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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관계에서 상처를 받고 아파하고 분노하는 아들에게
김정일 신경정신과의원 원장
사랑하는 내 아들아. 어디부터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지만 일단 떠오르는 데로 써볼게.
한평생 살면서 가장 많이 부딪치는 문제는 신뢰와 배신이야. 저 사람을 믿을 수 있는 지가 행복과 불행을 가르는 가장 큰 원인이 되.
그건 사랑도 마찬가지야. 저 여자를 믿을 수 있는 지 없는 지가 삶을 천국으로도 지옥으로 만들 수도 있어. 사람을 믿을지 안 믿을지, 어디까지 믿을지 어떻게 믿을지가 우리 인생의 질을 결정해.
어떤 부자집 자식은 아무도 안 믿어. 조금이라도 친해져 믿을 것 같으면 스스로 매몰차게 돌아서고 외면해. 관계의 발전을 못 견디는 거야. 혹시 혹해서 돈이라도 빼앗길까봐.
그런 사람들을 편집성 인격장애라고 해. 그러나 돈이 있으니 살 수는 있지. 하지만 결혼도 안하고(못하고) 한평생 사람들 경계만 하다가 늙어가지.
어떤 사람은 자기에게 돈을 물려주고 죽은 아버지만을 믿고 그리워하면서 틈만 나면 아버지 산소에가 청소하고 정돈하고 단장해.
그의 자랑은 사람들한테 속지 않는다는 거야. 하지만 관계를 차단하기에 사랑도 없고, 발전도 없이 속절없이 나이만 먹게 되지.
아빠가 정신과에서 환자들을 보면서 가장 불행한 부류는 어렸을 때 부유하고 예쁘고 똑똑했던 사람들이야. 그들은 어릴 때 부자라 대우받고 또 예쁘다고 똑똑하다고 칭찬만 받고 자라는 데 커서 세상에 나가면 만만치가 않아. 무시도 당하고 맞기도 하고 실패도 하니까.
그럼 선택은 두가지야. 험한 세상을 헤쳐가든가, 세상 원망을 하면서 피해 웅크리든가. 피해 웅크릴 때 정신질환이 싹터.
사람은 빛의 자손이라 나아가게 돼있는데 웅크리고 있으면 마음속이 뒤틀리면서 불안, 우울, 망상 등이 튀어나오거든. 그러다 자살하곤 해. 하나님이 자기를 버렸다, 세상이 무례하다 등등의 이유를 대면서.
그래서 인생의 큰 불행 중 하나가 젊었을 때 성공하는 거야. 젊었을 때 성공하면 세상이 만만한 줄 알고 깝치다가 나중에 크게 당하곤 해.
그는 잘나서 성공한 게 아니라 운이 좋아 성공한 것을 깨닫지 못하거든. 승리 등이 그러하지. 자기가 무슨 짓을 해도 팬들이 사랑해줄 거라고 기대하지만 착각이지. 팬들은 금방 잊어. 나이 들어 성공하면 그 성공이 얼마나 어려운 건지, 자기가 얼마나 운이 좋은지, 이 성공이 얼마나 쉽게 날아가 버릴 수 있는 등을 느끼면서 항상 겸허하고 성실한 마음으로 성공을 관리하게 돼. 성공했다고 깝치는 것은 상상도 못하지. 나이가 든다는 것은 그만큼 세상에 시달리면서 버텼다는 뜻이기도 해.
그래서 인생은 참 어려운 거야. 항상 조심해야 하고 불운이 닥쳤을 때 잘 넘길 수 있어야 해. 좋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나이에 맞는 적절한 자극을 받으며 크면 맷집이 생겨 좋은 데 그게 만만치 않아.
아무리 돈이 많고 집안이 좋아도 세상은 만만치가 않거든. 내가 돈이 있는지 사람들은 귀신같이 알아. 내 마음의 허점을 비집고 들어오는 사기꾼들의 감각은 정말 놀라워.
그래서 요즘 사람들을 아예 차단하고 사는 사람들, 젊은이들이 늘고 있어. 세상이 자기 마음 같지 않고 사람들이 너무 거짓말하고 배신하고 잔인하단 거지.
하지만 아예 차단하고 산다고(은둔형 외톨이) 행복한 것은 아니야. 그는 지독한 고독과 외로움 속에서 서서히 미쳐가니까. 이 모든 것을 해결해 주는 것은 아이러니컬하게도 너의 준비나 노력이 아닌 ‘운’이야. 잘못 걸려들어도 운이 좋으면 큰 손실 없이 넘어갈 수 있지만 운이 나쁘면 조그만 실수에도 커다란 대가를 지불하게 되. 하지만 넋놓고 마냥 운에 기대라는 건 아니야.
