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뛰어난 요정 헌터인(사실은 헌터가 아닌 사제 출신이지만) 아스테리아의 도움으로 순식간에 도적들을 추격해 역으로 기습 공격을 펼친 용병대의 공격에 도적들은 고전을 면치 못하였다. 승세는 이미 용병대로 굳어진 것이라고 죽은 막시밀리안 대대장 대신 1대대 소속 중대장들의 전원 찬성에 의해 새로 대대장이 된 구스타프를 비롯해 모든 용병들은 믿었다. 하지만 그 믿음은 10분이 채 지나기도 전에 무너지고 말았다. 무언가 공기를 찢는 괴성과 함께 수상한 검은 물체가 숲의 어둠 속에서 나타난 것이었다. 그것도 하나도 아닌 여러 개가 말이다. 인간에 비해 시각이 30배 그리고 청각은 50배나 좋은 아스테리아가 그 모습과 소리를 확인하자마자 소리 질렀다.
“도망쳐!! 오우거(Ogre)야!!”
하지만 그녀가 소리를 질렀을 무렵에는 서로 치열하게 싸우고 있던 도적 떼와 용병들 여럿이 오우거가 휘두른 몽둥이 저만치 날아가 버린 지 오래였다. 이윽고 총 6마리의 오우거들이 용병대와 도적 떼를 포위했다. 구스타프가 갑작스런 오우거의 등장에 벌벌 떨고 있던 도적의 낭심을 걷어찬 뒤 휘하 병사들에게 소리쳤다.
“진형 갖춰!! 놈도 우리와 똑같은 생물이다!! 찌르면 찔리고 때리면 부서지고 베면 베이는 그런 놈이다!! 게다가 놈들은 겨우 여섯이고 우리는 약 천명이다!! 천명이 여섯을 못 이기면 나중에 웃음거리 밖에 안 된다고!!”
물론 그는 오우거 한 마리가 인간 병사 60명분의 힘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 대신 1중대장이 된 아스테리아가 에린산 주목(朱木)으로 만든 롱보우에 시위를 걸며 말했다.
“운도 지지리도 없지.. 하필 인간이 평생 번개를 연속으로 3번 맞은 확률보다 보기 힘들다는 오우거를 그것도 여섯이나 만나다니.. 정말로 운 지지리도 없어 없다고!!..”
“그럴 생각 있으면 이 상황을 어떻게 타개할 것인지나 생각해봐?”
“그런 것이 있었으면 나는 벌써 이곳을 살포시 떠나주셨죠. 우리 대대장님.”
그러며 맑은 소리와 함께 화살이 공기를 가르며 오우거를 향해 날아가기 시작했다. 구스타프 옆에 서있던 연대장인 엔릴이 오우거에게 석궁에 장전된 쿼렐을 쏘며 소리쳤다.
“살고 싶으면 무조건 죽여!!”
그 말이 끝나기가 수십 발의 쿼렐 세례와 함께 오우거의 짧은 비명 소리, 그리고 살아남아야 한다는 목적 아래 본의 아니게도 같은 편이 된 용병들과 도적들이 일제히 함성을 지르며 오우거들에게 돌진하기 시작했다. 오우거들도 달려오는 용병들과 도적들의 함성 소리에 지지 않으려는 듯 엄청난 괴성을 내며 거대한 곤봉을 휘두르며 달려오기 시작했다.
<퍽!>
오우거가 휘두른 곤봉에 여러 명의 용병들이 튕겨져 나갔다. 그러며 오우거는 한 손에 든 도적을 으깨며 먹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용병들과 도적들은 그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공포감에 제대로 공격할 생각조차 못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아스테리아가 화살을 쏘며 말했다.
“뭐하는 거냐!! 죽고 싶은 거야!! 살고 싶으면 싸워!!”
아스테리아의 화살에 한 쪽 눈을 잃은 오우거가 큰 비명을 지르며 먹고 있던 도적을 던져 버렸다. 도적은 머리가 반쯤 뜯긴 채 그리고 몸은 오우거의 약력에 찌부러져 보기 흉한 모습을 한 채 바닥에 떨어졌다. 하지만 그 모습에도 용병들과 도적들은 아까와 달리 전혀 개의치 않고 달려들었다. 오우거가 무시무시한 괴력으로 용병들과 도적들을 짓밟으며 용병들과 도적들은 검과 창으로 찌르고 또 검으로 베고 메이스로 때리며 오우거에게 맹공격을 퍼부었다.
역시나 전투는 혼전이었다. 대대, 중대를 가릴 필요가 없었다. 대대장이든 중대장이든 모두 칼을 뽑고 일제히 놈들에게 달려들었다. 곳곳에는 오우거에게 당한 용병들과 도적들의 시체들이 널려 있었다.
<푹!>
오우거의 머리 위에서 오우거와 목마 타기를 하고 있던 구스타프가 정수리에 단검을 꽂았다. 머리에 칼을 찔린 오우거가 미친 듯 비명을 지르며 들고 있던 곤봉마저 내려놓은 채 두 손으로 자신의 머리 위에 있는 구스타프를 잡기 시작했다. 구스타프는 힘들게 오우거의 두 손을 피하면서 바닥에 떨어졌다. 하지만 그의 불운은 떨어지는 모습을 오우거가 본 것이었다. 오우거는 바닥에 떨어진 구스타프를 밟기 시작했다. 구스타프는 이리저리 구르며 오우거의 공격을 겨우겨우 피했다. 옆에서는 용병들이 칼로 찌르고 쿼렐을 쏘며 오우거의 시선을 돌리기에 노력하고 있었지만 이미 맛이 간 오우거는 그런 공격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쿵쿵 거리며 구스타프를 짓밟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고 있었다. 그리고 하늘이 그런 오우거의 뜻을 도왔는지 아니면 행운의 신이 구스타프의 행운의 끈을 깜빡 졸다가 살짝 놓았는지 구스타프가 짧은 비명을 질렀다.
