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승, 견고(堅固)한 고독

견고(堅固)한 고독                                                김현승  껍질을 더 벗길 수도 없이단단하게 마른흰 얼굴  그늘에 빚지지 않고어느 햇볕에도 기대지 않는단 하나의 손발  모든 신(神)들의 거대(巨大)한 정의(正義) 앞엔이 가느다란 창끝으로 거슬리고생각하던 사람들 굶주려 돌아오면이 마른 떡을 하룻밤네 살과 같이 떼어 주며  결정(結晶)된 빛의 눈물,그 이슬과 사랑에도 녹슬지 않는견고(堅固)한 칼날 – 발 딛지 않는피와 살  드거운 햇빛 오랜 시간의 회유(懷柔)에도더 휘지 않는마를 대로 마른 목관 악기(木管樂器)의 가을그 높은 언덕에 떨어지는굳은 열매  쌉쓸한 자양(滋養)에 스며드는에 스며드는네 생명의 마지막 남은 맛! (『현대문학』 130호, 1965.10)  [작품해설]이 작품의 중심 소재는 ‘고독’이다. 김현승은 세월이 지날수록 더욱 견고해지는 자긴의 고독을 구축하고, 그 속에서 계속 머무르며 고독이라는 추상적 관념을 일관되게 시의 주제로 파헤친다.1연은 추상의 ‘고독’을 시인의 특유한 상상력으로 용해한 후, 다시 재구성하여 구체화시킨 표현이다. 그에 의하면 ‘고독’이란 ‘껍질을 더 벗길 수도 없이 / 단단하게 마른 / 흰 얼굴’을 모습이다. 그러므로 그의 고독은 일체의 외부 세계와 타협하지 않고, 무엇에도 허물어지지 않을 만큼 단단한 영혼의 마른 뼈로 살아가는 생활 자세로 제시된다. 다시 말해 고독은 ‘마른’ · ‘흰’이란 수식어가 암시하는 것처럼 본질에 가까운 견고성을 지니는 한편, 순수하고 결백한 것으로 표상된다.2연은 1연에서 보여준 고독의 모습이 더욱 구체화되어 나타난다. ‘그늘에 빚지지 않고 / 어느 햇볕에도 기대지 않는 / 단 하나의 손발’로 살아가는 그에게 있어 ‘그늘’과 ‘햇볕’은 타락한 현실이요, 부도덕한 세상을 상징한다. 따라서 외부 세계와 철저히 단절하고 오직 자신의 고매한 정신 하나만으로 살아가려는 준열한 윤리 의식을 엿볼 수 있다. 특히 ‘단 하나의’라는 구절은 고독이 지니고 있는 독자성의 가치를 강조한 것이다.3연에서는 고독이 신과도 맞설 수 있는, 인간에게 있어 최대의 가치이면서 무기요, 생명적 본질임을 밝힌다. 그러므로 ‘모든 신들의 거대한 정의 앞’에 선 힘없는 ‘생각하던 사람들’이 ‘굶주려 돌아’올 때면, 화자는 단단하게 말라서 ‘가느다란 창끝’처럼 되어 있는 자신의 고독을 그들에게 기꺼이 나누어주고자 한다. 그렇게 했을 때, 그의 고독은 마침내 4연에서 ‘견고한 칼날’이 되어 ‘결정된 빛의 눈물, / 그 이슬과 사랑에도 녹슬지 않는’상태가 된다고 믿는다. 그로므로 고독은 어떤 힘에도 굴하지 않는 ‘칼날’처럼 굳세고 강한 힘을 지님은 물론, ‘피와 살’과 같이 생명 그 자체에 해당ㅎ나다고 생각한다.5연에서는 ‘뜨거운 햇빛 오랜 시간의 회유’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목관 악기의 가을’과 ‘굳은 열매’는 고독이 관념만이 아닌 서정의 열매 또는 영혼의 양식임을 제시한다.그렇다고 해서 고독이 곧 죽음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껍질을 더 벗길 수 없을 정도로 마른 것이긴 해도 그의 고독에서는 ‘생명의 마지막 남은 맛’을 느끼게 해 주는 것임을 마지막 연에서 말하고 있다. 따라서 그의 고독은 결코 절망적인 것이 아닌, 자신의 삶을 더욱 삶답게 해 주는 ‘쌉쓸한 자양(滋養)’이 되는 것이다. 이것은 고독이 인간에게 있어 최후의 진실이자, 생명의 본질에 해당하는 것이라는 확신이 담겨 있는 표현이다.  [작가소개]김현승(金顯承)남풍(南風), 다형(茶兄) 1913년 광주 출생1934년 평양 숭실전문학교 재학중 시 「쓸쓸한 겨울 올 때 덩산들」이 양주동의 추천으로『동아일보』에 발표됨. 숭실전문학교 문과 졸업1951년 조선대학교 문리대 교수1955년 한국문학협회 중앙위원1960년 숭전대학교 문리대 교수1973년 서울시문화상 수상1975년 사망 시집 : 『김현승시초』(1957), 『옹호자의 노래』(1963), 『견고한 고독』(1968), 『절대 고독』(1970), 『김현승시전집』(1974), 『마지막 지상에서』(1975), 『김현승』(1982), 『김현승전집』(1985), 『김현승의 명시』(1987),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19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