗에 있는 나의 밭을 사라. 기업의 상속권이 네게 있고 무를 권리가 네게 있으니 너를 위하여 사라. 하는지라. 내가 이것이 여호와의 말씀인 줄 알았으므로
'예레미야'란 이름을 후기 편집자들이 첨가했다거나, 순전히렘 32: 8-14의 인용이라는 사실을 들어 이 차이를 해명하는 학설들도 있다. 이처럼 선지자의 이름이 '예레미야'로 제시된 이유로는, 스가랴서를 위시한 모든 예언서들을 대표하는 이름이 '예레미야'이기 때문에 붙여진 것이라고 주장한다(Light foot; Talmud, Baba Bathra 14b).
그러나 예레미야 대신에 '이사야'가 예언서의 대표 격으로 사용된다는 점에서 이 견해는 큰 호응을 얻지 못하고 있다.
주석가 라이트푸트는 유대인 학자 데이빗 김치의 글을 인용하여 예레미야가 선지자들 가운데 첫 번째 위치를 가졌고 그래서 이렇게 불리울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여하튼 구약의 예언은 이와 같이 놀랍게 성취되었다. 우리는 성경의 초자연적 예언성을 굳게 믿자.
마 27: 10. 토기장이의 밭 - 토기장이의 밭 값으로 주었으니, 이는 주께서 내게 명하신 바와 같으니라. 하였더라. ( 토기장이의 밭 값으로 주었으니 이는 주께서 내게 명하신 바와 같으니라. 하였더라. )
은 삼십을 토기장의 밭값으로 준 것은 결국 선지자의 예언이 응한 것이었다.
1] 토기장이의 밭 값으로 주었으니, 이는 주께서 내게 명하신 바와 같으니라. 하였더라.
그 돈으로 나그네의 묘지로 삼았다. 가장 유력한 설명은 다음과 같다.
마태가 렘 18: 2. 19: 1-2. 32: 8-15의 내용을 종합하고, 슥 11: 13과 결합시켜 하나의 문장을 만든 후 그 구절을 대표적인 선지자 예레미야의 이름으로 인용하였다는 학설이다(Bruce, Meyer, Gundry).
이런 예는 신약의 다른 곳에서도 발견된다.
* 마 2: 23 - 나사렛이란 동네에 가서 사니 이는 선지자로 하신 말씀에 나사렛 사람이라. 칭하리라 하심을 이루려 함이러라.
* 막 1: 2-3 – 2 선지자 이사야의 글에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그가 네 길을 준비하리라. 3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되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의 오실 길을 곧게 하라. 기록된 것과 같이
마태가 이러한 과정을 거쳐서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예수께서 사형(死刑)에 이르는 과정(은 30에 팔림. 그 돈으로 토기장이의 밭이 사들여진 일. 등)이 구약의 예언을 모두 성취했다는 사실이다.
즉 스가랴서에 기술된 예언이 목적하는 바는 이스라엘 백성이 그들의 목자되신 여호와께 삯으로 은 삼십을 드렸고, 제사장은 그것으로 토기장이의 밭을 산 것을 소개하고자 한 것이다.
그런데 그 같은 예언이 예수의 팔리우는 사건으로 성취되었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 우리는 하나님의 선한 일을 위해 합심하고 열심을 품고 일해야 한다.
악한 지도자들은 새벽부터 악한 일을 위해 모였다.
우리는 하나님의 선한 일을 위해 그렇게 하자.
* 롬 12: 11 -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
둘째, 우리는 죄를 깨달을 때 바로 회개하자.
우리는 우리의 죄와 실수를 깨달을 때 단순히 후회에 그치지 말고 하나님께로 나아와 고백하고 용서를 구하여 받고 남은 삶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거룩하고 바르고 선하게 살기를 결심해야 한다.
셋째, 우리는 성경의 초자연적 성격을 확신해야 한다.
성경은 가룟 유다의 배신과 그 후의 일을 예언하였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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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설교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유대 지도자들의 행위는 마치 불쌍한 나그네들을 위하는 것 같은 위선적 행위이었다.
(^~^)사랑의 향기는 만리를 가고도 남습니다. 오늘도 건강과 함께
좋은 사람들과 좋은 향기로 좋은 인연 이어가는 날 되시기 기원 합니다.(^~^)
유대 지도자들의 행위는 마치 불쌍한 나그네들을 위하는 것 같은 위선적 행위이었다.
설교 감사합니다.
유대 지도자들의 행위는 마치 불쌍한 나그네들을 위하는 것 같은 위선적 행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