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있어 영화는 오락 그 이상입니다. 오늘은 파스칼이 팡세에서 언급한 심심풀이
땅콩을 먹고 사면초과를 돌파할 생각으로 1시간을 버스타고 영화관을 찾았습니다.
선택된 영화 ‘마스터’는 5분 전에 이미 영사기가 돌아가고 있었지만 스토리를 이해
하는데 그리 어렵지 않았습니다. 잘생긴 놈 김 우빈도 나오고 강 동원 오 달수 병 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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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까지 스크린이 아주 환합니다. 가뭄에 돈다발을 보니 눈이 확 돌아갔는데 들키지
않으려고 애를 쓰면서 내가 왜 그래야하지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마지막선택으로
중동이나 갈까했는데 병 헌 이 밑으로 들어가야겠다고 두 번째로 속없는 생각을 했습니다.
'마스터'는 흥미로운 실화 모티브, 세 톱스타의 동반 출연, 100억 규모의 제작비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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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 메이드 오락영화의 필요충분조건을 다 갖췄습니다. 사기범죄영화라 ‘내부자들‘이나
’베테랑‘에 비해 액션의 한계가 아쉬웠지만 희대의 사기꾼 조 희 팔이 해먹은 사기수법의
전말을 공부한 셈 칠 랍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다단계 사기에 대하여 나름 전문가적
소견을 가지고 있습니다. 암 웨이, 뉴 스킨 같은 화장품부터 조 희팔의 ㈜엘 틴 의료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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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 어머니 같은 실버들을 노리는 경품매장까지 다 경험해봤는데 금융 관련한 다단계만
경험해 보지 못했습니다, 작년에 딸아이가 알바해서 벌어놓은 300만원을 투자해도
되느냐고 물어온 적이 있었는데 다행히 제게 먼저 알려 와서 넘어가긴 했습니다.
다단계는 사기가 분명한데 사람들이 넘어가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욕심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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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Test)은 누구나 만날 수 있다는 점에서 중립적입니다. 그냥 재수 옴 붙은 정도로
보면 되는데 당면한 사람이 욕심이 있으면 유혹(temptation)을 받게 되지요.
착한 것과 욕심이 없는 것과는 별개입니다. 반대로 나쁜 놈과 욕심은 꼭 같지 않습니다.
무슨 말이냐면 사기를 당하는 사람이 대체적으로 착한 사람들이라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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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쏭달쏭한 것의 키워드는 착한 사람들은 경험이 없어서, 혹은 바보 같아서,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지 못하고 사기 치는 사람을 믿기 때문에 구렁이 알 같은 돈을 뺏긴다는
그 말입니다. 사기에 넘어가지 않으려면 ‘이 세상에 공짜는 없다‘만 알면 됩니다.
'마스터'의 톤 앤 매너가 지극히 오락지향적인 것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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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 9단' 이병헌의 연기는 전작 '내부자들'의 안상구가 악역임에도 입체적 캐릭터로
연민까지 불러일으켰다면, 진 사장은 무엇이 악랄한지가 제대로 보이지 않는 악인입니다.
배우의 탁월한 개인기는 빛나지만, 캐릭터가 매력적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습니다.
강동원은 한 영화를 끌고 가기엔 아쉬운 연기력을 보여줍니다. 관객이 심정적으로 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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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원하게 되는 정의로운 캐릭터인 데다 본인이 가진 비주얼 적 매력이 상당한데도
영화에서 가장 딱딱하고 생기 없게 여겨졌습니다. 예상외로 돋보이는 배우는 김 우빈
입니다. 캐릭터가 다이내믹하고 연기를 맛깔나게 하기도 했지만 상대적으로 이 병 헌,
강동원의 캐릭터가 전형적이고 평면적으로 설계된 덕분이기도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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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감독의 전작 '감시자들'은 여성 캐릭터를 잘 활용하며 호평을 받았으나,
‘마스터'에 등장한 여성 캐릭터 신 젬마(엄 지원)는 크게 주목받지 못했습니다.
김 엄마(진경)는 드라마 ‘몬스터‘에서 할리우드 스타처럼 섹시하게 나왔는데 시나리오가
단순해서 몸으로 하는 연기를 못 본 것이 아쉽습니다. 플롯이나 편집에서의 균형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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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들의 시너지를 이끌어 내는 조련술 모두 2%쯤 부족하다고 느껴졌습니다.
'마스터'가 토대삼은 실제 사건은 영화적으로 흥미롭게 재 가공될 여지가 많은 것
이었는데 현실 반영을 통한 사회 풍자는 건드리기만 할뿐 폐부를 찌르는 칼날은 역시
아쉽습니다. 얼마전에 영화에서처럼 검찰이 5조 원대 다단계 사기극을 펼친 조 희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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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 재수사 결과, 조 씨가 사망했다는 사실을 공식적으로 밝히고 '공소권 없음'으로
처분을 내렸습니다. 대구지검은 조 씨가 중국으로 밀항한 후 사망했다는 동영상에도
불구하고 각종 의혹이 제기되자 2014년 7월부터 재수사에 착수해 조 씨의 사망 직후
채취한 모발에 대한 유전자검사와 사망 당시 함께 있었던 내연녀와 지인, 가족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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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해 이렇게 결론을 내린 것으로 압니다.
조 씨가 중국으로 밀항한 뒤인 지난 2011년 12월 18일 내연녀 김 아무개씨 등과 중국
산둥성 위해시 소재 호텔에서 저녁식사를 한 후 음주를 하고 호텔방으로 돌아가 급성
심근경색으로 돌연 사했고 지인 등 14명이 응급실 상황과 장례식 및 화장 당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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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에 대해 구체적이고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등 일관되게 진술했다고 검찰이 밝혔습니다.
검찰은 조희팔 등이 2006년 6월부터 2008년 10월까지 약 2년 5개월 동안 피해자 7만여
명을 상대로 5조 715억 원대의 금융다단계 범행을 통해 실제 범죄수익금이 2900억 원대
임을 규명했는데 이 중 720억 원에 대해서는 공탁 및 회수하고 232억 원 상당의 부동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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및 금융계좌에 대해서는 추징보정명령을 통해 확보에 나섰다고 밝혔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조 희팔은 살아있다고 생각합니다. 수사 과정에서 검찰과 경찰공무원 등 5명이 조 희팔
등을 비호하거나 수사 중인 사건을 축소·은폐한 사실을 적발해 구속했다지만, 정관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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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비를 벌인 정황은 드러나지 않았으니 이번에도 몸통은 없습니다.
조 희팔 건도 세월 호처럼 해경이 연루된 모양인데 이거 뭔가 구린 냄새가 솔솔 나네요.
요새 영화도 청문회도 예수님 페러디를 자주 하네요. 그나저나 이 병헌, 김 우빈의 마스터,
1000만을 넘을까나?
2017.1.10.tue.악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