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26장 17절 ~ 24절
그때 그 땅의 장로들 중 몇이 일어나 백성의 온 회중에게 고하여 말하기를 17)
Then rose up certain of the elders of the land, and spake to all the assembly of the people saying. 17)
"유다의 히스키야왕의 날들에 모라셋인 미카가 예언하였는데 유다의 모든 백성에게 고하여 말하기를 '만군의 주가 이같이 말하노라. 시온은 밭처럼 갈아 엎어지고 예루살렘은 퇴적더미가 되며 그 집의 산은 산림의 높은 곳들같이 되리라.' 하였으나 18)
Micah the Morasathite prophesied in the days of Hezekiah king of the Judah, and spake to all the people of Judah, saying, Thus saith the LORD of hosts; Zion shall be plowed like a field, and Jerusalem shall become heaps, and the mountain of the house as the high places of a forest. 18)
유다의 히스키야왕과 온 유다가 그를 사형에 처했더냐? 히스키야가 주를 두려워하여 주께 간구하니 주께서 그들에게 선언하셨던 재앙에서 스스로 돌이키지 아니하셨더냐? 그러므로 우리가 우리의 생명을 해치는 큰 재앙을 초래할 수 있으리라. 19)
Did Hezekiah king of Judah and all Judah put him at all to death? did he not fear the LORD, and besought the LORD, and the LORD repented him of the evil which he had prounced against them? Thus might we procure great evil against our souls. 19)
procure ① (옛투) 매춘을 알선하다(pimp) ② …을 (주의·노력 등으로) 손에 넣다 ③ (옛투) 주선하다 ④ (미·영 고어) …을 (특히 부정 수단으로) 가져오다
besought는 beseech의 과거·과거 분사형, beseech 1.호소하다 2.간청하다 3.청하다
자신들을 거스른다고 예레미야를 죽인다고 하는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의 주장은 율법적으로도 근거가 없고, 위 말씀에 나타나는 대로 역사적으로 봐도 그 근거가 없는 것입니다. 결국 죽이겠다는 선언은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의 내면의 인간적인 살인 충동임을 알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모습은 듣는 자에 따라서 그 말이 다르게 들린다는 것이 증명되는 것입니다. 같은 내용의 조언이 히스키야왕에게는 충언으로 들리지만 제사장과 선지자들에게는 죽일만큼의 모욕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가장 심각한 문제는 이들이 하나님의 제사장과 선지자임을 내세워 자신의 죄의 욕구를 하나님의 뜻으로 위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모습으로 우리가 알수 있는 것은 직분자들이 하나님을 내세워 주장을 하는 것에는 그들의 죄의 욕정이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자신의 죄의 욕망으로 누구를 죽이고자 하거나, 고소하는 것은 문제를 발견하기 쉬우나 하나님을 내세워 자신의 욕구를 실현함은 그 죄가 크고 무겁지만 잘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네가 바르게 행하면 받아들여지지 않겠느냐? 네가 바르게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 앞에 엎드리느니라. 죄의 욕망이 네게 있으니,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하시니라.
