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골문자의 새싹 둔(屯)자는 비둘기가 그 입에 감람나무 새 잎사귀를 물고 왔던 사실을 보여주며, 이는 그 상황을 위에서 내려다 본 모양을 묘사하여 만든 글자이다.
이 글자가 의미하는 바는 대홍수로 모든 생명이 죽은 곳에 생명이 되살아나는 것처럼 예수그리스도의 부활을 상징하는 글자이며, 봄 춘(春, 旾, 萅)자로도 사용된 글자이다.
올해 3월에는 예수님의 다시 사심을 기념하는 부활절이 있다. 이 부활에 대하여 가장 흥미롭게 예표 하는 것이 바로 비둘기가 입에 물고 온 감람나무 새잎사귀이다. 세계고대문명에서 가장 비중 있게 다룬 주제가 바로 대홍수이다. 데이비드 롤 박사는 『문명의 창세기』에서 “학자들은 성서의 노아와 메소포타미아의 대홍수의 주인공이 동일인물이라는데 만장일치로 동의하고 있다”고 했다. 구약 성경에서 대홍수 이후 비둘기가 가져왔던 감람나무 새싹과 갑골문자 안에 있는 새싹 둔(屯)자에 대한 묘사가 얼마나 정확히 일치하는지에 관한 것을 살펴보고자 한다.
갑골문 학자들은 이 새싹 둔(屯)자에 대하여 여러 가지 분분한 의견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과연 학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땅에서 솟아나온 새싹에 관한 것인지, 아니면 비둘기 입에 물고 온 새 잎사귀가 더 타당한 논리를 갖고 있는지에 대하여 정밀 분석을 통해 밝힐 것이다. 필자는 여기서 학자들이 간과했던 새싹 둔(屯)자의 아래에 있는 곧게 뻗은 일(一)자 획의 모습과 모든 싹이 나올 때 V자처럼 나오고 있는 것이 전혀 다르다는 것으로 문제를 제기한다.
A.D 100년 허신(許愼)은 『설문해자』에서 [그림 2]의 ‘싹날 철(屮)’자에 대하여 ‘초목이 처음 생겨났다는 의미이다(艸木初生也)’라고 했는데, 이는 우리가 땅에 씨앗을 심었을 때 그 싹이 나오는 모양과 같다. [그림 3]의 ‘낳을 생’자는 땅(一)에서 새싹(屮)이 돋아난 것으로 역시 V자처럼 굽어져 있다. [그림 2-6]까지 새싹(屮)이나 풀(艸), 나무(木), 벼(禾)까지 모두 곧게 그은 획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새싹 둔(屯)자는 땅에서 나온 싹을 보고 창제 되었다고는 주장하기는 어렵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이 새싹 둔(屯)자가 창제되었을 당시는 언제였을까? 우리는 대홍수 이후임을 짐작해 볼 수가 있다. 허신은 “싹 둔(屯)은 어렵다는 뜻이다(難也). 상형은 풀과 나무가 처음 생겨나서 새싹이 자연스럽게 자리 잡기 어려워한다는 것이다.(象艸木初生 屯然而難)”라고 하였다. 여기에서 허신이 ‘풀과 나무가 처음 생겨났다’고 한 것은 요-순-우(堯舜禹) 시대 하늘까지 넘쳤던 대홍수 이후, 중국 고대 경전인 『서경』에서 이러한 상황을 묘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새싹 둔(屯)자에 대하여 중국학자 고홍진(高鴻縉)은 “초목의 새싹이 뿌리는 나왔으나 아직 딱딱한 껍질을 벗지 못한 형태로서, 그래서 여기에 의탁하여 어렵다라는 뜻이 나왔다(象艸木初生根芽而孚甲未脫之形 故託以寄難之難).”라고 했고, 김경일 교수는 “둔(屯)은 싹이 땅을 뚫고 있는 모습이다. 아직 싹(苗)의 단계는 아니다. 단지 씨앗의 발아를 알 수 있는 상황이다. 땅에서 막 돋아난 싹이다.”라고 했는데, 이는 분명히 새싹과 관련된 글자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라는 것이다.
