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매못 성지는 1866년 천주교 병인박해 때 서울에서 사형 선고를 받고 충청수영으로 이송된 다섯 성인이 군문효수형을 당한 장소로 현재 순교자 기념비, 기념관, 사제관, 수녀원 등이 건립되어 있으며, 병인박해 때 많은 천주교 신자들이 이송되어 순교한 곳일 뿐만 아니라 다블뤼 주교의 유품과 유물을 소장한 역사적으로 중요한 가치를 지닌 곳입니다.
갈매못 순교성지는 한국 천주교회 성지 중 유일하게 주교와 신부, 평신도가 함께 피를 흘리며 순교한 곳입니다.
갈매못 순교성지의 이름인 갈매못은 갈마연에서 온 말로 목마른 말에게 물을 먹이는 연못이라는 뜻인데
종교적으로 풀면 신앙의 목마름을 풀 수 있는 곳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1866년 3월 30일에 이곳 바닷가에서 안토니오 다블뤼 주교를 비롯해 오메트로 오 베드로 신부, 우앵 민 루가 신부, 황석두 루가, 장주기 요셉 등 5명이 200명의 군인과 지역주민과 신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순교한 순교 터입니다.
기억 속에서 잊혀가던 순교터는 순교한 지 59년 후인 1925년에 갈매못 인근의 금사리본당 정규량 신부가
순교 당시의 상황을 목격한 증인들의 생생한 증언을 들었고 이를 바탕으로 순교 터와 효시 터, 임시 매장터를 확인하였다고 합니다.
성인들이 서울이 아닌 이곳 갈매못에서 처형된 것은 명성황후의 국혼이 가까워 서울에서는 피를 보지 않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선교사와 황석두 회장이 충청수영으로 이송될 때 서울에 갇혀 있던 장주기 회장도 동행하였고
서울에서 갈매못까지 약 250리 길을 며칠 동안 끌려 내려와 1866년 3월 30일에 처형당했습니다.
정조 사후 1801년 신유박해로부터 1866년까지 지속적인 박해는 이 해 한양 용산 새남터와 이곳 갈매못에서 핏물을 이루게 되지요. 도대체 정치란, 신앙이란, 시대의 환경이란~~ 이 절경의 장소에서 숙연했습니다. 참을 수 없는 프랑스 정부는 로즈 제독의 극동함대로 하여금 강화도를 침범, 잠시 점령당하는 치욕을 조선정부에 안겼고 5년 후에는 또 미 해병대에 점령(신미양요)당하는 조선의 말기 증세를 그대로 보여주는 발단의 한 장소로 보였습니다.
첫댓글 그래요
가능하면 도비 나누어 보태서
시 군 역량강화답사가
효과가 있를 것 같아요.
좋은 의견입니다. 이제 협회 답사는 많은 인원으로 분기 단위로 나뉘어서
장소를 다양하게 진행하는 것도 생각해 봅니다.
정조 사후 1801년 신유박해로부터 1866년까지 지속적인 박해는 이 해 한양 용산 새남터와 이곳 갈매못에서 핏물을
이루게 되지요. 도대체 정치란, 신앙이란, 시대의 환경이란~~ 이 절경의 장소에서 숙연했습니다. 참을 수 없는
프랑스 정부는 로즈 제독의 극동함대로 하여금 강화도를 침범, 잠시 점령당하는 치욕을 조선정부에 안겼고
5년 후에는 또 미 해병대에 점령(신미양요)당하는 조선의 말기 증세를 그대로 보여주는 발단의 한 장소로 보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