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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장 새벽 눈물
Again 1907년 대부흥을 바라본다. 다시,새벽 대 부흥을 꿈꾼다.
기도는 한마디로 이것이다!
Again, 1907년 대부흥
이제 얼마 있지 않으면 한국교회가 1907년의 대부흥을 맞은 지 100주년이 됩니다. 한국의 오순절 성령운동이라 일컬어지는 1907년 '대부흥 운동' 은 평양 장대현교회에서 1,500여 명의 성도로 시작되어 오늘날의 1,200여명이라는 놀라운 한국교회의 부흥성장의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이 성령운동의 힘은 조국의 해방과 더불어 물밀듯이 밀어닥친 내우외환의
위기 속에서 나라의 근대화와 교회가 부흥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한국교회는 1990년대를 전후로 성장이 점차적으로 감소하기
시작해 급기야 마이너스 성장을 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성령운동의 가장
중요하고 궁극적인 목적이 그리스도의 지상 명령인 세계 선교 사명의 완수에 있다고 볼 때 아무리 시대적, 상황적 변화가 있더라도 하나님의 계획에
맞추어 한국교회는 다시 한번 부흥의 불길을 일으켜야 할 의무를 갖고 있습니다.
이에 발맞추어 교계의 곳곳에서 대부흥을 21세기에 다시 한번 이르켜보자는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대부흥의 실마리를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요? 저는 그 해답이 새벽기도의 활성화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국교회 새벽기도의 기원은 한국교회의 대부흥 운동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길선주 목사님이 한국 최초로 평양에서 시작했던 새벽기도가
평양 대부흥의 직접적 동기가 되었던 것입니다. 특히 열정적인 한국교회의
특징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하나 주목해야 할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한국교회 최초의 새벽기도를 인도했던 길선주 목사님은 개인들의 죄의 회개는 물론 고난의 민족사를 걱정하면서 새벽기도를 했다는 사실입니다.
그냥 기도한 것이 아닙니다. 민족과 나라를 위해서 기도했습니다.
한국 기독교인들은 개인적으로 지은 죄를 생각해도, 민족의 운명을 생각해도 이 세상 어디에도 호소할 길이 없었기 때문에 하나님께 호소했던 것입니다. 그들은 개인과 나라의 운명을 하나로 생각했다는 점이 의미 심장한 점입니다.
그런데 1907년 평양에 있었던 성령강림 사건은 민족의 위기 상황을 국복하기 위한 교인들의 회개 운동 이었습니다. 이 점이 중요합니다. 부흥은 회개로부터 출발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회개를 통하여 민족의 고난에 참여한 신앙적 민족 운동으로 승화 되었습니다. 또한 민족의 고난 속에서 신앙을 연단하고 영적인 성장을 가능케 하여 한국교회의 부흥발전의 원동력이
되었던 것입니다. 바로 새벽 기도를 통한 개인의 회개와 중생이 민족을 살리는 구국운동으로 이어진 것이 한국교회의 위대한 전통이요, 유산인 것입니다. 우리는 이 전통을 21세기에 되살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다시, 새벽 대부흥을 꿈꾼다.
100여 년 전 일어났던 평양 대부흥 운동은 새벽기도가 직접적인 계기였습니다. 그리고 거기에는 우리 신앙의 선배들의 기도 열정이 있었던 것입니다. 저는 이러한 열정들이 계속 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계속 부흥이 일어나야 하는 것입니다. 1907년 평양 장대현 교회에서 '나는 아간이올시다' 라고 공개적으로 회개한 길선주 목사님의 외침이 100년이 흐른 지금 가장 절실히 필요한 때라고 생각합니다. 다시 그 의미를 되새기면서 이 땅에 강한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새벽 부흥을 일으키자고 촉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진정한 부흥이 일어나는 곳에는 사회적 변화와 교회 성장의 열매가 따르게 됩니다.
