子曰 由也 女聞六言六蔽矣乎 對曰 未也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자로(由)야, 너는 육언(六言)과 육폐(六蔽)를 들어보았느냐?” 하시니, (자로가) 대답하기를, “듣지 못했습니다.”
○ 蔽 遮掩也 蔽란 가린다는 말이다. 胡氏曰 如爲物遮掩 僅得其一偏 而不見其全體也 호씨가 말하길, “마치 사물에 의해 가려져서, 단지 그 치우친 한쪽만 터득하였을 뿐, 그 전체를 볼 수 없는 것과 같다.”고 하였다.
慶源輔氏曰 謂各隨其意之所向而遮掩其正理 경원보씨가 말하길, “각자 자기의 뜻이 향하는 바에 따라가서 그 올바른 이치를 가리고 숨기는 것을 일컫는다.”고 하였다.
居 吾語女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앉아라, 내가 너에게 말해 주겠다. 語 去聲
○ 禮 君子問更端 則起而對 故孔子諭子路 使還坐而告之 예에 따르면, 군자가 질문할 적에 단서를 바꾸면, 곧 일어나서 대답해야 했다. 그래서 공자께서 자로를 일깨워서 다시 앉게 하여 그것을 알려주신 것이다. 好仁不好學 其蔽也愚 好知不好學 其蔽也蕩 好信不好學 其蔽也賊 好直不好學 其蔽也絞 好勇不好學 其蔽也亂 好剛不好學 其蔽也狂 인(仁)을 좋아하되 배우기를 좋아하지 않으면, 그 폐단이 바로 어리석은 것이고, 지혜를 좋아하면서도 배우기를 좋아하지 않으면, 그 폐단은 바로 방탕함이 되고, 신실함을 좋아함에도 배우기를 좋아하지 않으면 그 폐단은 (자신을) 해치는 것이 되며, 정직함을 좋아하면서도 배우기를 좋아하지 않으면, 그 폐단은 야박한 것이 되고, 용감함을 좋아하면서도 배우기를 좋아하지 않으면 그 폐단은 반란을 일으키는 것이 되며, 굳셈을 좋아하면서도 배우기를 좋아하지 않으면, 그 폐단은 조급함(무모함)이 된다.” 라고 하셨다. ○ 六言皆美德 然徒好之而不學以明其理 則各有所蔽 愚 若可陷可罔之類 蕩 謂窮高極廣而無所止 賊 謂傷害於物 6言은 모두 미덕이다. 그러나 그저 헛되이 좋아하기만 하고 배워서 그 이치를 밝히지 않으면, 각자 가려지는 바가 있다는 것이다. 어리석음이란 함정에 빠뜨릴 수 있고 속일 수 있다는 것과 같은 그런 종류다. 蕩이란 끝없이 고상하고 지극히 넓되 그치는 곳이 없는 것을 말한다. 賊이란 남에게 상처와 피해를 당하는 것을 말한다. 朱子曰 固執必信而不好學 必至於賊害物 如證父攘羊便是 주자가 말하길, “고집하여 반드시 신실하고자 하되 배우기를 좋아하지 않으면, 반드시 남을 해치는 지경에 이를 것이다. 마치 아비가 양을 훔쳤다고 증언하는 것과 같은 것이 바로 이것이다.”라고 하였다.
雙峯饒氏曰 信而不明理 則不度事理之可否而欲必踐其言 如此者 必至於害事 如尾生之信 是自賊其身者也 쌍봉요씨가 말하길, “신실하되 이치에 밝지 못하면, 사리의 옳고 그름을 헤아리지 못하여 자기 말을 반드시 실천하고자 한다. 이와 같은 자는 반드시 일을 해치는 지경에 이르니, 예컨대 尾生之信과 같은 것으로서, 이는 제 몸을 스스로 해치는 자이다.”라고 하였다. 勇者 剛之發 剛者 勇之體 용기란 굳셈이 발현된 것이다. 굳셈이란 용기의 體다. 朱子曰 勇只是敢爲 剛有堅强之意 주자가 말하길, “勇은 그저 감히 하는 것이고, 剛에는 굳세고 강하다는 의미가 있다.”고 하였다.
慶源輔氏曰 人之資稟得於陰陽者 惟有剛有柔 勇則剛之發出者也 경원보씨가 말하길, “사람의 資稟 중에서 음과 양으로부터 얻은 것은 오직 剛과 柔가 있을 뿐인데, 勇의 경우는 剛이 발현되어 나온 것이다.”라고 하였다.
雙峯饒氏曰 剛屬質 體也 勇屬氣 用也 쌍봉요씨가 말하길, “剛은 質에 속하니 體이고, 勇은 氣에 속하니 用이다.”라고 하였다. 狂 躁率也 광이란 조급하고 경솔함이다.
