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초 겪는 내부고발자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내부고발자는 1972년 워터게이트 사건을 고발해 닉슨 대통령의 사임을 이끌어 낸 마크 펠트 전 연방수사국(FBI) 부국장(1913∼2008)이다. 그는 닉슨 대통령과 사이가 좋았다. 닉슨은 1924년부터 1972년까지 48년간 FBI 수장으로 재직하며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른 에드거 후버 국장을 견제하기 위해 ‘2인자’ 펠트를 중용했다.
펠트는 자신이 FBI 국장이 될 것으로 확신했다. 하지만 1972년 후버가 죽자 닉슨은 패트릭 그레이 법무 차관보를 새 국장에 임명했다. 펠트가 제2의 후버가 될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분노와 배신감에 휩싸인 펠트 부국장은 WP 측에 재선을 준비하던 닉슨 캠프가 민주당 본부가 꾸려진 워싱턴 워터게이트 호텔에 침입했음을 알렸다. 엄청난 나비효과를 만들어낸 2년여의 공방 끝에 닉슨 대통령은 자진 하야했다. 펠트 부국장은 줄곧 ‘딥 스로트(deep throat)’란 별명으로만 알려졌다. 2005년 자신이 고발자임을 밝혔고 3년 후 숨졌다.
내부고발자에 대한 이미지는 상반된다. 정의롭고 용감한 ‘영웅’이라는 시선과 사적 이익 추구와 복수를 노린 ‘밀고자’에 불과하다는 반론이 교차한다. 특히 국가 기밀을 폭로한 내부고발자에 대해서는 ‘반역’과 ‘배신’의 어두운 그림자가 짙게 드리운다. 이들 중 상당수가 수감되거나 해외를 전전해야 하는 이유다.
2013년 미 NSA의 광범위한 민간인 및 외국 정상 도·감청을 폭로한 에드워드 스노든(36)이 대표적이다. 그는 NSA가 ‘프리즘’ 감시 체계로 수많은 민간인의 개인정보를 불법 수집하고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등 최소 35개국 국가 원수를 도청했다고 폭로했다.
그는 사건 직후 미국과 사이가 나쁜 러시아로 도피했다. 이후 6년간 에콰도르, 독일, 프랑스 등에 망명을 신청했지만 모조리 거부당했다. 세계 최강대국과의 관계 악화를 우려하지 않을 나라는 없다. 20년째 장기 집권 중인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권좌에서 내려오면 그의 처지가 어찌 될지 알 수 없다. 미 법무부는 지난달 스노든이 출간한 두 번째 회고록에 대해서도 즉각 수익 압류 소송을 냈다.
2010년 폭로 전문 웹사이트 위키리크스에 이라크전 당시 미국의 민간인 학살을 폭로한 첼시 매닝(32)은 여전히 수감자 신세다. 그는 2013년 35년형을 선고받았다. 버락 오바마 전 행정부가 7년으로 감형했고, 2017년 5월 출소했다.
이후 성전환 수술을 받고 양성평등 운동가로 변신했지만 올해 3월 연방대배심 증언을 거부해 다시 감옥에 갇혔다.
미국 정부는 아직도 스노든과 매닝의 폭로를 “분명한 간첩 및 반역 행위이며 적들의 선전선동에 악용됐다”고 보고 있다.
미 국방부 산하 연구소 직원이던 대니얼 엘즈버그(88)는 1971년 일명 ‘펜타곤 페이퍼’를 폭로했다. 미국이 베트남전 개시의 명분으로 삼은 통킹만 사건이 북베트남 공산 정권의 전복을 위해 조작됐음을 입증한 문서다.
기밀 유출 혐의로 기소당한 그는 같은 해 벌어진 재판에서 무려 징역 115년형을 구형받았다. 2년 후에야 무죄 판결을 받았다. 당시 그가 풀려난 이유가 워터게이트 사태로도 정신없었던 닉슨 정권이 전임 정권의 잘못으로 인한 논란까지 신경 쓸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제기됐다.
○ 포상금 챙기는 기업 내부고발자
개별 기업과 조직의 불법 행위 등을 폭로한 내부고발자들은 사회의 칭송을 받으며 활발한 저술 활동 및 강연을 벌인다. 1996년 미 담배회사 브라운앤드윌리엄슨에서 일했던 생화학자 제프리 와이갠드(77)가 대표적이다.
당시 그는 회사가 담배 중독성을 높이기 위해 발암성 화학물질을 첨가했다고 폭로했다. 이후 켄터키주 고등학교 물리학 교사로 변신한 그는 1998년 ‘올해의 교사’로 꼽혔다. 지금도 금연 정책 입안자에게 조언한다. 그의 내부고발에 힘입어 미 49개 주는 담배회사에 집단소송을 걸어 총 2460억 달러의 배상금을 받아냈다.
1986년 1월 발사 78초 만에 폭발해 승무원 7명 전원이 숨진 우주왕복선 챌린저호의 사례도 비슷하다. 챌린저호의 제조사 모턴사이어콜의 기술자였던 로저 보졸리(1938∼2012)는 청문회에서 이 사건이 전형적 인재였다고 증언했다.
1985년 7월 그를 포함한 모턴사이어콜 기술자들은 “보조 로켓 접합부에 쓰인 일종의 고무패킹, 즉 ‘O링’이 추운 날씨로 얼면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한다. 겨울인 1월에 발사하면 위험이 커지므로 발사를 취소하거나 일정을 조정해야 한다”고 보고했다.
미 항공우주국(NASA) 간부들은 이를 무시했고 최악의 사고가 발생했다. 보졸리는 1988년 미국 과학발전협회의 ‘과학적 자유와 책임상’을 수상했다. 숨질 때까지 ‘기술자의 윤리와 책임’을 주제로 주요 대학과 연구기관에서 300여 차례 강연을 다니며 인기 연사로 활동했다.
미국 에너지기업 엔론의 셰런 왓킨스 전 부사장(60)도 마찬가지. 그는 2001년 한때 미 7대 기업이었던 엔론이 15억 달러(약 1조8000억 원)의 손실을 장부에 반영하지 않고 실적을 부풀렸음을 고발했다. 이를 통해 장부 조작에 최고경영자(CEO), 회계법인 등 광범위한 사람들이 연루됐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한 해 뒤 미 시사주간지 타임은 그를 ‘올해의 인물’로 선정했다.
엄청난 보상금을 받는 내부고발자도 많다. 미국 정부는 2010년 ‘도드-프랭크법’(금융감독제도 개혁법)을 통해 내부고발자에 대한 신원 보호 및 포상을 대폭 확대했다.
특히 금융 비리를 신고하는 내부고발자는 증권관리위원회(SEC)가 해당 기업에 부과하는 제재 금액의 10∼30%를 포상금으로 받을 수 있다.
블룸버그 등에 따르면 지난해 3월 미 유명 투자은행(IB) 메릴린치의 비리를 신고한 내부고발자 3명은 역대 최고 포상금인 총 8300만 달러를 나눠 가졌다. 이들은 메릴린치가 고객 자산을 투자 위험이 높은 계좌에 몰래 보유하며 막대한 이익을 창출했다고 폭로했다.
2015년 미 최대 은행 JP모건의 내부고발자도 회사가 고객 투자금을 몰래 헤지펀드 및 자체 뮤추얼펀드에 투자했음을 고발했다. 그는 포상금 1300만 달러를 받았고, 아직도 익명으로 월가에서 활동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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