<윽..>
구스타프는 다행히 무사했지만 그의 왼팔의 절반은 오우거의 발에 묻혀 있었다. 그리고 오우거의 발밑으로 붉은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구스타프는 온몸에서 힘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구스타파는 젖 먹던 힘까지 짜내며 오른쪽 허리에 찬 단검으로 오우거의 발을 찔렀다. 하지만 오우거는 아무런 미동조차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구스타프는 찌르고 또 찔렀다. 10번을 찔렀을까 오우거가 그제서야 참을 수 없다는 듯 짓밟고 있던 구스타프의 왼팔에서 발을 떼고 뒤로 걷다가 결국 쓰러져 버렸다. 용병들과 도적들이 오우거의 몸 위로 올라가 칼과 창으로 오우거의 몸을 난도질하기 시작했다. 오우거는 마치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나 혹은 돼지의 비명 소리와 비슷한 소리를 지르며 죽기 시작했다. 용병들이 구스타프에게 달려왔다. 이미 왼팔의 절반은 예전의 모습은 생각조차 나지 않을 정도로 흉물스럽게 변해 버렸다.
“젠장. 대대장님!!”
“형님!! 정신 차리십쇼!!”
다양한 목소리들이 구스타프의 귀에 들렸다. 식은땀을 흘리며 거친 숨을 내쉬고 있던 구스타프가 말했다.
“아직 죽지 않았으니까!! 닥치고 빨리 싸우기나 해!! 이건 대대장이자 용병대에서 월급탄지 오래된 상급자로 내리는 명령이야!!”
“예...옛!!”
그러며 용병들이 칼을 쥐고 다시 남은 오우거들에게 달려가기 시작했다. 달려가는 모습을 본 구스타프는 잠시 바닥에 머리를 댔다. 순간 구스타프는 자신 주위의 모든 것들이 느리게 돌아간다고 느끼고 있었다. 병사들의 거친 숨소리 고막을 찢을 듯한 오우거의 괴성, 병사들의 함성뿐만 아니라 모든 것이 느리게 돌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더 이상한 것은 이런 상황에서도 불구하고 너무나 졸렸다.
“이게 죽는 다는 건가..”
구스타프는 마지막으로 조용히 중얼 거리며 스르륵 눈을 감았다.
2
구스타프가 해가 뉘역뉘역 서편으로 사라질 무렵이었다. 눈을 떴을 때 그의 눈에 보인 것은 각양각색의 모습의 용병들의 모습이었다.
“냄새 나는 머리 안 치워?”
“대대장님!!”
“형님!!”
“야!! 이 멍청한 녀석아!!”
용병들은 다시 정신을 차린 구스타프를 보며 다양한 말을 내뱉었다(물론 애정이 섞인 욕설도 많이 있었다). 구스타프는 자신이 살아있음에 조금 감사하며 앞으로는 헌금 같은 것도 좀 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하지만 옆에 있던 아스테리아는 차갑게 그에게 말했다.
“왼팔을 잘랐어. 어짜피 고치기조차 힘든데다가 계속 두면 썩어서 생명에도 지장을 줄 수 있어서 잘라 버렸어.”
“잘 했어. 어짜피 나는 왼팔 잡이가 아니라 오른팔 잡이니까 왼팔 하나쯤 잃는다고 해서 별로 문제될 건 없어.”
너무나도 태평한 구스타프의 말에 아스테리아가 머리를 때리며 말했다.
“이 바보야!! 한 팔로 어떻게 싸운다는 거야? 너 한 손으로 저 클레이모어를 들 수나 있을 것 같아? 클레이모어가 아니더라도 한 팔로 제대로 된 싸움이나 할 수 있을 것 같아?”
“넌 너무 세상만사를 너무 안 좋은 방향으로 생각하는 구석이 있어. 좀 좋은 방향으로 생각해 봐. 전에 계셨던 2연대장 카를도 한 팔이었지만 잘만 싸웠어.”
“대신 능률은 떨어졌잖아?”
“어짜피 능률에 상관없이 잘만 죽이면 될 거 아니야? 그리고 한 팔로 들기 힘들면 들게 하면 되고 만약에 불가능하다면 무기를 바꿔도 되는 노릇이고..”
더 이상 말이 통하지 않는 다는 것을 안 아스테리아는 소매에서 담배를 꺼내 피우기 시작했다. 옆에 있던 구스타프도 하나만 달라고 말했지만 아스테리아는 애써 그의 말을 무시하며 뻐금뻐금 연기를 뿜어대며 담배를 피웠다. 그 모습을 보며 심각한 중독자인 구스타프는 식은땀을 삐질삐질 흘리고만 있었다.
오우거 6마리 대 란츠크네히츠 1연대 850명(150명은 지난 도적들과의 기습에서 부상당하거나 죽었다)과 도적들 200명과의 싸움은 오우거의 완전 섬멸로 란츠크네히츠와 도적들의 승리로 끝났다. 하지만 결과는 너무나도 처참했다. 1연대 850명 중 살아남은 사람은 560명 정도였고 도적들은 40명에 불과했다. 물론 부상자까지 추가하면 연대의 병력은 훨씬 더 줄어들 지경이었다. 이래가지고선 연대라는 이름이 울 정도였다. 하지만 피해가 어찌되었든 간에 서서히 해가 지고 카일라스 산의 깊은 숨에 밤이 찾아들고 있었다.
첫댓글 재미있게 읽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