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학 칼럼
우리나라 로봇공학자 ‘하백원’을 아세요?...융합지식인의 정수를 보여주다
김재호
교수신문 과학·학술팀장
“하백원은 계영배부터 양수기인 자승차, 우리나라와 세계 지도까지 제작하고, 거북선 그림까지 남기는 등 융복합의 정수를 보여줬다. 특히 그는 일상에서 로봇의 원리가 적용되길 꿈꾸었다. 그 이유가 중요하다. 그건 바로 백성에 대한 사랑이었으리라.”
우리나라에도 로봇의 원리인 ‘자동화’를 꿈꾸고 실천한 공학자가 많이 있다. 그중 한 명은 바로 규남 하백원(河百源: 1781~1845)이다. 그는 오늘날 양수기에 해당하는 ’자승차‘를 설계하고, 근대식 자동 시계인 자명종과 실을 뽑아내는 기계인 방적기를 고안했으며, 술잔이 가득 차면 흘려보내도록 만든 ‘계영배’까지 제작했다. 전형적인 로봇·기계공학자의 면모를 보여준 것이다.
하백원은 조선 후기에 그 당시 많은 학자들처럼 성리학적 유교를 기반으로 삼아 공부했다. 그런데 탁상공론의 학문을 위한 학문이 아니라 이용후생의 실학을 지향했다. 그래서 다양한 분야에서 업적을 남기며 융합지식인의 정수를 보여줬다. 예를 들어 하백원은 화폐와 군사에도 관심을 기울였으며, 지리학에서 큰 족적을 남긴 「동국지도」와 「만국전도」를 통해 조선과 세계를 형상화했다. 글씨와 시, 그림에도 많은 작품을 남긴 하백원은 그야말로 선비이자 로봇공학자, 과학자, 문인, 화가였던 셈이다. 하백원의 집은 만권댁(萬卷宅)이라고 불릴 만큼 책이 많았고 그 자신이 책을 소중히 여겼다.
지난 2020년, 거북선 그림이 발견돼 전 국민을 깜짝 놀라게 한 적이 있다. 1842년 하백원이 충남 보령 앞바다에서 그린 거북선 때문이었다. 보령 앞바다는 조선의 수군 기지가 있던 곳이다. 하백원은 그림 설명에서 ‘거북을 숨겨 오묘하게 사용했던 이충무공의 전함이 물가에 가로놓여 있다’고 하였는데, 당시 유배로 인해 보령에 내려갔던 하백원이 거북선을 보고 놀라 서화첩에 남긴 것이다. 그동안 거북선의 실물을 보여주는 기록이 없어 역사연구에 어려움이 있었다. 이번 발견으로 거북선에 대한 연구는 물론 조선 후기 하백원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자동 양수기 ‘자승차’의 꿈과 한계
1810년 하백원은 ‘자승차(自升車)’를 발명했다. 자승차는 “스스로 끌어올리는 기계”라는 뜻이다. 디지털화순문화대전에 따르면, 자승차는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만들어진 자동 양수기이다. 하백원이 가뭄으로 고통받던 농민들을 위해 만든 자동화 장치다. 자승차는 낮은 곳에 있는 물을 높은 곳으로 끌어올려 농사에 도움이 되도록 하는 동력 기계다. 물레방아를 이용해 정밀한 양수기로서의 역할을 하도록 했다. 하백원은 유체 역학을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었다.
자승차는 그 당시 실정에 맞게 설계됐다. 중국이나 서구식 수차를 모방한 게 아니었다. 더욱 놀라운 건, 하백원이 「자승차도해」(『규남문집(圭南文集)』의 권5 잡저편 중 하나, 1810)를 통해 자승차 설계도를 15점이나 남겼다는 사실이다. 설계도를 보면, 굉장히 정교하다. 자승차의 특징은 사람이나 동물의 힘을 빌리지 않고 물의 흐름만으로 물을 끌어올 수 있다는 점이다. 다만, 물에 찌꺼기가 있으면 침전물이 쌓여 제대로 작동할 수 없었다. 자승차는 훌륭한 공학 발명품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당시 지식의 한계 등으로 인해 상용화하지 못했다.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하백원 혼자가 아니라, 여러 장인들의 도움이 닿았다면 역사에 길이길이 남을 발명품이 됐을 것이다. 2005년 국립중앙과학관은 「자승차도해」에 기반해 실제 크기의 3분의 1로 자승차를 복원해낸 바 있다.
