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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27: 11.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 마 27: 14. 기이히 여기심
3. 사형 선고 ( 27: 11-26. 막 15: 2-15. 눅 23: 3-5, 13-25. 요 18: 33-19:16 )
11 예수께서 총독 앞에 섰으매 총독이 물어 이르되,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 말이 옳도다. 하시고 12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고발을 당하되, 아무 대답도 아니하시는지라. 13 이에 빌라도가 이르되, 그들이 너를 쳐서 얼마나 많은 것으로 증언하는지 듣지 못하느냐? 하되, 14 한 마디도 대답하지 아니하시니 총독이 크게 놀라워하더라. 15 명절이 되면 총독이 무리의 청원대로 죄수 한 사람을 놓아 주는 전례가 있더니 16 그 때에 바라바라 하는 유명한 죄수가 있는데 17 그들이 모였을 때에 빌라도가 물어 이르되, 너희는 내가 누구를 너희에게 놓아 주기를 원하느냐? 바라바냐? 그리스도라 하는 예수냐? 하니 18 이는 그가 그들의 시기로 예수를 넘겨 준 줄 앎이더라. 19 총독이 재판석에 앉았을 때에 그의 아내가 사람을 보내어 이르되, 저 옳은 사람에게 아무 상관도 하지 마옵소서. 오늘 꿈에 내가 그 사람으로 인하여 애를 많이 태웠나이다. 하더라. 20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이 무리를 권하여 바라바를 달라 하게 하고, 예수를 죽이자 하게 하였더니 21 총독이 대답하여 이르되, 둘 중의 누구를 너희에게 놓아 주기를 원하느냐? 이르되, 바라바로소이다. 22 빌라도가 이르되, 그러면 그리스도라 하는 예수를 내가 어떻게 하랴? 그들이 다 이르되,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하겠나이다. 23 빌라도가 이르되, 어찜이냐? 무슨 악한 일을 하였느냐? 그들이 더욱 소리 질러 이르되,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하겠나이다. 하는지라. 24 빌라도가 아무 성과도 없이 도리어 민란이 나려는 것을 보고 물을 가져다가 무리 앞에서 손을 씻으며 이르되, 이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나는 무죄하니 너희가 당하라. 25 백성이 다 대답하여 이르되, 그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릴지어다. 하거늘 26 이에 바라바는 그들에게 놓아 주고 예수는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게 넘겨 주니라.
마 27: 11.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 예수께서 총독 앞에 섰으매 총독이 물어 이르되,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 말이 옳도다. 하시고 ( 예수께서 총독 앞에 섰으매 총독이 물어 가로되,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 말이 옳도다. 하시고 )
유대 종교지도자들은 예수님께 ‘유대인의 왕’이라는 정치적 죄목을 씌웠다. 그들은 공회에서 예수께 “네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냐?”고 물었었으나, 이제 그를 “유대인의 왕”으로 고소했다.
그들은 간교한 자들이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총독에게 “네 말이 옳도다”(쉬 레게이스)[네가 말하는도다]라고 대답하셨다.
예수께서는 총독 앞에서 자신이 유대인의 왕이심을 증언하셨다. 구약성경은 왕이신 메시아를 예언하였다.
* 렘 30: 9 - 그들은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며 내가 그들을 위하여 세울 그들의 왕다윗을 섬기리라.
* 겔 37: 24 - 내 종 다윗이 그들의 왕이 되리니 그들 모두에게 한 목자가 있을 것이라. 그들이 내 규례를 준수하고 내 율례를 지켜 행하며
1] 예수께서 총독 앞에 섰으매
이 문구는2절에 연결하면 오히려 자연스럽다.
마태가 자기만의 독특한 기사인 유다의 사망 이야기를 2절과 11절 사이에 삽입시킴으로써 이 같은 시간적 중단이 생겼다.
본문 이하부터 계속해서 '빌라도'라는 이름 대신 '총독'이라는 직책명을 반복해서 사용하였다(15. 19, 21절). 이것은 예수의 사형이 정치적 문제에 따라 이방인의 손에 의해 공식적으로 진행되고 있음을 보여 주고 있다. 이때 빌라도의 심문은 총독 관저(praetorium)에서 진행되었다.
