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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치부심(切齒腐心)
이를 갈고 마음을 썩이다는 뜻으로, 대단히 분하게 여기고 마음을 썩임 또는 비장한 각오로 노력함을 말한다.
切 : 끊을 절(刀/2)
齒 : 이 치(齒/0)
腐 : 썩을 부(肉/8)
心 : 마음 심(心/0)
(유의어)
절치액완(切齒扼腕)
와신상담(臥薪嘗膽)
회계지치(會稽之恥)
출전 : 사기(史記) 자객열전(刺客列傳) 형가편(荊軻篇)
잠을 잘 때 코를 고는 것과 같이 이를 가는 뽀드득 가는 소리는 거슬린다. 그렇지만 자신도 모르게 가는 것 말고 일부러 아래 윗니를 힘주어 부딪칠 때는 서슬이 퍼렇다.
자식은 오복이 아니라도 이는 오복에 든다고 하는데 소중한 이를 간다면 필시 정상이 아니다. 거기에다 마음까지 썩인다면 얼마나 화가 났는지 짐작할 만하다.
이를 갈고(切齒) 속을 썩인다(腐心)는 말은 몹시 화가 나거나 분을 참지 못하여 독한 마음을 품고 벼른다는 각오가 드러난다.
눈앞에 닥친 난관을 헤쳐 나가려고 비상한 결심을 할 때 이를 악문다는 표현도 있다. 어금니를 악물고 이를 가는 교아절치(咬牙切齒)도 같다.
사마천(司馬遷)은 사기(史記)에 자객(刺客) 열전을 두고 춘추전국시대(春秋戰國時代)때 활약한 다섯 명의 자객을 다루며 어지러운 세상에서 제 한 몸을 던졌던 협객들의 의기를 높이 평가했다.
이 중에 진(秦)나라의 시황제(始皇帝)를 암살하려던 형가(荊軻)의 이야기는 흥미진진하다. 형가는 원래 위(衛)나라 사람이었지만 진에 의해 망하자 연(燕)나라로 가서 살았다.
독서와 칼 쓰기를 좋아했던 그는 태자 단(丹)에 의해 발탁되어 상경의 존대를 받았다. 태자는 진나라에 볼모로 가 있다가 도망쳐 온 적이 있어 진시황에 원한을 품고 있었다.
진의 세력이 점차 동북쪽의 연나라까지 뻗치자 태자는 형가에게 계책을 물었다. 당시 진의 번오기(樊於期)란 장수가 망명 와 있었는데 그의 목과 연나라 지도 속에 비수를 가져가서 황제를 암살하는 방법을 제시했다.
태자 단이 머뭇거리자 형가는 번오기를 직접 찾아갔다. 잔혹하게 대했던 진시황에게 원수를 갚는 방법은 현상금이 걸린 장군의 목을 가져가서 처치하는 방법 밖에 없다고 말했다.
번오기가 비장하게 말했다. "이것이야 말로 제가 밤낮으로 이를 갈고 가슴을 치며 고대하던 것입니다(此臣之日夜切齒腐心也)."
그러면서 스스로 목을 찔러 자결했다. 이렇게 비장하게 거사에 나섰지만 최후의 순간에 실패하고 형가는 피살됐다.
한 두 번의 실수로 치욕을 당했더라도 잊지 않고 되갚을 각오를 가져야 옳은 길이다. 성인이라면 그 상대를 감화시켜 더 좋은 길로 이끌겠지만 보통 사람에게는 어렵다.
조선시대 청(淸)과 왜(倭)에 유린 당하고도 이를 악문 채 대비를 하지 않았기에 연속으로 치욕을 안았다.
오늘의 국제관계서도 마찬가지다. 사방에서 호시탐탐 노리고 피해를 끼치는데도 시간이 지나면 잠잠하니 말이다.
초한지(楚漢誌) 소하(簫何)의 절치부심(切齒腐心)
소하(簫何)는 한신을 귀객으로 대접해 가면서, 10여일을 두고 그의 경륜과 포부를 다양하게 시험해 보았다. 그런데 한신의 경륜과 포부는 놀라우리 만큼 원대하고 치밀한 것이 아닌가 ?
소하는 너무도 놀라운 가운데 문득, "일찍이 장량 선생은 대원수가 될 만한 인재를 구해 보내 주시겠다고 약속한 일이 계셨는데, 어쩌면 한신은 장량 선생께서 보내신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장량이 사람을 구해 보낼 때에는 반드시 자신과 나눈 반조각의 증표(證標)를 주어 보내기로 약속한 바가 있지 않았던가? 그런데 한신은 자신에게 증표를 보여주지 않았다. 그렇다고 이쪽에서 그런 문제를 먼저 물어 볼 수도 없었다.
한신은 장량에게서 받은 증표를 몸에 지니고 있는 것만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한신은 남의 천거로 등용되는 것은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더구나 지금처럼 자신의 능력에 대하여 시험(試驗)을 거치고 있는 단계에서 증표를 내어 보이기에는 더욱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이러나 저러나 한신이라는 인물이 대원수의 재목으로 충분하다고 판단한 소하는 어느 날 궁중으로 한왕을 찾아가 이렇게 아뢰었다. "대왕 전하! 초현관(招賢館)의 방문(榜文)을 통해, 대인재를 한 사람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 사람은 대원수가 되고도 남을 재목이니, 한 번 만나 보시도록 하시옵소서."
한왕은 즉석에서 반문한다. "이름을 뭐라고 하는 사람이오?"
소하가 말했다. "이름은 '한신'이라고 하는 사람이온데, 일찍이 항우의 그늘에서 '집극랑' 벼슬을 지냈다고 하옵니다. 그동안 항우에게 좋은 계략을 여러 번 제시하였다고 하오나, 항우가 이를 제대로 써주지 아니하므로 마침내는 항우를 등지고 대왕께 귀의(歸依)하고자 찾아 온 사람이옵니다."
한왕은 다시 물었다. "승상은 그 사람의 계략이나 포부 등을 직접 들어 보신 일이 계시오?"
소하가 말했다. "10여 일 동안 신의 집에서 숙식을 같이하며 여러 모로 의견을 교환해 보았사옵는데, 그의 지략은 손자(孫子)나 오자(吳子)에게도 뒤지지 않은 것 같사옵니다."
한왕은 그 말을 듣고 크게 웃으며 말했다 다. "나는 고향에 있을 때, 그 사람의 소문을 많이 들었소. 한신은 집이 가난하여 어려서는 빨래하는 여인에게 밥을 빌어먹은 일도 있었고, 깡패에게 시달렸을 때에는 겁에 질려 남의 사타구니 밑으로 기어나가는 모욕을 당한 일도 있었다고 하오. 승상은 한신을 대원수로 기용하고 싶겠지만, 그런 못난 사람을 대원수로 등용 시키면 남들이 얼마나 나를 비웃을 것이오? 애쓰셨지만, 승상은 사람을 잘못 보아도 크게 잘못 보신 것 같소이다."
한왕은 소하의 청원을 상대조차 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러나 소하는 단념하지 않았다. "대왕 전하! 옛날부터 명장들 치고, 가난한 집 출신이 아닌 사람이 누가 있사옵니까. 이윤(李尹)은 풀이나 깎아 먹던 초부(草夫)였사옵고, 태공망(太公望)은 위수에서 낚시질이나 해먹던 어부(漁夫)였사옵고, 악의(樂毅)는 수레나 끌어 먹던 마부(馬夫)였사오나, 그들은 주인을 잘 만나 모두가 천하의 명장이 된 것이옵니다. 대왕께서는 그 점을 감안하시어, 한신을 등용해 주시기를 거듭 갈망하옵니다."
한왕 유방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다시 말한다. "승상의 말씀대로 이윤이나 태공망 등이 비천한 가문의 출신인 것은 사실이오. 그러나 한신도 가난한 집안의 출신이라고 하여 그들처럼 명장이 되리라는 보장은 없는 일이 아니오?"
소하가 다시 말한다. "신은 한신을 가난한 집 태생이라는 이유로 천거하는 것은 아니옵니다. 한신은 천하 대사를 계략할 수 있는 웅지를 품고 있는 희대의 기재라고 봅니다. 대왕께서 그를 높이 써주지 않으시면, 그는 반드시 다른 나라로 도망을 가고 말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에게 손실이 막대할 것이오니, 대왕께서는 한신을 등용하시어, 초나라를 정벌함으로써 천하를 얻으시도록 하시옵소서."
한왕이 말했다. "승상이 한신을 그토록 극구 칭찬하시니, 한번 만나 보고 적당히 쓰기로 합시다."