안동교 해동문헌연구소장은 자승차에 대해 “위아래로 흐르는 것이 아니라 단지 빈곳을 따라 흘러가는 물의 특성을 세밀히 관찰하여 자승차 설계의 핵심원리로 삼았다."고 하였다. 자승차는 원리상으로 볼 때 크게 방통(Cylinder), 수륜(Gear), 가(Frame)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또한 안 소장은 “작동원리의 핵심은 강물의 유속을 이용해 수삽(Turbine)을 돌리고 이 터빈의 회전력으로 수저(Piston)를 들어 올림으로써 물을 퍼 올리는데, 유체역학에 대한 해박한 지식이 있어야 가능한 고도의 기술을 필요로 하는 장비임이 증명되었다."고 하였다. 그만큼 뛰어난 발명품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부족함도 있다. 당시 과학적 지식에 한계가 있었고, 실험하고 제작하고 활용하기 위한 충분한 시간과 자금이 부족했으며, 하백원이 충분한 기간을 갖고 결함 없는 수차를 만들어 이를 실용화하는 데 망설이는 등 여러 사정이 겹치는 바람에 현장에서 쓸 기회가 없었다. 그럼에도 분명한 건 하백원이 가졌던 과학적 면모와 실험정신이었다.
넘치는 걸 경계하는 술잔 ‘계영배’
과유불급을 상징하는 술잔 ‘계영배(戒盈杯)’ 역시 하백원이 설계했다. 계영배는 ‘넘치는 것을 경계하는 잔’이라는 뜻이다. 계영배는 일반 술잔과 비슷하게 생겼으나, 중간에 기둥이 있다. ‘절주배’로도 불리는 이 술잔은 그 공간이 가득차면 밑의 구멍으로 술이 쪼르르 떨어지게 만들었다. 술잔이 전부 채워지지 않고, 70%만 차도록 한 것이다. 뛰어난 재주로 성공을 거뒀지만 방탕한 생활로 재산을 탕진한 이들이 많다. 공자는 한 사당을 찾았다가 계영배를 보고 겸양과 겸손함을 상징한다고 간주했다. 서양에도 피타고라스의 컵이라고 불리는 비슷한 잔이 있다.
하백원을 언급하면서 「동국지도」(1811)를 빼놓을 수 없다. 「동국지도」는 김정호(1804∼1886)의 「대동여지도」(1861)보다 51년 앞서 제작됐다. 「동국지도」가 우리나라를 나타냈다면, 그가 제작한 또 다른 「만국전도」(1821)는 세계를 드러냈다. 「만국전도」는 적도를 중심으로 남반구·북반구를 그렸다. 「만국전도」는 우리나라에서 제작된 첫 세계지도다.
하백원은 23세에 증광시라는 과거시험에 합격했으나 50세가 넘어서야 나랏일을 할 수 있었다. 그는 중앙·지방정부에서 늦은 나이에 관리로 일했다. 그런데 중앙정부에 있을 때는 오랜 타향살이와 번잡한 행정공무에 지쳐, 가족들과 가까운 지방으로 내려가고자 했다. 가까스로 지방정부로 내려갔으나 세금 문제로 권세가 등 토호세력과 갈등이 생겼고, 결국 유배를 당했다. 고초를 겪기도 했으나, 그의 과학정신은 꺾이지 않았다. 백성을 생각하며 좀 더 나은 삶을 꿈꾸었던 이가 바로 하백원이다.
흔히 ‘과학기술’ 하면 바로 서구를 떠올리기 마련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에도 정말 뛰어난 과학자들이 많았다. 영화 「천문」(허진호 감독, 2019)의 주인공이었던 조선시대 천재 과학자 장영실(1390∼?)을 비롯해, 이순지(?~1465), 이천(1376~1451), 정인지(1396~1478) 등이 있다. 이들은 문과 무를 함께 익혔다는 점에서 전형적인 융합지식인이었다. 하백원도 계영배부터 양수기인 자승차, 우리나라 지도와 세계 지도까지 제작하고, 거북선 그림까지 남기는 등 융복합의 정수를 보여줬다.
하백원을 로봇공학자라고 소개하는 게 과하다고 지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로봇’의 어원(robota)은 단순한 노동을 대신하는 자동 장치라는 뜻을 갖고 있다. 또한 현대의 로봇 범주는 로봇서비스부터 로봇콘텐츠까지 방대하다. 영화에서 보는 휴머노이드나 세련된 자율기계만 로봇은 아니다. 그렇다면 하백원이야말로 로봇을 바랐던 과학자가 아닐까. 특히 그는 일상에서 로봇의 원리가 적용되길 꿈꾸었다. 그 이유가 중요하다. 그건 바로 백성에 대한 사랑이었으리라.
* 참고문헌 및 사이트
규남박물관( http://www.gyunammuseum.org)
디지털화순문화대전( http://www.grandculture.net/hwasun)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https://encykorea.aks.ac.kr)
「간찰로 본 圭南 河百源의 仕宦期 양상-자식에게 보낸 간찰을 중심으로-」(東方學 第45輯, 나상필, 2021)
「圭南 河百源 학문관과 실학정신」(東洋哲學硏究 第41輯, 안동교, 2005)
「역사속 과학인물-호남의 4대 실학자 하백원」(과학과 기술, 박성래, 1995)
「조선 실학자가 직접 보고 그린 ‘거북선 그림’ 찾았다」(, 2020.01.13.)
「화순 역사인물을 활용한 컨텐츠 개발 용역 결과보고서」(화순군·조선대, 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