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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27: 15. 전례 - 마 27: 19. 상관하지 마소서.
마 27: 15. 전례 - 명절이 되면 총독이 무리의 청원대로 죄수 한 사람을 놓아 주는 전례가 있더니 ( 명절을 당하면 총독이 무리의 소원대로 죄수 하나를 놓아 주는 전례가 있더니 )
명절이 되면 총독이 무리의 소원대로 죄수 하나를 놓아주는 전례(前例)가 있었다.
1] 명절이 되면 총독이 무리의 청원대로 죄수 한 사람을 놓아 주는 전례가 있더니
명절에 죄수를 풀어 주는 전례가 역사적으로 언제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견해가 있다.
Ⓐ 유대인을 무마하기 위한 로마의 식민지 정책의 일환으로 행해졌다(Grotius).
Ⓑ 로마와 헬라에서는 황제의 생일이나 명절에 죄수들을 석방했던 관습이 있었는데, 공적 축일(祝日)에 로마 감옥에 수감 된 죄수를 석방한 것은 빌라도 이전 시대부터의 관습이었던 것 같다(Braune).
Ⓒ 유대인의 풍속에 관한 고대 문서(M, Pesahim)에는 '그들은 그들이 감옥에서 석방해 주고자 하는 자를 대신하여 유월절 양을 죽일 수 있었다'라는 내용이 있어 유대 지방에서 매년 유월절에 대속사가 이루어졌음을 암시해 주고 있다.
Ⓓ 앞의 설명과는 반대되는 것으로, 복음서 연구가 브랜스콤(B.H. Breanscomb)은 그 전례에 대해 '여기 설명된 것과 같은 그런 전례에 대해서는 전혀 알려진 것이 없다.
유월절 절기에 로마의 총독들이 정규적으로 죄수 한 명을 석방했으며, 또 그 죄가 어떠하든지 간에 무리들이 개인을 지명했다는 관례는 전혀 아무런 확증이 없을 뿐만 아니라 팔레스타인을 다스리던 로마 통치의 정신과 방법에 전혀 모순된다.'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로마법에는 로마 제국의 행정관은 아직 정죄되지 않은 죄인을 사면해 주거나 이미 정죄된 죄인을 용서해 줄 권리가 있었다는 점에서 본문의 풍속의 기원이 모호하다 하더라도, 최소한 로마의 지배 아래 놓여 있던 유대 지역에서 실행되고 있었던 것만은 사실이다(Moule, Idiom Book, p 59).
마 27: 16. 바라바 - 그 때에 바라바라 하는 유명한 죄수가 있는데 ( 그 때에 바라바라 하는 유명한 죄수가 있는데 )
그때 바라바라 하는 유명한 죄수가 있었다.
마가복음은 그가 민란을 꾸미고 민란에 살인한 자였다고 증언한다.
* 막 15: 7 - 민란을 꾸미고 그 민란중에 살인하고 체포된 자 중에 바라바라 하는 자가 있는지라.
1] 그 때에 바라바라 하는 유명한 죄수가 있는데
하위 그룹에 속하는 헬라어 사본들(아도스사본. 8-9세기경)과 시리아역, 그리고 고대 교부들의 문헌들에서는 '바라바'를 '예수 바라바(Jesus Barabbas)라고 기술하고 있다.
이러한 사실에 근거하여 본문에 '예수'라는 이름이 삭제된 것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즉 시간이 지나면서 예수에 대한 존경심이 커지고 '예수'라는 이름이 신성시되면서 '예수 바라바'에서 '예수'라는 명칭이 생략되었을 것이라 주장한다.
그와 더불어 이 사실을 더욱 확고히 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견해를 덧붙인다.
즉 마태는 17절에서 바라바와 예수를 구분하기 위해 '그리스도라 하는 예수'라는 문구로 '예수 바라바'와 '그리스도 예수'를 구분하고 있다. 이 같은 주장은 오늘날 크게 지지받지 못하고 있다.
'바라바'(Barabbas)라는 말의 의미는 '바르 아바'(bar Abba) 곧 '아바의 아들', '아버지의 아들'이라는 뜻이다. 이에 대해 랍비의 아들'(Ewald), '마귀의 아들'이라는 뜻으로 적그리스도를 뜻한다고도 한다(Theophylact).
이와는 반대로 이것이 하나님의 아들에 관련되고, 바로 그것에서 하나님의 거룩한 섭리의 일면을 발견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Olshausen). 이러한 견해들 중에 어느 것을 단정적으로 주장하기란 사실 힘들다.
'유명한'(*, 에피세모스)이란 '탁월한', '눈에 띄는'이란 뜻이지만 여기서는 특히 '악명(惡名)높은'이란 의미로 이해하는 것이 좋다. 바라바는 평범한 죄수는 아니었다.
* 막 15: 7 - 민란을 꾸미고 그 민란중에 살인하고 체포된 자 중에 바라바라 하는 자가 있는지라.
* 눅 23: 19 – 이 바라바는 성중에서 일어난 민란과 살인으로 말미암아 옥에 갇힌 자러라.