한신은 왕명에 의하여 대궐에 들어와, 한왕을 배알하게 되었다. 그러나 한신을 영접하는 예절이 너무도 소홀하므로 한신은, "나를 영접하는 예절이 이렇게도 소홀할 진대, 나를 높이 등용해 주기는 틀린게로다"고 내심으로 각오를 하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한왕은 한신을 만나더니 대뜸 이렇게 말한다. "그대가 만리 길을 멀다 않고 나를 찾아왔다니 매우 기특하구려, 그러나 내가 아직은 그대의 재능을 몰라 높이 써주기는 어려운 형편이오. 하니 우선 연창관(連倉官)에 임명할 테니 양곡 관리에 만전을 기해 주기 바라오."
연창관이란 창고지기들을 감독하는 직책이었다. 한신이 말했다. "대왕께서 벼슬을 제수해 주시니 고맙게 받겠습니다."
한신은 노여운 기색을 보이지 아니하고 어전을 물러나왔다. 상황이 이렇게 되고 보니, 소하는 한신을 대하기가 민망스러워 견딜 수 없었다.
그러나 연창관에 임명된 한신은 그 길로 창고 안에 산더미 처럼 쌓여 있는 곡식들은 한바퀴 둘러보고 나더니, 대뜸 창고지기에게, "10개의 창고에 쌓여 있는 쌀이 모두 합하면 15,672 섬이구려." 하고 창고지기에게 확인하는 것이 아닌가 ?
창고지기는 그 수효가 너무도 정확한 데 깜짝 놀랐다. 그리하여 한신에게 경의를 표하며 묻는다. "저는 여기서 창고지기를 10년을 넘도록 계속하여 옵니다만, 대인처럼 산법(算法)에 밝으신 분은 처음 보았습니다. 이 많은 곡식을 어느 틈에 그처럼 정확하게 세어 보셨습니까?"
한신은 소리내어 웃었다. "이 사람아 ! 이 많은 곡식을 무슨 재주로 일일이 세어 본다는 말인가? 그러나 무슨 일이든 머리를 잘 쓰면 쉽게 해결할 수가 있는 법이네."
창고지기는 그저 놀랍기만 하였다. 승상 소하가 그 소식을 전해 듣고, 한신을 급히 찾아왔다.
소하가 한신을 만나자 물었다. "나는 귀공을 대원수로 발탁해 주시도록 천거했었소. 그러나 대왕께서는 귀공의 재능을 모르시는 까닭에 하찮은 벼슬을 내려 주셔서 민망하기 짝이 없었소이다. 이러나 저러나 귀공은 10개의 창고를 한번 돌아보고 나서, 재고량이 한 섬도 틀리지 않게 단박에 알아 맞히셨다고 하니, 무슨 방법으로 이처럼 정확하게 알아내셨소?"
한신이 웃으면서 대답한다. "산법에는 소구수법(小九數法)과 대구수법(大九數法)의 두 가지 산법이 있사옵니다. 그 산법에 능통하면, 사해 구주(四海九州; 사방의 바다와 전국을 9개로 나눈 땅의 모양)의 운행(運行)도 쉽게 알아낼 수가 있사옵니다. 그 옛날 복희씨(伏羲氏; 중국 고대 전설상의 제왕으로 팔괘를 처음 만들고, 그물을 처음 만들어 백성들에게 고기잡이의 방법을 가르친 위대한 제왕)는 그 산법에 의하여, 천하를 다스려 나갔던 것이옵니다."
소하가 놀라움을 금치 못하는 가운데, 한신이 다시 말한다. "제가 창고를 돌아보온즉, 쌀을 저장해 둔 지가 너무 오래 되어 일부의 쌀은 변질되어 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저장미는 햅쌀로 바꿔 두시고, 묵은 쌀은 모두 구휼미(救恤米)로 백성들에게 나누어 주심이 좋을 것 같사옵니다. 그리하면 일거양득(一擧兩得)이 될 것이옵고, 그렇게 하시는 것이 승상의 직무이기도 하실 것이옵니다."
소하는 그 말을 듣고 크게 감탄하며 말했다. "참으로 좋은 말씀을 해 주셨소. 대왕의 허락을 얻어 곧 그렇게 하도록 하겠소."
소하는 한신의 재능을 그대로 썩일 수가 없어 다음날 아침에 다시 입궐하였다.
한왕은 소하를 보자 대뜸 쓸쓸한 표정으로 말한다. "승상! 나는 요즈음 부모님 생각이 간절하여 견딜 수가 없구려. 항우에게 볼모로 잡혀 계시는 부모님은 잘들 계신지 여간 걱정이 많구려."
소하가 말했다. "대왕께서 부모님을 뵙는 것은 결코 어려운 일은 아니옵니다. 초나라를 쳐부술 대원수 한 사람만 얻으시면 언제든지 부모님을 뵈올 수가 있을 것이옵니다."
한왕이 말했다. "나도 그 점을 생각해 보지 않은 것은 아니오. 그러나 대원수의 재목을 어디 구하기가 쉬운 일이오 ?"
그러자 소하는 또 다시 한신을 천거하며 말했다. "한신을 대원수로 등용하시면, 초나라를 정벌하고 나서 천하까지 평정할 수가 있을 것이오니, 바라옵건대 한신을 기꺼이 대원수로 기용해 주시옵소서."
그러나 한왕은 고개를 가로저어며 말했다. "한신은 가난한 집에 태어나 자기 몸 하나도 제대로 가누지 못한 위인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런 사람이 어떻게 항우를 쳐부술 수가 있단 말이오?"
소하는 하도 안타까워 한신의 재능을 입이 닳도록 설명해 올렸다.
그러나 한왕은 여전히 도리질만 할 뿐이었다. "한두 가지 재주만 보아 가지고, 어찌 대원수로 쓸 수 있단 말이오?"
소하가 말했다. "한신은 어느모로 보아도 대원수의 재목입니다. 대왕께서는 그르침이 없으시도록 하시옵소서."
한왕이 말했다. "경이 그렇게까지 칭찬하시니 그러면 한신을 치속도위(治粟都尉)로 승격시켜 주기로 하겠소."
연창관이 창고지기의 감독관이라면, 치속도위는 국가의 양곡 정책을 좌우하는 요직(要職)이었다. 따라서 한신의 영전은 파격적인 승진인 셈이었다.
그러나 한신이 보통 인물이 아닌 것을 잘 알고 있는 소하는 한신에게 승진 사실을 알려 주면서 "어떤 일이 있어도 귀공을 대원수로 등용하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해 볼테니, 당분간 참고 기다려 주기를 바라오" 하고 애원하듯 말했다.
한신이 대답한다. "저는 승상만 믿고 새로운 직무에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한신은 치속도위에 취임하고 나자 국가의 양곡 정책에 일대 혁신을 기했다. 그 뿐만이 아니라, 지금까지 양곡의 헌납이 있을 때마다 관리들은 뇌물미(賂物米)까지 얹어서 받아 왔었는데, 한신은 부임해 온 그날부터 '뇌물미'라는 것을 일체 없애 버리는 동시에 부정 축재를 해오던 오리(汚吏)들을 그날로 깨끗이 소탕해 버렸다.
그로 인해 백성들의 헌납미는 대폭 줄어들게 되었다. 백성들은 한신의 이러한 처사에 너무도 감동되어 그때부터는 앞을 다투어 곡식을 자진 헌납해 주었다.
백성들은 그것만으로 부족하여, 반 년쯤 지났을 무렵에는 떼를 지어 승상부로 소하를 찾아와, "새로 부임해 오신 도위께서 양곡 정책을 너무도 공평하게 처리해 주셔서, 저희들은 오랬만에 가난을 면하게 되었습니다. 바라옵건대, 한신 도위를 그 자리에 오래 머물러 계시게 해주시옵소서" 하는 진정까지 올렸다.
소하는 한신의 탁월한 수완에 더욱 감탄하며 그를 대원수로 다시 한번 천거하기 위하여 대궐로 한왕을 다시 찾아 들어갔다.
한왕은 소하를 보자 또다시 탄식하듯 말한다. "나는 요즘에는 밤마다 꿈자리가 사나워 부모님 생각이 더욱 간절해 못 견디겠구려. 언제쯤에나 부모님을 뵈올 수가 있겠소?"
소하가 대답했다. "그 옛날 제(齊)나라의 경공(景公)은 사냥에서 돌아와, 명재상 안자(晏子)에게 '나는 요사이 꿈자리가 사나워 기분이 매우 좋지 않구려. 이 일을 어찌하면 좋겠소?'고 물으신 일이 계셨습니다. 그래서 안자가 '무슨 꿈을 꾸셨기에 그러시옵니까?' 하고 물었더니, 경공께서는 '산에 올라가서는 호랑이를 만나는 꿈을 꾸었고, 늪(沼)에 들어가서는 뱀을 만나는 꿈을 꾸었으니 그게 흉몽이 아니고 뭐겠소' 하고 대답하시더랍니다."
한왕은 꿈에 대한 해몽이 더욱 궁금하여 다시 묻는다. "그래서 재상 안자는 해몽을 어떻게 했다고 합디까?"