2] 총독이 물어 이르되,
당시 로마의 재판 과정은 먼저 집행관이 원고측의 고소 이유를 듣고 피고에게 몇 마디 질문을 한다.
피고의 자기 변론을 듣는 과정을 필요에 따라 몇 번 거듭하다가 배심원들의 의견을 들은 다음 판결을 내린다. 그렇게 확정된 판결은 일사천리(一瀉千里)로 집행되었다.
유대 지도자들의 예수를 고발한 내용(아마 세금 문제에 관해 언급하신 것을 예수에게 불리하게 적용하는 것과 함께 그가 열심당(the Zealot)과 같이 반역을 꾀하여 유대인의 왕이 되려 한다는 죄목이었을 것이다.
눅 23: 2을 듣고 빌라도는 예수께 본문의 내용으로 질문하였다.
* 눅 23: 2 - 고발하여 이르되, 우리가 이 사람을 보매 우리 백성을 미혹하고 가이사에게 세금 바치는 것을 금하며 자칭 왕 그리스도라 하더이다. 하니
빌라도는 로마 총독으로서 점령군을 책임지고 있었으며 법과 질서의 문제에 민감했다. 만일 빌라도가 예수의 범죄의 정치적 성격을 확신할 수 있다면 예수는 로마의 십자가 처형에 의해서 죽임을 당하여도 무방하다.
그런 점에서 빌라도의 관심은 '예수가 정치적인 권력을 장악하여 로마의 법과 질서에 위협을 가했는가?'이며 따라서 그는 자신의 관점에서 묻는다.
3]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유대의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님께 ‘유대인의 왕’이라는 정치적 죄목을 씌웠다. 그들은 공회에서 예수님께 ‘네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냐?’고 물었었으나, 이제는 그를 ‘유대인의 왕’으로 고소하였다.
그들은 간교한 자들이었다. ‘유대인의 왕’이라는 명칭은 2: 2에서 동방 박사들이 예수께 사용한 것과 일치하는 것으로 역사적으로는 물론 신학적으로도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예수가 ‘유대인의 왕’이라는 사실은 십자가의 명패에도 사용되었다. 이로 말미암아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예수가 약속된 메시아, 곧 유대인의 왕이라는 확신 아래 세워진 기독교 신앙의 서장(序章)이 되었던 것이다.
예수가 유대인의 왕이시라는 문제는 이미 본서 초두에서부터 부각되어 왔던 주제이다. 십자가에 못 박혔던 메시아가 곧 유익하고 정당한 우리의 주이신 것이다(N.A. Dahl, The CrucifiedMessiah, pp. 10-36)
4]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 말이 옳도다(*, 쉬 레게이스). 하시고
예수께서는 총독에게 ‘네 말이 옳도다.’(쉬 레게이스 '네가 말하는 도다')라고 대답하셨다. 직역하면 '네가 말했다'로서 굳이 물을 필요가 없을 정도로 당신이 잘 알고 있지 않느냐는 긍정적 답변이다.
예수께서는 위의 질문에 대해 26: 25, 64 등에서 이미 긍정하신 바 있다. 그러나 예수의 대답은 세상의 구세주로서의 메시아 됨을 긍정한 것이지, 정치적 의미에서의 왕 됨을 긍정한 것은 아니다.
이때 빌라도는 과연 예수가 어떤 의미에서 유대인의 왕이셨는지 정확히 이해하지 못했다. 예수께서 지니신 왕권의 본질에 대해서는 요한복음 18: 34-37에 자세히 정의되어 있다.