* 요 18: 40 - 그들이 또 소리 질러 이르되, 이 사람이 아니라 바라바라 하니 바라바는 강도였더라.
그는 단순한 도둑이나 강도가 아니라 적어도 사형에 처해질 정도인 것으로 보아 반란 음모자였음이 분명하다. 사울 당시 유대 전역에도 게릴라에 의한 반란과 유혈사태가 빈번하였었다(Jos. Antiq. XVIII, 3-10, 60-62.).
* 눅 13: 1 - 그 때 마침 두어 사람이 와서 빌라도가 어떤 갈릴리 사람들의 피를 그들의 제물에 섞은 일로 예수께 아뢰니
바라바도 그러한 유혈사태에 관련되었을 것이며, 거기에다가 반도덕적 악행도 저질렀던 것 같다. 그렇다면 유대 백성에게 있어서 그는 악명 높은 강도로서가 아니라 어떤 면에서 '영웅'적 행동을 한 자로 기억될지도 모를 일이다.
마 27: 17. 누구를 놓으랴? - 그들이 모였을 때에 빌라도가 물어 이르되, 너희는 내가 누구를 너희에게 놓아 주기를 원하느냐? 바라바냐? 그리스도라 하는 예수냐? 하니 ( 저희가 모였을 때에 빌라도가 물어 가로되, 너희는 내가 누구를 너희에게 놓아 주기를 원하느냐? 바라바냐? 그리스도라 하는 예수냐? 하니 )
그들이 모였을 때, 빌라도는 그들에게 예수와 죄수 바라바를 나란히 석방 후보자로 제시하였다.
1] 그들이 모였을 때에 빌라도가 물어 이르되, 너희는 내가 누구를 너희에게 놓아 주기를 원하느냐?
마가복음과는 달리 전례대로 해주기를 구하는 무리의 요구가 본문에는 빠져 있다. 마가복음에서는 빌라도가 '너희는 내가 유대인의 왕을 너희에게 놓아주기를 원하느냐'(막 15: 9)고 묻고 있는데 비해 본문에서는 빌라도가 백성들에게 요구하기를 '바라바'와 '그리스도라 하는 예수'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라고 한다.
그는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 종교적 열성이 강한 유대 백성이라면 적어도 선한 선생으로 이해되었던 예수를 선택할 줄 알았을 것이다.
그는 마치 자기가 무모한 살인의 책임을 회피할 수 있는 최후의 기회를 맞은 양 이렇게 다급히 백성들에게 물었으며, 이 방법으로 산헤드린의 악한 계책(計策)을 깨뜨리려 하였던 것 같다.
빌라도가 선택을 요구한 '저희'는 예수를 고소한 무리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유월절 특사로 사면될 죄인을 선택함에 있어서 빌라도가 의견을 물었던 무리다.
* 막 15: 8 - 무리가 나아가서 전례대로 하여 주기를 요구한대
2] 바라바냐? 그리스도라 하는 예수냐? 하니
이와 함께 생각할 수 있는 것은 확실치는 않지만 아직 예수 그리스도의 체포와 재판에 대하여 잘 알지 못한 상태에 있었던 군중들은 혁명 투사였던 '예수 바라바'의 이름을 외치면서(8, 9세경의 아도스 사본이 신빙성이 있다면) 그의 사면을 요구하였을 것이다.
이때 빌라도는 이 외침을 예수 그리스도를 지지하는 함성으로 잘못 알아듣고(왜냐하면 빌라도는 내심으로 바라바 보다는 예수를 석방해 주고 싶었기 때문에) '너희는 내가 누구를 너희에게 놓아 주기를 원하느냐? 바라바라 하는 예수냐? 아니면 그리스도라 하는 예수냐?'라고 군중들에게 질문했던 것으로 보기도 한다. (Lane, Mark P. 554).
그러나 이것은 분명 하나의 가정일 뿐이다. 본문의 '그리스도라 하는 예수'란 표현은 예수의 신적 존재를 무시하고 경시하여 부르는 말임이 분명하다.
마 27: 18. 그들의 시기로 - 이는 그가 그들의 시기로 예수를 넘겨준 줄 앎이더라. ( 이는 저가 그들의 시기로 예수를 넘겨준 줄 앎이러라. )
그는 그들이 시기로 예수를 넘겨준 줄을 알았고 예수가 사형 당할 만한 죄가 없었음을 알았다.
시기는 욕심에서 나오고 미움과 살인을 만드는 무서운 악이다.
1] 이는 그가 그들의 시기로 예수를 넘겨준 줄 앎이더라.
'앎이러라'(*, 에데이)는 말은 제 2과거완료 시상으로서 이미 충분히 납득한 상태에 있었음을 분명히 보여 주고 있다.
빌라도는 유대 지도자들의 고소에 결함이 있음과 그들의 불같은 행동의 이면에는 개인적인 시기와 질투가 스며들어 있음을 모두 알아차리고 있었다.
유대 지도자들의 '시기'는 21: 15-16. 21: 45에서도 이미 보인바 예수의 가르치는 권위나 능력과 언행이 저들의 위선과 허위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냈을 뿐 아니라 저들의 종교, 사회상의 고유한 권위를 상당히 침범하였기 때문에 그들의 마음에 생겨났을 것이다.