소하가 대답했다. "안자가 대답하기를, '호랑이는 산에서 사는 짐승이고, 뱀은 늪에서 사는 동물입니다. 산에 가서 호랑이를 보시고, 늪에서 뱀을 만나신 것이 무슨 흉몽이겠습니까? 진실로 나라에 상서롭지 못한 일이 있다면 오직 세 가지의 불상사가 있을 뿐이라 하겠습니다'고 대답했다는 것이옵니다."
한왕은 즉석에서 소하에게 반문한다. "안자가 말하는 '나라의 세 가지 불상사'란 도대체 어떤 것을 말하는 것이었소?"
소하가 대답한다. "안자는 천하의 명재상답게 그가 지적한 세 가지의 불상사란 매우 중대한 문제들이었습니다. 첫째, 나라에 어진 사람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임금께서 그것을 모르고 계시면 그것이 불상사의 하나이옵고, 둘째, 임금께서 어진 사람임을 알고 계시면서도 그 사람을 등용치 않으시면 그것도 불상사에 하나이옵고, 셋째, 임금께서 어진 사람임을 알아 보시고 그 사람을 등용하시더라도 대들보로 써야 할 사람을 서까래로 쓰신다면 그것도 불상사의 하나라는 것이었습니다."
한왕은 그제서야 소하의 의도를 알아채고 웃으면서 말한다. "우리나라에 그와 같은 인재가 있기만 하다면, 난들 어찌 그런 인물을 등용하지 않겠소. 그런 사람이 있거든 지금이라도 천거해 주시오."
소하가 숙연히 아뢴다. "지금 치속도위로 근무하는 한신이야말로 현인중에 현인이옵니다. 신은 여러차례 한신을 대원수로 기용해 주시기를 간청했사오나, 대왕께서는 그를 가난한 집 출신이라는 이유로 끝끝내 기용해 주지 않고 계시옵니다. 만약 한신 같은 현인을 높이 써주지 않으시면, 만천하의 현인들이 누가 대왕 그늘로 모여들 것이옵니까. 바라옵건대, 대왕께서는 한신을 대원수로 등용해 주시옵소서."
소하의 청원은 간곡하기 이를 데 없었다. 그러나 한왕은 그 말을 듣고 정색을 하며 소하를 나무란다. "한신이 뭐가 대단한 인물이라고 승상은 입이 닳도록 치켜 올리고 계시오. 한신은 치속도위로도 오히려 과남한 편이니 이 이상 거론하지 마시오."
그러나 소하는 나라의 장래를 생각하면 그냥 물러설 수가 없었다. "대왕 전하! 만약 한신을 대원수로 발탁해 주지 않으시면 그는 반드시 자신의 꿈을 펼치기 위해 다른 나라로 가버리고 말게 될 것이옵니다. 그러면 우리에게는 손실이 너무도 클 것이오니 그 점을 특히 고려해 주시옵소서."
그러자 한왕은 꾸짖듯 나무란다. "자고로 벼슬이란 함부로 높여 주는 법이 아니오. 바로 얼마 전에 특진을 시켜 준 사람을 더 이상 어떻게 하라는 말씀이오. 아무런 공로도 없는 한신을 대원수로 발탁하면, 지금까지 수많은 공로를 세워 온 대장들이 나를 얼마나 원망하게 되겠소. 상벌(賞罰)은 어디까지나 공평해야 하는 법이오."
소하가 다시 아뢴다. "황공하오나 신도 그 점을 모르는 바는 아니옵니다. 그러나 한신은 가볍게 다루기에는 너무도 큰 인물이옵니다. 우리에게는 전공(戰功)을 세운 대장들이 많기는 하오나, 한신 같은 동량지제(棟樑之才)는 한 사람도 없사오니, 그 점을 고려해 주시옵소서."
소하는 한신을 대원수로 기용하려고 무척 애를 써 보았다. 그러나 한왕은 그럴 생각이 추호도 없었다.
그러기에 소하의 청원을 간접접으로 거절하려고, 말머리를 슬쩍 돌렸다. "장량 선생은 우리들과 작별하실 때, 파초 대원수(破楚大元帥)가 될 만한 인재를 꼭 구해 보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소. 그러하니 장량 선생이 머지않아 좋은 사람을 보내 주실 것이니, 모든 문제는 그때 가서 다시 상의하기로 합시다."
소하는 더 이상 고집을 부릴 수가 없어 어전을 물러나오고 말았다. 그러나 한신을 그냥 내버려두었다가는 언제 도망을 가게 될지 몰라 불안해 견딜 수 없었다. 소하는 한신을 이처럼 희대의 인물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기에 한신의 마음을 달래 주기 위해 그를 자기 집으로 초대하여 술잔을 나누며 양해를 구했다. "나는 귀공을 대원수로 발탁해 주시도록 오늘도 대왕전에 간청을 해보았소. 하지만 대왕께서는 귀공의 재능을 모르시는 까닭에 오늘도 청허(聽許)해 주실 기미를 보이지 않으시는구려. 그러나 언젠가는 귀공을 대원수로 등용해 주실 날이 반드시 올 것이니 귀공은 나를 믿고 조금만 더 기다려 주시오."
한신은 가타부타 말이 없이 술만 마시고 있었다. 소하는 한신의 기분을 돌려주려고 술을 연신 권하며 얼른 화제를 돌렸다. "나는 한왕을 받들고 천하를 도모해 볼 생각인데, 귀공은 그 문제를 어떻게 생각하시오 ?"
한신은 그제서야 입을 열어 말한다. "승상께서 그러한 포부를 가지고 계신 줄은 잘 알고 있사옵니다. 그러기에 저도 그와 같은 웅대한 계획에 참여하는 기쁨을 가지고 싶어서 일부러 여기까지 찾아온 것이옵니다."
소하는 그 말을 듣고 백만 대군을 얻은 듯한 기쁨을 느꼈다. 그리하여 가슴 깊이 간직하고 있던 계획을 한신에게 토로하였다. "천하를 한꺼번에 통일하기는 매우 어려울 것이오. 그러하니 처음에는 삼진왕(三秦王)을 평정하고, 그 다음에는 항우를 쳐부수고, 마지막 단계에 이르러서는 육국(六國) 병합에 나서면 천하는 절로 하나가 될 것이오."
소하는 자신을 가지고 말했다. 그러나 한신은 그 말을 듣고 대뜸 고개를 좌우로 흔든다. "매우 외람된 말씀이오나 전쟁이란 승상께서 생각하시는 것처럼 이쪽의 주문대로 되는 것은 아니옵니다. 무릇 전쟁이란 상대방의 동태(動態)에 따라 대응해 가면서 싸워야 하는 일인 관계로 마치 물이 지형(地形)에 따라 흘러가듯이 기(機)를 민첩하게 포착하여 자유 자재로 전술(戰術)을 변화시켜 나가야 하는 것이옵니다. 따라서 전쟁에 한해서만은 승상께서 말씀하시듯 고정된 작전 계획이란 있을 수가 없는 것이옵니다."
소하는 그 말을 듣고 한신의 영민한 두뇌에 또 한 번 탄복하였다.
何得美人兮, 願從與遊.
그리운 님을 어디서 만나, 받들어 모시고 놀 것인가
한신은 '치속도위'라는 관리로 따분하게 살아가자니 마음이 울적해 견딜 수 없었다. 지금이라도 장량의 증표를 내보이면 한왕의 대우가 대번에 달라질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그러나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이 확실하지 않은 한왕에게 이제 와서 증표를 내보인다는 것은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대원수가 되어 천하를 마음대로 주름잡지 못할 바에는 사내 대장부가 무엇 때문에 구차스럽게 이런 산속에서 썩어날 것인가?'
한신은 몇 날 몇 밤을 두고 혼자 고민을 하다가 어느 날 아침 말을 타고 집을 나서며 수행병(隨行兵)에게 이렇게 말했다. "며칠 동안 먼 곳에 좀 다녀올 테니, 너는 따라오지 말고 집에 있거라."
한신은 운명을 새로 개척하기 위해 중원(中原)으로 떠나려는 것이었다. 한신이 길을 떠난 지 두어 시간 후에 소하는 한신이 행방불명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리하여 부리나케 한신의 집으로 달려와 보니 한신은 이미 집에 없지 않은가.
'내가 염려하던 불상사가 기어코 일어나고야 말았구나!' 소하는 가슴을 치며 탄식하다가, "한 대인이 오늘 아침 언제쯤 어느 방향으로 떠나가더냐?" 하고 집사(執事)에게 물으니, "오늘 아침 인시(寅時; 아침 3시~5시 사이)에 동문에서 말을 타고 나가셨습니다."
소하는 그 대답을 듣기가 무섭게 동문으로 나왔다. 그리고 말을 막 올라 타려고 보니 동문 기둥에는 다음과 같은 시(詩)가 한 수 나붙어 있었다.
