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국지 [列國誌] 66
■ 1부 황하의 영웅 (66)
제2권 내일을 향해 달려라
제10장 제족의 선택 (5)
여기서 제(齊)나라가 기(紀)나라를 침공하게 된 배경에 대해 설명해 보겠다.
제희공이 제나라 군위에 오르기 7,8대(代) 전의 일이었다.
그 무렵, 동방의 제국 제(齊)나라는 무척 강성했다.
그런데 뜻하지 않은 한 사건으로 제나라의 국력은 상당한 손실을 입게 되었다.
이른바 애공파(哀公派)와 호공파(胡公派)의 싸움이었다.제애공과 제호공은 이복형제간이었다.
제애공이 먼저 군위에 올랐다.그런데 이웃에 있던 기(紀)나라가 제애공을 비방하는 참언을
주왕실에 고해 바쳤다.이로 인해 제애공은 주천자에게 팽살(烹殺)당했다.
팽(烹)이란 사람을 솥에 삶아 죽이는 형벌을 말한다.
제애공의 죽음으로 제나라 공실은 혼란에 빠졌고,
그 틈을 이용해 이복동생인 제호공이 군위를 탈출하여 임금 자리에 올랐다.
그러자 이번에는 살해당한 제애공의 동복동생인 공자 산(山)이 형의 원수를 갚기 위해
제호공을 습격하여 죽이고 자신이 군위에 올랐다. 그가 제헌공(齊獻公)이다.
제헌공은 일대 숙청을 벌여 호공파 일족을 모두 죽이거나 추방해버렸다.
그런데 제헌공의 손자인 제여공 시대에 와서 국외로 추방당했던 호공파의 생존자들이
제여공을 공격했다.이 싸움에서 제여공은 목숨을 잃었다.
하지만 공격군인 호공파 공자도 전사했다. 양 파(派)가 모두 쓰러진 것이다.
이에 제(齊)나라 대부들이 제여공의 아들인 공자 적(赤)을 군위에 세웠다.
이 사람이 제문공(齊文公)이다.제문공은 즉위하자마자 호공파 계열의 사람들 70여 명을 죽이는
대학살을 자행했다.이런 길고도 끔찍한 내분을 겪는 동안 제(齊)나라 국력은 형편없이 약해졌다.
제문공의 증손자인 제희공 시대에 이를 때까지도 이러한 쇠약함은 계속되었다.
오죽하면 변방 오랑캐족의 일부인 북융(北戎)이 대거 침입하였을까.
제희공은 급히 정나라에 원군을 청해 겨우 북융을 격퇴했다.
제나라의 쇠락을 누구보다도 절감한 것은 제희공 자신이었다.
- 제(齊)나라를 부흥시키리라!
제희공은 결심했다.그 후 그는 다각적인 외교정책을 펼쳤다. 먼저 이웃의 라이벌인
노나라에 화친의 손짓을 보냈다. 노나라 공녀를 자신의 후궁으로 맞아들인 것이다.
혈연관계를 맺음으로써 외부로부터의 침공을 막아보자는 의도에서였다.
정략결혼은 이로써만 그친게 아니었다. 위(衛)나라 공녀를 맞이하여 또 후궁으로 삼았다.
이때 맞아들인 노공녀와의 사이에 태어난 아들이 둘째 공자인 규이고, 위공녀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
셋째 공자인 소백(小白)이다. 이 밖에 제희공은 주변의 크고 작은 나라의 공녀들을 자신의 후궁으로
맞아들임으로써 외교정책을 활발히 전개해나갔다.
뿐만 아니라 그는 자신의 딸들도 이웃나라 군주에게 시집을 보내는 이중삼중의 혼인정책을 시행했다.
그에게는 여러 딸이 있었는데, 그 중 첫째 딸인 선강(宣姜)을 위나라 공실로 시집보내고,
둘째 딸인 문강(文姜)을 노나라 공실, 즉 노환공에게로 시집보냈다.
이로써 어느 정도 국력을 회복한 제희공은 제애공을 팽살시킨 기(紀)나라를 응징함으로써
8대에 걸쳐 내려온 원한관계를 매듭지으리라 결심했다.하지만 혼자 힘으로는 기(紀)나라를 칠
자신이 없었다.그리하여 그는 먼저 혼인국인 위(衛)나라에 도움을 요청했고,
북쪽에 위치한 연(燕)나라에게도 군대를 보내줄 것을 부탁하여 기(紀)나라 침공을 감행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겉으로 내세운 명분일 뿐, 제희공의 기나라 침공 이면에는 다른 의미가
숨겨져 있었다.
