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 여러분, 주님 안에서 부모에게 순종하십시오. 그것이 옳은 일입니다. 그리고 아버지 여러분, 자녀들을 성나게 하지 말고 주님의 훈련과 훈계로 기르십시오.” (에페 6,1.4)
가족의 갈등은 인류의 역사만큼 오래된 주제이다. 특별히 가족 중에 아픈 이가 있을 때 그 치유를 위한 가족의 역할은 당연하게 보이기도 하지만 그 희생과 노력이 길어질수록 내재된 갈등은 깊어지기도 한다. 가족의 갈등과 그 극복을 다룬 영화 〈마이 시스터즈 키퍼〉를 소개한다.
나름 행복한 가정을 꾸미며 살던 브라이언과 사라에게 갑자기 위기가 닥친다. 두 살배기 딸 케이트가 백혈병 진단을 받고 고통의 나날을 보내게 되지만 부모로서 아무런 도움도 줄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이들은 의사의 비공식적인 제안인 맞춤형 아기(케이트의 치료를 목적으로 같은 유전형을 가진 아이를 인공적으로 가지는 것)를 수락하게 되고 둘째 딸 안나가 태어나게 된다. 열한 살이 된 안나를 통해 케이트의 치료를 이어가던 어느 날, 안나는 변호사를 고용해서 자신의 몸에 대한 의료해방과 권리를 찾기 위해 소송을 시작하게 되고, 엄마 사라는 케이트의 치료를 위해서 안나와 법정 싸움을 하게 된다. 재판 막바지에 이르러 안나의 소송이 치료를 중단하고자 하는 케이트의 부탁이었음을 알게 된 사라는 케이트의 진심을 알게 된다. 사라와 케이트가 화해하던 날 밤, 케이트는 평화롭게 눈을 감게 되고, 가족들은 일상으로 돌아간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엄마 사라의 케이트에 대한 사랑은 여느 엄마 못지않다. 자신의 일도 사랑도 삶도 포기한 채 오직 케이트의 치료를 위해 애쓴다. 항암치료로 머리가 빠져 자신이 추하다는 케이트를 위해서 머리를 밀어 케이트와 똑같은 대머리가 되어 함께 외출하고 사진을 찍을 정도로 그 희생정신은 높이 살만하다. 그러나 그녀의 케이트에 대한 집착은 아들 제시에 대한 무관심과 안나에 대한 당연한 희생강요, 케이트의 속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자신의 생각을 강요하는 상황에 이르게 된 것이다. 사라가 케이트를 치료하고 싶은 마음은 부모로서 올바른 것이다. 그러나 그 치료가 더 이상 완치가 어렵고 그저 생명을 연장하는 것이라면 치료를 계속하는 것과 인간적인 삶의 질을 위해 치료를 포기하는 것 사이에서 선택이 필요하다. 사라는 치료 포기라는 선택을 스스로 하지 못했고, 사라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이다. 영화의 후반부에서 사라가 케이트의 침대에 함께 누워 케이트가 사라를 껴안고 위로하는 장면은 모녀간의 갈등해결, 즉 사라가 케이트의 죽음을 받아들이도록 한다. 비록 고통스럽지만 평화롭게 그 마지막 순간을 이겨내게 한다.
그리스도교적 가족 공동체의 이상은 예수님, 성모님, 요셉 성인이 이루신 성 가정에 있다. 성 가정이 일반적인 가족과 달랐던 것은 하느님의 뜻 안에서 서로에게 순종하는 삶을 살았다는 것이다. 가장이기에, 부모이기에 그 권위를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온전히 성장시켜 세상에 내어놓기 위해 하느님의 구원 계획에 온전히 순명하였기에 가능했다. 가족의 갈등에는 먼저 가족을 이해하려는 경청의 마음보다 내 생각을 강요하려는 커뮤니케이션의 부족에 있다. 서로 바쁘고 다른 가치관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서로의 마음을 열고 대화를 시도하며, 서로의 부족함을 채워갈 때 가족은 성화의 중심이며 하느님의 현존을 드러내는 거룩한 자리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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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닝포인트 - 가족이 함께 바다에 가는 장면(1:05:38~1:13:12) 케이트는 마지막 소원으로 바다를 보고 싶다고 한다. 아버지 브라이언은 급하게 외출 계획을 세워 케이트와 제시, 안나를 태우고 집에 잠시 들린다. 집에 있던 사라는 케이트의 건강을 걱정하며 브라이언의 행동을 못마땅하게 생각한다. 사라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바닷가로 간 가족들은 잠시나마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마침내 마음을 바꾼 사라도 그 자리에 함께 한다. 병원이 아니라 바닷가에 가고 싶은 케이트와 그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라의 갈등은 이 장면을 통해서 해결의 가능성을 비춘다. 남은 시간을 가족들과 함께 소중히 보내고 싶은 케이트의 마음을 사라가 조금씩 이해하게 된다.
* 생각해 볼 수 있는 주제들 - 신앙인으로서 인공수정, 낙태의 금지를 어떻게 이해하고, 지키고 있는가? - 가족의 고통과 죽음을 사랑으로 함께 하는가? - 가족에게 사랑이라는 미명 아래 개인적인 신념(사회적 성공, 결혼)을 강요하지는 않는가?
* 조용준 니콜라오 신부는 1992년 성바오로 수도회 입회하여 2004년에 종신서원, 2005년에 사제서품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2006년-2008년 NYFA Filmmaking 과정 수료후, 현재 영화, 인터넷, 뉴미디어를 담당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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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順伊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