아빠 경험으로는 운은 내가 충분히 깨달을 때까지 기회는 주지만 그래도 깨닫지 못하면 다시는 찾아오지 않아. 운이 좋을 때, 젊었을 때 시련을 겪으면서 하나하나 깨달아야 해. 그래야 나중에 운이 도와주지 않을 때 자기 판단으로, 이성으로, 감각으로, 직관으로 헤쳐 나갈 수 있어.
아빠는 어릴 때부터 할아버지, 할머니가 사기당하는 것을 많이 봤어. 할아버지는 하도 사기를 많이 당해 나중엔 아예 칩거를 했지. 아빠에게만 열중하면서. 할아버지는 아빠에게 말하곤 했어. 넌 의사가 안 되면 굶어 죽는다. 할아버지는 알았거든. 내가 할아버지와 비슷한 인간이라는 것을. 사람을 잘 믿고 속고 또 속아도 매몰차지 못한 인간이라는 것을. 맞아. 아빠는 의사가 아니면 굶어 죽었을 거야. 사회성도 떨어지고 사기도 많이 당하고 위험한 고비도 숱하게 넘겼으니까. 그나마 의사라도 하니까 지금까지 버텨올 수 있었던 거지.
아빠가 관찰하니까 세상은 이렇게 돌아가. 가진 것이 없는 사람들은 어떻게든 가진 것이 많은 사람들에게 다가가려고 해. 그래야 뭐라도 건질 수 있으니까. 그래서 인간 관계를 많이 맺고 깊게 맺으려고 적극적이야. 가진 것이 없으니 그것 밖에는 할 수 있는 것도 없어. 건달들은 스폰서 잡으려고 구치소에 가기도 한데. 그나마 구치소라도 가야 평등하게 부자들을 만날 수 있으니까.
가진 것이 없는 사람들은 기회를 살리면서, 신용을 쌓으면서 어떻게든 가진 자들 무리에 끼려고 해. 신용만 있으면 가진 자들도 마음을 여니까. 그러나 아이러니컬하게도 신용 또한 돈으로 만들어지곤 해. 가진 것이 없는 사람들은 신용 쌓는 것도 만만치가 않아. 여유가 없으니까 쉽게 돈에 혹하지.
신용이 한 번 깨지면 다시는 기회가 없어. 나중엔 아무리 두들겨도 문을 열어주지 않으니까. 그래서 대부분의 가진 것이 없는 사람들은 부자들의 맛만 보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곤 해. 가진 것이 없는 사람들 중 극히 일부만 신용을 지키면서 가진 것이 많은 사람들 부류로 올라가. ‘이태원 클라쓰’란 드라마에 이런 대사가 나와. 포장마차에서 시작해 국내 최고의 요식업자가 된 사람. 그의 특징은 바로 자기가 한 말은 반드시 지킨다는 거야.
가진 것이 많은 사람들은 어떻게든 자기 것을 지키려고 해. 그래서 사람들이 다가오는 것을 엄격하게 차단해. 마음을 여는 것 같다가도 뚜렷한 이유없이 마음의 문을 닫곤 해. 가진 것이 없는 사람들은 그걸 잘 알아. 해도 해도 안된다는 것을. 그래서 가진 것이 없는 사람들은 재벌들을 이렇게 표현해. 저들은 구름 위, 하늘에 사는 존재들이라고. 땅에 사는 우리들은 아무리 노력해도 만날 수조차 없는 거지.
그래서 가진 것이 없는 사람들은 차선책으로 자기들 끼리 뭉쳐. 자기들끼리는 믿어도 남들은 전혀 안 믿고 남들이 혹여 믿어주길 기대하면서 살살거리지. 그러다 믿기라도 하면 사기치고 돌아서지. 어차피 애당초 믿지를 않았으니까 마음 껏 뒤통수를 치는 거지. 믿은 사람이 잘못인 거지.
그들 끼리끼리는 좁혀지면 좁혀질수록 끈끈해. 그래서 그들은 가족애가 엄청나. 그들은 또 돈에 인색해. 아무도 믿을 사람이 없는 세상에서 유일하게 믿을 만한 것은 돈이야. 그래서 유태인들이 욕을 많이 먹는 거야. 바닥에서부터 기어오른 그들은 자기들끼리만 똘똘 뭉치고 돈에만 집착하니까. 주변에서 보기엔 인간미가 없어 보이지.