日未明兮 小星競光
아직 날이 밝지 않아 작은 별이 빛을 다투고
運未遇兮 才能晦藏
아직 운을 만나지 못해 재능은 숨겨져 있고
霜蹄견滯兮 身奇殊鄕
준마가 다리를 절어서 몸을 타향에 기탁하네
龍泉매沒兮 差鈍無鋼
용천검이 묻혔으니 쓸모없는 무쇠가 되었고
芝生幽谷兮 爲誰與採
지초가 깊은 골에 그윽함은 누구와 더불어 캘 것인가
蘭長深林兮 孰含其香
난초가 깊은 숲속에서 자라니 그 향기를 누가 맡을수 있겠나
何得美人兮 願從與遊
그리운 님을 어디서 만나 받들어 모시고 놀 것인가
同心斷金兮 爲鸞爲鳳
마음과 신의를 같이해 난새가 되고 봉황이 될 것인가.
소하는 그 시를 읽어 보고 가슴이 저려 오는 비애를 느꼈다. 단순한 무장으로만 알고 있었던 한신이 시문(詩文)에서 조차 이처럼 탁월한 재능이 있는 줄은 미처 몰랐다. 구구 절절에 나타난 한신의 애타는 심정이 자신의 가슴을 파고드는 것만 같았다.
한신같이 뛰어난 인물을 그냥 도망치게 내버려둘 수는 없는 일이다. 소하는 조복(朝服)을 입은 채로 한신의 뒤를 맹렬히 쫒기 시작하였다. 중문을 나서면 중원으로 가는 길은 오직 하나뿐이었다.
소하는 달리는 말에 채찍을 가해 가며 자꾸만 앞으로 앞으로 달려나갔다. 그러나 한낮이 기울도록 달려 갔지만 한신은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혹시 장수 하나가 백마를 타고 이곳으로 지나가는 것을 보지 못햇소?"
초부(樵夫; 나뭇꾼)가 대답한다. "보았지요. 한참 전에 이곳을 지나 갔으니까 지금쯤은 6,70리도 더 갔을 것이오."
소하는 점심도 굶은 채 계속해 한신의 뒤를 쫒았다. 그러나 해가 저물 때까지 말을 달려 한계령(寒溪嶺) 골짜기까지 이르러서도 한신을 발견하지 못했다.
때는 7월 중순이건만 산속의 밤은 가을같이 차갑고 장마로 물이 불어 계곡을 건널 수가 없었다. 때마침 달이 솟아올라서 달빛으로 건너갈 길을 찾고 있었는데 어디선가 문득 '호호호호' 하는 말 울음 소리가 들려오는 것이었다.
'옳다, 됐다! 한신은 길이 막혀 이 부근 어디엔가 숨어있는게로다!' 소하는 그런 생각이 들자 높은 바위에 올라서서 두 손을 입에 모아대고 외쳐댔다. "한장군은 내게 한마디 인사도 없이 도망을 왔으니 세상에 이럴 수가 있소. 내가 이곳까지 쫒아왔으니 속히 나와주시오."
목이 터져라 세 번 네 번 애타게 외쳤지만 아무런 대답도 없었다. 그래도 한 번 더 외쳐대는 가운데 문득 어디선가 말이 달려오는 기척이 들려온다.
'옳지! 이제야 한신이 내가 부르는 소리를 들었구나!' 소하가 크게 기뻐하며 인기척이 들리는 곳으로 바삐 걸음을 옮겼더니 눈앞에 나타난 사람은 한신이 아니라 등공(騰公) 하후영(夏侯英)이 아닌가?
소하는 깜짝 놀라며, "아니, 등공이 여기 웬일이오?"
하후영이 대답한다. "승상께서 한왕에게 환멸을 느끼시고 중원으로 도망을 가신다기에 저도 승상과 운명을 같이하고자 쫒아오는 길이옵니다. 승상께서는 어디로 가시든지 저를 버리지 말아 주시옵소서."
소하는 그 말을 듣고 기가 막혔다. "내가 한왕을 배반하고 도망을 가다뇨? 그게 무슨 말씀이오. 이몸은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 죽더라도 한왕을 배반할 사람이 아니오."
하후영이 말한다. "한왕을 배반할 뜻이 없으시다면 무엇 때문에 온 종일 말을 달려 한밤중에 이곳까지 오셨습니까?"
소하가 말했다. "내가 한밤중에 여기까지 온 것도 한왕에게 충성을 다하려는 것 때문이었소. 한신이라는 위대한 인물이 없이는 한왕께서 천하를 도모할 수가 없으시겠는데, 한신이 도망을 쳤기에 그를 찾기위해 여기까지 쫒아온 것이오."
그때 한신은 불어난 물에 막혀 계곡을 건너지 못하고 날이 밝기를 기다리며 숲속에 숨어 있다가 두 사람이 주고받는 이야기를 소상히 듣고 크게 감동하였다. '과연, 소하는 하늘 아래 둘도 없는 충신이로구나! 저런 충신을 재상으로 쓰고 있는 한왕의 장래는 반드시 영광스러우리라!'
한신은 숲속에 숨어서 소하의 인격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았다. "재상에 오른 사람들은 흔히 영화를 오래누리려고 어진 사람들을 시기하고 헐뜯기가 보통이 아니던가? 그런데 소하 승상은 나를 대원수로 발탁시키려고 전력을 기울여 애를 써올 뿐만 아니라 나를 도망가지 못하게 조복을 입은 채로 여기까지 쫒아오셨으니 세상에 이처럼 고매하고 믿을 만한 인격자가 어디 있더란 말이냐?
옛글에 '사내는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서는 목숨을 아껴서는 안 된다'는 말이 있지 않던가? 내 비록 대원수가 못 되는 한이 있어도 소하 승상 같은 인격자를 배반하고 도망갈 수는 없는 일이다.
이렇게 결심한 한신은 숲속에서 달려나와 소하 앞에 무릎을 꿇고 사죄한다. "승상 각하! 제가 각하의 고귀하신 뜻을 몰라 뵙고 여기까지 도망쳐 온 것을 용서해 주시옵소서."
소하는 불현듯 나타난 한신의 말을 듣고 그의 손을 잡아 일으키며 감격 어린 어조로 말했다. "무슨 말씀을, 장군을 이 지경에 이르게 만든 책임은 오로지 나에게 있는 것이오. 백년지기와 다름 없는 우리 두 사람이 마음을 모으면 무슨 일이든 불가능하겠소? 기왕지사는 깨끗이 잊어버리고, 어서 나와 함께 돌아가십시다."
한신은 감격의 눈물을 지으며 소하와 함께 귀로에 올랐다.
한편, 조정에서는 승상 소하가 별안간 행방 불명이 되어 버린 사실을 놓고 야단 법석이 일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이런 소문도 돌았다. '대왕 전하가 승상의 조언을 들어주지 않더니만 결국은 한신과 함께 도망을 가버렸구나! '
이런 뒷공론을 듣자 한왕은 크게 노하며 말했다. "승상 소하는 풍패(豊沛)에 있을 때부터 나와 생사를 같이해 오면서 의병을 일으켜 오늘에 이르렀다. 그러던 그가 느닺없이 한신과 함께 도망을 갔으니 세상에 이럴 수가 있느냐! 소하와 나는 공적으로는 군신지간이지만, 사적으로는 형제지간이나 다름없는 사이였다. 그러던 그가 나를 버리고 도망을 갔으니 이제부터 나는 누구를 믿고 살아갈 것인가!"
한왕은 그때부터 식음을 전폐하고 수심에 잠겨 있었다. 그런데 바로 다음날 저녁 때의 일이었다. 금문(禁門) 밖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리더니 시종이 급히 달려 들어오며 이렇게 아뢰는 것이었다. "대왕 전하! 승상께서 한신과 함께 지금 돌아오고 계시옵니다."
한왕은 한편으로는 기쁘고 또 한편으로는 노여움을 금할 길이 없어 금문 밖으로 달려나가 소하를 나무란다. "경은 나를 배반하고 도망을 갔다가 이제서야 돌아오니 세상에 이럴 수가 있단 말이오?"
소하가 국궁 배례하며 아뢴다. "대왕의 과분하신 은총을 입고 있는 신이, 어찌 도망을 갈 수 있으오리까? 다만 도망을 가는 한신을 붙잡아 오려고 며칠 동안 자리를 비웠을 뿐이옵니다."
그러나 한왕은 그 말을 믿으려고 하지 않았다. "경은 무슨 말씀을 하고 계시오. 지금까지 나의 휘하에서 도망을 가 버린 장수들이 한두 명이 아니었소. 그들이 도망갔을 때에는 그냥 내버려 두었다가, 유독 한신만은 붙잡아 오려고 했다니 그런 모순된 말씀이 어디있단 말이오?"