- 제(齊)나라를 군사 대국으로 키우리라!
제희공의 가슴속에는 이런 야망이 불타고 있었다.정장공 죽음 이후에 중원에는 절대 강자가 없어졌다.
남방의 초(楚)나라가 비록 왕호를 사용하며 중원진출을 선언했지만, 아직 본격적으로 중원을 넘볼 만한
힘을 보유하고 있지는 못했다.제나라 시조 태공망 시절에 얻었던 '동방의 대국'이라는 옛 명성을
회복하기에 지금이 가장 적기라고 제희공은 판단했다. 이를테면 이번 기(紀)나라 침공은 제나라가
군사강국으로서 행세할 수 있느냐 없느냐를 가늠하는 첫 시험 행보였던 것이다.
기(紀)나라 군주 기후(紀侯)로서는 이러한 제희공의 침공이 황당하기도 하고, 억울하기도 했다.
- 150년이 넘은 옛날 일을 가지고 복수를 하겠다니, 너무 심한 일 아닌가.
예전 같았으면 주왕실에 호소하여 제나라의 무력 행위를 제지할 수도 있었겠으나,
이미 주천자의 권위는 땅에 떨어지고 힘과 실력만이 옳고 그름을 말해주는 시대가 되었다.
힘에는 힘으로 맞설 수밖에 없었다.그러나 기(紀)나라 국력은 너무 약했다.
제나라 하나만을 상대하기에도 벅찬 판에 위. 연나라까지 가세하였으니 약소국인 기(紀)나라로서는
감히 나가 싸울 엄두를 내지 못했다. 재빨리 구원을 청하는 사자를 동맹국인 노나라에 보냈다.
그러고는 성과 보루를 높이 쌓고 성지(城池)를 깊이 판 후 노나라 구원군이 당도하기만을
목 빠지게 기다렸다.그러던 중 고대하던 소식이 전해졌다.
- 노환공과 정여공이 우리나라를 돕기 위해 성밖에 이르렀습니다.
기후(紀侯)는 비로소 노랗던 하늘이 파랗게 보였다.
성벽 위로 올라가 바라보니 과연 노나라와 정나라 군대가 30리 거리를 두고 진채를 내리고 있었다.
즉시 동생인 영계를 불러 지시했다."노. 정나라의 군대를 맞아들일 준비를 하라."
그 시각, 기성(紀城)밖 들판에 진채를 내린 노환공은 제나라 진영을 방문하여 제희공과의 회견을
요청하고 있었다. 제희공과 노환공은 장인과 사위 사이다. 동맹국의 관계이기도 하다.
술상이 나오고 두 사람은 서로 술잔을 나누었다.노환공이 제희공을 향해 정중하게 말했다.
"기(紀)나라가 제나라에 저지른 옛 일은 저도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선군의 일을 해결하려는 군후의 뜻을 모르는 바 아니나, 기(紀)나라는 대대로 우리 노나라와
가깝게 지내는 혼인국입니다. 우리 노나라의 낯을 보아서라도 기나라의 옛 허물을 용서해주심이
어떠하신지요?"노환공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오자 제희공은 갑자기 얼굴색을 달리했다.
지금까지 부드럽던 어조도 차갑게 변했다.
"우리 선조인 제애공은 기(紀)나라의 참소로 주왕실에 붙들려가 펄펄 끓는 가마솥에서 세상을 떠났소.
이 일은 우리 제나라에게는 크나큰 원한이오. 8대를 내려올 때까지 그 원수를 갚지 못하다가
이제 나의 대에 와서 그 한을 풀려 하는 것이오. 이 문제는 노나라가 관여할 사항이 아니라고 보오."
"하지만 그 일은 아주 옛날의 일이고, 또한......“"그만 두시오.
그대가 비록 나의 딸과 혼인한 사이긴 하지만, 기(紀)나라 문제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것은
용납하지 않겠소. 나는 무슨 일이 있더라도 조상 원수를 갚아야 하겠소.
노나라가 기(紀)나라를 도와주고 말고는 노나라 마음이오.“"말씀이 너무 심하신 것 아닙니까?“
"심할 것 없소. 무슨 말을 해도 나는 기(紀)나라를 칠 것이요. 그대가 기나라를 도우면
오로지 싸움만이 있을 뿐이오."제희공의 말에 노환공도 더 이상 화를 참을 수가 없었다.
"내가 좋은 말로 청했는데도 그러하다면..........좋소이다. 군후의 말대로 싸움만이 있을 뿐이오.“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노나라 진채로 돌아왔다.
그러고는 공자 익에게 명을 내려 병차를 몰고 제나라 진채를 공격하게 했다.
67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