* 요 18: 34-37 – 34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는 네가 스스로 하는 말이냐? 다른 사람들이 나에 대하여 네게 한 말이냐? 35 빌라도가 대답하되, 내가 유대인이냐? 네 나라 사람과 대제사장들이 너를 내게 넘겼으니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36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었더라면 내 종들이 싸워 나로유대인들에게 넘겨지지 않게 하였으리라. 이제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37 빌라도가 이르되, 그러면 네가 왕이 아니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 말과 같이 내가 왕이니라. 내가 이를 위하여 태어났으며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나니 곧 진리에 대하여 증언하려 함이로라. 무릇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음성을 듣느니라. 하신대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시며 유대인의 왕이시다. 그 둘은 실상 같은 말이다. 구약성경은 메시아가 왕으로 오실 것을 예언하였다.
* 호 3: 5 - 그 후에 이스라엘 자손이 돌아와서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와 그들의 왕 다윗을 찾고 마지막 날에는 여호와를 경외하므로 여호와와 그의 은총으로 나아가리라.
* 렘 23: 5 -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때가 이르리니 내가 다윗에게 한 의로운 가지를 일으킬 것이라. 그가 왕이 되어 지혜롭게 다스리며 세상에서 정의와 공의를 행할 것이며.
* 렘 30: 9 - 그들은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며 내가 그들을 위하여 세울 그들의 왕 다윗을 섬기리라.
* 겔 37: 24 - 내 종 다윗이 그들의 왕이 되리니 그들 모두에게 한 목자가 있을 것이라. 그들이 내 규례를 준수하고 내 율례를 지켜 행하며
* 슥 9: 9 -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시나니 그는 공의로우시며 구원을 베푸시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시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 새끼니라.
그러므로 신약성경도 예수님을 유대인의 왕으로 증언하였다.
* 마 2: 1-2 – 1 헤롯 왕 때에 예수께서 유대 베들레헴에서 나시매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말하되, 2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냐?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 하니
* 요 1: 49 - 나다나엘이 대답하되, 랍비여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
마 27: 12. 고발을 당하되 -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고발을 당하되, 아무 대답도 아니하시는지라. (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고소를 당하되 아무 대답도 아니하시는지라. )
예수께서는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고발당하셨지만 아무 대답도 안 하셨다.
1]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고발을 당하되,
마가복음에는 고발하는 이들이 대제사장들로만 국한되는데 반해 마태는 '장로들'을 첨가하고 있다.
마태가 '장로들'을 첨가한 것은 백성의 대표들이 예수를 고소한 일에 분명히 관여하였다는 것을 말하기 위함이다. 또한 26: 65-66에서는 산헤드린이 사형 판결을 내린 이유가 예수께서 자신을 하나님 아들 그리스도라고 주장함으로써 하나님을 모독했다는 종교적인 이유 때문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 이유는 유대법에 의해서는 성립되지만 로마법에 의해서는 유죄 판결의 이유가 안 된다. 그런데 본문에서는 그들이 예수를 고발하였다고만 언급되어 있을 뿐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으로 고발했는지는 언급되어 있지 않다.
눅 23: 2에 의하면 고소 내용이 예상했던 대로 정치적인 죄목이었음을 알 수 있다.
* 눅 23: 2 - 고발하여 이르되, 우리가 이 사람을 보매 우리 백성을 미혹하고 가이사에게 세금 바치는 것을 금하며 자칭 왕 그리스도라 하더이다. 하니
2] 아무 대답도 아니하시는지라.
이사야가 예언한 바 있는 '고난받는 종'의 침묵을 연상시켜 준다.
* 사 53: 7 -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예수께서는 앞서 있었던 산헤드린 공회의 심문에서도 침묵을 지키셨다(26: 62-63). 이후 요 19: 9에서도 마지막(세 번째) 침묵을 지키셨다.
* 요 19: 9 - 다시 관정에 들어가서 예수께 말하되, 너는 어디로부터냐? 하되 예수께서 대답하여 주지 아니하시는지라.
저들의 고발 내용은 예수께서 자신을 그리스도라고 대답하신 진실 말고는 모두 거짓 고발이다. 따라서 예수께서는 침묵으로써 저들의 허위에 찬 거짓 고발을 부정하실 수밖에 없었다.