소하가 머리를 조아리며 다시 아뢴다. "지금까지 도망간 장수들은 모두가 대단치 않았던 인물들이었기 때문에 애써 붙잡아 올 필요가 없었던 것이옵니다. 그러나 한신의 경우는 문제가 근본적으로 다르옵니다. 한신은 천하에 둘이 있을 수 없는 국가무쌍(國家無雙)의 인물입니다. 대왕께서 언제까지나 이곳 파촉에 머물러 계시려면 한신 같은 인물은 필요치 않으실지 모르옵니다. 그러나 항우를 정벌하고 천하를 도모하시려면 무슨 일이 있어도 한신만은 반드시 붙잡아 두셔야 하옵니다. 그리고 그에게 군사 전권을 맡겨서 천하를 도모하셔야 하옵니다. 이런 신의 당부를 대왕께서 들어주지 않으신다면 소신도 오늘로서 관직에서 물러나, 고향에 돌아가서 농사나 짓겠습니다."
소하가 그렇게까지 극단적인 태도로 나오자 옆에 있던 하후영이 한왕에게 간한다. "대왕 전하! 승상께서 이렇게까지 말씀하시니, 승상의 말씀대로 한신을 대원수로 발탁해 주시면 어떠하시겠습니까?"
그러자 한왕은 여전히 고개를 좌우로 흔든다. "짐작컨대, 경들은 한신의 언변에 현혹되어 그를 큰 인물로 생각하고 있는 모양이지만 대원수를 그런 식으로 임명해서는 안 되오. 대원수란 일국의 흥망을 좌우하는 자리인 만큼 그 자리를 아무에게나 줄 수 없다는 말이오. 대원수가 되려면 적어도 깊은 경륜도 있어야 하고 병법과 전술에도 능통해야 하는 법이오. 만약 우리의 통수권(統帥權)을 한신에게 내맡겼다가 아차 실수하는 날이면 우리들은 모두가 멸망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하오. 한신으로 말하면, 자기 부모의 시신조차 제대로 챙기지 못한 위인이오. 게다가 그는 항우를 3년이 넘도록 섬겨 오면서 겨우 집극랑 벼슬밖에 지내지 못한 사람이오. 승상은 그러한 그를 어떻게 일국의 대원수로 등용해 달라고 고집하시오?"
소하가 머리를 조아리며 다시 아뢴다. "대왕께서는 보이는 조건만으로 판단하지 마시옵고, 한신의 무서운 의지를 함께 생각해 주시옵소서. 일찍이 대성 공자(大聖孔子)는 '상갓집 개'라는 모욕을 당해 가면서 진(陳)나라와 채(蔡)나라로 유세(遊說; 설득)를 다닌 일이 있었사온데, 그것은 공자가 무능했기 때문은 아니었습니다. 공자는 거리의 무뢰한들에게 조롱을 당한 일이 여러 차례 있었사오나, 그런 수모를 당한 것도 용기가 없었기 때문은 아니었습니다. 한신이 거지꼴을 하고 다니며 시정배에게 수모를 당한 것은 때를 못 만났기 때문이었으니, 그 점을 거듭 고려해 주시옵소서."
한왕은 고개를 기울이며 다시 반문한다. "그렇다면 한 마디만 더 묻겠소. 한신이 항우를 3년이 넘도록 섬겨 오면서 겨우 집극랑 밖에 지내지 못한 것은 무엇 때문이었소?"
소하가 다시 아뢴다. "대왕 전하! 제 아무리 명마(名馬)라도 백락(伯樂) 같은 명기수(名騎手)를 만나지 못하면 한평생 노마(駑馬; 둔한 말)의 신세를 면하기 어렵게 되는 법이옵니다. 사람의 경우도 그와 같아서 한신은 천하의 기재이면서도 항우라는 주인을 잘못 만났기 때문에 집극랑에 머물러 있게 되었던 것이옵니다. 승상이라는 직책이 어진 사람을 구해 오는데 있는 줄로 알고 있사옵니다. 대왕께서는 신이 한신의 변론에 현혹되어 그를 과분하게 평가하고 있는 줄로 알고 계시오나 결코 그런 것은 아니옵니다. 거듭 말씀드리거니와, 한신은 천 년에 한 사람쯤 있을까 말까한 대원수 재목이기에 이처럼 간곡히 말씀을 드리는 것이옵니다."
소하가 이렇게 까지 말을 하였으나 한왕은 한신을 대원수로 등용할 생각이 없었던지 얼른 이렇게 대답을 돌려 버린다. "날이 저물었으니 그 애기는 이만 해 두고, 내일 아침 조회(朝會)에서 다시 논의해 보기로 합시다."
소하가 퇴궐하여 한신에게 사실대로 말해 주니 한신이 말한다. "승상께서 아무리 애써 주셔도 제가 대원수로 기용될 가망은 거의 없는 것 같사옵니다."
소하가 그 말을 듣고 고개를 힘차게 흔든다. "무슨 소리! 만약에 귀공을 대원수로 발탁해 주시지 않는다면 나는 관직을 박차고 낙향해 버릴 생각이오."
한신은 소하의 동지적 의리에 크게 감동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마음이 산란하여 쉽게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는데 한밤중에 소하로부터 '곧 와 달라'는 전갈이 왔다.
무슨 일인가 싶어 급히 달려와 보니, 소하가 묻는다. "귀공이 초나라에 있을 때, 범증은 귀공을 높이 써주도록 항우에게 여러 차례 진언(進言)을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소. 귀공은 범증에게 어떻게 보였기에, 그처럼 높게 평가하게 된 것이오?"
한신은 지난날의 일들을 신중이 회고해 보다가 대답한다. "초나라에는 명장이라는 인물들이 많기는 하오나 제가 존경하는 분은 오직 범증 군사 한 사람 뿐이었습니다. 그러기에 저는 범증 군사를 만나기만 하면, '만약 군사께서 항왕을 받들고 천하를 통일하시려거든 지금 유방을 죽여 버리셔야 합니다. 그래야만 군사의 뜻대로 천하를 통일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고 여러 차례 말씀 올린 일이 있었습니다. 그랬더니 범증 군사는 그때부터 저를 높이 평가해 주시게 된 것입니다. 만약 그때에 항왕이 범증 군사의 진언대로 저를 높이 써주기만 했다면 저는 오늘날 이곳으로 찾아오지는 않았을 것이옵니다."
소하는 한신의 자신에 넘치는 판단을 듣고 탄복하며, "만약 귀공이 장량 선생의 증표를 가지고 왔더라면 지금까지와 같은 노력이 없더라도 대번에 대원수로 발탁이 될 수가 있었을 터인데..." 하고 혼자말로 탄식해 마지않았다.
한신은 자기를 위해 이처럼 애써 주는 소하를 보자, 장량에게서 받은 증표를 끝까지 숨겨 두고 있기가 몹시 괴로웠다. 그리하여 머리를 수그리며 이렇게 말했다. "승상 각하! 실상인즉, 저는 장량 선생께서 주신 증표를 가지고 있사옵니다."
그 소리에 소하는 까무러치 듯 놀란다. "뭐요? 장량 선생이 주신 증표를 가지고 있다고...? 그것이 사실이라면, 어째서 아직까지 숨겨 두고 있었소?"
한신은 품속에 간직해 두었던 증표를 소하에게 말없이 내밀었다. 소하는 자기가 가지고 있던 반 조각과 한신에게서 받은 반 조각의 증표를 서로 맞춰 보았다. 그러자 두 개의 조각은 한개 처럼 감쪽같이 꼭 맞는 것이었다.
소하는 뛸 듯이 기뻐하면서, "이런 증표를 가지고 있으면서, 왜 여태까지 숨겨 두고 있었느냐 말이오?" 하고 한신을 나무란다.
한신은 겸연쩍은 미소를 지어 보이면서 대답한다. "제가 제대로 된 실력이 검증되기 전에, 남의 소개로 발탁되는 것은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장량 선생께서 주신 증표를 일부러 숨겨 왔던 것이옵니다."
소하는 그 말을 듣고 고개를 연신 끄덕이며, "역시, 한 장군다운 생각이셨구려. 그렇다면 그토록 숨겨 오던 증표를 지금은 왜 내놓으셨소?" 하고 캐뭍는다.
한신이 미소를 지으며 대답한다. "이 이상 숨기는 것은 의리에 벗어나는 처사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소하가 반문한다. "의리에서 벗어나는 일이라뇨? 도대체 무슨 의리에서 벗어나는 일이란 말씀이오?"
한신이 대답한다. "장량 선생의 증표를 내보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승상께서는 저를 대원수의 재목이라고 독자적으로 인정해 주셨습니다. 제게 있어서 승상은 그처럼 고마운 어른이십니다. 그런데 제가 어찌 감히 승상을 끝까지 속일 수 있으오리까. 그래서 장량 선생이 주신 증표를 이제야 내놓게 된 것이옵니다."