이렇게 인간 사회는 끼리끼리가 존재해. 그들 사이의 벽은 너무 철두철미해. 나머지는 모두 약육강식이야.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빈틈을 보이면 잡아먹히지. 안일하게 인간이니까 친구니까 동창이니까 이러저러하니까 통하리라고 생각했다간 착각이야.
통하는 것은 극히 일부고 그 또한 조금만 깊게 들어가면 다 차단당하곤 해. 심지어 가족은 믿어도 며느리, 사위는 안 믿어. 부모는 믿어도 형제는 안 믿어. 심하면 부모도 안 믿어. 돈만 믿어. 이게 인간 사회에서 다양한 부류의 인간들이 생존하는 방식이야..
그래도 관계의 가능성이 있는 것은 젊었을 때야. 젊을 때는 순수하니까 사랑도 우정도 그나만 순수하게 소통하고 유지할 수 있어.
아빠는 우리 아들이 억울하게 당한 일들이 많다는 걸 알아. 하지만 어쩔 수 없어. 그게 세상이니까. 다들 자기 이익만 취하려고 하니까. 아무리 되씹고 이를 갈아도 그런 현실은 변하지 않아. 그건 앞으로도 마찬가지야. 앞으로도 믿는 사람들에게 배신당하는 일은 많을 거야.
세상은 호구를 너무 잘 파악해. 쟤가 호구라고 느껴지면(거절을 하지 않고, 소소하게 이익을 따지지 않으면) 마음 놓고 사기쳐.
아빠는 심지어 은행에게서도 사기를 많이 당했어. 이자 따지지 않고분고분 잘냈더니 나중엔 아빠 몰래 서류를 조작해 이자를 후려지더라고. 아빠에게 통고한 이자보다 훨씬 많이 받기도 하고, 대출 연장이 안되니 고금리 대출을 다시 받아라 등으로 수작을 부리기도 하고. 그래서 금융 감독원에 신고하면 지점장, 부지점장등 직원들이 찾아와 매달려. 무릎 꿇고 빌테니 한번만 용서해 달라, 지금 심장마비 일으킬 것 같다,
이 사실이 알려지면 은행 합병에 문제가 생긴다 등등으로. 이게 세상이야. 호구라고 느껴지면 이익을 챙길 수만 있다면 어떤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파렴치한 짓을 서슴지 않아. 들키면 무조건 살려달라고 매달리고.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너무 움츠러들 필요는 없어. 특히 지금같이 젊은 시절엔. 세상엔 부와 명예를 초월한 좋은 사람이 반드시 있어.
사람은 만난 기간만큼 신뢰가 쌓이니까 젊은 시절의 만남은 소중히 하는 게 좋아. 아빠 경험으로는 좋은 사람 한사람이 수많은 허접한 사람들 이상으로 큰 이득을 줘. 그리고 나쁘고 허접하고 형편없는 사람들 중에도 나중엔 좋게 발전하는 사람도 있어.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 아들이 먼저 좋은 사람이 되야 해. 그래야 좋은 사람을 구분할 수도, 만날 수도 있으니까. 그래서 아빠가 지금까지 살면서 인간 관계의 모토로 하는 것들을 알려줄게.
1. 인연을 소중히 하되 끌려 다니거나 휘둘리지 않는다.
- 인연을 소중히 해야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있어. 어차피 좋은 사람은 만나는 사람들 중에 있을 테니까. 그러나 그 인연을 소중히 하는 마음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있어. 나는 단지 인연을 소중히 할 뿐인데 상대는 자기를 좋아해서, 자기가 훌륭해서, 자기가 탐나서 그런 줄 알고 노골적으로 이용하려고 하지. 즉 나는 너를 좋아하지 않는 데 너는 나를 좋아하니 그러면 내가 시키는 대로 해라. 그러면서 노골적으로 이기적으로 나오지. 자기 이익을 위해 함부로 컨트롤하려고 하고 돈 달라고 하고. 그러면 아빠는 그 인연을 소중히 안 해. 그와는 좋은 인연이 아닌 악연이니까.
2.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 당할 때 마다 뒤통수 맞을 때 마다 나의 죄를 되돌아보고 반성하는 계기를 삼는 거지. 나도 계속 더 좋은 사람으로 성장해야 하니까.
3. 열 명의 친구를 사귀지 못할 지언정 한 명의 적을 만들지 마라.