저는 이러한 새벽기도 운동의 비젼이 우리 민족뿐 아니라 전 세계에 전달되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새벽기도가 한국의 농촌에서부터 미국, 파리까지
전해지기를 꿈꿉니다. 파리에도 우리 한국교회의 새벽기도를 가지고 가서
붐을 일으킨 사례가 있습니다. 필리핀 사람이 한국에 와서 새벽기도를 배워서 지금 교인이 10,000명이 넘는 교회를 만들었습니다.
미국에서도 성공한 사례가 있습니다. 한번은 필라델피아에 가는 길에 한 교회를 들렀습니다. 9년 전에 한국의 새벽기도를 배워간 목사가 풋볼 경기장을 인수 했는데, 9년 만에 어마어마한 교회로 성장한 것을 보고 왔습니다. 저는 새벽기도의 힘이 그만큼 크다는 것을 느끼고 왔습니다.
새벽기도에는 인종도 국경도 없습니다. 오직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능력만이 있는 것입니다.
기도해야, 정말 해야 우리 민족이 삽니다.
사실 우리 나라는 4,000년 동안 중병에 걸린 민족입니다. 이런 병은 간단하게 기도해서 해결을 받을 민족의 문제가 아닙니다. 심각한 문제입니다.
저도 우리 가정에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마귀가 얼마나 역사하고, 나를 얼마나 죽이려고 하고, 나를 얼마나 넘어뜨리려고 하는지요 저는 적어도 한 10년 이상은 거의 금식하다시피 지냈습니다.
몇 10년 동안 끊임없이 기도의 줄을 붙잡고 매일 눈물을 펑펑 쏟으면서
손수건을 몇 개씩 적셔야만 집으로 되돌아 왔습니다. 그래서 몇 10년이 지나서 저의 문제가 해결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갖고 있는 영적인 이 심각한
문제에 관해서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성한 곳이 없는 이 나라의 이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습니가? 오직 하나님만이 해결하실 수 있습니다.
적극적으로 야곱처럼 매달리는 사람에게, 교회에게 하나님이 복을 내려주십니다. 그것만이 아닙니다. 작게는 우리 개인을, 크게는 나라를, 더 크게는 우리 온 교회를, 세계교회를 성령은 부흥되게 하십니다. 힘을 주십니다.
우리 이 민족이 지금 이곳에서 홀로 남아있으려면 하나님으로부터 특별한
은혜를 받지 아니하면 안 됩니다. 주변의 강대국들은 마냥 평화 공존을
생각하고 있지 않습니다. 우리가 이도 아니고, 저도 아닌 참순하고 좋은 민족이어서 그렇지, 우리 주변은 그렇지 않습니다. 굉장한
민족, 수단방법을 가리지 아니하는 민족 사이에 우리 민족이 있습니다.
위로부터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지 아니하면,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면 안 됩니다.
기도가 무기입니다. 새벽부터 하나님께 나오는 믿음을 가질 때 사명감도 생기고, 부지런함도 생깁니다. 저도 예수믿고 나니 저절로 부지런해지는 것을 체험했습니다. 이웃을 사랑하게 되고, 정직하게 됩니다. 우리가 적어도, 물건 하나를 만들어도 세계적으로 경쟁하는 국가가 되려면 성실해야
됩니다. 창의력이 있어야 됩니다. 생명력 있는 기독교, 그 기독교의 정신으로 돌아가면 우리 인간이 발전할 수 있는 요소를 다 찾을 수가 있습니다.
성경 안에 다 있습니다. 날마다 듣는 그 메시지 안에 다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말 할 수 없는 은혜와 사랑으로 이 민족과 한국교회를 여기까지 인도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려야 합니다. 저주와 가난, 무지와 우상 숭배에 빠져 소망이 없던 이 나라에 100여 년 전 선교사들이 들어와서 복음을 전해줌으로 이 땅의 모든 정치, 경제,사회,문화가 살아나고 오늘의 풍요로운 삶이 주어지게 되었습니다. 어느 나라, 어느 민족이든 복음이 선포되고
교회가 세워지는 곳에 하나님께서는 번영과 촉복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그동안 한국 교회는 놀라운 성장을 거듭함으로 온 세계의 주목을 받아왔습니다. 짧은 기독교 역사임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의 열매와 결실이 주어지게
된 데에는 새벽부터 흘린 눈물의 기도가, 성령의 부흥의 역사가 있었던 것입니다.