慶源輔氏曰 此與狂狷之狂不同 躁率則近乎剛惡也 故特釋之 경원보씨가 말하길, “여기서의 狂자는 狂狷의 狂자와 같지 않다. 조급하고 경솔하면 곧 剛惡과 가까운 것이기 때문에, 특별히 이를 풀이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雙峯饒氏曰 躁率 輕擧妄動之意 쌍봉호씨가 말하길, “躁率이란 경거망동이란 뜻이다.”라고 하였다.
程子曰 六言六蔽 正如恭而無禮則勞 寬而栗剛而無虐之意同 蓋好仁而不好學 乃所以愚 非能仁而愚 徒好而不知學乃愚 정자가 말하길, “육언육폐는 바로 마치 ‘공손하면서도 예가 없다면 곧 수고롭다’거나 ‘관대하면서도 위엄이 있고 굳세면서도 사나움이 없다’는 뜻과 같은 것이다. 대체로 仁을 좋아하면서도 배우기를 좋아하지 않는 것이 곧 어리석게 되는 까닭인데, 이는 능히 어질면서도 어리석다는 것이 아니라, 헛되이 좋아만 하고 배울 줄을 모르면, 곧 어리석게 된다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南軒張氏曰 學所以明善也 不知學 則徒慕其名 而莫知善之所以爲善矣 好仁不好學之蔽 如欲力得自守以爲仁而不知學以明之 則其所行所守未免於私意 適足以爲愚而已 至於好知不好學 則用其聰明而不知約之所在 故其蔽蕩 好信不好學 則守其小諒而不知義之所在 故其蔽賊 好直不好學 則務徑情而不知含蓄 故其蔽絞 絞者訐而已 好勇不好學 則犯難而不知止 故其蔽亂 好剛不好學 則務勝而不知反 故其蔽狂 是六者本爲達德 善行而不好學 則非所以爲德行而反以自蔽 學如行大道日闢而通也 不學如守暗室終窒而蔽矣 남헌장씨가 말하길, “배운다는 것은 선을 밝히는 것이다. 배울 줄 모른다면, 그 이름만 헛되이 사모하면서 善이 善인 까닭을 하나도 알지 못하는 것이다. 仁을 좋아하면서도 배우기를 좋아하지 않는 것의 폐단은, 마치 있는 힘을 다하여 자신을 지킴으로써 仁을 행하고자 하면서도, 배워서 그것을 밝힐 줄 모르면, 곧 자기가 행하는 바나 지키는 바가 사사로운 뜻을 면하지 못하여, 다만 어리석게 되기에 족한 것과 같다. 지혜를 좋아하지만 배우기를 좋아하지 않는 지경에 이른다면, 그 총명함을 사용하여도 핵심(요점)의 소재를 알지 못하니, 고로 그 폐단은 蕩이다. 신실함을 좋아하되 배우기를 좋아하지 않는다면, 자기의 작은 신의를 지키면서도 義의 소재를 알지 못하는 것이니, 고로 그 폐단은 賊이다. 곧은 것을 좋아하되 배우기를 좋아하지 않는다면, 곧장 實情에 힘을 쓸 뿐 함축할 줄을 모른다. 그래서 그 폐단은 絞인데, 絞라는 것은 들추어내는 것일 따름이다. 용감함을 좋아하면서도 배우기를 좋아하지 않는다면, 난을 범하면서도 그칠 줄 모르니, 고로 그 폐단은 난리를 일으키는 것이다. 굳셈을 좋아하되 배우기를 좋아하지 않는다면, 이기기에 힘을 쓰되 돌이킬 줄 모르니, 고로 그 폐단은 狂이다. 이 6가지는 본래 두루 통하는 덕인데, 이를 잘 행하면서도 배우기를 좋아하지 않는다면, 덕행이 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스스로를 가리게 된다. 배운다면 마치 大道를 행하는 것처럼 날로 열려서 통하게 되고, 배우지 않으면 마치 暗室을 지키는 것처럼 끝내 막혀서 가려질 것이다.”라고 하였다. 問蔽之爲義 何也 勉齋黃氏曰 集註以爲遮掩言 有所不見之謂也 學所以明理者 學謂效之師友之言行 求之方冊之記載 皆學也 所以學欲觀夫理之所當然者而效法之也 누군가 묻기를, “蔽의 뜻 됨이 무엇입니까?”라고 하였다. 면재황씨가 말하길, “집주에서는 가려짐이라고 말했으니, 보이지 않는 것이 있음을 일컬어 말한 것이다. 배움이란 이치를 밝히는 것인데, 배움은 스승과 벗의 언행에서 본받고, 방책에 기재된 것에서 구하는 것을 일컬어 말하니, 이 모두 배우는 것이다. 