소하는 그 말을 듣고 또 한 번 감명을 받고, 한신의 손을 덥석 움켜잡았다. "증표를 진작 내보였던들 모든 문제는 옛날에 해결되었을 텐데 그것을 끝까지 숨겨 두고, 나를 골탕을 먹였단 말이오?"
한신은 정중하게 머리를 숙여 보였다. "죄송합니다. 그러나 제가 그 증표를 처음부터 내놓았다면, 승상께서도 저의 재능을 지금처럼 깊이 인정해 주지는 않으셨을 것이옵니다."
소하는 그 말을 듣고 소리를 크게 내어 웃으며, "장군은 증표 하나를 내보이는 데도 이처럼 계략이 깊으시니 누가 감히 장군을 당해 낼 수 있겠소. 하하하..! 아무튼 이제는 귀공이 대원수로 발탁된 것은 틀림 없는 사실이니까 우리끼리나마 축하주부터 나누기로 합시다."
그리고 소하는 주안상을 성대하게 차려 내오도록 명했다.
(下略)
이순신의 절치부심(切齒腐心)
승자의 길, 승리의 왕도(王道) 지킨 장수
임진왜란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무모한 야망과 광기(狂氣), 일본 내전이 만들어낸 침략전쟁이다. 게다가 이 전쟁은 세계사를 바꿀 수 있었던 국제전쟁이기도 했다.
자나깨나 간절히
이순신은 일본군의 침략에 대해 크게 분노했다. 전쟁 발발 소식을 듣고 처음으로 쓴 출전 계획 보고서에서 그는 일본군의 침략에 대해 "몹시 원통해 쓸개가 찢어지는 것 같다(憤膽如裂)"고 하면서, "마음과 힘을 다하여 나라의 수치를 씻겠다(竭心力 擬雪國家之恥)"고 했다.
조정에서 내려온 경상도 출전명령서를 읽고 쓴 장계에서는 "분노가 가슴에 서리고 쓰라림이 뼈에 사무쳤다(怒膽輪 痛入骨髓)"고 하면서 "한번 적의 소굴을 무찔러 나라를 위해 몸을 바치려는 마음이 자나 깨나 간절합니다(一犯賊窟 忘身效力之衷 寤寐益切)"고 복수심을 천명했다.
또한 일본군이 서울까지 침입했다는 소식을 듣고는 "흐르는 눈물을 감당하지 못하고 칼을 어루만지며 혀를 차면서 탄식했다(不堪垂淚 撫劍嗟)"고 하면서 "원하옵건대 한번 죽을 것을 기약하고 곧바로 호랑이 굴을 두들겨 요망한 적을 소탕해 나라의 수치를 만분의 일이라도 씻으려 합니다(願以一死爲期 直虎穴 掃盡妖 欲雪國恥之萬一)"고 하기도 했다.
그렇게 굳게 결심한 뒤 이순신은 출전했고 승리했다. 승전보고서를 쓰면서 그는 서울까지 점령되고 임금이 피난갔다는 소식에 대해 "오내(五內; 오장)가 찢어지는 듯 했다(五內焚裂)"고 가슴 아파했다.
이순신은 전쟁이 일어난 후 매일매일 자신의 간담이 찢어지는 듯한 고통을 느꼈고, 분노가 응어리져 뼈에 사무칠 정도였다. 그래서 그는 '밤낮 근심하고 두려워하며 티끌만 한 공로나마 보답하려고 고심'했으며 심지어 "마음은 죽고 형체만 남아 있다(心死形存)"고 까지 할 정도였다.
이순신은 자신의 그런 고통과 슬픔, 분노와 한탄의 세월 동안 언제나 "이를 갈고 마음을 썩였다(切齒腐心)"고 했다. 절치부심의 결과는 일본군에게는 공포의 대상으로, 조선의 백성과 군사들에게는 불패의 신화를 쓰는 리더로 불멸의 존재로 기억되게 했다.
이순신이 쓴 절치부심은 본래 사마천이 쓴 '사기'의 자객열전에 나오는 말이다.
진나라의 진시황이 중국의 제후국들을 정복해 통합시켜 갈 때다. 제후국들은 진시황의 침략에 걱정이 태산같았다. 연나라도 마찬가지였다. 태자 단(丹)은 진시황의 야망을 꺾을 해법에 고심했다. 때마침 진나라 장군 번어기(樊於期)가 진시황에게 죄를 짓고 수배되면서 연나라로 도망쳐 왔다.
진시황을 두려워했던 연나라의 신하들은 번어기의 망명요청을 거부하려고 했다. 그러나 태자 단은 신하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그를 받아들여 연나라에 머물 수 있게 해주었다. 그럼에도 진나라는 두려운 상대였다. 번어기를 받아들였기에 더더욱 전전긍긍해야 했다.
태자는 진시황의 야망을 설득해 정복전쟁을 그치고 싶었다. 하지만 묘책이 없었다. 그 때 그에게 위(衛)나라 사람인 형가(荊軻)가 찾아오면서 비책을 생각해냈다.
태자는 형가에게 자객을 이용해 진시황을 협박해 진시황 스스로 정복 이전 상태로 진시황이 정복한 제후국을 돌려주게 만들고, 진시황이 받아들이지 않으면 자객으로 하여금 진시황을 죽이자는 것이 좋겠다고 제안했다.
형가는 태자의 계획에 찬성하며, 그 자객의 역할을 자신이 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정복과정에서 많은 원한을 쌓은 진시황은 철저하게 자신의 신변을 지켰다. 때문에 진시황의 신뢰를 얻지 않으면 접근이 불가능했다.
진시황의 신임을 얻기 위해 고심하던 형가는 진시황의 분노를 산 번어기를 생각해 냈다. 그는 태자에게 번어기의 머리를 요구했다. 번어기를 머리를 가져가 진시황의 환심을 사기 위한 방법이었다. 그러나 태자는 진시황을 피해 귀순한 번어기를 죽일 수 없다며 반대했다.
그러자 형가는 번어기를 직접 만나 자신의 계획을 말했다. 그때 번어기가 말했다. "그것은 내가 밤낮으로 이를 갈며 마음을 썩이고 벼르는 것이었소(切齒腐心)."
그 직후 번어기는 진시황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 형가가 택한 방법을 실천하기 위해 스스로 목을 찔러 자결했다. 형가는 번어기의 머리를 갖고 진시황을 찾아갔다. 그러나 진시황을 협박해 제후국을 되돌리지도, 죽이는 것 모두 실패했다.
예측되지 않는 재앙을 이기는 법
번어기가 '절치부심'을 이야기한 뒤로 '절치부심'은 이순신이 말한 것처럼 '몹시 분노해 원수를 갚기 위해 이를 갈며 마음을 썩이는 것'을 뜻하며 고사성어로 쓰이기 시작했다.
이순신은 나라를 지키는 군인으로서 나라의 울타리를 침략자로부터 방어하기 위해 평생을 살았다. 그는 처음 무과에 급제한 이후부터 언제나 불의에 일어날 수 있는 전쟁을 대비해 절치부심하며 살았다.
또 북방에서 호시탐탐 침입해오는 여진족과 전투했고, 임진왜란 전에는 일본의 침략을 대비해 거북선을 건조하고, 무기를 점검했다.
전쟁이 일어난 뒤에도 항상 스스로 '창으로 베개를 베고 잠을 잘'만큼 스스로 솔선수범했고, 부하 장수와 군사들에게 엄명했다. 이순신의 불패의 승리는 결국 그의 절치부심의 자세와 노력 때문이다.
삶이 고통스러울 때 절치부심하지 않는다면 패배자로 영원히 추락할 뿐이다. 삶이 풍족하고 안정되어 있을 때도 때때로 패배의 고통, 실패의 아픔을 잊는다면 또다시 절치부심을 할 기회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실패를 했다가 다시 일어선 사람들은 모두 절치부심했다.
또 무언가를 이룬 사람들도 항상 절치부심의 힘으로 목표에 한 걸음씩 다가갔다. 고난이 힘겨울수록, 고통이 클수록 그 열매는 달다. 절치부심의 힘으로 고난에 맞서라. 그것이 승자의 길이다. 승리의 왕도이다.