빌라도는 이러한 유대 지도자들의 저의(底意)를 이해했다. 그러나 이것이 문제였다. 사람이 알지 못한 채 죄를 짓는다면 그 실수 한 가지만 책망받으면 그만일 것이다.
그런데 알면서도 짐짓 죄를 지었을 때는 죄를 지었다는 것뿐 아니라 자신의 양심을 거슬렀다는 사실까지도 아울러 책망받아야 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결과적으로 예수를 십자가형에 처한 빌라도의 잘못은 결단코 용서받을 수 없다.
시기는 무서운 죄악이다. 시기는 미움에서 나오고 살인을 만든다. 그러므로 요한일서 3: 15은,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고 말한다.
마 27: 19. 상관하지 마소서 - 총독이 재판석에 앉았을 때에 그의 아내가 사람을 보내어 이르되, 저 옳은 사람에게 아무 상관도 하지 마옵소서. 오늘 꿈에 내가 그 사람으로 인하여 애를 많이 태웠나이다. 하더라. ( 총독이 재판 자리에 앉았을 때에 그 아내가 사람을 보내어 가로되, 저 옳은 사람에게 아무 상관도 하지 마옵소서. 오늘 꿈에 내가 그 사람을 인하여 애를 많이 썼나이다. 하더라. )
총독의 아내도 예수님을‘저 옳은 사람’이라고 부르며 그를 상관치 말라고 말했다.
1] 총독이 재판석에 앉았을 때에
요 19: 13에서처럼 마태는 빌라도가 총독 관저 앞에 마련된 돌로 만든 단상, 곧 재판석에 앉았다고 기록한다.
그가 이 자리에 앉은 것은 유대인들의 선택(17절)을 귀담아 듣고 그에 준한 판결을 내리기 위해서일 것이다.
빌라도의 태도는 그의 제도적 권위와 그의 실제적 무능력 사이의 대조를 심화시킨다.
* 요 19: 13 - 빌라도가 이 말을 듣고 예수를 끌고 나가서 돌을 깐 뜰(히브리 말로 가바다)에 있는 재판석에 앉아 있더라.
2] 그 아내가 사람을 보내어 이르되,
빌라도의 아내에 관한 이야기는 마태복음에서만 나온다.
전설에 의하면 빌라도 아내의 이름은 '프로클라 클라우디아'(Procula Claudia)였다. 유대교에 귀의했을 뿐 아니라(외경 니고데모 복음서 2장), 그리스와 에티오피아 교회에서는 그녀를 성자(聖者)의 한 사람으로 숭배하기까지 했다고 전한다.
A. D. 21년에 로마 상원 의회에는 어떤 지방 행정관도 그의 아내를 부임지까지 동반할 수 없다는 법이 제안 되었었다. (Tarcitus, Annals III.33-35). 그러나 그 제안은 아직 입법화되지 않았기 때문에 빌라도의 부인이 그와 함께 총독 관저에 머물러 있었던 것 같다.
3] 저 옳은 사람(*, 토 디카이오 에케이노)에게 아무 상관도 하지 마옵소서.
여기서 '옳다'는 말은 '전혀 무흠하다'(innocent)라는 뜻이다.
결국 이 말은 거룩한 예언자나 메시아에게만 국한되어 표현되는 유대인의 관용어이다. 따라서 그 아내는 예수의 절대 무죄성과 함께 예수의 신적 속성을 어느 정도 이해한 상태였을 것이다.
이것은 그녀가 꿈에서 얻어낸 신령한 지식이었다.
4] 오늘 꿈에 내가 그 사람으로 인하여 애를 많이 태웠나이다. 하더라.
그녀는 초자연적인 한 꿈 때문에 정신적으로 뿐 아니라 육체적로도 상당히 고통을 당했다고 실토했다.
빌라도의 아내의 '꿈' 이야기는 예수의 탄생 이야기를 상기시킨다. (1, 2장). 꿈에 대한 강조는 마태의 특징 가운데 하나로서 마태에게 있어서는 '꿈'이 하나님의 계시의 수단으로 이해되고 있다. (1: 20. 2: 12-13, 19, 22)
그녀의 꿈이 신적 계시로 이해되든 아니면 단순한 예수를 살해하려는 음모를 염려한 심리적 갈등에 의한 마음의 표상이었든지 간에 마태가 이 이야기를 통하여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예수의 죽음에 대한 유대 지도자들의 돌이킬 수 없는 책임과 예수의 무죄를 밝히고자 하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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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설교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빌라도는 그들에게 예수와 죄수 바라바를 나란히 석방 후보자로 제시하였다.
💖생각나고, 보고 싶고, 그리워하는 사람이 있다는 건, 행복한 사람입니다.
소중한 오늘 하루도 웃음과 건강이 넘치는 좋은 하루 되세요💖
빌라도는 그들에게 예수와 죄수 바라바를 나란히 석방 후보자로 제시하였다.
설교 감사합니다.
빌라도는 그들에게 예수와 죄수 바라바를 나란히 석방 후보자로 제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