중국사회과학고고연구소에서 펴낸 『갑골문편』에 보면 새싹 둔(屯)자 25개가 나온다. 그런데 두 글자만 제외하면 무려 23자가 갑골문자의 새싹 둔(屯)자의 곧은 일직선(一)의 모양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갑골문 학자들은 이 새싹 둔(屯)자가 봄 춘(春)자를 대신하여 사용하였다고 한다. 우리가 현재 사용하고 있는 봄 춘(春)자는 변형을 거쳐 싹 둔(屯)자가 사라지고 말았지만 <네이버 한자사전>을 찾아보면 새싹 둔(屯)자가 들어간 봄 춘(春)자를 두 글자(旾, 萅)를 찾아낼 수가 있다. 그렇지만 학자들은 왜 모든 새싹과 가지가 나올 때처럼 자연스러운 V자 형이 아니라 곧은 일(一)자인 것에 대하여는 해석을 내놓은 학자가 없다는 점이다.
갑골문 해석에 있어서 가장 권위를 가진 중국학자 우성오(于省吾)의 『갑골문자고림』에는 아래와 같이 새싹 둔(屯)자가 들어간 봄 춘(春)자의 다양한 10가지 형태를 소개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에 나오는 새싹 둔(屯)자 역시 자연스러운 싹인 V자 형이 아니라 100% 일직선(一)의 모습이라는 것이다. 이는 모두가 아는 바와 같이 일반적으로 새싹은 이런 모습(一)으로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위의 표 [그림 1-4]는 두 개의 나무(木) 또는 네 개의 나무(木) 안에 새싹 둔(屯)자의 모습이고, [그림 5-10]에는 전부 해(日)가 포함되어 있는 가운데, 새싹 둔(屯)자가 있는 모습을 위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대홍수 이후 땅이 마르고 태양(日)이 떠 있는 상황이다. 이에 풀(屮)들과 나무(木)들이 싹이 나 있는 가운데 새싹 둔(屯)자가 있다는 것은 구약과 수메르(메소포타미아)의 대홍수의 전승의 묘사와도 일치한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필자는 이에 대하여 새로운 창견(創見)을 제시하고자 한다. 중국 갑골문학자들도 그 증거를 고대 중국 문헌에서 찾을 수 없을 경우 수메르와 구약의 기록까지를 실례를 들기도 하는데 이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그 이유는 중화중심주의라는 사상 때문에 자기들의 문명보다 앞서는 증거자료를 제시하는 것을 극히 꺼리는 입장이라고 볼 수 있다.
필자가 갑골문자를 연구하면서 성경과 동일한 진리를 발견할 때 가장 큰 보람과 희열을 느낀다. 새싹 둔(屯)자의 위의 둥근 모습은 학자들의 주장처럼 싹이 터져 나오기 전의 봉우리 모습이다. 그리고 일직선 획(一)은 그 새싹을 물고 있는 비둘기의 주둥이의 모습을 일(一)자로 묘사한 것이다. 그런데 이 모습으로 된 형태가 나오려면 갑골문의 상형문자 제작 방법으로 볼 때 비둘기가 새 잎사귀를 물고 있는 것을 옆에서 묘사한다면 절대로 나올 수 없는 모습이다. 갑골문자의 새싹 둔( )자의 형태가 나오려면 두 가지의 조건을 충족해야만 한다. 첫째는 비둘기가 입에 새싹을 물고 옆으로 날고 있는 것에 대해 새싹과 그 입만 간략히 캡처해야 한다는 것이고, 둘째는 비둘기가 입에 새싹을 물고 앉아 있는 것을 위에서 보고 그 새싹과 일(一)자 형인 비둘기의 입 모양을 묘사할 때만이 새싹 둔(屯)자와 100% 일치하는 결과물을 얻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갑골문자에서 이러한 실질적인 예(例)는 다닐 행(行)자에서도 적용이 된다. 행( )자는 사거리를 묘사한 것으로서 학자들은 위에서 내려다 본 네거리의 모습이라고 한다. 메소포타미아의 대홍수의 주인공 우트나피쉬팀의 기록을 보면 구약과 마찬가지로 비둘기를 내 보냈는데, 쉴 곳을 찾지 못해서 돌아왔다는 내용이 나온다. 그런데 다시 비둘기를 내 보냈다는 내용과 그 입에 새 잎사귀를 물고 왔다는 내용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구약의 기록을 보자. 노아는 물이 얼마나 감했는가를 살펴보기 위해서 비둘기를 내보내고 다시 돌아온 비둘기를 7일이 지나서 내 보낸다. 그런데 이번에는 비둘기가 저녁이 되어 그에게 돌아왔는데, 그 입에 감람나무 새 잎사귀가 물려 있었다(창 8:10-11). 그런데 첫 번째 내 보냈을 때 돌아오는 비둘기를 노아가 손을 내밀어 방주 안으로 들였다고 했다(8:9). 그렇다면 두 번째도 비둘기는 감람나무 새 잎사귀를 입에 물고 노아의 손에 앉았을 것이다. 이 모습을 포착하여 위에서 내려다 본 것으로 비둘기 입(一)에 새로운 봉우리 모습을 한 잎사귀를 표현한 것이다.