▶️ 切(끊을 절, 온통 체)은 ❶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칼 도(刀=刂; 칼, 베다, 자르다)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七(칠, 절)이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음(音)을 나타내는 七(칠, 절)의 옛 모양은 물건을 베는 모양이라고도 한다. 刀(도)는 날붙이, 切(절)은 날붙이로 물건을 베는 일, 또 절박하다는 뜻이다. ❷회의문자로 切자는 ‘끊다’나 ‘베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切자는 七(일곱 칠)자와 刀(칼 도)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七자는 숫자 7이라는 뜻을 가지고는 있지만, 갑골문과 금문에서는 ‘자르다’라는 뜻으로 쓰였었다. 七자의 갑골문을 보면 十자 모양이 그려져 있었다. 이것은 긴 막대기를 칼로 내리친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그래서 고대에는 七자가 ‘자르다’라는 뜻으로 쓰였었지만, 후에 숫자 ‘7’로 가차(假借)되면서 소전에서는 여기에 刀자를 더한 切자가 뜻을 대신하게 되었다. 그래서 切(절, 체)은 ①끊다 ②베다 ③정성스럽다 ④적절하다 ⑤중요하다 ⑥절박하다 ⑦진맥하다 ⑧문지방(門地枋) ⑨반절(反切: 한자의 음을 나타낼 때 다른 두 한자의 음을 반씩 따서 합치는 방법) ⑩간절히 그리고 ⓐ온통(체) ⓑ모두(체)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끊을 초(剿), 끊을 절(截), 끊을 단(斷), 끊을 절(絶) 용례로는 어떤 일에 대한 느낌이나 생각이 뼈저리게 강렬한 상태에 있음을 절실(切實), 마감이나 시기나 기일 등이 매우 급함을 절박(切迫), 끊어 냄이나 끊어짐 또는 잘라 냄을 절단(切斷), 몹시 간절한 모양을 절절(切切), 절실하게 느낌을 절감(切感), 간절히 바람을 절망(切望), 물가 수준이나 화폐 가치의 수준을 올림을 절상(切上), 화폐의 대외 가치를 낮춤을 절하(切下), 아주 친근함을 절친(切親), 째어서 가름을 절개(切開), 매우 암함을 절엄(切嚴), 잘라 버림을 절제(切除), 절실하게 필요함을 절요(切要), 끊어 가짐 또는 훔쳐서 제 것으로 함을 절취(切取), 지극히 원통함을 절통(切痛), 깊이 사랑함 또는 몹시 사랑함을 절애(切愛), 아주 가까운 이웃을 절린(切鄰), 절실히 느낌을 절감(切減), 간절한 마음을 절정(切情), 분하여 이를 갊을 절치(切齒), 매우 원통하고 분함을 절분(切忿), 다 팔려서 물품이 떨어져 없음을 절품(切品), 끊어 없앰이나 잘라 끊거나 깎음을 절삭(切削), 정한 날짜가 아주 가까이 닥쳐 몹시 다급함을 절핍(切逼), 꼭 맞음으로 어떤 기준이나 정도에 맞아 어울리는 상태를 적절(適切), 지성스럽고 절실함을 간절(懇切), 정성스럽고 정답거나 또는 그러한 태도를 친절(親切), 끊어짐 또는 잘라 버림을 단절(斷切), 절반으로 자름을 반절(半切), 말씨가 격렬하고 엄격함을 격절(激切), 매우 애처롭고 슬픔을 애절(哀切), 경계하여 바로잡음을 규절(規切), 썩 필요하고 실지에 꼭 맞음을 긴절(緊切), 매우 급하게 닥침을 급절(急切), 인정이 없고 쌀쌀함 또는 바싹 닥쳐서 몹시 급함을 박절(迫切), 뼈에 사무치게 절실함을 통절(痛切), 몹시 처량함을 처절(凄切), 모든 것이나 온갖 것 또는 모든 것을 다를 일체(一切), 옥돌을 자르고 줄로 쓸고 끌로 쪼고 갈아 빛을 내다라는 뜻으로 학문이나 인격을 갈고 닦음을 일컫는 말을 절차탁마(切磋琢磨), 이를 갈고 마음을 썩이다는 뜻으로 대단히 분하게 여기고 마음을 썩임을 일컫는 말을 절치부심(切齒腐心), 이를 갈고 팔을 걷어올리며 주먹을 꽉 진다는 뜻으로 매우 분하여 벼르는 모습을 이르는 말을 절치액완(切齒扼腕), 열심히 닦고 배워서 사람으로서의 도리를 지켜야 함을 이르는 말을 절마잠규(切磨箴規), 남의 일을 지나치게 걱정하고 염려하는 일을 일컫는 말을 노파심절(老婆心切), 몹시 분하여 이를 갊을 일컫는 말을 교아절치(咬牙切齒), 몹시 애절한 꼴을 일컫는 말을 애애절절(哀哀切切), 쌍은 공적과 지은 죄를 절충하여 죄를 정하던 일을 일컫는 말을 장공절죄(將功切罪) 등에 쓰인다.
▶️ 齒(이 치)는 ❶형성문자로 歯(치)의 본자(本字)이다. 음(音)을 나타내는 止(지, 치)와 이를 물고 있거나 잘 움직여 씹거나 함을 나타내는 나머지 글자의 합자(合字)로 이를 뜻한다. 이는 생장(生長)과 깊은 관계가 있으므로 나이의 뜻도 나타낸다. ❷상형문자로 齒자는 '이빨'이나 '어금니'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갑골문에 나온 齒자를 보면 크게 벌린 입과 이빨이 그려져 있었다. 금문에서는 여기에 止(발 지)자가 더해지면서 입이 움직이는 모습을 표현했다. 齒자는 이렇게 이빨을 뜻하기 위해 만든 글자이지만 때로는 '나이'나 '순서'를 뜻하기도 한다. 이빨이 가지런히 나열된 모습이 '순서'를 연상케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齒(치)는 ①이(=齒) ②나이 ③어금니 ④연령(年齡) ⑤나란히 서다 ⑥병렬(竝列)하다 ⑦벌이다 ⑧언급(言及)하다 ⑨제기(提起)하다 ⑩동류(同類)로 삼다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나이가 많고 덕행이 높음을 치덕(齒德), 나이의 차례를 치서(齒序), 이의 점잖은 일컬음을 치아(齒牙), 이가 박혀 있는 상하 턱뼈의 구멍을 치조(齒槽), 齒根 치근이의 치조 속에 있는 부분을 치근(齒根), 이의 속에 있는 빈 곳을 치강(齒腔), 이촉을 싸고 있는 살을 치경(齒莖), 이를 전문으로 치료하고 연구하는 의학의 한 분과를 치과(齒科), 잇몸이 튼튼하지 못하여 잘 붓고 피가 모이는 증세를 치담(齒痰), 이의 표면 특히 이의 안쪽 밑동 부분에 침에서 분비된 석회분이 부착해 굳어진 물질을 치석(齒石), 이를 닦는 데 쓰는 약을 치약(齒藥), 잇몸이 부어서 곪는 병을 치옹(齒癰), 이뿌리를 둘러싸고 있는 살을 치육(齒肉), 이가 쑤시거나 몹시 아픈 증상을 치통(齒痛), 희고 깨끗한 이를 백치(白齒), 벌레먹은 이를 충치(蟲齒), 희고 깨끗한 이를 호치(皓齒), 늙은이의 이를 노치(老齒), 만들어 박은 이를 의치(義齒), 같은 연령을 동치(同齒), 늘 싫어하고 미워하는 사람을 옹치(雍齒), 소리를 내며 이를 갊을 교치(咬齒), 새해가 되어 나이를 더 먹음을 가치(加齒), 사람이나 생물이 세상에 난 뒤에 살아온 햇수를 연치(年齒), 이를 닦고 입안을 가셔 내는 일을 양치(養齒), 입술과 이로 서로 이해 관계가 밀접함을 순치(脣齒), 어금니와 이를 통틀어 이르는 말을 아치(牙齒), 나이가 한 살 더함을 첨치(添齒), 이를 꽉 물다라는 뜻으로 입을 다물고 말하지 않음을 이르는 말을 합치(合齒), 이를 튼튼하게 하는 일을 고치(固齒), 이는 빠져도 혀는 남아 있다는 뜻으로 강한 자는 망하기 쉽고 유연한 자는 오래 존속됨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을 치망설존(齒亡舌存),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산다는 속담의 한역으로 있던 것이 없어져서 불편하더라도 없는 대로 참고 살아간다는 말을 치망순역지(齒亡脣亦支), 배냇니를 다 갈지 못하고 머리는 다박머리라는 뜻으로 아직 나이가 어림을 이르는 말을 치발부장(齒髮不長), 입술을 잃으면 이가 시리다는 뜻으로 가까운 사이의 한쪽이 망하면 다른 한쪽도 그 영향을 받아 온전하기 어려움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을 순망치한(脣亡齒寒), 붉은 입술과 하얀 이란 뜻으로 여자의 아름다운 얼굴을 이르는 말을 단순호치(丹脣皓齒), 이를 갈고 마음을 썩이다는 뜻으로 대단히 분하게 여기고 마음을 썩임을 일컫는 말을 절치부심(切齒腐心), 붉은 입술과 흰 이라는 뜻으로 아름다운 여자의 얼굴을 이르는 말을 주순호치(朱脣皓齒), 이를 갈고 팔을 걷어올리며 주먹을 꽉 진다는 뜻으로 매우 분하여 벼르는 모습을 이르는 말을 절치액완(切齒扼腕), 뿔이 있는 놈은 이가 없다는 뜻으로 한 사람이 모든 복을 겸하지는 못함을 이르는 말을 각자무치(角者無齒), 입술과 이나 수레의 덧방나무와 바퀴처럼 따로 떨어지거나 협력하지 않으면 일이 성취하기 어려운 관계를 이르는 말을 순치보거(脣齒輔車), 붉은 입술과 흰 이라는 뜻으로 아름다운 여자를 이르는 말을 호치단순(皓齒丹脣), 입술과 이의 관계처럼 이해 관계가 밀접한 나라를 비유해 이르는 말을 순치지국(脣齒之國), 붉은 입술에 흰 이라는 뜻으로 아름다운 여자를 이르는 말을 주순백치(朱脣白齒), 죽은 자식 나이 세기라는 뜻으로 이미 지나간 쓸데없는 일을 생각하며 애석하게 여김을 일컫는 말을 망자계치(亡子計齒), 개나 말이 하는 일없이 나이만 더하듯이 아무 하는 일없이 나이만 먹는 일 또는 자기 나이를 겸손하게 이르는 말을 견마지치(犬馬之齒), 맑은 눈동자와 흰 이라는 뜻으로 미인을 형용해 이르는 말을 명모호치(明眸皓齒) 등에 쓰인다.