창세기 4장 7절
위 말씀은 카인이 아벨을 죽이기 전에 하나님께서 카인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이런 말씀을 하신 이유는 카인이 자신의 문제를 바로 보도록 하신 말씀이며, 카인이 자신이 아벨을 죽이고자 하는 마음이 어디서 기인한지를 보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는 정확하게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의 마음과 같다고 느껴집니다.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의 죄(살인)의 욕망이 그들에게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저를 고소한 사람들도 저를 고소하면서 하나님의 일로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행위는 그들의 개인적인 앙갚음하려는 죄의 욕구일뿐 하나님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또 주의 이름으로 예언했던 한 사람이 있었으니, 키랏여야림의 스마야의 아들 우리야로, 그가 예레미야의 모든 말대로 이 성읍과 이 땅을 거슬러 예언하였더니, 20)
And there was also a man that prophesied in the name of the LORD, Urijah the son of Shemaiah of Kirjath-jearim, who prophesied against this city and against this land according to all the words of Jeremiah: 20)
여호야킴왕이 그의 모든 용사들과 모든 고관들과 함께 그의 말들을 듣고 왕이 그를 죽이고자 하였으나 우리야가 그 말을 듣고 두려워 도망하여 이집트로 갔느니라. 21)
And when Jehoiakim the king, with all his mighty men, and all the princes, heard his words, the king sought to put him to death: but when Urijah heard it, he was afraid, and fled, and went into Egypt; 21)
여호야킴왕이 이집트로 사람들을 보냈으니, 즉 악볼의 아들 엘라단과 그와 함께 몇을 이집트로 보냈더니 22)
And Jehoiakim the king sent men into Egypt, namely, Elnathan the son of Achbor, and certain men with him into Egypt. 22)
namely ① 즉 ② 환언하면(that is to say, in other words)
그들이 우리야를 이집트에서 끌어내어 여호야킴왕에게로 데려오니 왕이 칼로 그를 죽여 그의 시체를 평민의 무덤에 던졌느니라." 하니라. 23)
And they fetched forth Urijah out of Egypt, and brought him into Jehoiakim the king; who slew him with the sword, and cast his dead body into the graves of the common people. 23)
미카에 이어 우리야라는 대언자가 권력자를 거스르는 예언을 하였습니다. 여기서 우리야는 예레미야와는 다르고, 엘리야와는 같은 선택을 합니다. 죽이려는 권력자를 두려워하여 도망하여 피신한 것입니다.
결론으로 말하자면 엘리야와 예레미야는 살고, 우리야는 죽습니다. 이 차이가 어떤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대언자들도 두려움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세벨을 두려워하며 도망친 엘리야는 살았는데 똑같이 여호야킴을 두려워하여 피한 우리야는 여호야킴의 칼에 죽어 평민들의 무덤에 던져집니다.
위 말씀은 여호야킴왕이 직접 우리야를 칼로 죽였다고 느껴지게 읽힙니다. 이는 이러한 살인이 법적인 것이 아니라 감정적인 것이며, 카인이 아벨을 죽인 것처럼 여호야킴왕이 자신의 죄의 욕망에 굴복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야와 엘리야 그리고 예레미야의 모습으로 또 한가지 알수 있는 것은 우리의 목숨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예레미야가 권력자를 거스르는 예언을 하는 것자체가 목숨보다 귀중한 것을 지키기 위함이었던 것입니다. 그것은 믿음이라는 표현보다는 믿음을 통한 순종이라고 느껴집니다. 그러므로 우리야가 죽임을 당한 것도 그다지 중요한 것은 아닌 것입니다. 순종이 죽음보다 더 큰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이를 자신의 삶에 적용할 수 있는 것이 살아있는 믿음인 것입니다.
그리하여 사판의 아들 아히캄의 손이 예레미야와 함께하여 그들로 예레미야를 백성의 손에 내어주어 죽이지 못하게 하니라. 24)
Nevertheless the hand of Ahikam the son of Shaphan was with Jeremiah, that they should not give him into the hand of the people to put him to death. 24)
예레미야가 당시의 권력자들에게 대항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다가 죽음의 위험을 받게 됩니다.
이러한 모습은 지금의 우리에게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즉 백신의 진실에 대해서 말하는 사람들을 위협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 정부가 백신의 진실을 말하는 사람들에게 화를 낼 이유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지금의 권력자는 이 나라의 정부나 대통령이 아니라 백신회사뒤에 그 누군가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의 우리를 위협하고 있는 권력자는 곧 유트부와 백신회사를 통하여 우리를 칼로 찌르라고 명령을 내리는 자인 것입니다.
우리가 그 권력자를 거스를때 그 권력자는 자신의 죄의 욕망에 굴복하여 사람들을 죽이려고 하는 것입니다. 죄의 욕망에 타협함은 곧 하나님을 외면함이고, 동시에 사탄을 경배함이 됩니다.
다만 당시에는 칼을 들어 자기에거 거스르는 자를 찔러죽였다면 지금은 고소를 하거나 법을 만들어 처벌하는 방법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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