그렇다면 왜 비둘기가 입에 물고 온 감람나무 새 잎사귀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상징할 수 있는 것인가? 세계적인 종교학자인 미르체아 엘리아데는 『이미지와 상징』에서 ‘세계 모든 고대문명에서도 파편의 계시가 존재한다. 그렇지만 세계 모든 고대의 이미지와 상징을 알기 위해서는 오직 온전한 계시로 주어진 구약 성경의 계시에서만 그 의미를 찾을 수가 있다’고 했다.
원리는 이렇다. 냉혹하리만큼 추웠던 겨울이 지나고 많은 나무들에서는 꽃망울과 새싹 봉우리가 올라온다. 그렇지만 맨 처음 새싹을 터트리고, 첫 꽃망울을 터트리는 첫 번째 싹과 첫 꽃망울이 가장 중요하다. 왜냐하면 첫 번째 싹이 트고 난 다음에는 연속해서 엄청나게 많은 생명의 꽃들이 만발하게 될 것이라는 메시지를 던져주기 때문이다. 이러한 실례는 마태복음에도 존재하고 있다는 점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고, 십자가로 승리하신 그날(골 2:15)에 마태복음만 특이한 내용이 기록되고 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운명하실 때, 땅이 진동하더니 바위가 터지고 무덤들이 열리며 자던 성도들의 몸이 많이 부활에 참여했다는 것이다(마 27:50-53).
우리는 구약에서 ‘싹(屯)’과 관련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소망에 대한 예표를 발견하게 된다. ‘아론의 싹난 지팡이’의 새싹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상징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왜냐하면 이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론의 자손들을 원망함으로 다 죽어가고 있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들로 원망을 그치고 죽지 않고 살게 하기 위한 목적으로 주셨기 때문이다(민 17:5-10).
마찬가지로 대홍수로 노아의 가족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은 다 흙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그런데 이 사망을 깨트리고 생명의 부활을 선포하는 것이 바로 비둘기가 입에 물고 온 감람나무 새 잎사귀였던 것이다. 죽음이 왕 노릇하던 심판 받은 세상에 새 감람나무 잎사귀를 통해서 이 땅은 부활의 생명들로 가득 차게 될 징표였던 것이다. 이사야 11장 10절에 “그날에 이새의 뿌리에서 한 싹이 나서 만민의 기치로 설 것이요. 열방이 그에게로 돌아오리니 그가 거한 곳이 영화로우리라.”고 했는데, ‘이새의 뿌리에서 나온 한 싹’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죄와 사망을 영원히 깨트리시고 영원한 부활의 생명을 주실 분이시기 때문이다.
중국 고대 경전인 『주역 · 계사하』에서 ‘주역이란 책을 기록한 목적은 시초를 찾아서 종말을 살피는 것이 그 본질이다’(易之爲書也 原始要終 以爲質也)라고 했으며, “둔(屯)이라는 것은 가득 차 있다는 것이다. 둔자는 만물이 처음 나오는 것이다.”(屯者盈也 屯者物之始生也)라고 했다. 이는 새싹 둔(屯)자에 대하여 생명의 기운이 가득 차 있는 것이며, 만물이 처음 나온다고 한 것은 창세기 8장의 묘사와 같다는 점이다.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는 그날에 우리의 썩을 몸이 썩지 아니할 영원한 몸을 입어 영원한 영광에 참여하게 될 것이며(고전 15:51-53),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형체(창조자 그리스도)와 똑같게 변화시키실 것에 대한 약속을 받은 영광스러운 존재들이다(빌 3:21). 이러므로 우리는 ‘부활 장’에서 다음과 같은 부르심으로 초청을 받는다.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아니할 줄을 앎이라.”(고전 15:58)
송태정 박사(갑골문 연구 교육학 박사), 박사논문-갑골문자의 신학적 해석 연구, 성경적 갑골문자해석연구소 대표, 순복음해남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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