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말을 해서 격에 맞을 만큼 이씨는 엄격한 경찰관이기도 했다. C시의 경찰서장으로 있을 때의 일이다. 이씨의 동생이 경찰양성소를 졸업하고 C시의 경찰서로 보직되어 왔다. 그 인사를 하러 서장실에 들어가서 형인 서장의 책상 앞에 비스듬히 서며 “형님 저도 이 경찰서에 근무하게 되었습니다” 했다. 그랬더니 이서장은 벨을 울려 경무계장을 부르곤 자기 동생을 가리키며 “아직 이 순경은 상관에게 신고할 줄도 모르는 놈이다. 정문의 보초로 석 달 동안 세워 재훈련시키도록 하라”고 고함을 질렀다는 일화가 있다.
그런가 하면 이씨는 유머의 폭도 있는 사람이기도 했다. 6 ㆍ25 당시 C시엔 야간통행금지가 엄했다. 술 마시기를 좋아하고 놀기 좋아한 우리들은 번번이 시간을 어겨 경찰에 끌려가곤 했다. 그때마다 일행 중의 한 사람이 야간근무를 하고 있는 서장실에 빠져들어가서 구원을 청하면 그는 똥을 찍어 먹는 곰처럼 얼굴을 찌푸리고 우리가 억류되어 있는 방으로 와선 관계 경찰관을 보고 고함을 질렀다.
“저기 있는 무리들은 사람이 아니다. 토끼나 노루와 다름없는 동물이다. 야간통행금지는 사람에게 대한 금지다. 저 동물들은 풀어줘라.”
개나 돼지나 다름없는 동물이라고 할 수도 있었을 것을 토끼나 노루를 들먹여 대신했다는 점에 당시의 우리들은 철이 없었으면서도 이서장의 인간을 보았던 것이다.
● 출전 : ☜『20세가 한국소설, 21권』, 창비 2005
● 작가 – 이병주 : 1921년 경남 하동에서 태어나 1965년『세대』에 장편을 발표하며 등단. 소설『관부연락선』『산하』『지리산』등이 있으며, 1992년 작고함.
● 낭독- 정인겸 : 배우. 연극 <보이첵> <호텔 피닉스에서 잠들고 싶다> <관객모독> <살색안개> 등에 출연.
김병춘 : 배우. 연극 <부자유친> <춘풍의 태>, 영화 <바람난 가족> <비열한 거리> 등에 출연.
이병주「겨울밤」을 배달하며
한두 가지 일화를 통해 한 사람의 생김새나 그릇을 판단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그때 흔했을 소화(笑話)입니다.
한 존재의 정체성을 다른 걸로 바꾸는 과정이 재미있는 건 전형적인 패턴을 벗어날 때입니다. 신임 순경을 보초로, 개·돼지를 토끼나 노루로 바꾸는 것처럼 말이지요. 그런 것도 하나의 재능이겠습니다. 대서특필할 만한 건 아니라고 해도 기록하고 전할 만한 의미는 있는.
이 이야기의 주인공인 경찰서장은 이승만 독재정권의 하수인 노릇을 하다가 감옥에 갇히게 되는데 이승만 대통령과 관련된 저 유명한 어록 “각하, 시원하시겠습니다”가 생각나는군요. 역시 대서특필할 건 아니지만 어쩐지 오래도록 유전해 내려오는, 내려갈 아첨의 전범 같은 수사지요.
2008. 1. 24. 문학집배원 성석제 / 사이버문학광장 문장 / 별뜨락새벽산책 시&그리움 (詩&憧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