그리하여 배우면, 저 이치의 당연한 바를 잘 살펴서 그것을 본받아 따라 하고자 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仁知信直勇剛 皆美德也 又必學以明其理 何哉 六者 德之大目耳 輕重淺深當施不當施之間 其理固多端也 今但見其大目而好之 不務學以究其理之曲折 則見其一而蔽其一 未有不流於一偏者也 仁主於愛 偏則不分輕重賢否而流於愚 智知人所難知 偏則窮高極遠而流於蕩 信而偏則執一不通而流於賊 直而偏則迫切不舒而流於絞 勇則直徑而亂 剛則堅守而强 是皆得其大目而不學有所蔽以至於此也 仁, 知, 信, 直, 勇, 剛은 모두 미덕인데, 또 다시 반드시 배워서 그 이치를 밝혀야 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6가지는 덕의 큰 항목일 뿐이다. 그러나 가볍게 하느냐 무겁게 하느냐, 얕게 하느냐 깊게 하느냐, 그리고 베풀어야 마땅한가 아닌가의 사이에 그 이치는 본래 복잡다단한 것이다. 지금 단지 그 큰 항목만 보고서 그것을 좋아하되, 배움에 힘써서 그 이치의 곡절을 궁구하지 않는다면, 그 하나만 보고서 나머지 하나는 가리는 것이므로, 어느 한쪽에 치우침에 흐르지 않는 자가 일찍이 없었다. 仁은 사랑에 주안점을 두지만, 만약 한쪽으로 치우친다면, 가벼움과 무거움, 현명함과 그렇지 못함을 분간하지 못하고서 어리석음으로 흐를 것이다. 지혜는 사람들이 알기 어려운 것을 아는 것인데, 치우친다면, 지극히 높고 너무 멀어서 蕩에 흘러들고 말 것이다. 신실하되 치우친다면, 하나만 고집하고서 두루 통하지 못하여 賊에 흘러들고 말 것이다. 올곧지만 치우친다면, 박절하고 넓지 않아 남의 허물을 들추어냄에 흘러들 것이다. 용감하면, 곧이곧대로 행하여 난리를 피울 것이고, 굳세면 굳게 지켜서 강포하게 될 것이다. 이것들은 모두 그 큰 항목은 터득하였으되 배우지 않아서 가려진 바가 있음으로써 여기에 이른 것이다. 覺軒蔡氏曰 此皆不明理而惑於所似故也 格物以致其知 則其蔽徹矣 각헌채씨가 말하길, “이것은 모두 이치를 밝히지 않아서 비슷한 것에 미혹되었기 때문이다. 사물의 이치를 궁구하여 그 앎을 지극히 한다면, 그 가려짐은 뚫려 환해질 것이다.”라고 하였다.
○ 范氏曰 子路勇於爲善 其失之者 未能好學以明之也 故告之以此 曰勇 曰剛 曰信 曰直 又皆所以救其偏也 범씨가 말하길, “자로는 선을 행함에 용감하였으나, 그가 잘못하는 것은 배우기를 좋아함으로써 그 이치를 밝히지 못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로써 그에게 알려준 것이다. 용기를 말하고, 굳셈을 말하고, 신실함을 말하고, 정직을 말한 것 또한 모두 그 치우침을 구제하기 위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慶源輔氏曰 范氏就子路身上發明尤切 子路好勇 且有何必讀書之說 其失正在於未能好學以明善也 剛勇直信 皆其氣稟之偏 故特告之 경원보씨가 말하길, “범씨가 자로의 몸에 나아가 드러내어 밝힌 것이 더욱 절실하였다. 자로는 용감함을 좋아한 데다가 또한 ‘어찌 반드시 책을 읽어야만 학문을 하는 것이겠는가?’이라는 말을 하였으니, 그의 허물은 바로 배움을 좋아함으로써 善을 밝히지 못한 것에 있었던 것이다. 剛, 勇, 直, 信은 모두 자로의 氣稟이 치우친 바이고, 그래서 특별히 이것으로써 알려준 것이다.”라고 하였다.
陳用之曰 信直勇剛 子路之所好也 先之以仁知 使之知所好也 或曰 此子路初見夫子之時 진용지가 말하길, “信, 直, 勇, 剛은 자로가 좋아하는 것들이다. 仁과 知를 그것들보다 앞세운 것은 그로 하여금 좋아하는 것을 알도록 하신 것이다.”라고 하였다. 혹자가 말하길, “이는 자로가 공자님을 처음 만났을 때다.”라고 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