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정 고을 수선화
허 만 하
고운 살결은 얼음에 데일 수 있다. 수선화 꽃잎은 그것을 알고도 한겨울에 깨끗한 입술을 열고 대정 고을 흙담 자락에서 호젓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버석거리는 흰 눈 두께를 뚫고 밀어올리는 초록색 꽃대 끝에 샛노란 중심과 순백의 꽃잎을 터트리는 맑은 정신의 힘.
아홉 해 유배의 외로움을 혼자서 달래었던 황금의 잔. 눈부신 잔이 담은 정갈한 에스프리를 두 손으로 떠받치는 은백색 꽃잎. 남제주 검은 흙에서 태어난 수선화를 황금은대黃金銀臺라 부르는 아름대운 은유. 하나의 은유를 위하여 시인은 태어난다. 한라산 이마를 번득이는 적설이 덮는 무렵 어리목 눈길 부는 바람 얼어붙는 때 가려 너는 피어나고 우리는 왔다.
한겨울 검은 들판에 피어난 수선화 군락은 멀리 산방산을 업고 스스로 겨울 풍경의 한정된 부분이면서 동시에 전체인 것을 알고 있다. 꽃을 꺾지 못하는 여린 소매에 묻어나는 진한 야생의 향기. 수선화는 몇 만 년 전부터 이곳에 붙었던 매서운 바람을 눈이 시린 빛깔과 몸짓으로 증언하고 있다. 용두머리 앞바다 맑은 코발트색 물빛이 묻어 있는 한겨울 바람 소리.
몇 년 만인가. 모슬포 포구에서 바라보는 산방산 벼랑의 그윽한 눈부심. 한 올 더러운 햇살 묻히지 않는 벼랑의 결. 이곳에도 한때 서늘한 빙하라도 있었던가. 추사의 잔잔한 눈길처럼 맑은 기다림이 배어 있는 높이. 그 정갈한 산자락을 펼치는 들판을 찾아 고요한 노을처럼 번지고 있는 야생의 수선화. 어느덧 우리들 가슴 안에 뿌리내린 싱그런 대정 고을 수선화
시집 <물은 목마름 쪽으로 흐른다>(솔, 2002)
오늘 오후 내내 허만하의 <물은 목마름 쪽으로 흐른다>를 읽었다. 은유와 잠언을 에두르는 감각이 무척 뛰어나다. 시간의 깊이일까, 아니면 사유의 넓이일까. 이 시집에서 유독 눈을 거스르는 시가 있었다. 눈에 화살촉처럼 서늘하게 꽂히는 글귀, 빙하기의 폭풍처럼 스스럼없이 쏟아지는 언어의 매서움; "하나의 은유를 위하여 시인은 태어난다." 시인은 그러했을까, 하나의 은유를 위해 무수히 많은 시간을 기다려야 했으며, 그 기다림이 고통을 감내했을까. 설령 그렇지 않더라도, 사뭇 시인의 시들이 일상 수다한 언어로만 읽혀지지 않았다. 俗에 닿아 있지만, 그 俗을 넘어서는 내면의 힘. 그러므로 시인은 말한다. "고운 살결은 얼음에 데일 수 있다." 얼음에 데이면서도 수선화는 그 맑은 힘을 잃지 않았으며, 우리 가슴 안에 뿌리내렸던 것, 그 맑은 힘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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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권의 <산정묘지>는 고된 수행을 마치고 온 고결한 사람의 목소리로 읽혔다. 정신의 깊이, 혹은 폭풍 같은 예감의 울림. 조정권의 시는 그러한 깊이와 울림을 가지고, 俗과 절연된 '신성한 숲'을 노래했다. 빙하를 지나온 인류의 역사, 알타미라 동굴에 그려진 검은 황소의 투박한 의지가 만나는 시의 결계. 허만하 시인 또한 마찬가지다. 시인은 수선화를 비유하여, 맑은 정신의 힘으로 말한다. "버석거리는 흰 눈 두께를 뚫고 밀어올리는 초록색 꽃대 끝에 샛노란 중심과 순백의 꽃잎을 터트리는 맑은 정신의 힘." 이처럼 시인은 인류의 역사가 걸어온 숨결을 간직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조정권 시인이 밀고온 시의 힘과는 사뭇 다르게, 허만하 시인은 인류의 먼 역사로까지 거슬러오르지 않는다. 오히려, 시인은 지금 우리의 삶과 그 삶의 미래를 수줍게 그려내고 있다. "섬진강 상류 밤나무 숲길 식당 아주머니는 대살이라 했다. 대구에서는 고딩이라고 한다는 내 억양을 못 알아듣겠다는 시늉으로 응답하는 부드러운 미소의 여울."("다슬기" 중에서) 섬징강 강가에서 식당 아주머니와 부드러운 농담을 주고받는 시인의 미소가 손에 잡히는 듯 하다.
첫댓글 나 같은 사람은 어렵지 싶네
허기지요, 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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