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된 자기완성과 타인의 완성을 이루는 원융무애(圓融無碍) 태극정신
태극기는 백색을 바탕으로 하여
중앙에 음(陰, 靑)·양(陽, 紅)의 양의(兩儀)가 포함된
일원상(一圓相)의 태극이 있고,
네 귀〔四維〕에는 건(乾)·곤(坤)·감(坎)·이(离)의 사괘(四卦)가 배치
흰 바탕은 순일무잡(純一無雜)한 한민족의 동질성과 결백성을 상징한 것이며,
평화를 애호하는 정신이 우리 민족의 기질과 이상이다.
동이전(東夷傳)에 백색을 숭상한 것은 고대로부터 내려오는 우리 민족의 특징이다.
일원상의 태극은 우주만상의 근원이며 인간생명의 원천으로서
진리를 표현한 것이므로 사멸(死滅)이 있을 수 없는
구원(久遠)의 상(相)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이해한다.
태극 도형의 문양(文樣)과 이념은
고대로부터 우리 민족에게 전통적으로 쓰여왔다.
‘태극’이라는 용어는 『주역』 계사(繫辭) 상(上)에 나오지만
그림은 그려져 있지 않다.
중국에서 태극의 문양이 보이기는 송나라 때로,
주돈이(周敦頤, 1017∼1073)가 처음으로 『태극도설(太極圖說)』을 지었는데,
그 연대는 11세기 이상을 올라가지 못한다.
우리나라에는 『태극도설』보다 약 400년 전인 628년(신라 진평왕 50)
건립된 감은사(感恩寺)의 석각(石刻) 가운데에 태극도형이 새겨져 있다
1144년(인종 22)에 죽은 검교대위(檢校大尉) 허재(許載)의
석관(石棺) 천판(天板)에도 태극문양이 뚜렷하게 새겨져 있다.
《도덕경(道德經)》에 나오는
“무한대로 확장되는 큰 네모에는 모서리가 없고(大方無隅) 무한대로 확장하는
큰 그릇은 채워지지 않으며(大器晩成) 엄청나게 큰 소리는 귀에 들리지 않고(大音希成)
엄청나게 큰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大象無形).
올바른 이치는 이처럼 은밀하여 무엇이라 이름을 붙일 수가 없다(道隱無名).”
‘무극이태극(無極而太極)’에 대한 해석은
“무한대로 계속 커지는 커다란 것에는 끄트머리가 없다”
태극이나 태극에 내포된 음양사상은
우리나라 고대의 유적이나 생활습속을 통해서 잘 알 수 있는데,
예를 들어 고구려 고분의 벽화나 민속설화 또는 의학에 있어서
병리·생리 등을 음성·양성으로 분류하는 사상의학(四象醫學)이 그것이다.
고구려 고분내의 사신도(四神圖)라든지,
특히 현무도(玄武圖)는 음양상화(陰陽相和)의 이치를 나타낸 것으로,
우리나라의 고대민속에서 액(厄)막이하는 부적(符籍)으로 사용되어 왔다.
중국의 태극도형 등이 전래되기 이전부터 우리나라는 태극도형을 활용해 왔다.
이황(李滉)은
“태극은 지극히 존귀한 것으로 만물을 명령하는 자리이며,
어떠한 것에도 명령을 받지 않는 것이다.”
천지가 한 태극이며,
만유(萬有)가 모두 태극의 원리를 내포하고 있다
인간 주체로부터 인식되는 것이므로, 인도(人道)의 극치가 태극이다.
김장생(金長生)은 만물의 태극보다 인심(人心) 중의 태극,
자기완성과 타인의 완성을 동시에 이루는 원융무애(圓融無碍), 공동주체이다.
한민족은 역사적으로 천(天)·지(地)·인(人) 삼재(三才) 중에서
천·지의 요소를 인간으로 집약하여 인도주의 정신을 고취하여왔다.
단군(檀君)이 하늘을 상징하는 환웅(桓雄)과
땅을 상징하는 웅녀(熊女) 사이에서 탄생하였다
“무릇 도는 인간에게서 멀리 있지 않으니,
사람은 누구나 이방(異邦)이 따로 없다(道不遠人人無異國).”
최치원(崔致遠)의 진감국사(鑑國師) 비문,
천도교의 인내천사상(人乃天思想)에서 그 실례를 찾아볼 수 있다.
태극은 홍색의 양과 청색의 음이 상하로 상대화합(相對和合)되어 있다
양상음하(陽上陰下)로 배치된 이유는
하늘은 위에 있고 땅은 아래에 있음을 나타낸 것이다.
하늘과 땅 사이에 인간이 있고 따라서 사회와 민족국가가 형성된다.
불교철학에 있어서 성(聖)과 속(俗)을 이원적으로 분리하지 않고,
고매한 화엄(華嚴)의 도리를 대중 속에 생활화시킨 것이다 (태극기(3)