꼭 잊지 말아야 할 새벽의 은혜
새벽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찾아오시는 시간대입니다. 그래서 새벽은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황금 시간대 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무엘을 찾아와 그를 부르셨던 것처럼 끊임없이 우리들, 우리 교회, 우리 민족을 새벽에 깨워주시고 불러주셨습니다. 저는 오직 하나님께 감사할 뿐입니다.
복음성가'실로암' 의 가사는 바로 저의 고백입니다.
오 주여 당신께 감사하리라 실로암 내게 주심을
나에게 영원한 이 꿈속에서 깨이지 않게 하소서
저의 소원은 하나님께서 새벽에 저를 깨워 주시고, 새벽에 주를 가까이할 수 있는 은혜를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저에게 새벽에 많은 은사를 주셨습니다. 새벽 강단에 올라서기만 하면 힘이 나고 말씀이 솟아나고 용기가 솟구치기 때문입니다.
또 새벽은 눈물의 단비가 내리는 시간이었습니다. 그 눈물은 돌아보면 10대의 눈물은 회개의 눈물이었고, 20대에는 감사의 눈물, 30대에는 고난의 눈물, 40대에는 성령께서 눈물샘을 열어주셔서 울려고 하지 않아도 눈물이 저절로 솟아나는 눈물의 홍수 속에서 살았습니다.
새벽기도를 통해 그동안 만나를 풍성히 먹여 주신 주님께 너무나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아이로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새벽의 물결을 일으키며
여러 모양의 홍해를 건너오신 성도들과 저의 동역자인 부목사님들의 수고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우리가 꼭 한 가지 잊어서 안 될 것은 바로 새벽입니다. 어려울 때도 기쁠 때도 주님이 우리를 기다리시는 새벽을 기억해야 됩니다. 언젠가 이 땅이 어두워 캄캄해 질 때도 우리는 환히 밝아 오는 그 나라의 새벽을 소망하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 함께 새벽예배, 새벽찬양, 새벽기도를 영원히 하나님께 올려 드립시다.
기도는 한 마디로
제가 말을 많이 했는데, 너무 많이 한 것 같습니다. 마지막은 조용하게 끝마치고 싶습니다. 우선 목회부터 저는 그렇게 하고 싶습니다. 팬텀기가 수직 상승하는 것처럼 곧장 쭉 올라가는 목회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성공적인 목회자는 자연법칙처럼 그냥 열매를 맺었다가 마지막에는 잎이 다 떨어지듯이 조용히 사라지는 것입니다. 자신이 성공을 안 해야 목회가 성공하지 않겠느냐고 생각합니다. 이름 없이 열심히 일하다가 보이는 면이 다 사라지고 자기 자취를 감추는 이런 목회를 해야 되지 않느냐는
생각입니다. 큰 교회 목사가 큰 교회 목회를 하고 유명하게 이름이 나는 것보다는 잔잔히 자기 자리를 비우는 것이 좋지 않느냐 생각합니다.
열심히 일하고 마지막 클라이막스를 우리는 장엄하게 하지말고, 조용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마지막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어디엔가 가서 새벽기도에 대해서 막 설명하고 있는데, 누군가가 제게 물었습니다. "목사님 '기도는 한마디로 이것이다'라고 말씀 하실수 있나요?"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대답했습니다. "기도는 눈물입니다!" 라고 말입니다. 기도는 하나님 앞에서 눈물을 흘리는 것입니다.
이렇게 이야기 하는 지금도 눈물이 흐릅니다. 우리의 기도는 꼭 소리 안내도, 꼭 눈물이 정말 흐르지 않아도 그냥 하나님 앞에서 '사랑 합니다. 사모합니다.회개합니다'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럼 이게 다 눈물이 아닌가 하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것이 바로 기도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눈물의 기도를 새벽에 드리는 여러분이 되시길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