예수께서는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고발을 당하지만 아무 대답도 안 하셨다. 그것들은 대답할 가치가 없는 말들이며 또 자신을 변명한다고 변경될 일이 아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그저 모든 것을 아버지께 의탁하셨을 것이다. 유대 지도자들과 로마 총독과는 이해관계로 결탁되어 있었고 로마 총독은 유대 지도자들의 뜻을 거절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마 27: 13. 너를 쳐서 - 이에 빌라도가 이르되, 그들이 너를 쳐서 얼마나 많은 것으로 증언하는지 듣지 못하느냐? 하되, ( 이에 빌라도가 이르되 저희가 너를 쳐서 얼마나 많은 것으로 증거하는지 듣지 못하느냐? 하되 )
그것은 그들이 이미 자기를 죽이려고 작정하고 빌라도에게 끌고 왔고 그가 자신을 변명한다고 바뀔 일이 아니었음을 아셨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1] 이에 빌라도가 이르되, 그들이 너를 쳐서 얼마나 많은 것으로 증언하는지 듣지 못하느냐? 하되
빌라도가 말하기를, ‘저희가 너를 쳐서 얼마나 많은 것으로 증언하는지 듣지 못하느냐?’고 하였으나, 예수께서는 한 마디도 대답지 않으셨다.
한두 마디의 거짓도 아니고 무수히 많은 고발 앞에서도 예수는 흔들리지 않고 오직 침묵으로 일관하셨다. 이에 빌라도는 예수가 분명 무죄(無罪)함을 직감했고 반감을 사지 않은 상태로 예수를 풀어 주려 했던 것 같다.
그는 예수께 자기변호의 기회를 준 것이다.
마 27: 14. 기이히 여기심 - 한 마디도 대답하지 아니하시니 총독이 크게 놀라워하더라. ( 한마디도 대답지 아니하시니 총독이 심히 기이히 여기더라. )
그러므로 그는 그저 모든 것을 아버지께 의탁하셨을 것이다.
빌라도는 그것을 매우 기이히 여겼다.
1] 한마디도 대답하지 아니하시니
이중부정 구문을 사용하고 있는 헬라어 원문을 직역하면 예수께서는 '대답하지 않으셨는데 단 한마디의 고소에 대해서도 (답변)하지 않으셨다'가 된다.
예수의 침묵은 무언(無言) 중에 자신의 무죄성을 강조하신 동시에 자신이 많은 사람을 위한 대속물로서 기꺼이 고난을 당하겠다는 당신의 거룩한 뜻을 증언하고 있다.
* 마 20: 28 -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2] 총독이 심히 크게 놀라워하더라.
이 말은 가끔 초자연적인 사실 앞에서 경이감을 표시하는 데 사용되었다.
* 마 9: 33 - 귀신이 쫓겨나고 말 못하는 사람이 말하거늘 무리가 놀랍게 여겨 이르되, 이스라엘 가운데서 이런 일을 본 적이 없다. 하되
죽음 앞에서 조금도 흔들림 없이 자신을 구하려는 모든 노력을 포기한 채 '한 마디' 대답 없이 침묵할 수 있는 인간이 어디 있겠는가?
다변(多辯)의 수사학으로 길들여진 빌라도가 그런 일을 일찍이 본 일이 있었겠는가? 그는 사실상 초자연적 존재와 사건 앞에 서 있는 것이며, 따라서 기이히 여기는 감정이 생기지 않을 수 없었다.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해서는 많은 말로 가르치시던 예수께서 자신을 구하기 위해서는 한마디도 말씀하지 않으셨다. 예수께 있어서는 말하는 것도 침묵하는 것도 인류에 대한 당신의 지극한 사랑의 표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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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설교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예수께서는 총독 앞에서 자신이 유대인의 왕이심을 증언하셨다.
(^~^)사랑의 향기는 만리를 가고도 남습니다. 오늘도 건강과 함께
좋은 사람들과 좋은 향기로 좋은 인연 이어가는 날 되시기 기원 합니다.(^~^)
예수께서는 총독 앞에서 자신이 유대인의 왕이심을 증언하셨다.
설교 감사합니다.
예수께서는 총독 앞에서 자신이 유대인의 왕이심을 증언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