▶️ 腐(썩을 부)는 ❶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고기 육(肉=月; 고기)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府(부)로 이루어져 고기가 썩는다는 뜻이다. ❷회의문자로 腐자는 '썩다'나 '상하다'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腐자는 府(관청 부)자와 肉(고기 육)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腐자는 고기가 썩거나 상한 것을 뜻하기 위해 만든 글자로 肉자가 의미요소로 쓰였다. 그러나 腐자는 단순히 고기가 상한 것만을 뜻하진 않는다. 정직해야 할 관료들이 부정을 저지르는 것도 '부패했다'고 하기 때문이다. 腐자에 쓰인 府자는 '관청'을 뜻하는 글자이다. 그래서 府자는 발음역할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나랏일을 하는 관료들의 부정을 뜻하려 했던 것으로도 보인다. 府자에는 '주다'는 뜻의 付(줄 부)자까지 있으니 더욱 문자조합의 의도가 엿보인다. 그래서 腐(부)는 ①썩다 ②썩히다 ③나쁜 냄새가 나다 ④마음을 상하다 ⑤궁형(宮刑: 음부를 제거하는 형벌) ⑥개똥벌레(반딧불이)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썩을 후(朽)이다. 용례로는 썩어서 벌레 먹은 것처럼 삭음을 부식(腐蝕), 썩어서 무너짐을 부괴(腐壞), 근심 걱정으로 마음을 썩임 또는 무엇을 생각해 내느라고 몹시 애를 씀을 부심(腐心), 썩어 문드러짐을 부란(腐爛), 쓸모 없이 낡아 빠진 말을 부담(腐談), 남자는 음낭을 까버리고 여자는 음부를 도려내거나 감옥에 가두어 두던 형벌을 부형(腐刑), 약물을 써서 유리나 쇠붙이 따위에 새기는 일을 부각(腐刻), 골수염이나 골막염으로 뼈가 썩는 일 또는 그러한 뼈를 부골(腐骨), 썩은 나무를 부목(腐木), 식물이 생물의 썩은 몸이나 배설물을 양분으로 섭취하여 생활하는 일을 부생(腐生), 흙 속의 유기물이 썩음을 부식(腐植), 썩은 먹이를 먹는 것을 부식(腐食), 짐승의 썩은 고기를 부육(腐肉), 썩어서 풍기는 고약한 냄새를 부취(腐臭), 썩어서 깨어짐을 부파(腐破), 썩은 우물을 부정(腐井), 생각이 낡아 완고하고 쓸모 없는 선비를 부유(腐儒), 썩은 쥐라는 뜻으로 비천한 물건이나 사람을 부서(腐鼠), 케케묵음으로 새롭지 못함을 진부(陳腐), 썩는 것을 막음을 방부(防腐), 콩으로 만든 음식의 하나로 두부(豆腐), 두부를 얇게 썰어 기름에 튀긴 식품을 유부(油腐), 완고하고 진부함을 완부(頑腐), 창자를 썩히는 약이라는 뜻으로 맛 좋은 음식물과 술을 이르는 말을 부장지약(腐腸之藥), 생활이 바르지 못하고 썩을 대로 썩음을 일컫는 말을 부정부패(不正腐敗), 이를 갈고 마음을 썩이다는 뜻으로 대단히 분하게 여기고 마음을 썩임을 일컫는 말을 절치부심(切齒腐心), 흐르는 물은 썩지 않는다는 뜻으로 항상 움직이는 것은 썩지 않음을 이르는 말을 유수불부(流水不腐), 초목과 함께 썩어 없어진다는 뜻으로 해야 할 일을 못 하거나 이름을 남기지 못하고 죽음을 이르는 말을 초목동부(草木同腐), 생물이 썩은 뒤에야 벌레가 생긴다는 뜻으로 남을 의심한 뒤에 그를 두고 하는 비방이나 소문을 듣고 믿게 됨을 이르는 말을 물부충생(物腐蟲生), 낡은 것을 바꾸어 새 것으로 만듦을 일컫는 말을 환부작신(換腐作新) 등에 쓰인다.
▶️ 心(마음 심)은 ❶상형문자로 忄(심)은 동자(同字)이다. 사람의 심장의 모양, 마음, 물건의 중심의, 뜻으로 옛날 사람은 심장이 몸의 한가운데 있고 사물을 생각하는 곳으로 알았다. 말로서도 心(심)은 身(신; 몸)이나 神(신; 정신)과 관계가 깊다. 부수로 쓸 때는 심방변(忄=心; 마음, 심장)部로 쓰이는 일이 많다. ❷상형문자로 心자는 ‘마음’이나 ‘생각’, ‘심장’, ‘중앙’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心자는 사람이나 동물의 심장을 그린 것이다. 갑골문에 나온 心자를 보면 심장이 간략하게 표현되어 있었다. 심장은 신체의 중앙에 있으므로 心자는 ‘중심’이라는 뜻도 가지고 있다. 옛사람들은 감정과 관련된 기능은 머리가 아닌 심장이 하는 것이라 여겼다. 그래서 心자가 다른 글자와 결합할 때는 마음이나 감정과 관련된 뜻을 전달한다. 참고로 心자가 부수로 쓰일 때는 위치에 따라 忄자나 㣺자로 바뀌게 된다. 그래서 心(심)은 (1)종기(腫氣) 구멍이나 수술한 구멍에 집어넣는 약을 바른 종이나 가제 조각 (2)나무 줄기 한 복판에 있는 연한 부분 (3)무, 배추 따위의 뿌리 속에 박인 질긴 부분 (4)양복(洋服)의 어깨나 깃 따위를 빳빳하게 하려고 받쳐 놓는 헝겊(천) (5)초의 심지 (6)팥죽에 섞인 새알심 (7)촉심(燭心) (8)심성(心星) (9)연필 따위의 한복판에 들어 있는 빛깔을 내는 부분 (10)어떤 명사 다음에 붙이어 그 명사가 뜻하는 마음을 나타내는 말 등의 뜻으로 ①마음, 뜻, 의지(意志) ②생각 ③염통, 심장(心臟) ④가슴 ⑤근본(根本), 본성(本性) ⑥가운데, 중앙(中央), 중심(中心) ⑦도(道)의 본원(本源) ⑧꽃술, 꽃수염 ⑨별자리의 이름 ⑩진수(眞修: 보살이 행하는 관법(觀法) 수행) ⑪고갱이, 알맹이 ⑫생각하다 따위의 뜻이 있다.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물건 물(物), 몸 신(身), 몸 체(體)이다. 용례로는 마음과 몸을 심신(心身), 마음이 움직이는 상태를 심리(心理), 마음에 품은 생각과 감정을 심정(心情), 마음의 상태를 심경(心境), 마음 속을 심중(心中), 마음속에 떠오르는 직관적 인상을 심상(心象), 어떤 일에 깊이 빠져 마음을 빼앗기는 일을 심취(心醉), 마음에 관한 것을 심적(心的), 마음의 속을 심리(心裏), 가슴과 배 또는 썩 가까워 마음놓고 믿을 수 있는 사람을 심복(心腹), 본디부터 타고난 마음씨를 심성(心性), 마음의 본바탕을 심지(心地), 마음으로 사귄 벗을 심우(心友),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한다는 심심상인(心心相印), 어떠한 동기에 의하여 이제까지의 먹었던 마음을 바꿈을 심기일전(心機一轉), 충심으로 기뻐하며 성심을 다하여 순종함을 심열성복(心悅誠服), 마음이 너그러워서 몸에 살이 오름을 심광체반(心廣體胖), 썩 가까워 마음놓고 믿을 수 있는 사람을 심복지인(心腹之人)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