- 내가 적들에게 분노하는 것 같이 적도 나에게 분노하고 있을 거야. 그 분노가 시간이 지나면서 쌓여 통제하기 힘든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면 나에게 큰 마이너스야. 항상 적을 만들지 않도록 조심할 필요가 있어. 상대에게 노골적으로 적의를 표해 적을 만들기 보다는 이런 저런 이유를 대서 안 만나거나 피하는 게 상책이야.
4. 믿음(신용)은 언어.
-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든가, 허황되든가, 약속을 잘 지키지 않는다든가, 거짓말을 한다든가, 말로만 모든 걸 해결하려고 한다면 즉 말에 일관성이 없다면 가까이 하지 않는 게 좋아. 그 사람이 하는 말이 그 사람이니까.
5. 예의.
- 예의가 없는 사람은 가까이 하지 않는 게 좋아. 그는 자유로운 사람이 아닌 배려가 없는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인 사람이니까.
아들아, 인생은 아무리 힘들더라도 나아가야 해. 그리고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 관계를 떠나서는 살 수 없단다. 세상이 지뢰밭 투성이고, 믿을 만한 인간을 만나기 힘들더라도, 세상과 인간을 피해 웅크려 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아. 웅크릴 때 후회와 회한, 분노, 불안, 우울 등이 밀어닥치거든. 과거의 상처가 다시 깨어나 아플 때에는 그냥 아프면 되. 시간이 지나면 아픔은 어차피 가라앉아.
내가 아프다고, 상대도 아프게 하려고 내가 직접 나설 필요는 없어. 어차피 그런 사람들은 응징 받게 돼있어. 세상이 그들이 활개칠 정도로 만만하지가 않거든. 그래서 법이 있는 거지.
그리고 설사 상대가 응징받지 않는다고 해서 너무 억울해 할 필요는 없어. 그들에 대한 복수는 내가 그들의 폭력과 거짓에 휘둘리는 게 아니라 그들 위에 우뚝서는 거니까. 그들이 나를 부러워할 때 진정한 복수를 하는 거야. 내가 직접 상대를 아프게 한다고 해도 그렇게 분이 풀리고 시원하지도 않아. 그들 역시 생명체고, 살려고 아득바득한 것 뿐이니까.
코로나 바이러스한테 분노한다고 바이러스가 사라지진 않아. 차라리 그들을 잘 파악해 백신이나 치료 약을 만드는 게 현명해. 우리 아들이 인간에게 아프면서 인간에 대한 이해를 깊이 해 스스로 인간 백신이나 인간 치료약을 만들어 사용한다면 앞으로의 인생은 덜 아프고 보다 안전하고 탄탄하게 나아갈 수 있을 거야.
사랑한다. 아들아. 마음껏 날개를 펼치고 세상과 인생을 마음껏 즐기렴.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시간이야. 삶의 시간은 값지게 채울 때 비로소 살맛이란 빛이 난단다.
우리 아들 주변엔 너를 정말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 - 아빠, 엄마, 형, 누나, 동생, 할아버지 등등 - 이 있어.
그들은 언제나 우리 아들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 줄 것이니 어린 시절의 상처는 훌훌 털어버리고 빛나는 세상으로 마음껏 나아가렴. 세상은 정말 새롭고 신기한 것들로 가득차 있단다. 사랑해~
첫댓글 Queen Imperial message carries me back to the old days.
아주 오랜 옛적에 무지 별난 꼬맹이가 있었지요.
이웃마당의 과일은 제 것이라 생각하고, 도랑의 미꾸라지, 갯가 밀려나온 온갖 해산물,(바람 심한 뒷날 멍게, 해삼 피조개, 맛, 미역, 등 이루 다 열거 못함.) 산속 풍부한 먹거리 등 (손만 뻗치면 없는 것이 없었음.) 이 풋내기 시절 무전여행을 떠나 고생도 무지했지만 지금도 그 망나니시절을 그리며 미련 없이 한 세상 떠날 준비를 하지요. (적당한 수준을 넘어 너무 있거나 뺄갱이잡부처럼 과한 욕심을 부리면 세상이 두렵답니다.)
Thank Goodness ! or Heaven be praised !
앞으로 더좋은 날
오래 보셔야죠😍🥰😍💫풍걸쌤^^
언제나 건강한 모습으로
오늘도 행복한 날 되셔요~~~*
감사합니다
오늘에서야 진지하게 읽어 봅니다
좋은글 가져 오심에 감사드립니다
풍걸행님 옛 추억담도 고맙습니다
엉소 후편은 곧 보여 주시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